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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는 육영수는 없다
[정문순 칼럼] 육영수 신화는 독재를 은폐한 권력의 상징조작
 
정문순

오늘날 박정희 신화를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하나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못지않게 그 이미지에 기대려고 하거나 톡톡히 덕을 본 존재는 어머니 육영수이다. 역대 선거에서 충청권이 캐스팅 보트를 쥐었음에도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충청도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충청의 자부심이 된 세종시를 만든 건 노무현이지만, 충청도 사람들에게는 자기 지역이 박근혜 어머니의 고향이란 점이 행정도시의 연원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옥천의 육영수 생가 터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지금은 육영수 영화도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고, 대한노인회는 우람한 숭모비까지 세웠으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육영수는 국민적 위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육영수가 탐탁찮은 사람은 없을까. 박정희한테는 학을 떼는 사람이라도 그의 아내에게만큼은 호의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육영수에 대한 호불호는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난 듯하다. 한 진보 언론은 박 대통령에게 강한 아버지 말고 부드러운 어머니를 닮으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그러나 육영수가 처음부터 현모양처의 화신으로 통했던 것은 아니다. 1967년 한 청와대 출입 기자가 박정희의 청와대 생활을 쓴 책에 육영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기자는 육영수를 잘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하고 있다. 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라고 쓰여 있는 이 책의 ‘영부인’은, 수줍음 많고 평범한 가정부인의 모습이었지 지금 육영수의 이미지로 굳어진 범접하기 힘든 고상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정희가 권력을 틀어쥔 지 이미 6년이 지난 때였다. 육영수의 이미지가 그때부터 골격이 잡혔다고 해도 1974년 서거 때까지 7년을 넘지 않는다. 이 기간은 박정희 정권이 재선과 3선을 거치며 마침내 껍데기 민주주의마저 내던지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철권 통치로 치닫던 시기와 일치했다. 육영수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쁜 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육영수의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퍼스트레이디 시절 장·차관, 재벌 등 고위층 부인네들을 모아 봉사 모임을 이끌었던 ‘양지회’이다. 육영수를 떠받드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성심으로 어루만지고 봉사에 헌신하는 모습의 그녀를 기억하려고 하지만, 양지회는 어두운 시절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권력층끼리 검은 돈이 오간 창구 구실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사후에, 시인 모윤숙이 “목련꽃 닮은 당신” 운운하며 찬사를 바쳤던 육영수의 실체는 과연 한복 입은 자태만큼이나 우아했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면 육영수 집안의 권력 지형도를 보여주는 가계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시대에 이 집안은 매부를 잘 만난 덕에 평범한 교사에서 일약 5선의 국회의원으로 벼락출세한 육영수 오빠를 비롯하여 장관, 방송국 이사, 신문사 회장, 은행장 등 권력의 요직을 꿰찼음을 보여준다. 그 위세는 박정희의 친가 쪽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육영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친일 대부호로서 막강한 위세를 누린 집안 배경도 작용했을 수 있다. 
 
육영수 집안이 박정희 당대에만 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었다. 조카사위 한승수는 6공 때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또 한승수와 사돈지간인 김진재는 부산에서 오랫동안 지역구 의원을 했고 옛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냈으며, 그의 그늘이 자식에게도 이어져 그 아들은 현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다. 친정 피붙이와 친·인척들이 대대로 출세한 것이 육영수 탓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육영수가 청와대의 야당 노릇을 했고 남편에게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자신이 외척의 세도를 막는 일에 앞장서야 했다. 육영수가 청와대의 야당이라는 말은 다름 아닌 박정희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야당’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를 것 같은 철권 통치자에게서 나온 말을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다. 되레 육영수 자신이 정치에 맘대로 개입한 흔적도 있는데, 은사의 남편을 서울시 교육감에 앉혔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육영수는 자식 교육에도 극성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팬들이 ‘현모’의 징표로 자랑스럽게 전하는 생전의 일화들을 보면,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늦게라도 오면 교실 밖에서 기다렸다거나 학교 커튼을 직접 빨래해 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체통을 잃거나 극성 엄마의 면모를 보인 ‘영부인’를 해당 교사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권력자가 제 맘에 안들면 자기 당 의원도 잡아다 고문하고, 야당 총재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도 있었으며, 언론의 입도 철저히 봉인됐던 시대에, 국민들이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안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정보 통로는 없었다. 박정희가 논두렁에서 농부들과 농주를 마시는 모습이나, 육영수가 장·차관 부인 중 외제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면박을 주었지만 손수 빚은 막걸리를 대통령 선물로 바친 사람은 아주 좋아했다는 ‘막걸리 일화’는, 그것이 설령 사실일지라도 어디까지나 권력의 개입이 가능한 낮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권력자는 낮과 밤이 달랐으며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낮의 역사가 대부분이다. 정보정치로 지배했던 권력의 밤을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박정희가 안가에서 근신들과 여자 연예인의 시중을 받으며 막걸리 대신 최고급 양주를 즐겨 마신 밤의 역사는 그가 불명예스럽게 죽었기에 드러날 수 있었다.

박정희가 지배하던 때는 가부장적 독재 권력의 흉포함을 자애로운 여성의 이미지로 덧칠했던 권력의 일방적인 상징 조작만 가능했던 시대였다. 박정희 독재를 합리화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박정희가 집권 후반 막다른 길로 치달은 것마저 남편을 뒷받침해 주던 그녀의 부재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이들에게 육영수는 철저하게 박정희 독재의 본색을 가리기 위해 동원된 존재에 불과하다. 실체 없어 보이고 부풀린 혐의가 짙은 육영수 신화가 아직 걷히지 않았다는 건 그녀 딸의 집권과 더불어 여전히 박정희 시대가 저물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하다. 

* <경남도민일보> 4월 6일 칼럼을 손본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3/05/03 [21:4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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