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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시민의 분노가 ‘점령’한 서울시
[김주언의 뉴스레이다] 朴 승리는 민주진보세력의 혁신과 통합 과제남겨
 
김주언   기사입력  2011/10/31 [00:04]
“서울시민의 승리를 엄숙히 선언합니다. 시민은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선택한 것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 일성이다. 박시장은 “시민의 분노, 지혜, 행동, 대안이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뤄내 승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시장의 말대로 서울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이래 26년 만에 “시민이 시장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이 완성”된 것이다.

서울시민은 이제 정치꾼들과 기득권층의 손아귀에서 시름하던 서울을 되찾았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탄을 박았던 그날. 그로부터 70년 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쓰러뜨렸다. 또 다시 30여년이 지난 그날 10월26일 서울시민은 서울을 ‘점령’했다. ‘1%의 탐욕’에 약탈당해온 ‘99%의 분노’가 서울을 되찾은 것이다. 세계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는 대한민국에서 이제 막 실현됐다.

박원순 시장의 탄생은 시민사회의 승리이다. 돈도, 조직도, 미디어도 없는 시민운동가를 서울시장으로 만든 것은 하나로 뭉친 시민의 힘이다. 서울시민은 선거자금 39억원을 단 3일만에 마련해주었고, 유모차 부대가 모여 들어 조직이 되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흑색선전이 칼날처럼 휘몰아 칠 때 이를 막아주고 지켜준 가장 강력한 미디어는 바로 시민이었다. 박 시장의 말처럼 시민은 돈이자, 조직이며, 미디어였다. 그래서 이제는 서울시민이 서울시장이 되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시민사회에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다. 1987년 6.10시민항쟁 이후 우리사회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시민사회는 그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시민운동은 그동안 권력 감시와 정책 제안 등 ‘영향의 운동’이 주요활동 목표였다. 인권 및 재벌 감시와 낙천‧낙선운동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활동은 시민으로부터 폭 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더 나아가 인터넷 및 트위터의 등장과 미순이ㆍ효순이의 죽음으로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시민운동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선도적 운동만으론 시민의 열망을 담아낼 수 없다는 반성이 그것이다.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박원순 시장은 ‘영향의 운동’에서 ‘참여의 운동’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여 기부문화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고, 아름다운 가게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업을 도입했다. 더 나아가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감시와 청원이라는 차원을 넘어 생활주변의 문제점을 찾아내 정책으로 직접 실현해내는 시민운동을 새롭게 창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시민운동으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민주주의 역행과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까. 박원순의 선택은 정치인으로의 변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박원순의 선택이 시민사회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기본동력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여의 운동’이 중요한 만큼 ‘영향의 운동’도 중요하다. 박 시장도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 그리고 충고가 시정활동의 필요조건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와의 견제와 협력, 그리고 소통이 ‘사람 중심 서울’을 만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허물어뜨린 ‘거버넌스(협치) 체제’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 박 시장의 최우선 과제이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첫걸음부터 기득권의 엄청난 견제와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어렵사리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돼 선거전에 뛰어들었으나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흑색선전과 인신공격, 그리고 색깔공세는 거센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학력 및 병역 의혹과 아름다운 재단의 협찬의혹 등 ‘억지 공격’은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기며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던 그에게는 감당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에게는 ‘시민’이라는 무서운 세력이 있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아무리 끈질기게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어도 시민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흑색선전에 일시적으로 밀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서울시민은 그의 진정성을 믿었다. 게다가 ‘나꼼수’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민 미디어와 수많은 서울시민의 무기로 등장한 SNS는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과 나경원 후보 등 기득권의 구린 구석을 파헤치고 널리 퍼뜨리는 데 더욱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언론도 이들의 힘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부동산 투기와 병역 기피 등 온갖 비리로 얼룩진 그들에게 흑색선전은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이번 선거는 서울시민의 승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승리를 끌어낼 수 있었던 동인은 야권 단일화였다. 지리멸렬하게 분열돼 있던 야권이 하나로 뭉쳐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원순도 ‘무지개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들과 시민사회를 거론하며 “우리는 더 큰 시민의 이름으로 하나 되어 이겼다”며 연대의 정신을 내세웠다. 민주당이 민주노동당과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한나라당에 73표차로 패배한 강원도 인제군수 선거 결과는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박원순 시장은 선거과정에서 야당들과 시민사회의 통합과 협력을 지속적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에 입당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무소속을 고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직과 돈이라는 정당의 막강한 힘을 마다하고 야권의 단합된 힘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한 것이다. 박원순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세력이 이기려면 야권통합이 무엇보다도 가장 절실한 과제임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로 서울시민에게 감동을 주었듯이 내년 양대선거에서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민주진보세력의 혁신과 통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언론광장 감사, <시민사회신문>(http://www.ingopress.com)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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