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성과학, 지배와 정복의 담론으로 굴절된 위계적 지식
 
리버   기사입력  2002/05/13 [20:35]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과학기술과 동떨어질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사고, 의사소통, 삶과 죽음 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이미 효율성의 논리에 시시 때때 깜박이는 눈꺼풀정도는 떼어버릴 준비가 된 사이보그로 진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은 과학기술의 역사·담론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과학과 기술의 개념이 물질·사실에 대한 분석과 기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총체적인 삶의 양식, 사고 활동, 외부와의 관계 맺는 모든 기술적 활동 등의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혼란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시에 인간의 역사를 기술의 역사로 서술하는 과정이 현실에 더 명확히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과학담론은 그야말로 과학을 둘러싼 사회학적 담론이다. 이는 과학이라는 비밀스런 암흑상자를 사회로 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과학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함께 이를 통제하고 전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필요성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이 어느 정도는 사실과 이론이란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드러난다.

즉, 과학은 객관적·중립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문화적인 관계, 이데올로기적인 배경속에서 구성될 수 있다. 이는 성(Sexuality)지식(성과학)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다.

성 과학의 형성-올바른 성, 금지된 성

성 과학은 '사회적 가치에 맞는 올바른 성을 규정하는 것'과 '성적일탈을 분석·처방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축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는 종교적 교리에 의해 성을 '금지된 지식' '적당한 지식'으로 나뉘어 규범화하는 전통적 견해의 연장선상에 있다.

성 과학은 '수치스러운' 것의 지식유형으로 '성을 근본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관계'로 정의, '삽입의 중요성'을 강조, '여성을 쟁기질·씨뿌리는 밭의 이미지로 보아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대상화, '성 관계를 사회적 위계와 동일시'하는 경향 등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성 과학에 대한 전통적 견해였고 이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성 과학에 영향을 끼친다. 성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해 본질적으로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성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토마스 라쿼의 성의 변천사 연구 및 푸코의 '성의 역사'가 출판된 이후에 와서야 본격화되었다.

전통적 입장에 근거한 성 과학들은 신학담론에 의해 자리잡게 되는데 근대초기에 들어 의학책이 대중화됨으로써 신학담론은 의학담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의학담론은 신학담론과 함께 '합법적인 성'과 '비합법적인 성'을 정의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구분과 차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인쇄술의 발명과 더불어 성 지식이 분화되고 특정한 계층에 전유되어 규범적, 처방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성에 대한 정보체계가 과학뿐 아니라 에로티카-금지된 지식-로도 이용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지식에 대한 통제 및 자기검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소개된 성 지식의 경우, 임신에 대한 충고 등의 생식에 대한 지식 또는 '변태'는 일종의 질병으로 분석, 의학적 전문지식에 의해 관리·통제하기 위한 지식 등으로 국한되었다. 성과학자는 "건강한 섹스"와 "변태의 섹스"를 구분해야 한다는 뿌리깊은 확신이 있었으며, 정신병리적 성 유형의 분류법과 용어를 직접 만들어냈다. 동성애, 소아성애, 색정증, 페티시즘, 복장도착, 간통, 수간, 노출증, 애분, 프로타주, 사도 마조히즘, 남자의 음란증, 기뇨증, 관음증 등 백가지 변태의 종류까지 항목별로 분류하고 이를 치료의 대상으로서의 섹스로 규정,연구 했다.

여성 몸에 대한 성 과학의 정의들

성 과학은 대체로 '불완전한 존재'로서 여성의 몸을 규정했다. 이는 과학의 발달이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면 여성을 자연과 동일시함으로써 성 과학은 여성의 몸을 정복하는 과정으로서 발달되어 왔다. 성의 규범적 담론에서 여성의 몸은 혐오, 불결, 성욕과 사악함의 상징 등으로 인식되었고 여성의 생식력(임신을 위한 성)만이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는 종교적인 문화에서 더욱 심했는데, 여성의 성기와 가슴은 불결함의 원인이고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는 금욕적 담론의 기조였다. 여기서 여성의 월경에 대한 이중적 잣대, 즉 그 재생산과정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세계곳곳의 종교적 담론에서 공통적인 것이었지만 정작 임신을 위한 여성의 모든 노력이 병행되었을 땐 월경이 죄를 씻어 내린다는 식의 여성이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것은 결국 여성들의 성을 통제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문화의 지배적인 목소리다.

'여성의 몸에 대한 성 과학의 정의'를 몇 가지 연구과정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생식기 모델에서 본 성과 권력

토마스 라쿼는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텍스트들에서 '섹스(성)'는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된 반면 '젠더'는 일차적이며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생물학적인 기초에 의해 성 모델을 제시할 때 여성의 지위와 특성은 거의 배제되었다. 성 과학의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의 불완전한 존재라는 '하나의 성 모델'만을 가졌다.

이러한 '하나의 성 모델'의 역설은 위계적인 대립물들의 쌍이 그러한 대립의 속성을 갖지 않는 한 가지 몸 위에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어머니, 수컷/암컷, 남성/여성, 문화/자연, 남성성/여성성, 명예/불명예, 합법/불법, 뜨거운/차가운, 오른쪽/왼쪽 등 많은 쌍으로 몸을 해석했지만 '하나의 성의 몸' 그 자체는 이러한 구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질서의 위계가 바깥으로부터 몸 위에 부과되었고 역사적으로 젠더의 구분은 섹스의 구분에 선행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하나의 성 모델'의 지속성은 '성과 권력'을 연결시킬 수 있다. 그것은 '남성'은 만물의 척도이고 여성의 존재는 남성에 포섭되어 있었다. 모든 남성이 남성적이고 생식력이 강하고 존경할 만하고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며 이런 측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들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몸의 표준, 그리고 인간의 몸을 재현하는 것은 남성의 몸이다.('섹스의 역사', 토마스 라쿼)

이러한 라쿼의 '하나의 성 모델'은 르네상스 시대 해부학자들의 생식기 모양에 대한 수사학에서 뒷받침된다. 여성의 자궁이 남성의 음낭과 음경을 안으로 뒤집은 것일 뿐이다라는 주장인데 여기서 남녀 생식기의 명확한 차이 등 문제가 되는 것은 제기되기도 어려울뿐더러 연구를 통해 해결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 해부학의 역사는 남녀의 해부학적 재현이 기관, 관, 혈관 등에 대한 증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현과 환상의 문화 정치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에서 여성의 몸

이 밖에도 여성의 몸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견해는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에서도 볼 수 있다.

전통적 견해에서 남성/여성은 고체/액체의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이성적 존재/자연적 존재의 인식과도 연관되어 보인다. 히스테리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여성의 수분체계에 관한 견해와 밀접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체액의 종류와 양이 많고 히스테리는 여성에게만 발견되는 것으로 이는 자궁의 나쁜 증기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았다. 여성의 질병은 성기의 나쁜 수분들-체액, 월경 혈 등-에 의해 발생하며 치료법은 남성과(부부간)의 성관계를 통한 오르가즘등으로 치료된다고도 보았다.-오르가즘에 도달해야만 임신이 된다는 견해와 연관- 이러한 여성의 생리학 특성은 성별분업의 자연적인 근거로 이용되었다.

여성의 생리학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대한 도전으로 윌리스의 '뇌와 신경중심의 학설'이 있다. 윌리스 이전에는 뇌가 근육, 내장을 옮기는 운송용기로 생각했으나 윌리스는 신경과 함께 뇌의 단단한 조직부분이 몸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견해는 더 이상 자궁이 여성의 몸의 핵심이 아니며 인간의 몸을 성별과 무관한 지성적 존재로 보는 생리학적 기초가 된다. 그러나 베이컨주의자인 윌리스는 몸을 하나의 전쟁터로 여기고 해부학의 위상을 폭력적이고 냉정한 남성의 지배형태로 두었다. 윌리스의 이론은 의사와 성직자에게 호응을 얻었고 남성은 교육에 의해 '인공적'인 존재가 되며 여성은 '자연적 존재'로서 자연철학이 남성의 고유한 영역이며 실력 있고 유망한 남성을 만드는 영역으로 제시되었다. 즉, 윌리스의 신경중심의 뇌 연구는 뇌의 고체부분이 몸을 지배한다고 여겼고 이러한 패러다임은 몸이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찬양되며 엄정하고 이성적인 탐구가 남성적인 특성이라는 인식론적, 신학적 전략과 융합된 '새로운 이성의 생리학'의 구성으로 나아갔다. 이에 대한 대안적 비전으로 퀘이커 교도들의 인간 몸 안에 양성이 연결되어 있으며 몸과 정신, 능동성과 수동성, 남성과 여성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닌 연결과 협동의 관계라는 입장도 있었지만 이분법적인 역할분담의 논리는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포유류(mammalia)와 호모 사피엔스

린네는 인간을 포유류로 명명했다. 포유류는 젖가슴을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필로사(털난 동물), 오레카비가(귀가 움푹들어간 동물), 락탄티아 등 많은 인간의 특성에 따른 명칭이 있음에도 굳이 포유류로 명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젖가슴을 가진 동물은 인간의 반인 여성의 경우에만 해당하며 여성의 일생에도 극히 적은 기간에만 해당되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여성만 가지고 있는 특성을 특권화함으로써 린네는 남성을 모든 것의 척도로 보는 오랜 전통을 깼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린네는 마말리아라는 용어를 도입한 그 시기에 호모사피엔스라는 용어도 도입했다. 인간은 전통적으로 이성에 의해 동물과 구분되어왔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의 특성(젖 먹이는 젖꼭지)은 인간을 짐승과 연결시키는 반면에 전통적으로 남성의 특성(이성)은 짐승으로부터 인간이 분리됨을 표시하게 된다. 여성이 남성에 가깝다기 보다는 짐승(자연)에 더 가깝다는 서구의 개념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젖은 동물의 젖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신화들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흥미 있는 사건은 '모유 두기 반대운동'이다. 린네가 초점을 둔 젖이 나오는 가슴의 미덕은 여성의 '사용하지 않은 가슴'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경향인 그리스 전통과 기독교 전통(젖은 월경혈의 변형으로 봄)과 맞지 않았다. 린네는 상류층 여성들이 유모를 쓰는 오랜 습관(수유할 때 성교가 오염된 성교라는 성규범으로 인해 촉진됨)을 폐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캠페인에 참가했는데, 이는 정부가 군대와 경제를 확장하기 위한 인력재생산의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국가는 재생산의 재구조화를 위해 가족과 어머니의 의무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했고, 유모 두기로 인해 (유모의 아기)유아사망률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여기서 남성과 같이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려는 여성들의 욕구와 필요는 인구를 증가하려는 정부의 정책과 갈등했다.

린네는 유모 두기에 공격을 가했으며 자연의 법칙을 어긋나는 것이 어머니와 아이에게 해로운 것이며 유모들은 가난한 계급출신이므로 건강하지 않고 성병을 앓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성 과학의 연구대상은 주로 정복되어야 하는 자연과 동일시된 여성의 몸이다. 성 과학의 연구의 패러다임은 인류의 재생산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전략을 통해 자연과 이성, 여성과 남성, 정신과 물질 등으로 철저히 이분화하는 과정이었다. 이 속에서 성 과학(성지식)은 성 규범과 처방의 이론이며 이분화되어 통제되었고, 때로 여성의 구전문화에 의한 경험적 지식이 더욱 우월한 경우도 많았지만 여성의 성이 남성이 배제된 아름다운 여신의 신비 중 하나여서는 안된다는 남성(이성)의 우월함에 의해 조산부(여성 성과학자)들은 남성의사로 대체되었다.

성억압/성해방의 담론- 자유주의자들의 또 다른 지배적 패러다임

오랜 세월 성 과학의 중심주제는 발기-성교-오르가즘-사정이라는 남성중심의 삽입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성 과학은 과학적 탐구와 본질적으로 남성적인 성 활동의 융합이다. 기독교 교리 등의 전통적인 성규범담론을 성억압이라고 정의하고 성해방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20세기 초기 성교육, 성병·피임정보등의 공개를 주장하는 성해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생각은 1960년대에 성에 대한 관용의 문화에 의해 더욱 공론화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주로 성 관련 의사들,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 투사, 프로이트주의의 지식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성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이 모두 억압적이며 관습적 굴레로부터 리비도를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견해는 성해방과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성지식의 결혼일뿐이었다. 결국 지배적 패러다임이 아닌 성, 즉 여성의 성, 동성애, 성기와 무관한 성, 삽입과 무관한 성에 관한 인식이 없었으며 남성의 성욕을 '풀어주는 것'의 옹호를 진보와 혼동한 것이라는 도전을 받았으며, 언어와 담론이 초점이 아닌 욕망의 담론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자유주의자들의 지식은 결과적으로 성적강제와 금지조항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마무리하며

성 과학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어떠한 입장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라는 무수한 고민이 들었다. 남성의 욕망을 구현하는 패러다임 중심의 역사에 반대하고 여성의 욕망의 패러다임을 논하는 것, 재생산적인 섹스의 원천으로서 모권사회의 신화를 비롯해 유기체적인 정치학에 반대하는 것, 자연적·생물학적 성 이분법을 해체하는 데카당스한 양성성을 강조함으로써 성적일탈을 정당화하는 것, 남성 주도의 성 과학 논의에서 퇴색된 여성의 생리학의 여성의 성을 중심으로 해서 재구성하는 것... 등등의 때로는 그럴듯하고 때로는 함정에 빠진 듯한 고민들이었다.

글의 첫머리에서 과학은 사실과 이론이라는 프리즘에 굴절된 사회적 관계라는 말을 인용했다. 여기서 성 과학은 지배와 정복의 담론으로 전유된 사회적 관계라는 굴절된 프리즘에 그대로 투과된 특정한 권력을 대변하는 위계적인 지식이다.

이러한 성과학을 볼 때 젠더가 섹스보다 일차적이라는 토마스 라쿼의 말은 시사점을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 과학은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주로 기독교적이거나 계몽주의적인 과정을 주로 다뤘고 성의 정치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에서의 과학과의 만남 등은 이후 다시 논의할 기회를 갖고 싶다. 성이 병리적·생리적인 관점에서 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 연구로 나가는 과정속에서의 담론과 쟁점들, 본질적 성의 해체론과 욕망의 문제, 과학과 같은 기제를 통한 여성의 정체성의 재구성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직 정립되지 않은 나의 입장을 앞으로 계속될 섹슈얼리티의 공부속에서 나름대로 화두가 되고 마주칠 다너 해러웨이의 견해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비록 과학이 객관적 진리의 외피를 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학기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해러웨이는 가장 엄격한 과학이 경계의 혼란을 야기 시킨다고 보면서, 인간과 인공물 사이의 경계가 무너질 때 다른 이원론들 역시 모두 해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에 의하면 서구 전통의 이분법은 모든 것을 타자로 구성하여 지배하려는 전통이다. 핵심적인 것은 자아/타자, 문화/자연, 남성/여성, 신/인간, 적극적/수동적, 올바른/그른, 진리/환상, 전체/부분이다. 자아는 지배되지 않는 일자One로서, 일자가 된다는 것은 자율적이며 힘있는 존재, 신이 된다는 것이고, 타자가 된다는 것은 복수가 된다는 것, 분명한 경계도 없고 마모되고 비실체적으로 되는 것이다. 하러웨이가 제시하는 대안은 사이보그적 잡종 주체성, 즉 부분적이고 모순적인 정체성을 채용하여 차이에 대항하기보다는 차이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가 해체와 재결합의 한 유형이며, 페미니스트가 코드화해야 할 자아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육체를 재구성하는데 핵심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본다. 과학이 이제까지 남성과 여성을 질식시켜온 엄격한 분리로부터 해방시켜 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 이 글은 렉스팀 월례포럼 발제문으로써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만남", "섹스의 역사"를 참고, '성 과학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정의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필자는 평화인권연대 대안문화미디어모임 R.exe 활동가 입니다.
* 본 기사는 평화인권연대가 발간하는 [월간 평화연대]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5/13 [20:3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