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96년 15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 본질 다르다
96년 총선에는 야권분열이 김영삼 신한국당 살려, 역사왜곡 말아야
 
김새롬   기사입력  2011/07/07 [13:09]
내년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19대 총선이 치러진다. 공교롭게도 1996년에도 같은 날짜인 4월 11일에 15대 총선이 있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은 3연속 과반확보에 실패하였고 이듬해인 97년 대선에는 김대중 후보가 당선하며 처음으로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되었다.

내년 치러질 19대 총선과 96년 치러진 15대 총선은 선거날짜 만큼 현재의 정치구도 및 상황과 닮은점이 많아 일부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거의 `역사왜곡` 수준이다.

96년 총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7월 5일 등록된 일요서울의 조기성 기자의 기사에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개혁과 세대교체’라는 콘셉트 아래 과감한 외부 수혈과 철저히 인물 경쟁력에 바탕을 둔 공천으로 돌파구를 찾았다`며 `수도권 압승을 발판으로 1당의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고 했다.

또 몇달전 내일신문은 96년 총선을 `광화문팀의 승리`로 평가하며 물갈이 공천이 성공한 것으로 소개 하였다.

여기서 인용한 2개의 기사 외에도 최근 언론은 이러한 내용을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 하지만 96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우선 96년 15대 총선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93년 집권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강한 `개혁드라이브`를 발동하여 인기를 얻었으나 그 이면에는 여당 내의 민정계와 사회의 기득권세력의 저항에 직면 했다. 결국 94년 `조문파동`을 거치며 김영삼 정권의 `개혁의지`는 완전히 좌절 되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갈팡질팡 하자 정계 은퇴 후 외국을 떠돌던 대통령의 최대 라이벌인 김대중 아.태 평화재단 이사장이 귀국하여 95년 지방선거를 지원 했다. 당시 김대중 이사장은 서울에서 `이번에는 나를 봐서라도 민주당 후보를 찍어달라`고 하는 연설을 자주 했다.

95년 지방선거 결과는 말 그대로 민자당(한나라당)의 참패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조순 후보가 당선됐고 충청도와 TK에서는 자민련 및 무소속이 압승 했다. 야당이 개헉하기 어려운 PK지역에서는 무소속이 대거 상선됐다.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요즘의 `반mb정서`와 비슷한 꼴이다. 이 때 경남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군수 중 한명은 현재 무소속으로 경남지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자당의 이인제 후보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이는 민주당 장경우 후보의 공천이 잘못된 것이라는 평이 강했다. 이후 김대중 새정치 국민회의 총재는 `경기지사 선거에서 공천을 잘 했더라면 당선은 물론 더 많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도 당선됐을것`이라고 말 한 바 있다.

여당인 민자당이 선거에서 참패 하자 이듬해 치러지는 15대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 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13대, 14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기는 했지만 이는 야당의 의석수를 합쳐 여당보다 많은것이지 한 야당의 의석수가 과반인 것은 아니었다.

겁에 질린 민자당은 거의 `발악` 수준의 몸부림을 쳤다. 우선 당명을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영입 했다. 양김정치를 비난하여 인기를 얻은 박찬종 전 서울시장 후보도 영입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 운동을 하던 김문수, 이재오 등을 영입했으며 민주당 문을 두드리던 소장파 법조인 홍준표 안상수 등도 영입 했다.

이렇게 민자당이 몸부림 친것과 대조적으로 야권에서는 분열을 맞는다. 민주당과 정치인들 일부가 김대중 이사장의 정계 복귀를 반대 하였다. 결국 김대중 이사장은 민주당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함께 `새정치 국민회의`라는 신당을 95년 9월 5일에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다.

국민회의는 김대중 총재를 중심으로 한 세력으로 한계가 있어 신한국당처럼 외부 인사를 영입 하였는데 이 때 국민회의로 천정배, 추미애, 김근태 등의 인사들이 입당 했다.

결국 15대 총선은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민주당으로 분열된 야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되었다. 자민련의 경우 충청도와 TK지역에서 압승 하였지만 수도권에서는 야권분열로 직격타를 맞았고 신한국당은 `어부지리`를 얻었다.

민자당 개혁...야당은 분열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유권자들은 야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유력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선거에서는 당연히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국민회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했지만 애석하게도 민주당이 거물급 후보를 서울에 공천하면서 표분산을 피할 수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종로에 노무현, 성북에 이철 등을 공천 하였다. 종로구의 경우 이종찬 현 의원과 노무현 전 의원이 표분산을 일으키며 이명박 전국구의원이 어부지리를 얻어 당선됐다.(이마저도 이명박의 부정선거가 들통나 의원직 상실)

야당의 분열과 물갈이 공천 속에서도 신한국당은 과반확보에 실패했다. 요즘은 거대야당을 많이 봐서 자연스럽겠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패배 한 선거였다. 13대 부터 3번연속 여소야대 국회가 된 것을 언론은 강조했다.

국민회의 80석, 자민련 50석을 얻은 야권은 결국 연대하여 97년 정권을 교체하기에 이르렀으니 신한국당의 승리라고 부를 수 없는 선거이다.

95년 지방선거의 민자당 참패와 10년 지방선거의 한나라당 참패가 유사하고 시민들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당시와 지금이 유사하다. 정권교체와 총선승리에 대한 야당의 열망 역시 당시와 지금이 같은 점이다.

그래서 역사를 왜곡하면 지금의 상황을 잘못 인식하게 되고 결국 내년 총선이나 대선을 거치면서 사태파악을 잘못 한것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왜곡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 15대 총선은 신한국당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선전`한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물갈이 공천과 인재영입의 결과라고만 볼수도 없다.

`일요서울`은 기업인 출신의 전국구 의원인 이명박을 종로에 투입하여 승리 했다고 주장 했지만 이명박 후보는 부정선거로 의원직을 상실했고 그 선거에서 국민회의의 이종찬,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표를 분산시켜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일 뿐이다.

선거결과는 개혁공천 보다 야권분열이 좌우

만약 야권이 분열되지 않았더라면 신한국당의 선거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김대중 이사장이 민주당으로 복귀하고 민주당이 단합해 총선을 치렀다면 단독으로 150석 이상 확보하고 신한국당은 100석 미만으로 추락했을 것이다.

현재 상황과 비교하여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이 부분이다.

당시 신한국당이 인재를 영입하고 물갈이 공천을 하며 개혁적인 공천을 했다고 하여도 야권분열이 아니라면 성과는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96년 총선 당시처럼 지금 한나라당이 과감하게 개혁공천을 하고 물갈이를 하며 계파정치를 타파한다고 과연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역설적으로 `야권 연대`이다. 만약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단일화 없이 선거를 치른다면 당연히 한나라당 후보가 대거 당선될 것이다.

96년에는 같은 보수야당인 민주당과 국민회의가 분열했다면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보수야당 민주당-국참당과 진보야당(민주노동당+신당+사회당)이 분열하거나 연대 할 경우가 당시와 다른 점이다.

96년에는 야권분열, 12년에는 야권연대로 결과는 다를 듯

한나라당이 대대적인 물갈이와 개혁공천을 하고 동방신기나 카라 같은 스타들을 영입한다고 해도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단일후보를 내면 수도권과 PK에서는 당선되기 어렵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현재의 국회의원이 출마해도 민주당과 진보정당 후보가 따로 출마하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당선된다. 이것이 지금 누구나 생각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96년 선거 역시 신한국당이 선전 한 이유는 야권분열 때문이었다. `일요서울` 조기성 기자의 주장처럼 유권자들이 `집권당 견제`가 아닌 `세대교체`를 선택 한 것이 절대 아니다. 97년 대선에서 세대교체가 아니라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조기성 기자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한나라당은 96년처럼 물갈이와 개혁공천, 외부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미 공언한 내용이며 이명박 정권의 국정파탄으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96년 모델`을 따라 할 것이다. 일부 언론이 어런 한나라당을 대변하여 96년 선거를 보도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게 되면 현실 인식이 잘못되고 결과는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나라당의 운명을 틀어쥔 야당은 96년과는 다를 것 같다.

95년 김대중 이사장의 정계복귀를 반대한 민주당은 96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97년에 신한국당에 흡수되어 현재의 한나라당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김정태를 비롯한 인사들은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거부하고 이탈했다.(이후 노무현은 국민회의에 입당하고 02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

야권이 나뉜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다보니 이것은 야당에게 교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야권연대는 진보정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야권연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이변이 없는 한 보수야당(민주당.국참당)과 진보야당은 단일후보로 선거를 치를 전망이다.

야권이 분열하지 않으므로 한나라당이 `96년모델`을 따라해도 결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08년 민주당이 완패 한 선거에서조차 제주도에서는 승리 했다. 호남 역시 걱정 할 지역은 아니다. 다만 필자는 호남에서 야권 단일후보 보다 민주당과 비민주야당의 경쟁구도로 가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난해 광주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 오병윤 후보가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경쟁을 해도 한나라당이 당선될 가능성 없으니 안전하게 경쟁을 하는게 옳다.

수도권과 강원도, PK지역에서는 야권 단일후보가 압승 할 것으로 전망된다. 충청도에서는 자선당 변수가 있지만 한나라당이 당선되기 어려운 지역인것만은 분명하다.

남은 지역은 TK지역인데 한나라당의 마지막 남은 보루이며 10년 지선에서 유시민 국참당 당수가 `abandon`하고 경기도로 이사 오면서 한나라당에게 생존기회가 제공 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야당이 승리하기는 어렵겠지만 반정부 정서 속에 무소속 후보의 약진이 예상된다. 그리고 어렵게나마 야당 후보가 1~2석 정도의 교두보를 기대해 볼 만 하다.


96년과 12년 4월 11일 치러졌고 치러지는 총선은 날짜만큼이나 정치상황이 닮은점이 많아 일부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역사왜곡은 곤란하다. 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과감한 개혁과 `수혈`을 통해서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권의 분열이 있었다.

한나라당이 96년과 같은 과감한 몸부림을 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야당은 그때처럼 분열할 것 같지 않다. 야권연대를 통해 보수야당과 진보야당 모두가 내년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보수야당 민주당은 단독으로 과반수를 확보하고 진보야당도 최대 50석에 이르는 승리를 거둘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면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고 한나라당은 그 잘못된 인식으로 훗날에 총선 참패와 정권퇴출이라는 쓰라린 아픔을 맛볼것이다. 일부 언론의 역사 왜곡으로 가져다 줄 결과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07/07 [13:0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