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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발효 후 '충격적 사태'들, 누가 책임지나?
미 정부, 삼성·LG에 반덤핑 융단폭격 '수출 봉쇄'‥약값 인상 협박
 
김영국   기사입력  2012/03/31 [01:55]
 김종훈 "한미FTA 체결만으로도 미 반덤핑 60% 줄어들 것"‥뭥미?
 
"FTA 체결 자체가 반덤핑 제소를 줄일 수 있는 장치다."
"한미FTA로 무역구제 장치가 만들어진 만큼, 미국의 반덤핑 조치가 60% 이상 줄어들 것이다."
 
김종훈 전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가 2007년 협상 타결 당시 국회와 최고경영자 조찬회 등에서 호언장담했던 말이다.
 
그러나 한미FTA가 발효된 직후인 지난 3월 19일 미국 상무부는 우리나라 대기업 삼성전자·LG전자의 주력 수출상품인 '하단냉동고형 냉장고'에 대해 최저 5.16%에서 최고 30.34%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 부과라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 삼성전자 하단냉동고형 냉장고(좌) - LG전자 드럼 세탁기(우)
한미FTA가 발효된 직후인 지난 19일 미 상무부는 삼성전자·LG전자의 하단냉동고형 냉장고에 최고 30%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 부과라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또 삼성전자·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서도 현재 반덤핑 조사가 진행중이다. 한미FTA가 발효되자마자 한국 주력 수출상품인 백색가전의 북미 수출이 초토화될 위기에 놓여 있다.     © 김영국

이 제품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약 5%대이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수출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충격 받은 삼성전자·LG전자 측은 해당 제품의 '수출 포기'를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오는 4월 30일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이 남겨져 있긴 하지만, 그동안 미 상부부의 결정이 번복된 사례가 거의 없고 한번 부과하면 계속 연장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영구적 조치나 다름없다.
 
한국산 제품에 대해 미국이 반덤핑 판정을 내린 것은 1983년 삼성전자 컬러TV 이후 2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하필 한미FTA 발효 직후에. 두 회사의 하단형 냉장고 미국 시장 매출 규모는 연간 12억달러 수준이다. 이번 조치로 한국 대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천문학적인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앞에선 한미FTA로 '웃고', 뒤에선 반덤핑 '뒤통수'
 
미국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삼성전자·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서도 현재 반덤핑 조사가 진행중이다. 이것도 냉장고의 경우와 사정이 비슷해 반덤핑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인 백색가전의 북미 수출이 초토화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북미 수출기지인 멕시코 공장을 폐쇄해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충격과 후폭풍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조치가 냉장고·세탁기 외에 한국 제품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수출을 늘리고 미국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체결한 한미FTA가 발효됐음에도, 현실은 정반대로 우리의 경쟁력 있는 상품들의 대미 수출길이 속속 막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한국 전자업체들이 TV·휴대폰에 이어 냉장고 등 미국 가전시장까지 1~2위를 휩쓸자 미국 정부가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무역 보복'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미국 정부는 '앞에선 FTA로 웃고, 뒤로는 반덤핑 관세로 한국 수출을 봉쇄'하면서 꿩 먹고 알 먹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글로벌 호구'로 망신살이 부채살처럼 뻗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황당무계한 반덤핑 규제 폭격으로 오매불망 한미FTA 발효만 기다리고 비준을 적극 독려해 왔던 이명박 정부와 대기업들은 단단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 더불어 한미FTA의 장밋빛 꿈들도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
 
김종훈이 호언장담했다 슬그머니 빼버린 '제로잉'이 화근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지난 2007년 한미FTA 협상 결과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사태의 근원이 김종훈 수석대표 등 우리측 협상단의 무역구제 분야에서의 국민 기만과 협상 실패에서 비롯된 측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반덤핑 조치가 내려지자 "한미FTA가 발효된 지 얼마 안 돼 이런 결정이 난 것은 자국기업을 보호하려는 미 상무부 조치로 매우 황당한 결과"라며 "미 상무부가 제로잉(Zeroing) 방식의 잘못된 조사 방법으로 덤핑 여부를 결정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LG전자도 "WTO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를 상대로 그다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근원은 한미FTA 협상 당시 김종훈 수석대표 등 우리측 협상단이 대통령과 국민에게 한미FTA를 추진하는 최고의 이유로 내세웠고,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제로잉(Zeroing) 금지', '최소부과원칙(Lesser Duty Rule) 도입' 등 실효성 있는 무역구제 조치들을 미국으로부터 전혀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작 한FTA 협상에서 가장 실패한 부분이 바로 반덤핑·상계관세 관련 무역구제 분야였던 것이다.
 
이번에 삼성전자도 지적했듯이, 미국의 반덤핑 판정 기준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제로잉' 금지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한-싱가포르 FTA 등에는 다 포함시켰던 조항들이었고, WTO가 미국 정부에 개선하라고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한미FTA 협상단은 처음에는 국민들에게 반드시 얻어내겠다고 큰소리치더니 협상 중간에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슬그머니 빼버렸다. 
 
그래놓고 김종훈 당시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는 "한미FTA 체결만으로도 미 반덤핑 조치가 6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떵떵거리고 다닌 것이다.
 
'협상 실패·국민 기만', 너무 뻔뻔하지 않나?
 
더욱 기가 막힌 것은 2011년 10월 12일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미국 정부의 한미FTA 이행법안에는 '반덤핑(Anti-Dumping)'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심지어 미국 정부의 '한미FTA 행정조치성명(SAA)' 제10장 무역구제에는 "한미FTA의 의무들을 이행하는 데에 미국의 반덤핑 법률과 규정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규정해버렸다.  
 
한미FTA 협상에서부터 발효 직후 미국 정부의 반덤핑 폭탄 세례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아마도 한미FTA 협상 당시 김현종, 김종훈 등 한국의 통상관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미FTA를 하면 미국의 악명 높은 무역구제 제도를 대폭 개선시킬 수 있는 것처럼 현혹했거나, 껍데기에 불과한 협상 결과를 가지고 많은 걸 얻어낸 것처럼 거짓 보고했거나, 아니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무능한 신자유주의 맹신 관료들이거나 셋 중 하나일 거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벌어진 사태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당시 협상 책임자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에게 허황된 감언이설로 속인 데 대해 반드시 사과하고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FTA가 필요하다'는 소리만 반복할 뿐, 어떤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다.
 
'끝이 안 보이는' 미국의 협박‥"약값 인상·쇠고기 개방하라" 
 
한미FTA 발효 직후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사태는 미국의 담덤핑 폭탄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최근 한국 정부가 약값을 올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분쟁해결절차 즉 한미FTA 협정문에 따라 '국가-국가 소송제도'(SSD·한미FTA 협정문 제22장 제2절 분쟁해결절차)를 통해 대한민국을 제소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미국 제약회사의 입장이 적극 반영되는 방향으로 '약값 결정 방식'을 바꿔라, 쉽게 말해 '약값을 올려라'는 압박을 본격화한 것이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2월 21일 한국이 약값 '독립적 검토 절차'와 관련해 추가적인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분쟁해결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의약품 독립적 검토 절차'란 한미FTA 협정문과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미국 정부에 이행을 약속한 서한에 규정된 제도로, 대한민국만 지켜야 하는 일방적 의무규정(불평등조항)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독소규정이다.
 
한미FTA로 새로 도입되는 이 제도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가 협상 등을 통해 결정한 약값과 보험급여에 대해 해당 제약회사 등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대한의사협회 등이 추천한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 기구에서 이를 재검토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견을 제출하는 절차를 말한다. 우리 정부는 검토 대상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신약에 대한 경제적 평가로 한정했지만, 미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값 결정까지 이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로비력이 강한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한국의 약값을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절차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상당한 영향력과 압력을 행사하는 '독립적 재심 기구'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또한 우리 정부의 약값 인하 정책이 미국 정부와 다국적 제약회사의 반발과 개입으로 무력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미FTA 권위자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국회가 서민들을 위해 약값 인하 방향으로 약사법을 개정하면, 미국 정부는 SSD로,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는 ISD를 통해 한국 정부를 협박하고 제동을 걸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 정부의 압박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해가 반영되면서 한국의 악값 상승으로 이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괴담'이라고 비웃던 한미FTA 찬성론자와 보수언론. 그들의 입에서도 머지않아 '악' 소리가 나올 것 같다.
 
그런가 하면 한미FTA가 발효되면서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맥스 보커스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은 "한미FTA가 발효되면 6개월 내에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을 위한 재협상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해 3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장관 고시를 개정하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다 마련해놓고 있다. 미국이 쇠고기 협상을 요청하면 우리 정부는 규정에 따라 무조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한-EU FTA 발효 후 8개월 만에 '25년치 무역흑자' 날려버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미FTA와 비슷한 한-EU FTA는 발효 후 8개월 동안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무려 92억 달러 즉 10조 원이 넘게 감소해 버렸다. 이는 정부가 한-EU FTA의 경제적 효과로 제시한 연평균 무역수지 추정액의 25년치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미디로 25년치 무역수지 흑자를 8개월 만에 다 날려버린 것이다.
 
한미FTA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도 미지수다. 정부측 연구기관은 한미FTA 발효 후 10년간 GDP가 5.7% 증가한다고 주장했지만, 민간 연구소의 표준 모델 분석에 따르면 실제 증가율은 10년 동안 0.1% 안팎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1년에 고작 0.01% 증가한다는 것으로 한미FTA가 경제성장률에 기여하는 효과는 제로(0)라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다 한미FTA는 우리의 경제정책 결정권과 사법주권을 제약하고, 심지어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이 무력화될 소지가 많다. 한미FTA는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의 공존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없도록 수많은 족쇄를 채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를 '21세기판 을사늑약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
 
수출이 늘고 미국 시장 진출이 확대될 거라던 한미FTA가 발효되자마자, 거꾸로 미국 정부의 무역 보복 조치로 우리의 경쟁력 있는 상품들의 대미 수출길이 속속 막히고 있다. 서민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대로 미국은 한국이 약값을 올리지 않으면 제소하겠다며 벌써부터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도 본격화될 기세다. 한-EU FTA는 발효된 지 1년 안돼 25년치 흑자분을 날려먹었다. 
 
그런데도 한미FTA 체결·비준·발효 때마다 '미국 시장 진출 확대', '수출·무역 증가 기대', '미국 제품 가격 인하' 등으로 포장해 장밋빛 전망들을 쏟아내기 바빠던 주요 방송사들은 이 충격적 사태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삼성·LG전자 냉장고에 대한 반덤핑 조치 사실이 알려진 20일 이후 종이신문과 인터넷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유독 방송 3사는 저녁 메인 뉴스에 지금까지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국민들 사이에 한미FTA 발효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반발이 거세질 것을 우려해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쏟아낸 장밋빛 전망들이 여지없이 빗나간 데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이 두려워서인지 알 길이 없다.
 
더 한심한 건, 오늘의 사태에 근원적 원인을 제공한 한미FTA 협상 책임자들이 여전히 영전의 영전을 거듭하며 국가의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는 땅 짚고 헤엄치는 여당 텃밭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노리고 있다.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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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3/31 [01: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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