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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박정희를 처단한 의사 김재규를 기리며
[오용석의 정언생각] 박원순의 승리는 경제민주화로 한발짝 나가는 길
 
오용석
당신이 만약 초능력이나 심령술 따위의 허황된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우리 인간의 의식적인 역사행위 또한, 마치 돌멩이의 자유낙하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물리적 사건에 기초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32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 밤, 의식 있는 물질 김재규가 또 다른 의식 있는 물질 박정희의 심장을 향해 몇 마디 질책과 함께 몇 발의 총알을 발사한 행위가 바로 그러하다.

그게 인간 등 생명체의 행위이건 전적으로 자연적 사건이건, 이런 물리적 사건들을 다루는 물리학의 최신 분야가 근래 각광을 받는 ‘복잡계’ 이론이다. 이른바 ‘창발’(emergence) 현상과 ‘결정론적 혼돈’ 상황 때문에 어떤 행위나 사건의 미래적 예측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주 조금만 초기조건이 달라져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뉴턴적이건 아니면 아인슈타인적이건 기왕의 물리적 결정론들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성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사건의 미래적 결과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실로 인간의 역사 자체가 결정론적 혼돈의 전개과정이다. 만약 박정희가 32년 전 오늘 밤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넸더라도, 어쩌면 김재규는 거사 자체를 단념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거사 직후 비상계엄사령관이던 기회주의자 정승화가 머물던 육본 벙커로 무작정 달려가지 않고, 만약 자신의 본거지인 안기부로 돌아가서 상황을 제대로 장악만 했더라도 그 자신의 개인적 생사는 물론이고, 이후 전두환 일당이 저질렀던 80년 5월 18일의 무참했던 광주시민 살육도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오늘의 대한민국 역사 자체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의 길을 밟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철학의 빈번한 그러나 무미건조한 “우연과 필연”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 때만, 역사는 비로소 피와 살을 갖춘 현실감으로 우리 앞에 다가선다. 한쪽으로 소위 숙명론이나 운명론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쪽으로 이른바 역사법칙 운운하는 마르크스주의적(=고답 좌파적) 결정론의 어리석음은 더 이상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미래지향적이며 시간비가역적인 역사에서 그게 설혹 돌발행동이건 아니면 빈틈없이 의도된 행동이건, 무엇보다 그 행위자가 속하는 소위 진영의 피아에 관계없이, “한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은 결정적으로 역사의 진행방향을 바꿔놓는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바로 그래서다. 나는 오늘 밤 일제치하 안중근과 파쇼치하 김재규를 공히 동일하게 우리 역사의 비중 있는 ‘의인’(義人)으로 비록 개인적이나마 맘속 깊이 기리고자 한다. 이게 바로 32년 전 오늘밤 김재규의 고심어린 박정희 처단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역사적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 시대 최고의 과제인 경제민주화를 달성하여 우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큼 도약시키는 그날이 오면, 그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 과업을 완수시키는 그날이 오면, 그때 김재규는 새롭게 우리 역사의 걸출한 의인으로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오늘의 다수는 이런 재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조차 상당수는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 행위를 놓고 권력내부의 우발적인 분열사태 운운하며 지난 날 이를 폄하했었고 지금도 일부는 그러하다. 하지만, 32년 전 오늘밤 김재규의 의로웠던 행동이 박정희라는 포악한 독재자에 의해 그들을 포함해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던 수십만 명의 목숨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 양, 살려낸 것이라는 ‘역사적 부작위’의 진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김재규의 32년 전 행동을 최소한 ‘의거’(義擧) 차원으로는 올려놓아야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후대를 사는 사람의 마땅한 도리라고 본다.

나는 오늘밤 나의 아내와 더불어, 어쩌면 그날 밤 잘못 정해졌을 수도 있는 우리 부부의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출생의 축복은커녕 생명의 역사에서 아예 지워져버렸을지도 모를 우리 두 자식들의 실존적 의미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의사 김재규의 32년 전 오늘밤 의거를 우리 가족 모두가 더불어 기리는 중이다! 오늘 치러졌던 서울시장 등 보궐선거 이야기로 이어지고 다시 복잡계 이야기로 돌아간다.

원래 일기예보 등 자연현상이건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혀드는 인간사이건, 복잡계의 내재적 비선형성에 기인하는 혼돈은 어느 누구도 이를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오늘의 정치상황 등 사람들의 집단적 심리상태는 자연의 일기 상황보다 변덕이 더 심하면 심하지 못하지 아니하다. 다만 단기 예측에 한정하여 어느 정도 추세적으로 가능할 따름이다. 향후 중대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내년도 총선이나 대선 정도의 단기 예측은 오늘밤 보궐선거 결과를 통해 추세적으로 상당 정도 드러난 시점이다.

지금부터 6개월 전, 금년 4월의 분당 보궐선거 때 민주당 후보 손학규의 선전 이상을 아파트값 급락 등 분당 주민들의 실망감까지 감안하며 미리 내다봤던 사람이라면 우리의 경제민주화 도정이 아직 멀고도 험할 것임을 충분히 인지할 것이다. 또한 자칭 ‘협찬 전문가’라는 무소속 후보 박원순의 오늘밤 서울시장 선거 승리가 비록 제한적인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향하여 그리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한 발짝 성큼 나아가는 의미 있는 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다들 충심으로 기대할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역사가 빚어내는 우연과 필연의 직조(織造) 과정이다.

* 글쓴이는 현재 개방과 통합 (연) 소장으로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법대 졸업 후 미국 오리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은, 금감원 등에서 근무하였습니다. https://www.facebook.com/fssoh
 
기사입력: 2011/10/29 [03:5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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