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태의 참예수를 찾아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부처님 탄신 축하드리고 함께 기뻐합시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한국 개신교는 이웃종교와 문화를 존중해 주어야
 
류상태   기사입력  2013/05/11 [10:00]
오늘은 닷새 후로 다가온 석가탄신일(5월 17일, 음력 4월 8일)을 맞아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제가 불교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불교를 비롯하여 이웃종교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교우님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1. 저는 불교의 매력에 깊이 빠진 예수사람입니다.

기독교와의 인연이라고는 어렸을 때 형을 따라 교회에 몇 번 가본 것이 전부였던 저는 대학 2학년 과정을 마치고 겨울방학 때 가진 영성수련 캠프에서 예수님을 큰 감동 중에 만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전통 교리는 극단적 흑백논리로 생각되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철학을 전공했던 저는 이후 <종교철학> <중국철학> <인도철학> 등의 전공과목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이웃종교의 경전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도교와 불교 성리학 등 동양종교와 철학에 심취하였으며, 종교경전에 나타난 이웃종교들의 실상이 한국 교회가 인식하고 말하는 이웃종교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크게 울리며 다가온 종교가 불교였습니다. 중국 유학길에 오른 원효대사께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마음이 열리면 모든 법이 함께 생겨나고, 마음이 닫히면 모든 법이 함께 소멸한다.”는 말씀을 남기고 신라로 되돌아오셨다는 이야기는 저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지옥이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신 지장보살의 서원은 저에게 더욱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하고 선해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교리에 불편을 느끼던 저에게 지장보살의 가르침은 불교의 자비로움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소리에 한동안 빠져들었노라고 고백하시는 어느 스님의 글은 저에게 감동과 함께 부끄러움도 안겨주었습니다. 스님은 그날 부처님을 만나서 하루 종일 기쁘고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이 만난 부처님은 교회에서 찬송하시는 부처님, 설교하시는 부처님이었습니다.

조금씩 다가갈수록 너무나 아름다운 종교였지만 불교에 대한 저의 경외감을 교회공동체 내의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대화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제가 속해있던 보수적인 신앙공동체에서 그것은 곧 믿음이 연약하고,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거나 없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제가 속한 교단은 물론이고 기독교 내의 공동체 어디에도 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곳은 없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사찰에 종종 내걸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마음이 늘 아프고 불편했습니다. 이웃종교의 축일을 기꺼이 축하해주는 불자님들의 너그러움과 자비로움에 화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목회자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늘 부끄러워했던 저는 결국 목사 안수를 받은 지 20년이 되는 해에 예기치 못한 사건을 갑자기 만나 목사 자격을 교단에 반납했습니다. 이후 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과 저의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증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부처님 오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유

학교를 떠나고 몇 해가 지나 인터넷 공간에 교회를 세운 저는, 200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뜻을 같이 하는 교우님들과 함께 화계사를 방문하고 ‘사죄의 108배’를 드렸습니다. 화계사를 선택한 이유는 이 사찰이 과거 기독교인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를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0년에는 봉은사에서 ‘화해와 소통을 위한 봉축 108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봉은사 주지로 계셨던 명진 스님께서는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진취적인 활동에 앞장서셨고, 당시 제가 담임하고 있던 교회 교우님들로부터도 존경받는 분이셨기에, 교우님들과 의논하여 그곳에서 108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의 무례에 대해 마음아파하시면서도 저희들의 방문을 기뻐하시고 기꺼이 사찰을 내어주신 화계사와 봉은사의 스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예수사람으로서 108배를 드리는 것에 아무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도 기뻐하실 일이라고 확신하였기에, 가능하면 한국 교회와 교우님들에게도 동참을 요청하기로 하였고, 뜻을 같이 하는 몇몇 교회공동체와 연대하여 한국 교회에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아래 내용은 당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의 일부입니다.

종교간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와 소통을 이루는 일은 그 동안 이웃종교에 수없이 무례를 저지른 개신교회가 반드시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되기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아래와 같이 정중히 제안하고자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하여 각 교회별로 뜻을 같이 하는 교우님들이 가까운 사찰을 방문하여 협조를 구하고, 사찰의 동의와 협조가 있을 경우 부처님께 ‘화해와 소통을 위한 봉축 108배’를 드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108배를 드려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지구마을 백성으로서 인류의 큰 스승으로 오신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특정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 온 누리에 자비와 사랑으로 꽃피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지구마을 백성으로서 역사를 통해 누려온 그 분의 은덕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을 어르신이 생신을 맞이하셨을 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르신을 찾아뵙고 축하드리며 음식을 나누는 우리 옛 풍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같은 진리의 길을 찾아가는 불교를 이웃으로 생각하며 그 중심에 계신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직접 찾아가 그분께 인사드리는 것 역시 지극히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기독교인이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 또한 불교인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은, 교리의 눈이 아니라 합리와 상식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일을 실행에 옮긴다면 우리 사회 모든 이웃들이 훈훈한 기쁨과 감동을 함께 느끼게 될 것이며, 우리 하나님께서도 자매형제된 종교인들이 서로 화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2) 기독교인으로서 그 동안 기독교가 이웃종교인 불교에 저지른 무례에 대해 행동으로 사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여 교리적 독선과 배타에 빠졌고 지구마을 이웃들에게 씻지 못할 죄업을 쌓았으며 지금도 사회 갈등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잘못에 대해 불자님들께 정중히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사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부처님께 108배를 드리는 것은, 이웃인 불자님들의 종교문화와 예식을 그대로 존중한다는 뜻을 담는 것이며, 불교와 부처님에 대한 그간의 오해와 무례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며, 기독교와 불교의 화해와 소통을 요청하는 행위이기에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3) 이 일을 계기로 종교간 대화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회 안정을 이루며,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 뿐 아니라 세계종교인 불교와 유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종교가 비등한 세력으로 공존하면서도 큰 갈등없이 지내온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듭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불교와 유교 등 너그러운 이웃종교의 무한한 자비심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회는 여전히 종교 갈등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지난 날 우리가 불교와 유교, 전통종교 등 이웃종교에 저지른 횡포와 무례는 그 사례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이 부끄러움을 언제까지 그냥 안고 가겠습니까?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여, 교우님들이여,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화해와 소통을 위한 봉축 108배’를 드립시다. 그리하여 그동안 우리 개신교회가 이웃에 지은 모든 허물을 씻고 이웃종교인들과 화해하고 소통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이루어 갑시다.

3. 이웃종교와 문화를 존중해 주십시오.

이웃종교를 존중하는 정도를 넘어 108배까지 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와 교우님들에게 권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교회가 이웃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상호 협력하며 교류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종교도 윤리적 철학적으로 훌륭할 수 있지만 구원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다.”는 독선적인 사고로는 언젠가 심각한 종교 갈등이나 분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만물의 궁극적 실재이신 하나님을 어느 한 종교가 독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구마을의 종교는 모두 자매형제이며 진리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길벗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체계는 진리를 담은 하나의 그릇일 뿐 유일한 그릇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공동체에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궁극적 실재를 이웃종교에서는 이(理), 법(法), 공(公)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인식합니다. 그 궁극적 실재의 절대성과 상대성, 불변성과 가변성에 대해 주장하고 논할 수는 있으나, 특정 종교체계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릇을 절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갈증을 풀어주는 것은 생수이지 생수를 담은 그릇이 아닌 것처럼, 지구마을의 여러 종교는 각자 진리를 담아내는 다양한 그릇으로 서로 존중하고 어깨동무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한 종교체계 또는 몇몇 종교체계가 자기 종교만이 진리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이웃을 부정하는 무례한 태도일 뿐 아니라 심각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저의 주님께 한 가지 중요한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웃종교에 대해서는 장점만 보겠다고, 단점은 보지 않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이웃종교의 단점에 주목하고 그것을 지적하면 걷잡을 수 없이 종교 갈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종교의 문제점은 구성원들의 내적 각성을 통해 개선되거나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은 지성인들의 요구에 의해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이슬람교에 대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갖는 편견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극단적 활동을 이슬람 자체와 동일시하여 이슬람을 악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건 너무나 잘못된 편견입니다.
 
이 문제는 언젠가 이슬람을 주제로 따로 시간을 내어 충분히 말씀드리겠지만, 진정한 무슬림은 테러를 용납하지 않으며, 그들의 무모한 활동에 대해 우리보다 더욱 마음 아파하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슬람은 우리 기독교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종교입니다. 건전한 무슬림도 우리를 경전의 백성으로 존중하며, 형제종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교우님 중에도 이웃종교에 대해서는 장점만 보겠다고, 단점은 보지 않겠다고 우리 주님께 서약해 주시는 분이 많이 계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웃종교에 대해서는 장점만 보고, 우리 기독교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통렬한 자성의 자세를 취하여 교리적 배타와 독선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이웃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부처님 오신 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이웃이 맞는 큰 명절입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여 가족이나 친지 분들 중에 불자님이 계시면 마음을 다하여 축하해 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친구나 직장 동료 분들 중에도 불자님들이 계시면 진심을 담아 축하해 주시고 함께 기쁨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오신 후 2557년 4월 8일(음력), 예수님 오신 후 2013년 5월 17일(양력), 인류의 큰 스승으로 오신 부처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불자님들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드리며, 우리 예수사람들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여, 종교로 인한 사회 갈등이 해소되고, 우리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3/05/11 [10: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