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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여, 노동자의 영혼을 깨워다오
김남주의 '민중' 외 <노동절 특집 시모음>
 
정연복   기사입력  2012/05/01 [07:45]
 
<노동절 특집 시모음> 김남주의 '민중' 외

+ 민중

지상의 모든 부
쌀이며 옷이며 집이며
이 모든 것의 실질적인 생산자들이여

그대는 충분히 먹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입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대는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먹고 있다
그대는 가장 많이 만들고 가장 춥게 입고 있다
그대는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짧게 쉬고 있다

이것은 부당하다 형제들이여
이 부당성은 뒤엎어져야 한다

대지로부터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부여
바다로부터 고기를 길러내는 어부여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직공이여
광맥을 찾아 불을 캐내는 광부여
돌을 세워 마을에 수호신을 깎아내는 석공이여
무한한 가능성의 영원한 존재의 힘 민중이여!

그대의 삶이 한 시대의 고뇌라면
서러움이라면 노여움이라면
일어나라 더 이상 놀고먹는 자들의
쾌락을 위해 고통의 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빼앗는 자가 빼앗김을 당해야 한다
이제 누르는 자가 눌림을 당해야 한다
바위 같은 무게의 천년 묵은 사슬을 끊어 버려라
싸워서 그대가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쇠사슬 밖에는 승리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김남주·시인, 1946-1994)


+ 전태일

그의 죽음은
너의 시작이었다
나의 시작이었다
하나 둘 모여들어
희뿌옇게
아침바다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밤중에도 우리들의 시작이었다
(고은·시인, 1933-)


+ 노래여, 노동자의 영혼을 깨워다오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사람의 가슴과 가슴이 뜨겁게 만날 수 있겠는가

자유의 노래가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의 가슴에 영혼이 있음을 알겠는가

투쟁의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잠자는 혁명의 영혼을 깨울 수 있겠는가

연대의 노래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의 피가 당신의 심장으로 건너가고
당신의 피가 나의 심장을 끓이겠는가

노래를 일으켜다오
고개 숙인 투쟁의 노래를 일으켜
자유의 하늘에 펄럭이게 해다오
차가운 머리로 우리를 분열시키지 말아다오
회색이론으로 우리 가슴을 잿더미로 만들지 말아다오
대지의 노래가 있기에 들판은 저토록 푸르고
생명의 노래가 있기에 강물은 저토록 힘차게 흐른다네

노래를 일으켜다오
비겁하게 떨고 있는 저 가슴에
망설이고 있는 저 미지근한 심장에
비웃고 있는 저 식어빠진 심장에
노래를 일으켜다오
투쟁의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이 노동자의 핏줄에
뜨거운 피를 출렁이게 하겠는가

가슴이 있는 자는 알리라
노래를 앞세우지 않고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었다는 걸
노래를 앞세우지 않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승리할 수 없었다는 걸

노래를 일으켜다오
고난의 노래
자유의 노래
해방의 노래를
노동자의 투쟁의 역사를 안고
먼 길 달려온 저 고난의 노래를
사슬을 끓고 바람처럼 일어나
자유를 향해 달려온 해방의 노래를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감격스럽게 하는
저 순결한 투쟁의 노래를

노래를 일으켜다오
오, 뜨거운 노래를 일으켜다오
노동자의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잠자는 혁명의 영혼을 깨울 수 있겠는가
(백무산·시인이며 노동운동가, 1955-)


+ 우리들을 위해 남기는 우리들의 이야기

아기를 낳아라
열이고 스물이고 아이들이 자라서
몽둥이 앞에 몽둥이가 되고
총칼 앞에 총칼이 되는
용가리 통뼈들이 될 때까지 누이들아

개꿈 용꿈 가리지 말고
딸 아들 가리지 말고
쉰이고 백이고 아기를 낳아라
주먹이 단단한 아이들 목소리가
우렁찬 아이들
모여서 거센 불길이 될 때까지
함성이 될 때까지

곰팡내 나는 족보 따지지 말고
학력 경력 외모 가리지 말고
가난해도 주눅들지 않는
속이 꽉 찬 애인을 만나거라

춥고 배고픈 밤일수록 따스한 사랑을 하거라
사랑이 깊으면 눈물도 나리
천이고 만이고
속이 꽉 찬 아이들을 낳아서
뜨거운 눈물도 물려주어라

누이들아
이 시대 가득가득 아기를 낳아라
아이들이 자라서
끓어 넘치는 사랑으로 자라서
빛나는 혁명이 될 때까지
(김해화·노동자 시인, 1957-)


+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손수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데려가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자신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B. 브레히트·독일 극작가, 1898-1956)


+ 그것은 들불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노동절의 유래가 된 미국 메이데이 투쟁 지도자 스파이즈의 법정 최후진술)


+ 노동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주님, 노동절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반복되는 노동과 그 무게로 눌리며,
거친 생존현장 속에서 부딪혀 때론 깨지기도 하면서
제게 주신 이 노동의 의미를 찾고자 고민하게 하소서.

힘들고 어려워 어찌할 바 모를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 삶에 다가오신 주님을 떠올리게 하소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5:17)며,
우리와 함께 일하셨던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노동이 하나님나라에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기의 이기심을 따라 일하는 자가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나라를 일구는
그 아름다운 노동의 가치를 안고 일하게 하소서.
같은 일을 하고도 낮은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언제 일터를 잃을지 몰라 불안해하는 임시직,
비인간적 모멸감 속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게 하소서,

주님, 내일이면 저희는 다시 일터로 갑니다.
눈을 열어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며 일하게 하소서.  
땀 흘리는 이들이 긍지를 갖는 노동현장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지혜와 소명으로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일하는 것'이 즐겁게 하소서.
(정경선)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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