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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에게
[류상태의 주일편지] 아이들은 부모에게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아
 
류상태   기사입력  2013/05/03 [17:19]
오월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이 어린이날이고 사흘 후에는 어버이날이 되는 가정의 달이라 저에게는 오월이 더욱 포근하게 다가옵니다. 하여 오늘은 가정의 행복을 주제로 교우님들과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우리는 모두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닐까요?

어렸을 때 꿈이 교사였기에 저는 목사가 된 이후로도 줄곧 학교에 남아 20년이 넘는 세월을 중고등학교 교목으로 일했습니다. 그때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절실히 느꼈던 점들을 함께 나누면 십대 아이를 자녀로 두신 교우님들의 자녀교육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대화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건 “문제를 가진 학생 뒤에는 대체로 문제 가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큰 숙제로 대두된 학교폭력사건이나 청소년자살사건의 이면에도 많은 경우 가정문제가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청소년문제의 해법은 가정에서부터 찾아야 하며, 특히 부모와의 충분한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교폭력과 왕따 등 청소년문제 전반에 걸쳐 어떤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도 문제를 궁극적으로 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일했던 대광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조별로 나누어 발표를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어버이날을 전후하여 <부모님에 대한 희망사항>이라는 제목으로 토의하게 한 후 발표를 시켰는데, 특이한 발표를 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바라는 희망사항 첫 번째가 ‘문 열어줘!’, 두 번째가 ‘밥 줘!’였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학생들이 성의 없이 준비하고 장난을 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발표 내용을 계속 들으면서 그 조에 속했던 학생들이 정말로 바라는 간절한 희망사항이 그 짧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요즘과 달리 바깥일은 주로 아버지가 하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가사를 담당하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하여 학생들이 집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머니가 계시고 따뜻한 저녁밥을 차려주시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에 속했던 학생들 대부분은 집에 가면 문을 열어주고 반갑게 맞아줄 식구들도, 밥을 차려줄 어머니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나가셔서 밤늦은 시간이 되어야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즘 고등학생들에게 같은 토의를 시킨다면 어떤 희망사항들을 내놓을까요? 아마도 문을 열어달라거나 밥을 차려달라는 낭만적인(?) 희망사항을 내놓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하교하는 아이를 집에서 반갑게 맞아주고 따뜻한 저녁밥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여유가 있는 어머니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저녁식사를 집에서 할 수 있는 학생들 자체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이나 학원수강을 해야 하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야 겨우 귀가하는 요즘 학생들, 수업시간 사이 잠깐의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또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여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이외에는 개인의 자유시간이 거의 없어진 요즘 학생들은 어쩌면 먹고살기 바빠 허덕이는 우리 부모님들보다 더 바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열정이 아이들을 밤늦은 학원수강과 과외로 내몰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내 아이만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올라가겠는데, 거의 모든 학생이 그렇게 하니까 결국 아이들 고생만 시키고 성적은 잘 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부모들의 열성 내지는 극성으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아니 우리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함정에 빠져들고 말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 비참한 현실에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지쳐가는 무한경쟁사회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싶은데, 교우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경쟁사회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바쁘고 지쳐 사랑하는 자녀들과 충분히 대화할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갖지 못한 부모님들에게 무거운 짐을 더 얹어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하루 5분이라도 자녀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꼭 마련해달라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하루 한 끼라도 자녀들과 같이 식사하실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단언컨대,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정에서 부모 자식 간에 하루 한 끼 식사라도 같이 할 수 있고, 하루 5분이라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학교폭력 문제를 비롯하여 청소년 문제의 절반은 해결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20여 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절절히 느낀 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사랑의 일정 분량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사랑의 기본 용량이 채워지지 않을 때 그것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엄마나 아빠 한 분과 사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한 분이 돌아가신 경우도 있지만 이혼 등으로 부모 중 한 분에게 의탁해서 사는 학생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학교에는 이런 경우 ‘결손가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결손가정은 외부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대화와 사랑이 결여된 가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부모 중 한 분이 일찍 돌아가신 가정이나 이혼가정에서도, 엄마나 아빠 중 어느 한 분이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주면, 부모님이 다 계시면서 자식에 대해 방관하거나 지나치게 집착하는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부모님이 모두 계시는 학생도 가정에서 대화가 부족하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자녀를 위해 투자하시는 헌신적인 부모님들이 우리나라에는 참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충분히 주어지는 사랑이 자식들에게는 전달되지 않거나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청소년들의 인격성장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그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때우려 할 때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부모 사랑은 결코 돈으로 메꾸어지지 않습니다.

갈등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본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말을 충분히 들어보거나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3. 일방적인 권고나 야단은 대화가 아닙니다.

교목으로 일하던 초창기, 서울에 있는 숭의여자중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무기명으로 <부모님에게 원하는 것, 또는 부모님과 대화할 때 아쉬웠던 점을 쪽지에 적어내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각 학급마다 학생들이 적어낸 글을 모아 칠판에 정리하고 한 시간 동안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저는 부모의 입장을 변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는 학급 정원이 70명 정도였고 한 학년이 여덟 개 반이었으므로, 560명 정도 되는 여중생들의 의견을 모아서 정리한 내용을 교우님들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낡은 자료를 소개하는 이유는 내용을 상세히 살펴본 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때 정리해두었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많은 학생들이 대화하는 시간이 없거나 짧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2) 부모의 입장에서만 대화할 때 단절을 느낀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랬는데 너희들은 너무 고생을 몰라서 그렇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학생들이 느끼는 점은 “아, 그렇구나. 부모님들이 이렇게 고생하며 우리를 키워주셨으니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엄마 아빠는 왜 옛날 얘기를 저렇게 하실까? 시대가 달라졌는데...”라는 느낌이었답니다.
 
3)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야단보다는 권면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한 학생이 쓴 글입니다. “엄마가 나에게 잔소리하는 이유를 안다. 그러나 야단을 맞으면 반발심이 생긴다.”

4) 공부에 대해서는, 지나친 관심이나 맹목적 강요보다는 (1)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2) 차분히 격려해 주기를 원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또한 약간의 여가시간을 할애해 주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학생의 글입니다. “부모님이 공부해라 해라 하면 공부는 더 하기가 싫은 법이다. 그건 내가 겪어 보아서 안다.”

5)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아달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다음 말은 한 학생이 매우 듣기 싫은 말이라며 예로 든 것입니다. “옆집 00이는 이번에 반장이 됐다더라. 넌 뭐하는 거니?”

6) 오빠나 남동생을 더 사랑하신다거나, 과잉보호하지 말아달라는 의견도 많았고, 너무 많은 간섭이나 잔소리가 싫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누가 맛있는 것 사준다고 해서 따라가면 안 된다. 이 말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말이다.”라는 글을 쪽지에 적어낸 학생도 있었습니다.

7) 시험과 관련하여, 성적이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1) 야단부터 치지 말고 (2) 계속 공부에만 집착하지 말고 (3) 다른 적성을 키워 달라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8) 부모님이 한 약속은 꼭 지켜 달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9) 부모님들이 무언가 잘못하셨을 때는, 떳떳이 그 잘못을 인정했을 때 오히려 신뢰감을 갖는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들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때도 있고 잘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변명하지 말고 떳떳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신뢰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10) 특기할 만한 것은 ‘사랑의 매’를 인정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자식이 잘못해서 부득이 야단을 쳐야 할 때는, 잘못을 충분히 납득시킨 후, 사랑이 담긴 권면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위 내용은 1980년대 중반 서울 시내에 있는 한 여자중학교에서 시행된 종교과목 수업을 통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당시 학생들이 지금은 40대 초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위의 자료는 요즘 부모님들이 느끼시는 청소년 문제와는 많은 시각차가 있겠지만, 바로 지금 십대 자녀를 두신 어머니들이 십대 청소년기를 보낼 때 부모님께 바라는 희망사항이었습니다.

하여 부모님들과 그때 그 시절 학창기로 잠시 돌아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요즘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 중독 문제로 많이들 힘들어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때도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학교폭력이나 왕따, 청소년자살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의 따뜻한 정과 대화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무게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슴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열린 가슴을 가진 부모님일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흔들리고 학교생활이 힘들어도 이렇게 부모님이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의 넉넉한 품 안에서 큰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4. 아이들은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여 청소년 자녀를 두신 교우님들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가정의 달인 이 달 안에 <엄마 아빠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을 5~10가지 정도로 신중하게 생각해서 적어내보라고, 가능하면 들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진지하게 제안해보시면 어떨까요?

5~10가지로 정하는 것은 자기 생각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0가지가 넘으면 너무 산만해질 수 있고 5가지가 안되면 구체성이 약화될 수 있으니 가능하면 5~10가지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의 속마음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과정 자체가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꼭 한 번 시도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정리한 희망사항은 가능한대로 들어주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러나 무리한 요구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럴 때는 당장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앞으로 노력하면 들어줄 수 있는 것, 들어주기 어려운 것을 정리해서 차분히 설명을 하고 아이의 의견을 들어가며 조정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의외로 가정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큰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내놓는 요구사항이나 바램이 당황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부모님 입장에서는 조금 서운한 내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기치 못한 당돌한 얘기를 꺼내 교우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그걸 모르고...”라고 속상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떤 얘기를 꺼내도 즉시 화를 내거나 서운한 마음을 바로 표시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다 가라앉은 다음에 충분히 심사숙고한 다음에도 아이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따로 외식자리를 마련하거나 잠시 산책하는 시간이라도 마련해서 다정하고 충분하게 오해를 풀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가끔 발생하는 청소년자살문제 중에는 그 원인이 대화와 소통이 사라진 가정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부모가 ‘내 자식’이라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면 집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집착이 되면, 자식을 위해서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자식에게 해를 끼치는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집착이 욕심을 낳고 욕심이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내 아이는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해.”라고 생각하시는 교우님이 계시는지요?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한 가지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과연 그렇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까?” 라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아이로 자라게 할까?” 보다 “어떻게 하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할까?”를 먼저 생각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구준히 모색하는 류상태 목사     ©대자보
제가 학교에 있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을 부모님들께 한 말씀만 더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교사나 부모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바로 살라”고 얘기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심코 행하는 교사나 부모의 행동이나 습관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부모의 습관은 자식에게 대물림되기 쉽습니다. 늘 보고 자란 게 그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모든 부모는 잘 사셔야 됩니다. 재산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부와 관계없이 우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흐뭇해하실 수 있을 만큼 잘 사셔야 합니다. 잘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우님의 삶 전체를 통해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교우님들 가정에 우리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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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03 [17: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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