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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서적 - 살아 남아야 하는 것들에 관하여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6/06 [19:56]
{IMAGE2_LEFT}축구 국가대표팀이 폴란드를 완파하고 월드컵 본선진출 48년 만에 첫승을 거둔 날, 우리나라 대표적 서점인 종로서적이 최종 부도처리됐다. 대부분의 언론이 한국팀 승리의 열기와 환호성이 조금은 잦아든 6월 6일에야 그 사실을 짤막하게 다뤘다. 종로서적의 부도를 아쉬워하며 그 여파로 예상되는 출판산업의 위축을 염려하는 사설과 칼럼들도 더러 등장했다.

도서 판매는 물론 휴식과 오락의 기능까지 겸비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눌려 매출이 격감한 것이 부도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아울러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점의 급팽창도 종로서적의 몰락을 재촉한 요소였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어떤 항변을 둘러대든 평균적 성인인구의 태반이 1년 내내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미개한 나라에서 서적판매를 우선적 수익원으로 삼고 있는 순수서점이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고 생존하기란 무척이나 버거웠을 것이다.

종로서적의 정확한 부도원인을 추적하여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출판산업 전문가들이나 경영 컨선턴트들의 몫이다. 극장은 물론 서점 및 음식점까지도 대규모 투자비를 조달할 능력이 있는 소수의 기업들에게 독점되는 추세는 너무도 낯익은 현상이므로 현재로서는 뚜렷한 회생방안이 언뜻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종로서적의 몰락이 강북의 퇴락과 강남의 극성(極盛)을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것 같아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것이 못마땅한 나 역시 최근 들어 동네서점이나 강북지역 서점보다는 쾌적하고 넓직한 공간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강남지역 서점을 빈번히 이용했던 터라 종로서적 부도에 암암리에 일조한 공범인 듯한 이유 없는 죄책감을 피할 길이 없다. 그 원죄의식의 부채감을 약간이라도 덜어보고자 시내에 나가 종로서점에 들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셔터가 내려진 종로서적 정문에는 “매장정리중”이라는 안내문이 쓰여진 하얀 전지만이 6월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힘들게 맞으며 걸려 있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명판 위에 새겨진 “Since 1907"이란 문구는 5천년 역사를 가진 나라의 문화적 저력과 정신적 가치에 답할 100년의 전통을 어쩌면 가질 수도 있었을 서점의 몰락을 목전에 둔, 한국 현대사에 패인 깊은 굴곡과 그 깊이에 값하지 못하는 세태의 얕음을 조롱하는 듯 하다.

서울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종각역 출구에서 내리자 마자 있는 종로서적 정문이나 아니면 서점 안에서 약속을 하고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만남이 낳았을 무수한 인연들의 기쁨과 슬픔, 이별과 재회, 천차만별한 사연들의 밝음과 어두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공간은 가도 기억은 남는다는 진부한 명제만을 새로이 발견한 중차대한 사실인양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종로서적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을 기억한다. 그들 역시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IMAGE1_RIGHT}종교는 육체의 현존과 더불어 영혼의 실존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때 종로서적으로 불렸던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사라지더라도 그 덩어리가 토해낸 수십 수백만 권의 책들 안에 종로서적의 숨결이 깃들여주기를 나는 바란다.

하지만 이대로 종로서적을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대통령 후보자인 노무현이나 이회창은 물론, 서울시장에 출마한 이문옥 중 누구라도 정략적 사고에 바탕한 정치적 제스처라 비판받을지언정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종로서적 근처에서 유세를 진행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주었으면 좋겠다. 지식기반사회의 경쟁력을 운위하고 정보와 지식이 부의 원천이라 주장하는 조악한 경제 제일주의적 발상이라도 상관 없고, 잊혀질 만하면 작년에 갔던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무슨무슨 살리기 운동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고, 무수한 저자와 필자와 독자와 지식인이 거쳐갔을 유서 깊은 서점 자리에 메가박스 종로나 CGV 종로 같은 극장도 아니고 유흥장도 아닌 이상야릇한 구조물들이 줄줄이 들어서는 것을 목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리에 그 거리의 이름을 딴 서점하나 온전히 건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축구의 월드컵 우승이 결코 상쇄하지 못할 창피스러움으로 각인될 것이다.

오늘 종로서적이 문을 닫지 않았더라면 나는 종로의 한 극장에서 젊은 나이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아직 읽어보지 않은 기형도의 시집을 사리라 다짐했었다. 닫혀진 서점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그토록 소망했던 어느 시인이 왜 그렇게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는지 시인의 마음의 일단을 불완전하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마땅히 죽어야 할 것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할 것들은 되레 죽어가는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을 대속(代贖)하기를 간절히 희원하는 순백하고 소박한 본심을 시심에 담고 싶었으리라.

시인이 간지 반세기도 훨씬 넘은 오늘날까지 한국사회는 여전히 정작 죽어야 할 것들이 죽지 않고 군림하며 외려 위세를 떨치는 부끄러운 곳으로 오롯이 버티고 서 있다. 종로서적은 살아 남아야 한다. 그것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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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6/06 [19: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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