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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라고 부르지 마라”
[김영호 칼럼] 빈부격차 심화되면 재벌 존립기반도 위협 깨달아야
 
김영호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는 빈부격차에 따른 경제-사회구조의 양극화이다. 그 까닭에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양극화 완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룩하지 않으면 국가가 발전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계에 도달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뜻한다. 이에 따라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최소한의 입법활동을 벌이자 재계가 저지에 나섰다. 집단행동의 배경에는 재벌의 막강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입법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그 틈을 타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한 축인 노동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5단체가 지난 달 26일 회동을 갖고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근 논란을 빚은 대체휴일제 도입, 정년60세 의무화, 부당내부거래 고발권 확대, 화학사고 과징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 단체는 20개 법안⁃판결을 일방적인 논리로 공격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례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에도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환경보존에 관한 규제는 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단체는 모든 규제는 경제적 해악이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하루 앞선 지난 달 25일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은 ‘바른 용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모색’이란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내용은 “국가운영의 틀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설명하는 용어들 가운데 부정적인 의미를 전파하는 것들이 많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바른 용어를 쓰지 않는 데서 혼란과 갈등이 생기며 이것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은 ‘대기업집단’이라고 불러라. 자본주의→시장경제, 정글자본주의→상생경제, 과당경쟁→시장경쟁, 기업의 사회적 책임→기업의 사회공헌, 시장점유율→소비자선택율, 시장지배적 사업자→소비자선택 사업자, 급진적 자유주의→순수자유주의, 자유방임주의→불간섭주의, 사적소유→개인소유, 사기업→민간기업, 보수와 진보→우파와 좌파로 바꿔 쓰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 전경련의 이런 움직임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변질시켜 인간의 사고를 통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떠올려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절대자 대형(Big Brother)은 ‘신어’를 통해 단어를 삭제하면서 인간의 사상을 통제한다. '자유'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예속’이란 의미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사상죄에 해당되는 낱말도 개념도 없어진다. 전경련이 사회분열을 획책하면서 사회통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조직적-체계적 여론조작을 기도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경련은 20여년간의 홍보활동을 통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재벌이란 단어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졌다. 재벌은 대기업, 재벌총수는 대기업 총수로 표현한다.

한국재벌은 단순한 기업집합이 아니다. 총수 1인이 혈연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지배하는 다계열-다업종의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수직적-수평적 기업결합을 통해 잡제품에서 첨단제품까지 생산-판매에서 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거의 전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다. 방대한 규모만큼이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막강한 자본권력이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재벌 같은 기업집단은 없다. 한국재벌과 유사한 기업집단이 일본과 독일에 있었으나 2차 대전 이후 해체됐다. 그 까닭에 구미(歐美)언론은 재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어 그냥 음역해서 ‘chaebol'이라고 부른다.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한국의 대중매체가 재벌=대기업라고 등식화해 쓰는데 이것은 틀린 표현이다. 대기업은 규모면에서 중소기업의 대칭어이지 기업집단이란 뜻이 없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권이 경제민주화에 관한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규제완화를 통한 효율성을 합창해 왔다. ‘완화’도 모자라 ‘철폐’, ‘혁파’를 입에 달고 다니며 외쳤다. 그 결과 경제력이 재벌로 더욱 집중되고 빈부격차가 극대화되었다.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사회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안들을 논의하자 재계가 반자본주의, 반시장주의라고 주장하며 반격에 나섰다. 법안내용들이 이 본질적인 재벌개혁과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방기하여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면 재벌의 존립기반도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기사입력: 2013/05/02 [03:5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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