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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자본주의
[김영호 칼럼] 멈출 줄 모르는 죽음의 행렬, 경제민주화 타령 그만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2/10/10 [09:22]

서울 강북지역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 그곳에서 5월 이후 100일 동안 주민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올 들어 대구에서만 학업부진, 학교폭력에 시달려 중-고등학생 10명이 잇달아 자살했다.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 노조의 77일간 농성파업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했는데 그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에서 12명이 연쇄자살의 길을 선택했다. 2008년부터 올 8월까지 한강 다리에서 408명이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자살…자살…자살…. 돌림병에 걸린 듯이 죽음의 행렬이 멈출 줄 모른다. 지난해 놀랍게도 하루 43.6명 꼴로 자살했다. 한국의 자살률이 9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1위이고 세계적으로도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다. 삶이 얼마나 절망적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싶다. 불신과 절망 그리고 분노, 공포가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모습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자살자가 1만5,906명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했다. 10만명당 31.7명꼴로 OECD 회원국 평균 12.9명보다 2.5배나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OECD 평균 자살률은 감소세를 보이는데 한국은 오히려 증가세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10대 자살자는 10만명당 5.5명인데 20대부터는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다. 20대 자살자는 10만명당 24.3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47.2%를 차지한다. 20대 사망자 2명 중의 1명이 자살자라는 뜻이다. 10~3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10만명당 자살자는 40대 34명, 50대 41.2명으로 암에 이어 사망원인 2위다. 65세 이상 자살자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2~3배 이상 높아 노인빈곤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2010년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의 17.9명, 미국의 14.5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다. 10만명당 자살자가 1995년 10명대를 넘어서고 2003년 20명대로 높아졌으며 2009년부터 30명대로 껑충 뛰었다.

죽은 이는 입을 닫아 자살원인을 알기 어렵지만 통계는 신경쇠약, 병고, 생활고, 가정불화, 사업실패, 장래불안, 염세, 실연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자살은 개인적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자살증가는 사회병리적 현상임이 틀림없다. 10대는 교우관계, 진학문제, 성적부진이, 20대~50대는 실업-해고, 사업실패, 주거불안, 가정불화가, 60대 이상은 만성질환에다 생활고가 겹쳐 그들을 죽음의 낭떠러지로 내몰았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는 양극화이다. 역대정권이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에 근거한 신자유주의를 맹신한 결과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가 형성되었다. 맹목적적인 규제완화가 자본-지식-기술-정보에서 열위에 있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강자가 약자의 이익을 뺏어가는 약탈적 사회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치열한 사회경쟁에서 살아남은 최적자만이 생존하는 이른바 사회적 진화론(Social Darwinism)이 지배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역대정권이 외적성장에만 몰두한 탓에 성장의 과실이 과점되어 양지는 더욱 밝아지고 음지는 더욱 어두워졌다. 낮일만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워 밤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대리운전을 나가는 아버지들. 자식 과외비를 마련하느라 허드렛일에 매달린 어머니들.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밤일, 잡일로 지쳐 수업시간에 졸음과 싸우는 대학생들. 퇴직금을 털고 빚을 내서 조그만 가게 하나 차렸지만 골목상권을 약탈하는 유통재벌과 재벌의 프랜차이즈 횡포 앞에 밤잠을 못 이루는 자영업자들, 아무리 모아도 내 집 마련의 꿈은 무지개마냥 멀어만 가는 셋방살이 월급쟁이들. 전방위 FTA에 따른 농촌붕괴로 통곡하는 농민들. 그들이 혼자서 삶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 그 중압감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생명의 끈을 놓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정리해고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심지어 살인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이라는 규탄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당을 늘리라는 주주의 압력에 굴복해 과도하게 인력감축을 단행해 미국사회를 빈민화시킨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절도, 살인 같은 범죄증가도 그 원인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노동정책에 돌리고 있다. 해고의 공포가 노동자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마약복용, 연쇄자살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먹고살기 어렵다고 죽음으로 삶의 고통을 말하나 정치권은 그 신음과 절규를 들을 줄 모른다.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시장을 찾아 악수세례를 퍼부으며 공허한 경제민주화를 외친다. 막연한 재벌개혁이란 말로 포장된 경제민주화에는 본질인 민생복리가 실종된 모습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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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10 [09: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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