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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희생양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써먹히나
9·11 10주기에 출간된 새책 『9·11의 희생양』,공포정치의 이면 분석
 
이인   기사입력  2011/06/14 [14:06]
부시는 미국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저절로 나아진다는 생각을 작살내었지요. 부시는 광신자나 머리가 나쁜 쪼다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꼴이며 인류에 드리운 어둠이 얼마나 짙은지 알려주는 범죄자이지요. 미국은 여기저기에서 깽판을 놓았고 지금도 설치며 그에 따라 지구동네는 툭하면 피범벅이 됩니다. 클린턴 정부 때 한반도에도 미사일들이 쏟아질 뻔했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미국과 애꿎게 죽어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구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 『9·11의 희생양』(마이클 웰치 지음, 박진우 옮김, 갈무리, 2011)     ©갈무리

부시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지요. 부시는 미국인들의 표를 받고 어엿하게 지도자가 된 얼뜨기니까요.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부시를 욕망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야 하겠지요. 여기서 공포정치가 나옵니다. 미국말도 어수룩하게 잘 못하는 부시지만 소스라치게도 두려움과 으스스함을 심어주는 데는 누구보다 혀를 잘 놀렸지요. 그가 퍼뜨리는 공포에 취한 미국 대중들은 이성이 마비된 채 부시를 우러릅니다. 얼마 전 CIA가 빈 라덴을 무턱대고 죽여 버렸는데 이에 기뻐하던 미국인들의 모습은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주물려져 있는지 들통 내죠. 

▲ 오바마는 부시로 변하고 있는가?     ©갈무리
전쟁이 나라와 나라끼리 벌이는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깡패나라가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어느 단체와 싸우거나 자국민들을 을러대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지요. 이렇게 안보가 전쟁을 대비하는 국방에서 시끄러움을 막기 위한 치안으로 바뀜에 따라 곳곳에서는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들이 일어납니다. 『911의 희생양』[갈무리. 2011]은 2001년 9월 11일로 말미암아 미국사회가 얼마나 보수화되었고 엉망진창이 되었는지를 촘촘하게 담아냅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사회적 발명품”

지금 미국은 조금 더 안전한 사회를 염원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안보에 대한 그들의 필사적인 욕구를 가장 명백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사회적 발명품이다.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명시적인 기능, 즉 테러공격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데에만 그 목표를 두지 않는다. 20쪽

지은이는 테러와의 전쟁이 “발명품”이라고 잘라 말하고 정치지배자들이 어떻게 대중들을 조작하고 이성을 잃게끔 이끄는지 그리고 어떠한 이득을 얻으며 권력을 지켜 가는지 수많은 자료들을 끌어들여서 보여줍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기막힌 통치술인 셈이지요. 불안을 부추기고 두려움을 일으키게 하면서 끝내 사람들의 머릿속을 얼어버리게 하고 입에서는 욕지기를 토해내며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미국인들은 정치모리배들이 가리키는 희생양을 물어뜯고 셋째 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     ©갈무리
더 소름이 돋는 것은 한소끔 들끓다가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증오는 꺼지지 않고 끝없이 또 다른 먹잇감을 찾습니다. 정치부라퀴들은 끝없이 사회를 술렁이게 하고 대중들은 쉴 새 없이 사냥감을 찾습니다. 희생양 만들기가 이뤄지는 구조인 것이죠. 희생양을 때릴 때에만 자신의 불안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집니다. “증오범죄가 사회적 불안의 주요한 지점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증오의 이동 가능성은 위험사회론의 메커니즘과 관계가 있다. 희생양 만들기에서 가장 명백히 드러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무고한 희생자들을 향한 증오 때문에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120쪽) 

이렇게 희생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까닭은 정치권에서 ‘타자화’와 사람들 안에 오랫동안 쌓인 편견이 맞물리기 때문이지요. 타자화는 다른 게 아니라 누군가를 밀어내면서 자신과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일입니다. 타자화가 된 대상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괴롭히거나 내치고 함부로 대하게 합니다. 타자화가 무서운 이유죠. 어느 사회에서 누군가 타자화가 되었다면 대중들은 자신이 바라지 않아도 그 누군가를 꺼리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싫어하게 되지요.

911 테러 이후의 미국에서 이 “타자화”의 역학은 크게 번성했다. 사실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성에 가해진 테러공격은,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모호하게 남았을 “그들”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해 주었다. 이 개념의 명확화는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을 지닌 중동인들을] “중동인”이라는 단일한 집단적 총체로 만들어버렸다. 이로써 중동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의심, 비방, 박해를 용이하게 진행할 수 있는 “우범자”usual suspect가 되었다. 137쪽

공포정치에 맞서지 않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런 일들이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지요. 조금만 고개를 돌려 한국을 살피면 얼마나 많은 ‘타자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수많은 희생양들이 만들어지고 씹히다 버려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이를 먹이삼아 줄기차게 어중이떠중이들이 달려들어 이빨을 꽂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오슬오슬하게 만들지요. 왜냐하면 누구든지 먹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짢음과 짜증이 번지도록 돌아다니며 악성댓글을 다는 알바들부터 나름 ‘정의’라는 깃발을 펄럭이며 몰려다니면서 조리돌림을 하는 뭇따래기들까지 한국 대중들도 자꾸만 ‘희생양’을 욕망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헐뜯을 때 잠깐이나마 쾌락을 느끼니까요. 한국사회에서 덧씌우는 격한 스트레스와 옴팡진 괴로움을 생뚱맞게도 애먼 누군가를 조지면서 풀어내는 것이죠. 희생양들이 자꾸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희생양 만들기는 정당치 못한 비방행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적 기능을 수행한다. 희생양 만들기는 이를 통해 적당한 대상을 공격하는 방식을 이용함으로써 [대중의] 좌절감을 정화한다. 80쪽

▲ 빈라덴의 죽음 이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게재된 『타임』지의 표지     ©갈무리
책의 지은이는 미국시민들이 공포정치에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 높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수많은 희생양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죠. 저항하지 않으면 자유와 평등은커녕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마음 졸이다가 피의 축제가 벌어지면 시뻘건 눈으로 뛰어드는 세상이 될 테니까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정치구조와 사람들의 병든 마음에 대해 뼈저리게 고민해야 할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인권, 시민권, 그리고 법치주의를 지켜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국경 안에서 시민권을 유린했습니다. 특히 미국 행정부는 <애국자법>울 통해 헌법에 명시된 행정부 권한을 넘어, 수많은 월권행위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국경 너머에서 더 많은 전쟁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시민들은 미국 행정부의 공포정치에 저항해야 합니다. 이 공포정치가 미국 안팎의 민족적, 종교적 소수자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저항은 필수적입니다.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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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6/14 [14: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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