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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의 縱橫無Jean] 테크노 폴리틱스와 인터넷
대선정국의 관건은 인터넷 대안매체ba.info/css.html'>
 
민경진   기사입력  2002/04/30 [01:38]
{IMAGE2_LEFT}먼저 백층짜리 빌딩을 지어 수만 명을 한 곳에 모아 놓을 수 있는 건축기술이 있었고, 수십 명의 정예요원이 PGP 암호기술로 CIA의 막강한 정보력을 따돌린 인터넷 통신이 있었으며, 여기에 수만 리터의 기름을 싣고 시속 800Km로 돌진하는 비행기가 있었다.

9.11 테러는 이렇게 해서 가능했다. 21세기 최초의 비대칭 전쟁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총체적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중앙지'의 기술적 토대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유 없이 역사와 정치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안티조선을 비롯한 언론운동도 매스미디어라는 정치·사회적 현상을 가능하게 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분석 없이는 헛다리 짚기 십상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소위 '중앙지'가 남한 땅 전체의 여론을 장악하게 된 데는 20세기 테크놀로지의 배경이 있었다. 시간 당 수십만 부를 찍어내는 윤전기가 있었고, 밤새 전국에 배달을 가능하게 하는 고속 교통망이 있었으며, 분공장에다 신문을 통째로 전송해 현지인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위성통신이 있었다. 한국만의 특이한 중앙지 독과점 현상에는 이런 테크놀로지의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 역시 똑같은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며 언론제국을 만들어 온 것은 다를 바가 없는데 한국같은 중앙지의 전국 독점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라가 원체 커서 수백만 부 신문을 찍어내도 일간지를 하루만에 북미대륙 전체에 배달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항공운송도 발달하고 위성으로 신문을 전송해 현지인쇄하는 것도 가능해져 'USA투데이'같은 전국지도 생겨나긴 했지만 100년도 훨씬 전에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지방지의 득세현상을 되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이 일부 독자에 한해 전국지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산업시대 테크놀로지의 결과물인 종이신문의 위세는 조·중·동으로 쪼그라든 독과점 현상이 역설적으로 입증하듯 급격히 몰락하는 중이다. '중앙지'란 명칭에서 드러나듯 이들 신문은 서울에서 만든 여론을 탑-다운 방식으로 지방까지 일방적으로 주입한다는 점에서 테크놀로지의 일방향성과 닮은 점이 매우 많다.

신문지 형태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대량 배포된다는 물리적 특성뿐 아니라 논조와 여론의 형성 역시 일방적으로 주입된다는 점에서 20세기 테크놀로지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의식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조.중.동이 만든 인터넷신문 역시 종이신문을 인터넷 상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쌍방향 소통의 장 인터넷

이런 상황에서 '오마이뉴스'가 출현했다. 전세계에서 인터넷에 접속된 1만5천 명의 기자가 1백여 개 이상의 기사를 매일 송고하고, 방송처럼 기사가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며, 독자의견이 있어 모든 기사는 이슈의 쌍방향 토론장으로 즉각 변신한다. 다른 거대 신문사들이 '오마이뉴스'에 자극받아 게시판을 만들고, 네티즌 리포터를 두고 기자메일을 운영하고 있지만 크게 보아 종이신문의 보조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20세기의 상명하복식 일방향 여론전달에 수십 년간 젖어온 이들의 논조가 하루 아침에 방향을 틀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치 항공모함이 방향을 선회하듯 둔하기가 그지 없다.

몇 년 전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며 열심히 인터넷 보급 캠페인을 펼칠 때 조선일보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돈벌이와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만 인터넷을 바라보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모든 테크놀로지에는 정치·사회적 함의가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껍데기만 인터넷이고 골수까지 산업시대 일방향 논조의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조선일보의 비극이다.

[관련기사] 햇귀, 인터넷 마녀사냥이 시작되는가? 대자보 42호

이제 와서 마치 속았다는 듯 인터넷에 악담을 하고 있지만 다 자신들의 깜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니 스스로를 탓하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인터넷 확산에 종이신문 조선일보의 캠페인이 한몫 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자기들의 손을 떠난 지 오래이니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인터넷 테크놀로지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늦깎이 공부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테크노 폴리틱스'의 미래

한국의 정보통신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했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인프라만 갖추는 데 전념해 왔지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정치·경제적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 하나 차분하게 분석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와이어드>는 매월 받아 볼 때마다 항상 문명사적 깨달음을 주는 기사들로 가득해 내가 귀하게 여기는 잡지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창립자 빌 조이는 지난 해 초 이 잡지에 기고한 'Why the Future Doesn't Need Us'라는 글에서 테크놀로지와 정보로 무장한 소수의 테러리스트가 한 국가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파괴력을 갖추게 됐음을 갈파해 9.11 테러의 가능성을 이미 예견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을 인용하자면 9.11 테러같은 것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나노기술, 바이오텍, 로봇공학이라는 세 가지 첨단기술이 완성되면 자본이나 거대조직의 도움 없이도 지식으로 무장한 소수가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제 식은 죽 먹기라는 경고다.

우리도 인터넷 사회의 하부구조는 일단 완성이 되었으니 이제 이것의 문명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해볼 때가 됐다.

안티조선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운동이 생겨나게 된 물적 토대 자체가 인터넷이고, 조선일보의 탑-다운 방식 논조에 대항해 네트워크에서 거미줄 같은 수평적 연대에 치중한 것이 지금같은 성공의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 인터넷 운동의 영향력과 작동 방식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래야만 대선정국에서의 언론운동 역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정국에서 인터넷운동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지난 여름 안티조선 우리모두 http://urimodu.com 링크해 놓았다. 필자의 개인적 희망이 많이 담겨 있지만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오션 비치'에서 더위 좀 식히시죠

저의 차는 방금 샌프란시스코 서쪽의 해변 '오션 비치'에 도착했습니다. '오션 비치'는 태평양에 면한 이 도시 최장의 해변으로 맑은 날에도 3~4미터 높이의 파도가 몰아칩니다.  

이곳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12시간을 날아가면 서울에 도착합니다. 거리로만 따지면 뉴욕에 계신 분들이 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대양의 파도가 몰아치는 이곳에 서니 한국과 미국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새삼 실감하게 되는군요.

`97년 대선 당시만 해도 인터넷의 '인'자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꽤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7천마일에 이르는 태평양의 심연을 넘어 우리모두에게 글을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 전 보도를 보면 이제 한국인 두사람 중 하나가 네티즌이라고 합니다. 5년 사이 세상은 이렇게 변했습니다. 맥루한이 주창한 '지구촌'은 최소한 한국인에 한해서는 실현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내년에 있을 대선에 대해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다들 귀담아 들을 만한 주장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변수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입니다. `97년과 2002년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입니다.

인터넷 여론이 여당편이라고 주장한다면 주제 넘은 소리겠지만 최소한 압도적으로 젊으며 진보적인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민주당이 진보적 정책으로 인터넷 여론을 똘똘하게 주도할 경우 상당히 큰 덕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 정권이 사력을 다해 추진한 정보화 정책이 과연 차기 집권에 유리한 매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취한 고단수의 정치적 선택이었는지 영원히 알 수는 없겠으나 인터넷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민주당 최대의 응원군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터넷 변수를 무시하면 내년 대선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한편에서는 정보통신윤리법인지 뭔지로 인터넷의 언론자유를 제한하려는 한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때가 되면 정신을 차리겠지요.

조선일보가 틈만 나면 인터넷 때려잡기에 공을 들이는 것만 봐도 인터넷의 정치적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오마이뉴스'가 하루 접속 50만건을 달성했다고 뿌듯해 하고 있지만 이제 인터넷은 겨우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마 내년 대선에 접어들면 완연한 청년의 모습으로 자라나 최강의 여론 선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IMAGE1_LEFT}조.중.동의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최고급 정보는 정부와 여권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제가 민주당의 참모라면 이런 고급 정보와 보도자료를 조.중.동을 비롯한 일간지를 통해 먼저 유포시키는 바보스러운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요 인터넷 언론과 영향력 있는 게시판에 가야만 가장 최신의 최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유권자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면 이들은 신문과 방송을 제치고 모두들 인터넷을 향해 몰려들 것입니다.

이미 전 국민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완성됐습니다. 또한 압도적으로 진보 편향인 인터넷의 정치적 성향 역시 분명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취해야 할 매체 전략 또한 분명합니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의 젊고 진보적인 정치적 필터 작용을 거쳐 대다수의 유권자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수구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쓰레기같은 야당의 헛소리는 이러한 정보의 유통과정을 통해 철저하게 분쇄될 것입니다.

앞으로 내년 대선 전망에 대해 한마디씩 하실 분들은 제가 지적한 정보의 유통환경, 매체환경의 혁명적 변화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신 뒤 글을 올리실 것을 충고하는 바입니다.

이제 노트북의 인터넷 접속을 끊겠습니다. 잠시 후 제가 쓴 글은 1초도 안 돼 7천마일을 날아가 여러분의 PC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오션 비치에서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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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4/30 [01: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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