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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7.0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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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차별과 지역등권, DJ와 노무현의 길
[공희준-황태연 대담1] 영호남 갈등, 한국의 빠른 발전 불러온 효과있어
 
공희준
미인박명’이라고 했다.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미녀라는 칭송이 자자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는 우리 나이로 여든 살까지 오래오래 살았으니까 말이다. 조금 봉건적 사고를 해보자면 여자는 미모, 남자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이 있다면 만만치 않은 시기심의 소유자인 모양이다. 신은 아리따운 여자에게는 짧은 삶(薄命)을 주고, 재능이 출중한 남자에게는 무수한 숫자의 이른바 ‘안티’들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시야를 학계로 돌리면 그곳에서 안티 많기로 이름난 학자들 중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황태연 교수다. 보통 ‘교편’이란 표현은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교수들에게는 잘 붙이지 않는 단어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주저함이 없이 그 말을 썼다. 대담 내내 황 교수가 보여준 날선 결기를 달리 형용한 길이 없었던 탓이다. 그 결기가 그에게 학자로서는 드물게 수많은 안티들로부터 거친 오명과 비판을 선물해주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한국 정치학계의 안티제조기 황태연 교수가 덕치의 화신 공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대하소설에 가까운 분량의 정치철학서 시리즈를 금년 봄에 써냈다. 시리즈의 제목은 ‘공자와 세계’. ‘패치워크문명 시대의 공맹(孔孟) 정치철학’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에는 동서고금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6월 27일 월요일 낮부터 시작한 대담은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2시가 가까운 시간이 돼서야 끝났다. 여기서는 동국대학교 캠퍼스 내의 교수연구실에서 오간 내용만을 공개한다. 낙양의 지가를 하의실종 패션만큼이나 아찔하게 올려놓겠다는 야심을 품고서 ‘조국 현상을 말한다’를 며칠 전에 출간한 시사평론가 김용민 선생께서 대담에 도움을 주었음을 덧붙여 알려드리는 바이다.

최악의 호남 차별은 학계에서 이뤄져 

- 김용민 (이하 김) :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기 위해 개인적 차원의 질문부터 먼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외교학과가 학부에서 별도로 개설되어 있는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학교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교학과를 지망하셨음에도 학자의 길을 걷게 된 동기와 배경은 무엇인지? 공직에 나가면 우리 사회의 지역차별을 직접적으로 겪게 될까 우려하셨기 때문인가요?

= 황태연(이하 황) : 나는 그런 질문이 별로 정확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당시나 지금이나 호남(인) 차별이 가장 심한 곳이 학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공직은 언론들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심하기 때문에 고건이나 강운태나, 뭔가 얼굴마담으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출세시켜줬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필요 없는 데가 조용한 학계입니다. 당시에 외교학과에는 단 한 명의 호남 출신도 없었습니다. 정치학과보다도 더 심했습니다. 나는 외무고시에 최연소로 합격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외교관이 되지 않은 것은 원래부터 공직으로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외교학과에 외무고시에 두 번 낙방한 뒤에 할 수 없이 미국에 유학을 갔다 와서 교수된 분이 있어서, 우리를 포함한 선배들까지도 고시에 떨어질 정도로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교수가 된다는 비아냥거림이 있었습니다. 이런 때인지라 나는 학문을 하려면 먼저 고시부터 붙어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고시를 봐서 최연소로 합격했습니다. 대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진보적 이론을 공부하느라고 바빴는데 솔직히 고시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봤는데 그냥 덜컥 합격한 겁니다. 출세 못할까봐 관직으로 안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도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저 정도는 될 수 있겠다고 제가 내심 생각했던 공무원들이 영남 출신이 아니더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출신 장관들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외교관이 기본적으로 나의 길은 아니었습니다. 정계나 관계는 내가 가는 길이 아니었죠. 나의 소질은 철학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철학을 전공했고, 지금까지도 이걸 연구하고 있습니다. 첨언하자면 석사 학위 논문도 정치철학을 주제로 썼습니다.

- 김 : 지역차별이 만연한 학계에서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지사적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시고요?

= 황 : 교수를 안 하더라도 학문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재야에서라도 공부를 계속할 작정이었습니다.

- 공희준(이하 공) :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한국에서 헤겔은 이른바 국민윤리 개념의 수준에 위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고등학교에서 국민윤리 과목을 가르치나요?

- 김 : 아마 있을 겁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저희 때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 공 :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국민윤리를 보면 아이들한테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쳐주는 명제가 ‘김일성=나쁜 놈’입니다. 그러면 왜 김일성이 나쁜 놈이 됐느냐? 친구 잘못 만나서 그렇답니다. 그렇다면 그 친구가 누구였느냐? 마르크스죠. 그런데 결국은 마르크스도 친구 잘못 만나서 못된 놈이 된 건데, 마르크스를 나쁜 놈으로 만든 못된 친구가 헤겔이다, 이런 식이죠.

= 황 : 거기에는 선후배도 없어요? (웃음)

- 공 : 어차피 막가는 집안이니까. (웃음)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 헤겔을 전공하신 것은 도전을 넘어서 도발적 행위 아니었을까요? 단순히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철학을 연구한다고 여기기는 어려웠을 환경이었을 텐데요. 

= 황 : 한국의 사상사가 단절된 탓에 이런 질문들이 자주 등장하는 겁니다. 헤겔은 멀리 일본이 세운 경성대학제국 시절부터 나름대로 명맥과 정통성이 이어져온 학문입니다. 일제시대에는 독일 학문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책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우리가 헤겔의 사상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한국전쟁을 전후에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가령 신남철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지리산으로 들어갔거나 북한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헤겔에 대한 관심은 칼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헤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우회적’으로 연장된 결과입니다. 왜냐면 마르크스를 주제로 해서는 학위 논문도 못 쓰고, 결국에는 관련 서적을 소지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옥을 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리니까 마르크스를 우회적으로 읽기 위해서 헤겔을 읽은 셈입니다. 헤겔까지는 시비를 걸지 않으니까. 내가 공부하던 시절은 막스 베버의 책조차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서 김포공항에서 통과가 안 되던 시대였습니다. 칼 마르크스도 아니고 막스 베버가! 헤겔을 선택한 것은 우회적 선택이었죠. 마르크스를 연구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헤겔을 선택한 거였습니다.

당시 네오마르크스주의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던 것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헤겔과 프로이트의 연구에 기초를 둔 새로운 마르크스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신(新)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헤겔이 연구의 중요한 방법론적 전제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교수들이야 몰랐겠지만 나와 동료들은 그런 생각으로 헤겔을 많이 공부했고, 나중에는 책도 여럿 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당시는 서독)로 유학을 떠난 겁니다. 독일에서 칼 마르크스를 연구한 이유는 독일은 사회민주당이 존재할 정도의 나라인 까닭에 프랑크푸르트 대학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공부였습니다. 공부가 끝날 때를 즈음해서 한국에서 교수로 임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내가 좀 늦게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불과 1년 차이였습니다. 한국에 오기 1년 전쯤에 소련이 망하니까 마르크스에 대한 인기와 수요가 확 줄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전공한 누구도 교수로 뽑히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학생들의 요구가 있었기에 동국대학교 교수로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 공 : 이제 논의를 확 건너뛰겠습니다. 제가 사실은 황태연 교수님과 대담을 진행한다고 말하니까 일각에서 굉장히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한국사회의 이른바 진보진영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세력에 의해서 ‘호남 원리주의자’로 매도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대단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본래의 민주당 지지자로서 분당 당시 민주당에 남기를 선택했던 사람들, 이른바 ‘난닝구’라고 하죠. 그쪽 분들의 관심이 몹시 컸습니다.

= 황 : 이거 한다니까?

- 공 : 제가 그건 충분히 체감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죠.

= 황 : 지금은 뭐라고 했죠? 아까? 호남?

- 공 : 원리주의자라고 했습니다.

= 황 : 아니 아까, ‘난닝구’가 호남의 뭐라고 했죠?

- 공 : ‘호남 원리주의자’라고 칭합니다. 요즘은 정치적 표현이, 사람들이 애드립이 워낙 강해지다 보니까 덩달아서 점점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한 부분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건 꼭 들려드려야 되거든요. 헤겔, 마르크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돋보이는 공부를 하셨습니다. 족보 있는 정통계보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지역등권론’이라는, 요새 말로는 ‘허걱!’ 하는 4차원적 개념을 내놓으셨습니다. 그 개념이 지금 생각해도 올바른 개념이라고 확신하십니까? 개념의 의미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교수님의 확신의 유무를 여쭙는 겁니다.

지역등권론은 DJ가 만든 개념

= 황 : 무슨 질문인지 알겠습니다. 질문부터 바로잡자면 지역등권론은 DJ가 한 말입니다. 나는 ‘지역연합론’을 폈고, 지역등권론은 지방선거를 위해서 DJ가 제시한 화두입니다. “모든 지역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개진한 내용은 진보이론의 정통적 이론입니다. 핍박받는 민중을 칼 마르크스는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발견했습니다. 레닌은 계급 이외에도 피압박 민족이라는 이름의 대중을 또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그람시는 ‘소외된 지역’이라는 이름의 핍박받는 대중을 발견해서 진보이론에 추가했습니다. 그걸로 이탈리아를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범주, 즉 계급이나 민족밖에 모르는 평당원에서 간부들까지에 이르는 공산당 당원들이 설득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당의 전략전술을 바꿀 수가 없었죠. 그람시 자신의 전략적 논문에서 서술된 지역개념에 따르면 남부 이탈리아 농민들의 자식들이 중북부 지역에서 전부 노동자 생활을 합니다. 한국의 호남에서 하듯이 말입니다.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은 두 부류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입니다.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가 똑같이 소외되어 있으니까 남부 연합을 꾀해야 했습니다. 남부지역 연합과 북부의 노동자가 계급과 지역연합을 이중으로 체결해서 파시즘에 대항하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람시의 주장이 무시된 이유로)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 결과 그람시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체제에서 감옥으로 잡혀가서 거기에서 죽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실현되지 못한 그람시의 전략은 한참 후인 1981년에 프랑스의 미테랑에 의해서 채택됩니다. 남부지역의 사회당 조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농민들뿐이었으니까 노동자 중심이론만 고수했던 프랑스 사회당은 아예 조직이 없었습니다. 프랑스 남부 지역 농민의 자식들이 파리로 올라와서 노동자 생활을 했습니다. 미테랑의 전통적 노동계급과 남부의 소외된 지역들을 연합시켜, 곧 지역주의를 활용해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겨우 0.6%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나는 이런 일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DJ는 당시 어떤 상황이었냐면, 지역이라고 하면 자꾸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여의봉 같은 것이기에 지역 문제는 아예 손대면 안 된다는 미신 같은 믿음을 본인은 물론이고 참모와 비서들도 갖고 있었습니다. 동교동 사람들이 지닌 그 미신 같은 믿음을 내가 조금씩 차츰차츰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 공 : 동교동계라고 알려진 분들이 말인가요?

= 황 : 지역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말을 계속했음에도 완벽히 먹혀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15대 총선을 ‘청년’, ‘젊음’과 같은 탈지역적 개념으로 치렀는데 결론적으로 79석밖에 못 얻고 말았습니다.

- 공 : 1996년 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로 기억합니다.

= 황 : 일주일 뒤에 그분(김대중 전 대통령)을 봤는데, 옛날이야기를 다시 해보라고 해서 미테랑 얘기를 반복했습니다. 미테랑은 0.6%로 이겼습니다. 나중에 DJ는 1.6%로 승리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셨을 때 내가 그랬습니다. 대통령께서는 1.6%로 이겼으니까 미테랑보다 성적이 낫다고. 내가 고려한 것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지역연합이었습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호남보다 잘 산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소득 증가율은 사실 호남보다 낮다는 통계자료를 내가 보여줬습니다.

- 공 : 1990년대 중후반 기준으로요?

= 황 : 예. 충청도가 가진 허상을 보여드렸죠. 첫 장에는 충청도 사람들이 지닌 허위의식을 담았고, 두 번째 장에서는 김종필을 통해서 되풀이되는 정치적 보수주의를 그렸습니다. 그러니까 김 전 대통령이 깜짝 놀라면서 “그럼 나더러 JP와 손잡으라는 이야기냐?”고 나한테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JP와 손잡지 않으면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당신 것과 이러한 것들이 합쳐져서 잡으라는 이야기다. 바꿔 말하면 50%의 개혁만을 바라는 것이다. 50%나마 개혁하려면 김종필 씨와 손잡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제야 DJ가 뭔가 단단히 각오를 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제가 그 분을 만난 다음날 DJ가 경북에서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거기서 ‘지역연합론’의 운을 처음 뗐습니다. 뭐라고 바꿔서 운을 뗐냐 하면 앞으로는 대통령도 지역 간에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고 자락을 깔았습니다. 이게 ‘지역 간 정권교체론’으로 알려지면서 엄청나게 언론보도가 됐습니다.

- 공 : 영남에서? 그것도 경북에서?

= 황 : 예. 경북에서.

- 공 : 상대방 본진으로 과감하게 러시를 하신 셈이네요. (웃음)

= 황 : 이게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호남의 김대중이 충청도의 김종필과 연합한다는 식으로 알려지면서 실제로 교수들이나 지식인들마다 이걸 하니, 마니 하면서 크게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언론들이 여기에다가 ‘DJP 연합’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그 후 1년간 양당의 협상이 진행되면서 대선정국 1년 동안 모든 핵심 정치이슈를 그 문제가 흡수했습니다.

- 공 : 아젠다를 완벽하게 선점한 셈이 되었군요.

= 황 : 예. 아젠다를 선점하고 계속 그 아젠다 위주로 정국의 구도가 짜인 결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죠. 자동으로.

- 공 : 거기에 대한 찬반만 오가고….

= 황 : 찬반보다는 되냐 안 되냐에 관한 가능성 자체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습니다. 여론의 관심의 초점이 거기 맞춰지면서 DJ가 이러니, JP가 저러니 하며 모든 정치이슈가 흡수되니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관심이 온통 지역문제에 쏠려 있었죠. 그런데 어떤 기업이나 공장에서 “너 호남 출신이지?”라고 상사나 동료가 물으면 아니라고 부인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DJ가 딱 그런 ‘부인범’의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호남이 사람 아닌 것처럼 가장해서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그러면 절대 안 된다. 당신이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다. 차라리 정치적으로 떳떳하게 우리는 호남 사람인데 우리 몫은 이만큼이니까 당신들은 이만큼 가지고 합쳐서 한번 해보자.”고 말하라고 조언했습니다. “JP가 보수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YS에게 팽을 당해서 화가 엄청 났으니까 연합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충고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유신잔당과 어떻게 손을 잡느냐고 혼자 고민하다가 마침내 내 메시지를 소화했는지 그 다음날 주문한 대로 실천을 하시더군요.

- 김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연성이 발휘된 사례 같은데요.

= 황 : 유연성인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번에 출마하시면 꼭 당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서구의 진보정치인인 브란트 같은 사람도 120년간 싸웠던 우익정당과 손을 잡고 69년도에 집권했습니다. 그 다음 총선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사민당이 승리했습니다. 자유당을 끼고 있었으니 생각해보니까 완벽한 단독 정권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국가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는 대연정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연정도 아니고 야당끼리 이념을 초월해서 일정하게 권력을 공유하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좌파라는 말만 많이 들었지, 실제로는 좌파도 아닌 양반이 왜 그렇게 우익을 싫어합니까? 서양에서는 진짜 좌파들이 우익과 손잡고 정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테랑의 선례를 보더라도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민주화 운동의 여세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 김종필 씨 같은 사람들과 손잡으면 배신이라니, 타락이라니, 변절이라느니, 전향이라느니 매도하는 상황이었음에도 DJ가 정치적 용기를 발휘한 것입니다. 욕을 먹더라도 이 길로 가야 한다면서. 승리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수십 년 패배만 경험한 야권과 민주화 세력에게는 절반의 승리일지언정 맛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 이기더니만 지금은 오버하고 말았죠. 나는 우리 진보세력의 말투가 너무 거칠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두 번 잡고 나서….

영호남 갈등이 한국의 빠른 발전 불러와

- 공 : 보충질문을 하겠습니다. 방금 전에 미테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제입니다. 교수님께서 워낙 박학다식하시다 보니까 동서고금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기분입니다. 좌파의 거두 미테랑이 지역연합을 통해서 집권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저도 실은 오늘 처음 들어본 소리입니다.

= 황 : 서양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들은 매일 개그맨 이야기만 합디다.

- 공 : 무슨 말씀이신지?

= 황 : 서양만큼 지역적으로 분열된 곳이 없습니다. 지역 때문에 테러까지 하고, 심지어는 전쟁마저 불사합니다. 한국의 지역갈등은 대단히 평화적입니다. 선거 때 투표 한번 하는 걸로 발휘될 따름입니다. 서구는 매우 노골적입니다. 정부도 따로 만들고, 화폐도 따로 발행합니다. 프랑스의 코르시카 섬 같은 경우는 헌법과 깃발마저 따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독일도 바이에른 지방의 헌법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국기도 따로 있어요. 중앙정부에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연방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예사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매우 평화적입니다.

- 공 :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지역담론을 폐기하자고 외치는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자주 비판하는 사람들을 일단 예로 들겠습니다. 예컨대 황태연 교수님을 가장 많이 비판했던 사람 중에 하나가 진중권 씨입니다. 논객 시절의 유시민 씨도 그렇고. 우리 정치가 이제는 지역담론에서 계급담론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분들이 항상 거론하는 예가 프랑스와 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들입니다. 그분들이 평상시에 하는 주장들이 “서구를 보라. 저들은 지역 얘기 안 하지 않느냐? 우리도 빨리 호남, 영남 이런 애기 하지 말고 유럽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그분들이 말과 막걸리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겠네요.

= 황 : 그분들은 서양을 수박 겉핥기로 봐온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서양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그들의 핵심적 정서를 파고들어가고, 그들 나라의 국가원수와 기자들을 자주 만나보고 그랬습니까? 나는 그러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3년 동안 한겨레신문의 프랑크푸르트 통신원으로 일했고, 그들의 헌법구조와 정치상황과 정당조직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분들이 그람시의 지역테제가 있는 줄이나 과연 알까요? 그들이 미테랑이 지역연합에 기초한 선거 전략을 수립한 일을 아나요? 이에 관해서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한 적이 없을 겁니다. 서구의 선거를 직접 연구하지 않으면 어떤 전략을 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구의 선거 책임자들을 만나보지 않고는 알 방법이 없어요.

독일도 그렇지만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선거를 잘 보세요. 남부와 북부가 지역적으로 완전히 나눠져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김대중 정부 때 부산에서 낙선합니다. 자기 고향에서 타 지역 정당 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경우에는 자기 고향이어도 떨어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앨 고어의 고향이 테네시입니다. 거기는 남부입니다. 공화당이 몰표를 받는 곳입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고어가 고향인 그곳에서는 졌습니다. 자기 고향에서 패배한 겁니다. 똑같이 고향에서 진 건데 거기는 민주주의고, 여기는 지역주의? 그것은 미국정치와 한국정치의 공통된 속성인 지역정치의 테제를 우리가 거꾸로 뒤집어서 적용한 결과입니다. 그게 바로 지역주의의 보편적 특성인데 왜 달리 해석하느냐는 말을 내가 했습니다. 지역주의를 통째로 무시하려 드는 담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서양은 계급적 범주로 생각하니까 다 진보적이고, 여전히 지역주의에 갇힌 한국은 망국병에 걸려 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한국처럼 지역갈등이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건설적인 양상으로 전개되는 곳도 드뭅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의 시간적 상실 없이 연속적으로 이룩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이 발전한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영호남이 갈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야 합니다. 경쟁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경쟁을 일부러라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당파 싸움을 일부러 만들어야 발전하는 법입니다. 서로 야합하면 다 같이 몰락하고 맙니다.

- 김 : 우리는 미국처럼 공화당 한번, 민주당 한번 이런 식이 아니라 영남이 계속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 황 : 그러니까 그것을 깰 수 있으려면, 우리는 호남사람이 아니라고 자기부인을 해버리는 방법으로는 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소외지역이 뭉쳐서 패권지역을 역으로 포위해야 이긴다는 것이 내 지역연합론의 핵심이었습니다. 다만 호남이 소외지역의 맹주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을지언정 독식은 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보겠습니다. 천 원짜리 담배 사면서 돈 2백 원 모자라면 2백 원만큼 꾸면서 담배 열 개비 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양보를 하면 맹주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2백 원 꿨으니까 장관자리 20개 중에서 너희는 2개만 가져가고, 나머지 모두는 우리가 먹겠다고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돕겠습니까? 우리가 희생할 각오를 하고 협상을 할 수 있는 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까 하던 말씀을 마지막으로 보완하면 서구 자체가 엄청나게 지역갈등이 심각합니다. 칼 마르크스조차 웨일즈 노동자와 스코틀랜드 노동자와 잉글랜드 노동자가 똑같은 노동계급임에도 노동계급 안에서 너무 치열하게 싸우는 바람에 노조를 조직할 수 없다고 푸념할 정도였습니다. 지역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정서적으로 소통되고 있는 하나의 단체입니다. 반면, 계급은 이해관계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유로 새롭게 단체를 만들어야 하는 커다란 차이가 양자 간에는 있습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고민이 심해서 서양의 진보세력들은 스스로 계급이라는 말을 당에 내세우기보다, 땅의 색깔로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중부 지역은 노랗고, 북부지역은 빨갛습니다. 남쪽지역은 시커멓습니다. 그 지역 출신이라면 사람들이 인지하는 매개범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바이에른 태생이면 이 인간은 보수적이겠구나 하는 식으로, 땅을 가지고 진보와 보수와 중도를 가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을 깊이 이해하면 그들의 성문화도 우리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들의 정치와 지역문제 또한 우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몇몇 한국 사람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서양을 보고 와서, 또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런 헛소문을 내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역태제를 거두어드릴 때가 됐다거나, 지역의 깃발을 내려야 될 때가 됐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말과 행위로써 패권을 쥔 특정지역의 편을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손호철 교수 같은 학자들이 ‘3김을 넘어서’ 유형의 책들을 썼습니다. 내가 지역패권에 대한 책을 쓰니까 이에 대응하여 썼습니다. ‘3김을 넘어서’라는 책이 2만 부 정도 팔렸는데 그 책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였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서울과 경기도 토박이들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자기들의 이득을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상실감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책을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권력을 독차지해온 영남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호남이 집권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방법으로는 아무도 지역으로 나눠먹지 말자고 외치는 것이 제일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역태제를 무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지역투쟁을 벌이는 겁니다. 자기 나름대로 지역주의 싸움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은 옳지 않다

- 공 : 그럼 제가 이제 진행을 해보겠습니다.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담론에 의거하는 현실정치 세력이 탄핵국면에서 거의 몰락하지 않았습니까? 그 와중에 교수님께서도 갑자기 생뚱맞게 공자나 주역을 연구하시게 됐고.
 
= 황 : (목소리를 높이며) 그렇게 이해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한국의 정치사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옛날 박순천 씨가 정치에서 물러나고, 남아 있는 건 젊은 DJ 하나뿐인데 이철승 씨마저 DJ를 도와주지도 않고 있을 때 상황이 어떤지 알아요? YS가 민주당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기택 씨는 옆에게 계속 김영삼 씨를 도와줬습니다. 헤게모니를 호남세력은 이미 싹 잃어버린 겁니다. 당시에도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화세력이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주고, 호남사람들도 DJ를 꾸준히 응원했습니다. 호남이 김대중이 이끄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한 것은 사실 DJ 개인의 역사에서도 최근의 일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이 무진장 극에 달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상황입니다.

- 공 : 지적하신 것처럼 지금도 또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입니다.

= 황 : DJ가 처음 등장해서 자기 이름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던 시대는 마치 지금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 공 : 저도 그렇게 봅니다. 이른바 단일화 프레임이 작동을 시작하면서 지금 현재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의 흐름으로 다시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는 교수님의 답변을 꼭 듣고 싶은 부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좀 전에 절반이라도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로서는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으로 나아가도 상관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런 논리를 펴고 있거든요. 영남이 야당의 헤게모니를 쥔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이겠느냐, 불완전하나마 여하튼 정권 찾아와서 약간이라도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 진보지 하는 것이 그쪽 사람들의 주된 논지입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교수님이 말씀하신 논리에 주어만 바꾸어 대입시킨 느낌을 줍니다.

= 황 : 이것과 그것은 헤게모니의 주체가 다릅니다. 조종간의 위치를 다른 데 넘기라는 소리입니다. 내 이야기는 담배 20개비 가운데 12개비를 주더라도 이쪽에서 조종간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공 : 그러나 그 조종간이라는 게 실제로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 황 : 저들이 말하는 절반의 진보는 다른 세력이 집권하는 것입니다. 다른 세력이! 뻐꾸기들이 와서 집권하는 거라고. (‘뻐꾸기’라는 단어에 이르러 황태연 교수는 유독 힘을 주어 말했다.)

- 공 : 뻐꾸기라면 김만흠 교수가 언급했던 그 개념인가요?

= 황 : 일종의 ‘탁란’이죠, 탁란! [탁란(托卵)은 새가 자기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을 지칭한다. 탁란하는 새로는 뻐꾸기가 유명하다. - 편집자 주] 민주당과 핵심적 호남 표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 키워서 날려 보내는 인큐베이터 역할밖에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정당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지역의 이익을 중요한 이익으로 대변할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타지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호남 아니면 충청 출신일 겁니다. 그것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사람들이 잉글랜드에서 노동자를 하고 있어서 노동당을 만든 것입니다. 잉글랜드 노동자들이 노동당 찍어줄 것 같아요? 안 찍어줍니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에 기반한 정당인 보수당을 지지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성향입니다. 그 자체를 탓하면서 정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소외의식을 가지고 있고, 자꾸만 소외를 당하니까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꾸 금을 흐트러뜨리고 전선을 교란시킵니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최초로 대면했을 때는 DJ가 정치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솔직히 말하면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왜? 깃발을 들어야 하는 당사자가 완전히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상황이 절망적이겠습니까? 그래도 그것을 그 사람한테 그렇게 귀에 닿는 대로 자꾸 얘기하고 설득해서 올바르게 가게끔 하는 것이 나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자꾸 설득하고 싶습니다. 그 길을 벗어난 비정상적 수단으로는 집권하지 못하고, 집권하더라도 탁란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지난번처럼 비참한 배신감만을 느끼게 될 겁니다.

- 공 : 그러니까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문재인 씨나 유시민 씨나 조국 씨를 앞세워 집권해봤자 지난번 노무현 정권 때 경험한 것과 같은 배신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될 뿐이라는 말씀이십니까?

= 황 : 나는 배신감 안 느끼지. 거기와 같이 하지 않을 테니까. (웃음) 함께 똘똘 뭉쳐서 정권을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치적 배신을 통해서 민주당을 분당시켰습니다. 단지 지역적 문제로 그들은 분당을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배신이라고 봤습니다. 도의의 파기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대단한 위약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 질문지에도 나와 있는데, 탄핵까지 갔던 건 오버액션 아니냐는 거겠죠? 이번에는 내가 공희준 씨한테 되묻겠습니다. 탄핵을 주장한다고 해서 탄핵이 되는 겁니까?

국민의 진정한 의사는 의회만이 대표한다

- 공 : 그런데 결국 탄핵이 성사되지 않았습니까?

= 황 : 3분의 2 선을 넘어간다는 것은 하늘의 뜻이거나, 신의 뜻이거나, 온 국민의 뜻입니다. 국민들이 자기가 뽑아놓고, 뽑자마자 갑자기 응징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풍토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변화를 볼 때, 그때는 탄핵하라고 해놓고 막상 탄핵했더니 진짜 탄핵할 줄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들까지 다 정치적으로 계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만 탄핵표결이 진행되던 날,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거기서 엄청난 잘못이 생겨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공 : 당시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투신자살했지요.

= 황 : 남 사장의 자살 사태가 벌어지면서 서울을 충청도로 옮겨줄 줄 알고 계속 미적거리던 JP가 탄핵 표결에서 찬성으로 그냥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계산상 2명이나 3명만 안 찍었어도 탄핵이 통과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민련이 와서 몽땅 다 탄핵 찬성안을 찍어서 통과되고 말았습니다. 통과되면 통과되는 것이고, 통과 안 되면 그걸로 정치적 의사를 확인하는 걸로 끝나는 일인데, 스스로 가속페달을 밟은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그러기에 통과된 탄핵안을 뒤집어엎으려고 자신이 장악한 방송들을 총동원해서 촛불시위를 만든 것을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반란이라고 봅니다. 국회에서 결정된 것과 국민의 뜻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 의회주의의 원칙입니다. 국민의 뜻은 의회 다수결의 의사로만 표현됩니다. 의회의 다수결 의사를 국민의 뜻으로 의제(擬制)하는 게 의회민주주의인 것입니다. 그것을 거의 옛날 데모하던 방식으로 뒤엎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탄핵을 주도했던 조순형 후보가 재보궐 선거에서 압도적 표 차이로 승리해 국회로 돌아온 일입니다. 대통령 탄핵 바로 2년 뒤에 여의도로 복귀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방선거에서 완패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완전 해체단계에 빠진 사건입니다. 국민의 의사는 2년 뒤에 바뀌었고, 그 결과 9명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던 우리 원(原)민주당과 통합하자고 들볶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들과 통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그대로 민주당인 겁니다. 민주당이 민주당 족보라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먹고사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마저 그들처럼 열린우리당이 뭐니 하면서 날려버렸으면 민주당이라는 이름마저 쓰지 못했을 겁니다. 정당 명칭이 3자 이상 겹치면 예전에는 선관위에서 등록을 안 해줘서 쓰지 못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조금 바뀌어서 3자 이상은 괜찮다고 합니다. 4자 이상 되면 문제가 되는 걸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 자체가 (탄핵세력의) 패배라고 꼭 볼 수만은 없습니다. 국민의 의사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 때문에 민주당이 한때 150석이 넘는 의석을 가졌던 그 큰 열린우리당을 흡수하도록 정치상황과 국민여론이 바뀌어갔습니다. 그 과정을 생략한 상황에서 탄핵은 패배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건 성급합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탄핵당한 사람 있습니까? 나는 역사적 평가는 더 가혹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탄핵안이 한번이라도 실제로 국회를 통과한 사례는 그것을 어떻게 뒤집었다고 하더라고, 설령 정치적으로 무효화시켰다 하더라도 역사는 이를 아주 매몰차게 기록할 것입니다.

- 공 : 저도 그 현상이 굉장히 불쾌하고 싫지만은 지금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김대중 대통령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훌륭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거의 2배 반이 나옵니다.

= 황 : 그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국민의 의사가 진정한 국민의 의사라고 보는 민주주의 체제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거를 치를 때 쓰는 하나의 참고자료에 불과합니다. 국회의 다수 의견만이 오로지 국민의 의사입니다. 그것이 의회민주주의의 핵이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한 말이 국회에 잡초가 많아서 뽑아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었을 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3권 분립국가에서 다른 헌법기관한테 잡초라고 부르고, 거기서부터 계속 민주주의 유린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그것을 대단히 주목해서 봤습니다. 나는 그분이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은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되는 자리입니다.

[계속 이어짐…]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1/07/13 [18:0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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