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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림은 '독백'이다
[두부독감 18] 장욱진의『강가의 아틀리에』
 
두부   기사입력  2003/11/17 [18:35]

그림이라는 독백

언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으로 보인다.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은 너무나 많고, 표현한다손치더라도 왜곡과 변형을 일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어도단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말에 의해 오해의 골은 점점 깊어간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가족」, 캔버스에 유채, 31.5x31.5cm, 1949년     ©장욱진

화가에게 언어는 그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독백'인 것이다. 그러나 "표현이 쉽고도 어려운 것은 自己를 내어놓는 告白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물감만을 바른다 해서 표현할 수 없으며 자기를 정직하게 드러내놓는 독백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장욱진은 말한다. 말하기의 어려움과 말의 진정성을 갈파한 말이다.

▲「집짐승」, 종이에 매직, 27.5×21㎝, 1978년.     ©장욱진

장욱진(1917∼1990)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화가다. 또한 그의 그림들은 어찌 보면 초등학생의 그림처럼 단순하고 멋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그의 생활신조처럼 '심플'하다. 단순함이 그의 그림의 매력이다. 아무런 장치도 없는 그의 먹그림은 더욱 그러하다. 또한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귀가 없다. 세상과 단절된 그를 연상케 하는 이런 장치는 자꾸만 그에게 그림으로 독백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 책 『강가의 아틀리에』(민음사, 2003)는 장욱진의 그림 산문집이다. 그것도 먹으로만 그린 그림들이다. 고암 이응로가 "먹은 백 가지 색을 낸다"고 했던가. 색채에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함를 넘어 먹에는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이 숨어 있다. 그것도 장욱진의 단순하고 천진한 발상은 더욱더 그것에 빛을 더한다. 생전에 남긴 20여 편의 산문과 인터뷰, 그리고 앞서 말한 먹그림이 주를 이룬 이 책은 화가로서 그의 삶을 찬연하게 엿보기에 충분하다.

아직도 어린 아이로 남은 화가

장욱진은 소탈하기로 유명하다. 어느 날 자신의 졸업생이 근무하는 학교에 초청을 받아 갔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어느 늙수그레한 수위가 달려와서 그에게 새 슬리퍼를 벗고 헌 슬리퍼를 신을 것을 요구했다. 그의 옷차림를 보고 수위는 새로 온 학교소사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장욱진은 되레 자신의 지나치게 소탈한 옷차림이 죄가 된다며 수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새와 나무」, 캔버스에 유채, 27.4x35cm, 1973년     ©장욱진
예술가에게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다. 장욱진도 붓과 함께 40년 동안 술을 옆에 끼고 살았다. 그가 살아온 세월 동안은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일제식민지 시절, 6·25전쟁, 그리고 피난지에서의 생활, 독재정권 시절 등 숨을 쉴 수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은 그에게 술을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능청스럽게 "酒酊에서 酒道를 알게 되는 일은 삶의 길만큼이나 어려운가 보다"고 말한다.

서울의 살림집과 덕소에 있는 화실, 그리고 화실 옆의 작은 공부방은 "건축에 문외한"인 그가 짓은 건물들이다. 시아버지처럼 일꾼들을 어르고 달래며 또는 손수 흙벽을 바르며 지었다. 그의 자분자분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장욱진은 누가 그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십단위는 빼고 나머지만 말한다. 일곱 살이라고 말하는 것은 쉰일곱에서 쉰을 뺀 나이를 말한다. 그는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뱉어버림으로써 아이들이 갖는 순수성"으로 회귀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에 유독 우스꽝스럽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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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7 [18: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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