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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 월가' 운동이 계속 커지고 있다
[국제동향] 反월가 움직임은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
 
강성종   기사입력  2011/10/23 [03:03]
▲ 曺亨 畵伯이 油畵로 그린 강성종 박사     ©曺亨, 2010
[譯者 註釋] 점령월街[Occupy Wall Street] 는 심상치 않다. 매일 증가하고 있는 이 운동은 계절적이 아니다. 이마도 세계의 금융자본주의의 판도를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 개의 기고문을 함께 번역한다. 하나는 Paul Krugman의 “그들의 면역성도 다 없어지고 있다” 와 Neil Garfield의 Krugman의 기고문에 대한 해설: “도적정치(盜賊政治 Kleptocracy)에서 뢰소주의(牢騷主義 Kvetchocracy)로: 월街는 도적질 하다가 비판하면 투덜대고 욕하기 시작한다”. 뢰소주의(牢騷主義) 뉴욕타임스를 정기적으로 번역하는 다음 website 에서 중국어번역에서 인용했다.
http://www.huishangol.com/display.asp?id=11318 
 
추가로 이 점령 월가 운동의 많은 아이디어는 Adbusters 라는 카나다 신문에서 나왔씀을 알려 드립니다. http://bit.ly/poMlXw 



[1] 월街의 면역성도 다 해가고 있다 [Losing Their Immunity]
 
By PAUL KRUGMAN
뉴욕타임스 2011년 10월 16일
 
점령월街 운동 [Occupy Wall Street movement] 이 계속 커지고 있음에 따라 운동의 표적으로부터의 오는 반응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 오만 방자한 눈으로 무시하고 깔보던 태도에서 투덜거리고 푸념하는 哭訴로 바뀌고 있다. (내 블록의 한 독자는 금융지배층을 뢰소주의(牢騷主義)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현대판 금융군주(金融君主)들은 데모하는 운동권 사람을 처다 보면서 이렇게 묻는다. 저것들이 우리가 미국경제에 무엇을 공헌했는지 이해라도 할까?
 
대답은 이렇다. 물론 잘 이해하고 있다. 많은 데모 자들은 월街와 경제 엘리트들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 뉴욕타임스는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데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보고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어느 화폐경영인으로부터인데 “금융복무(金融服務 Financial Services)는 이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사업이다. 우리가 껴안아줘야 한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많은 일을 잘하고 있는 미국 노동자에게 심각한 모독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부구조 [infrastructure] 나 교육에 그 돈을 투자하면 더 낳아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금융복무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정도로 이 문제는 왜 그리고 이게 정말로 우리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방향인지 하는 문제가 아닐까?
 
미국의 금융화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놀아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때부터 금융산업이 다른 경제분야보다 급성장된 일련의 원인은 고의적인 정책선택 때문이었다. 특히 2008년까지 계속된 규제철폐가 바로 그 원인이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不斷成長의 금융산업시대는 不斷成長의 수익과 부의 불평등시대였다. 월街는 직접적으로 경제양극화에 크게 기여했다. 왜냐하면 전체 국가의 수익 중 금융에서 치솟는 상위 1%의 수익이 대부분의 수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상위 0.1%가 상위 1%를 다 차지하고 있다). 더 넓게는 금융규제철폐를 촉진한 같은 정치세력은 여러 면에서 노동조직을 파괴하고 최고경영인의 급여를 제한하는 분노성약속(?怒性?束 愼防衆怒 outrage constraint)도 폐지해버렸다. 그 외에도 많다.
 
당연히 부유세는 거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이 모든 것은 결과를 보면 합리화된다고 가정한다. 월街의 귀재들의 급여는 그들이 기막히게 돈을 많이 벌어드렸기 때문에 당연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막힌 일이라는 것에서는 한 개의 떡고물도 떨어지지 않았다. 위기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1980-2007년 23년간의 중간가구당 수익은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지금 정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금융규제가 엄격했고 지금보다 부유세가 아주 높았던 세대에 비해서 1/5밖에 되지 안았다.
 
그리고 위기가 닥쳐왔다. 이는 현대판 금융이 위험을 감소했고 제도가 더 안정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넌센스 인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정부의 緊急救濟는 대공황 때보다도 더 나쁜 재정붕궤로부터 구제가 되였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월가의 급여는 노동자들의 높은 실업률과 줄어든 임금으로 고통을 받는데도 다시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정말, 金融家들이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왜 월街는 사람들의 [점령월街]에 대해서 불평하기를 바라는가? 금융이 미국이 잘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금융경영인이 뉴욕의 두 상원의원이 자기편이 아니라고 불평하며 그들의 선거구민(選擧區民;選民)이 누구인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뉴욕 상원의원들은 그들의 선민(選民)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17명중 16명이 비금융권(非金融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금융인은 유권자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월街가 신용과 돈을 완전히 잃은 것은 불구하고라도 구제금융에 관해서 무한한 감사해야 하는 단 한가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미국정치에서는 돈은 귀신도 부린다 (有錢能使鬼推磨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금융산업자금관리인들은 최근 금융산업을 비판하는 정치인들은 아무리 점잖게 말 하드라도 모조리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이는 벌써서 월街의 돈이 오바마를 버리고 미트 롬니 (Mitt Romney) 공화당 후보를 택하겠다고 말하는 것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런 일이 최근 사건에 대해 월街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점령운동을 봐라. 몇 주일 전까지만 해도 월街는 세계경제를 망치면서 그들의 막대한 급여를 가져가는데 입을 닥치도록 우리의 정치체제를 뇌물로 사거나 아니면 협박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갑자기 사람들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들 [점령월街]의 분노는 수천만의 미국인들과 공감대를 갖았고 이에 대해 월街가 투덜대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原文]
http://www.nytimes.com/2011/10/17/opinion/krugman-wall-street-loses-its-immunity.html?_r=1&ref=opinion


 
다음 글은 Paul Krugman의 기사에 대한 Neil Garfield 의 해설이다.
 
[2] 도적정치(盜賊政治 Kleptocracy)에서 뢰소주의(牢騷主義 Kvetchocracy)로: 월街는 도적질 하다가 비판하면 투덜대고 욕하기 시작한다.
 
기막힌 일은 역사는 반복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전만 해도 학자의 책이나 논문 그리고 해설 등은 소비자, 납세자, 주택소유자, 각 계층의 유권자들의 불만이라고 일축해버렸는데 갑자기 미국정부가 우리에게서 도적질해간 직접적인 결과로 자산과 년 수익을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극대화한 극소수에 의해서 납치되지나 않았는지 하는 생각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제 와서 학자들은 불평을 하기시작하고 정부는 그들의 만행에 대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고 있다.
 
점령운동 [Occupy movement] 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눈에 나타나는 것과 현실의 차이만큼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고고행진! 월街는 증가하는 거대한 이익만 보고하고 있고 다른 부분의 경제는 자금부족과 [그에 따른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의욕부족으로 붕궤되고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내 인생과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60년대에는 국가경영과 시민의 혜택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이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내가 월街에 있었을 때에는 경제성장에 따른 유동성자산이 계속 증가한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월街의 가치를 인식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성장이 대부분 국민에게는 환상일 뿐 국민은 임금대신 빚을 저야 하는 사실은 정책의 양쪽 모두 비난을 받아야 한다. 유동자산이 실질적 부와 실질적인 화폐를 대체하게 되였으며 달러의 가치는 장기적인 하강상태에 있게 되였다.
 
GDP성장은 월街의 성장에 기인 되였으며 이는 금융복무(金融服務 financial services) 가 16%에서 48%로 급상 한데서 기인된다. 만일 당신이 GDP의 성장으로서 월街가 만든 월街의 성장을 교역서류를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그 성장을 좌표로 삼고 싶어하는 바로] 그 성장은 환상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종이로 만든 GDP 차액 32%를 빼면 당신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가구당 두 사람의 수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경제빈혈증에 걸릴 것이다.
 
월街가 제조한 허상의 GDP 32%를 빼면 우리의 비참한 환경은 더욱 명확해지고 이해가 갈 것이다. 미국의 GDP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축 되였다. 국가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 를 유지하고 새로 건설하는 것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미국의 GDP는 엄청나게 줄어든 샘이다. 미국의 실질GDP는 보고된 것의 반절에 해당한다. 많은 시민들은 이러한 엄청난 GDP의 감소를 실감하고 있고 변화를 요구한다. 그들의 생각은 맞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던지 아니면 [역설적인 얘기이다마는] 이미 다 되여 있으니 더 바랄 것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GDP측정은 실질적으로 가치 명세서를 말한다. 이는 일정매매가 이루어지고 그 매매에 가치를 부여한다 반면 다른 매매를 이루고서는 국가의 GNP의 가치부분으로서는 무시해버린다. 우리는 부를 위한 부만 가치로 인정했고 우리의 경제적 자존심의 일부로 계산했다. 지금은 재원이 말랐다. 지난 35년간 제조한 거품을 계속 품어댈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없다. 지금 유통되고 있는 50조 달러의 실질적인 통화에 근거하면 우리는 600조 달러 이상이 파생상품채무 [derivative debt] 가 유통되고 있다. 다섯 살 먹은 아이도 이래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占領월街 (Occupy Wall Street)운동은 우리에게 우리의 가치와 정책에 무언가 일치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라고 얘기해주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진작 했었어야 한다. 벌서 고치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全球化[globalization] 라는 것은 證券化처럼 그 자체로는 사악(邪惡)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극소수만이 사용할 줄 아는 무기였다. 이는 公平競爭的 環境이 아니며 정보의 非對稱性 (George Akerlof) 과도 相合하지 못한다. 이는 부익부의 몇 사람과 빈익빈의 대다수, 그리고 [운동]경기가 기술적으로 따지게 될 때 심판관을 경기장에서 빼돌리는 결과를 빚은 정부의 문제라는 이념적 입장이라는 결과를 낸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는 것과 그 누구에게도 중지하게 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道德危險의 폭풍과 함께 추문(醜聞)에 醜聞이 이어지면서 월가 만이 이길 수 있다고 내기를 하듯이 전 세계를 賭臺(Gambling Table)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도박의 위험은 계속 올라갈 것이다. 월街를 비난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군인이 총 쏘는 것을 비방하는 것과 같다. 군인은 적을 찾아내고 누구는 쏘지 말 것 등을 말하는 명령에 따라 기능을 할 뿐이다. 정부가 문제다.
 
군대처럼 월街도 그들이 노동자들의 연금, 중산층의 재산, 창신(創新 innovation)과 그에 따른 이권(利權)에 대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국가의 전망을 목적으로 할 때 내재적인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감각을 사용하지 못한 것에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미국정부는 재난의 결과를 초래한 관행을 중지 못한 잘못이 있다. 유권자들은 자기의 판단과 지식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구호와 상술에 말려들어간 데 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童話 같은 얘기를 믿었고 그에 말려들어갔다. 좋든 나쁘던 결과는 용납할 수 없게 되여 바꿔야 한다. 변화는 법에 명시된 대로 예외 없이 은행이 붕궤위기에 직면하고 은행이 망할 때 함께 쓰러지는 제도에 대해서 법을 적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일 은행이 주택을 차압 할 수 없다면, 법을 어기지 않고 법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용카드, 학생채무, 소비자 채무를 수거해야 한다. 도덕적 감각이 상처를 받는다고 해서 그들로 하여금 그런 짓을 하게끔 용납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법과 합리적 절차를 밟는 국가다. 사람의 국가나 이념적 선택의 국가도 아니다. 법치국가다.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중산층은 급속도로 무산계급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무산계급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가려는 능력은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차단 물로 막혀져 있다. 가난한자는 더욱 심한 적빈상태(赤貧狀態 abject poverty)로 빠지고 경찰, 소방, 사회봉사, 길이나 다리 전기 수도 같은 하부구조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정부기능은 소홀(疏忽)이라는 무게에 못 견디어 쓰러지고 만다. 부호들은 자기네들 자체의 전기, 도로, 교통수단을 구축하고 사설경찰을 두고 공공 하부구조에 의존하지 않는다.
 
밖으로 표현되는 분노 [점령월街]는 부호들에게 아랑곳없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정치와 경제전경(經濟全景 economic landscape)의 자연적인 일부라고 생각해왔던 공공시설과 국민보호는 사라졌다. 우리는 그것은 다시 찾아야 한다.
 
[原文]
http://livinglies.wordpress.com/2011/10/17/emporers-invisible-clothes-removed/ 
필자 강성종 박사는 1969~70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세계적인 뇌과학자입니다.
현재 뉴욕에서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과 치매를 치료하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진보·좌파 성향의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약력
한국인 최초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 게재(제1저자-1969,1970년)
전 미국 뉴욕시립대학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교수(1968-94)
전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교수(1975~78)
전 서울대 AID교수(78-79)
전 중국 천진대학 자문교수(86-94)
전 한효과학기술원 원장(89~95년)
현 뉴욕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장(치매/우울증)

* 저서
<한국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말한다>(라이프사이언스 펴냄)
<당신의 두뇌 안녕하십니까?>(라이프사이언스 펴냄)

* 강성종 박사 블로그 : http://quovadis.tistory.com/
* 강성종 박사 트위터 : http://twitter.com/quovadi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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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0/23 [03: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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