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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주식 그리고 쌀
이명박 청와대가 제일 이해 못하는 것들
 
우석훈   기사입력  2011/08/25 [16:12]
 
연말까지 대장정 시리즈는 한 권만 더 추가로 낼 생각이다. 8권과 9권이 출판사 사정상 순서가 바뀌게 되었다. 핵 에너지 문제를 다룰 ‘블랙 레인’이 8권이 될 거고, 농업경제학이 10권이 될 거다. 2권을 다 끝내기에는 연말까지는 벅차고, 한 개만 할 생각이다. 요즘은 좀 쉬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는 중인데, 농산물 문제가 터지기는 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농업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간다.
 
청와대에서 제대로 못하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제일 이해 못하는 걸 꼽아보면, 전세, 주식, 쌀, 그렇게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
 
전세는…
 
자기들이 언제 전세를 살아봤어야 그게 뭔지 메커니즘을 좀 알지, 그냥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서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감이 안 오는 주제가 이 문제다. 전세와 유일하게 관련되어 있는 게, 전세 사는 게 아니라 전세 주는 거. 그러니까 집 가진 사람 관점에서, 세금 없애주면 좋겠네, 이러고 있는 거? 전월세 문제는, 정권 바뀌기 전에는 전혀 해법을 못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식은…
 
주가 관리라는 게 좀 성립되기 어려운 개념이기는 하지만, 거시정책이나 미시정책도 단기저으로는 주가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정부 입장에서는 급등이나 급락, 다 안 좋다. 실물경제가 좋아지면서 약간씩 주식 시장이 선행 시장으로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 이게 제일 좋다는 게 경제학자들이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주식에 대한 입장이다.
 
그런데 투기꾼 입장 밖에는, 즉 업자들의 시선으로 보니까, 무조건 올리면 좋다는 생각 외에는 해본 적이 없을 듯 싶다. 게다가 컨설팅 회사 의견 너무 많이 정책에 반영한다.
 
정부에서 올린다고 맘 먹으면 금방 올릴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또 한 가지가 쌀…
 
농업 문제는 지난 정권에서 워낙 그려놔서 더 나빠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는데, 한나라당 쪽 농림부 장관들과 경제 관료들이 농업에는 너무 무지했다.
 
오랫동안 흉년이 없던 나라였는데, 2년 연속 흉작이다. 농업이라는 게 잘 되는 해도 있고, 안 되는 해도 있는 건 당연한 거지만, 정책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어떻게 안정성을 찾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오랫동안 풍년이다 보니, 쌀은 남는다고 너무 간단하게 생각들 하셨다. 두 가지가 당장 문제인데, 첫째는 쌀 감산 정책이었다. 작년에 아마 실무자들은 올해 쌀이 어려울 거라고 예상을 했던 것 같은데, 예산을 맡고 있는 경제쪽 관료들이 비축미 예산 늘이는 걸 반대해서… 간당간당한 상황이 왔다.
 
조생종은 이미 비상이 나서, 추석 때 햇쌀 올라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에너지에서 이 정도 문제가 벌어지면 벌써 contingency plan 나오고 비상 시나리오를 가동시킬 준비를 하는 게 맞는데, 청와대는 아직 문제 감도 못 잡은 것 같다.
 
벌써 시중에는 쌀이 없어서, 수입산이 돌고 있는 중이다. 비축미를 풀어야 하는데, 이것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9월 내내, 이제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9월 내내 쨍쨍, 그 방법 밖에 없는데, 하늘이 하는 일을 누가 알겠나.
 
게다가 가을장마라는, 진짜 듣기 어려운 비가 온다는데, 진짜 초비상 상태다.
 
쌀 국수 해먹으라고 난리를 치고, 쌀 직불제 그만 좀 줄이자, 조기 관세화하자, 입만 열면 이렇게 주장하던 한나라당도 이런 사태에 대해서 그냥 청와대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좀.
 
게다가 한동안 농림부 장관은 박근혜 몫으로 떼어준 것이라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올해만 넘어가면 내년은? 논에다 쌀 말고 대체작물들 심으라고 난리를 쳐놓아서, 점점 쌀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에서 사다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 이게 배추보다 더 곤란한 문화적 특성 같은 게 있다. 박정희 때 안남미 들여왔다가 완전 난리 난 적이 있었다. 중국산 배추 들어와서 그냥 처리하듯이, 쌀도 캘리포니아 쌀 그냥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가…
 
영남 농촌지역 한나라당 텃밭에서 대박 난리 난다. 게다가 중산층 이상은 어지간해서 외국 쌀 안 먹으려고 할 거고.
 
민주주의 보다는 밥이 우선이라는 그런 논지의 얘기들이 80년대까지 종종 있었다. 보수 쪽 사람들이 했던 얘기인데, 어느덧 밥과 민주주의를 비교하는 것은, 계속된 풍년 시대에 전혀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비유가 되었다.
 
국내산 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시대가 오면, 진짜 정치 어려워진다.
 
생협은 연간 계약을 하고, 농민들에게 다소간 유리한 방식으로 물량 확보를 하는 편인데, 생협에서도 쌀 사기가 어렵다. 백미는 벌써 구할 수도 없다.
 
지금 국내 사정이 이런데, 한식세계화라니, 이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쌀 같은 것은, 이제 어느덧 자급 기반이 충분해졌고, 어떻게 이걸 유기농으로 전환할 것인가, 그게 DJ 시절 ‘친환경’이라는, 유기농고도 좀 다른 기상천외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했던 농업정책이다.
 
진짜 지금 와서 보면, DJ-노무현 시절이, 농업으로 보면 그래도 태평성대였던 셈이다. 어떻게 3년만에 그 안정적인 기반을 이렇게 다 무너뜨려버릴 수 있었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다 급한 문제이기는 한데, 원자력 문제가 급하냐, 농업 문제가 더 급하냐, 그걸 놓고 우열을 잘 못 가리겠다. 그냥 생각해보면, 원자력 문제야 나 말고도 얘기할 사람들이 많기는 한데, 농업 얘기 할 사람이 별로 남지 않아서…
 
농업에는 개방이냐, 보호냐, 이런 얘기 하나, 화학농이냐 유기농이냐, 이런 얘기 또 하나. 그 중간중간에, 유통이 어쩌고, 보관정책이 어쩌고 등등, 삼성까지 끼어들어서 한바탕 난리를 쳤던 유통 문제, 그런 것들이 약간씩.
 
지켜보는 입장에서, 뭐가 우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상적으로는 농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시각이 너무 팽배하다. 그래서 자꾸 나오려고 하고, 들어가지는 않으려고 하는 게 전문가들의 흐름이다. 진짜로 농업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현장에서 보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물론 방송이나 기고에서는 다 자기가 진짜 농업을 생각한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그건 공식적인 입장이고. 뒤 돌아서 우리끼리 앉아있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아마 군대도 그래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야전 장교와 정치 장교가 있으면 정치 장교가 승진 먼저하면서 문제가 생겨난 것과. 농업도 같아 보인다. 농업을 빨리빨리 없애서, 궁극적으로는 농사 그만 짓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제 마인드’가 있다는 평을 받고, 그런 사람들이 먼저 승진해서 실장도 되고, 차관도 되고.
 
고대에서 농경제학과를 응용경제학과로 바꿀 때… 이러고도 농업이 버티면 이상하쟎아? 어쨌든 그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하면 좀? 거기도 별 생각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는 한데, 지금 청와대 같은 악착스러움이 없으니까, 그냥 있는 제도만 정상적으로 운용한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기를 할 것 같다.
 
예전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은 개혁 한다고 하면서 신자유주의 쪽으로 대폭 갔고, 지금의 한나라당은 선진화한다고 하면서 투기꾼 세상을 만들어놓고, 농업은 쪽박을 내놓았다.
 
선진국 중에서 한국처럼 농업 포기한 나라 한 나라라도 있으면 대보시라. 현실이 어려워도 어떻게든 주식에 해당하는 것들은 국내 공급기반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선진국이다.
 
하여간 청와대는 지난 겨울부터 전세 시세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고, 8월 내내 주식현황판만 들여다 보고 있는 듯 싶다. 9월은, 비 오나 안 오나, 한 달 내내 하늘만 쳐다보고 있게 생겼다.
 
가을장마 오거나 태풍이라도 한 두개 지나가면, 진짜 정권이 휘청거릴 정도로 상황 안 좋다. 안 좋은 거야 그럴 수도 있다는 게 농업이 특징이기는 한데, 이게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 도무지 감도 못 잡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그냥 수입하면 되쟎아, 이런 생각으로는 농업 정책이 돌아가지가 않는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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