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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전쟁, 성(性)매매와 생존권에 대하여
[시평] 타인에 피해없다면 윤리라는 잣대 함부로 들이대지 말아야
 
류상태   기사입력  2011/05/22 [11:02]
영등포 집창촌이 된서리를 맞게 되자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해 오던 여성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그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며 노동자로서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예전 같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댄다고 여기저기서 난타를 당했을 일인데 의외다. 나는 지금 은근히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개신교 사람이면서도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이란 걸 한답시고 나댄 죄로 개신교사회에서 철저히 왕따를 당한 덕분에, 나는 소위 '밑바닥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점과 택시운전, 대리운전 등의 일은 힘들기도 했으나 새로운 세계를 살아보는 신나는 체험이기도 했다.

대리기사 일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작년 늦봄 어느 날 자정 무렵, 부천성모병원에서 영등포 롯데백화점으로 가는 손님을 모시게 되었다. 손님의 지시대로 차를 몰아간 곳은 지금의 타임스퀘어 뒤편에 있는 낡은 집창촌. 차를 대주고 대리비를 챙긴 나는 근무 중(?)임을 알리기 위해 곧바로 PDA를 켰다.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아 눈치 없는 아가씨가 한마디 한다. "쉬었다 가세요. 잘 해드릴 게요." 웃으며 답했다. "일하는 중이라서요." 그가 다시 대답한다. "네, 많이 버세요." 그의 말이 따뜻하게 들렸다. 나도 같은 말을 해주었다. "네, 많이 버세요." 나는 진정으로 그녀들이 돈 많이 벌기를 바라고 있었다.

1. 성을 구매하는 것은 경제력에 의한 강간?

푸른 눈과 하얀 피부를 가진 박노자는 한국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으로, 한국인들이 좋아서 한국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문제를 세밀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내가 호감을 느끼는 진보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비로소 한국인이 되었기에 박노자는 태생적 한국인이 잘 보지 못하는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치부를 매우 치밀하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몇 안 되는 한국인이 된 것 같다.

그가 인터넷에 틈틈이 올린 자신의 일기를 정리하여 펴낸 책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읽었다. 역시 그의 시선은 예리했다. 보통의 한국인이 일상으로 넘기는 일도 그는 꼼꼼하게 분석하고 재해석하여 잘 정리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논리적으로도 거의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박노자가 뜨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게다.

하지만 그답지 않게 너무 쉽게 정리했다는 느낌이 드는 글이 있다. 소심한 듯 깔끔하게 정돈된 생활로 스캔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면서도 이론적으로는 성에 대해 파격적으로 열어놓은 그가, 성 매매에 대해서는 매우 완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 <<박노자의 만감일기>>(p.69)에서 '성을 구매'하는 것을 '경제력에 의한 강간'이라고 규정했다.

성에 대한 무한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성매매에 대해서는 완고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원치 않는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군가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싫다는 사람에게 성을 강요하고 돈을 지불하여 죄책감을 씻으려는 행위도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성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모두 경제력을 가진 폭력적 강자들일까?

2. 성을 파는 사람들

강간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의 성을 파는 것과, 강제로 억압하지 않고 합의하에 성을 구매하는 것은 강간이란 단어가 뜻하는 의미의 핵심요소인 강제성이 없다. 하여 박노자가 성 구매 자체를 경제력에 의한 강간으로 규정한 것은 그답지 않게 논리적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에게 한없이 잔인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성을 파는 사람(대부분 여성이겠으나 남성일 수도 있겠다)들의 선택을 나는 사회적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생존 수단의 하나로 존중해 주고 싶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쾌락을 즐기기 위해 성을 팔고 산다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개인의 선택의 자유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왜 필요악인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듣고 싶다. 내 생각에는 그건 선도 악도 아니고 그저 '필요'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힘겨운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필요 중 하나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기회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은 여성(역시 남성일 수도 있겠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공평'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마도 박노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성을 파는 여성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인권회복을 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선택을 통해서도 자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대안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 구매를 경제적 강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녀들의 삶을 더욱 힘겹고 척박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3. 성을 사는 사람들

다른 한편으로, 성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생각에 젖어 사는 사람들도 있다. 상대방의 인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돈을 지불하는 대가로 마음대로 상대를 유린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놈팽이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변호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돈으로 성을 사는 사람들이 그런 유형의 '폭력적 강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사회적 약자'일 가능성도 있다. 부하의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지난 시대의 독재자의 아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오랜 기간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한때 지금은 없어진 청량리 집창촌에서 마약과 매춘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정 나를 이해하고 안아준 사람은 청량리의 언니들뿐이었다." 여전히 막대한 부를 가진 그가 시대와 환경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철저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을 어느 정도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닐 때 그는 같은 학교의 중학교 2학년이었다. 겉으로는 온갖 특혜와 호사를 누린 그였지만, 같은 학교 내의 학생들조차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길이 철저히 차단당한 가엾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돈을 매개로 하는 성이 사회적 약자들로 하여금 그나마 척박한 세상을 겨우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소외된 사람들의 유용한(?) 생존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폄하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본능과 관련된 행위는 윤리나 법으로 처벌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4. '윤리'와 '책임'에 대하여

성욕은 식욕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성에 고픈 사람이 성욕을 해소하고자 상대방을 찾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 하여 남의 음식을 훔치거나 뺏으면 범죄가 되듯이 남의 처자를 강제로 취하면 죄가 된다. 그러나 쌍방의 합의에 의한 선택은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윤리란 게 무엇인가? 윤리란 지배계급이 공동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으로서 자연의 흐름에 어긋나는 것들이 꽤 많다. 하여 나는 '윤리'라는 말 대신 '책임'이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고 싶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면,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이든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진도가 너무 나가는 것 같지만, 나는 스와핑(부부가 합의하에 상대를 바꾸어 성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법적인 처벌을 운운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스와핑을 자유롭게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인간의 보편성을 고려할 때, 스와핑을 하면서도 부부의 긴밀한 관계와 존엄성, 게다가 가정의 행복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대해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또한 부부의 합의하에,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다음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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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22 [11:0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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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emica 2012/10/01 [10:54] 수정 | 삭제
  • 글쓴 분 .. 공감 ..^^
  • 나그네 2011/06/08 [14:09] 수정 | 삭제
  • 우선 제가 쓴 노가다쟁이라는 말은 성매매 종사자를 비유한 거네요. 님이 반대로 이해하셨네요. 오해하게 표현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십분 양보해서 성매매가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폭력성을 가진다는 님의 말, 원론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범죄는 성립이 될 수가 없죠.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렸해야 하는데 이것은 뚜렸하지가 않다는 거죠. 정당하게 합의하에 거래를 했는데 성을 샀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왜 성에 대해서는 다른 것들과 다른 잣대를 들이대냐 이겁니다. 섹스가 뭐가 그리 대단한 겁니까?
    그리고 너무 진보, 진보 들이대지 마세요. 양 극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겁니다. 진보주의자는 이러해야 한다고 틀을 만드는 것 자체가 진보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 reflet 2011/06/04 [15:29] 수정 | 삭제
  • '인간의 존엄한 성' 운운 하기 이전에, 성매매는 그 자체로 폭력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얘기예요. 키스는 할 수 없고 하려면 돈 더 내야 한다, 그게 왜 그렇겠어요? 좋아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런 식으로 선을 긋는다고 해도 역시 그것이 가진 폭력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정당하게 몸으로 벌어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걸 보상받기 위해서 성을 살 수 있다는 말은 노가다쟁이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재벌 2세라고 해도 “나 힘들게 컸어, 하기 싫은 공부 하느라 힘들었고..”등등 소리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성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몸으로 벌어 먹고산다고 해서 그런 권리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나요? 문제는 성매매 합법화라고 못을 박게 되면, 성 구매자들이 더이상 그에 대한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소리이고, 그건 성범죄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어떤 사람은 '성매매 비범죄화'라고 하면서 웃기는 소리 하던데, 그건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남성들도 성매매를 범죄로 인식할 때 그 안에는 성 구매자는 빼놓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 밖에 안돼요. 그게 나이브한거죠. 아님 유치한 거라고 해야 하나요? 또는 퇴행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우월의식 얘기하셨는데, 찌질이들한테 우월의식 느껴봤자 뭐 좋을게 있겠어요?
  • 나그네 2011/06/03 [16:01] 수정 | 삭제
  • 성을 돈 주고 산 사람은 가해자이고 성을 판 사람은 피해자이다.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은 아마 집창촌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겁니다. 돈만 내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곳 아닙니다. 거기만에 룰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여성에게 키스 등은 안됩니다. 하고 싶으면 더 돈을 내라고 하고 합의가 되어야 할 수가 있죠. 돈도 지불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고 했다가는 바로 근처에 있는 건달들이 출동하죠.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요점은 그런 곳은 철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겁니다. 거래를 통하여 그 사람의 성을 샀을 뿐입니다. 그 거래가 과연 일방적이었습니까? 그건 당신의 머리 속에 있는 성매매에 대한 이미지일 뿐입니다. 차라리 글쓴이보다 당신이 나이브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하실 수도 있겠죠. '돈을 주고 인간의 존엄한 성을 사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 글쎄요. 돈이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파는 사람도 있을걸요. 씁씁하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농경사회 이후의 결혼도 인류학적으로 본다면 일종의 매춘아닙니까? 제가 볼 때는 성매매 종사자들을 피해자인 양 이야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는 다르다며 선을 긋고
    안심하여 우월의식을 느끼는 당신의 모습이 있지 않은지 걱정됩니다. 그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아닙니다. 정당하게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노가다쟁이들입니다.

  • reflet 2011/06/01 [01:25] 수정 | 삭제
  • 그런데 왜 그 사회적 약자(?)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위로받아야 하는 걸까요? 상대방의 인격을 고려한 성매매라는 것도 가능한가요? 예로 드신 그 사람도 결국은 성매매 여성을 자신처럼 갈 데까지 간 막장으로 파악했을 뿐이고, (거기에 어떤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단지 그를 통해 위로받았다는 것뿐이지 그것을 놓고 인격적인 고려 운운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오히려 그 반대 아닌가요? 단지 그녀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나 같은 놈도 마음 놓고 성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이슈화되곤 하는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한 집단 성폭행 같은 경우도, 결국은 그런 맥락에서 저질러지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처음 주도하지는 않았어도 누군가 그걸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있을 때, 나도 해도 되지 않을까? 별문제 없을 거야. 왜? 쟤는 나보다 더 사회적 약자거든. 게다가 자기표현도 잘 못 해. 하는 식이죠. 성매매는 성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폭력을 사고파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는 게 특정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라면 누구를 처벌해야 하나요? 아니면 누가 책임지기라도 하나요? 성매매가 가진 폭력성을 왜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이 아니라 '폭력'을 언제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폭행하고 난 뒤에도 “술 먹고 실수로 그랬어.” 내지는 “성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변명이랍시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건 일부 성을 밝히는 저질 남성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다수 보편적인 남성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술자리에는 의례 시중드는 여자가 끼어야 하고 비지니스 할 때는 의례 성 접대를 해야 하는 걸로 아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성범죄는 계속 늘 수밖에 없는 거죠. 급기야는 “여성 아나운서는 다 줘야 하는데..” 하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는 얼빠진 인간도 나오는 거죠. 왜냐하면 자기 상식에서는 자신보다 '약자인 그들'은 언제든 돈으로 성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