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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한국 '권력 심장부', 그들은 누구인가
<인사이드 잡> 안 보고 대권과 정권교체를 말하지 말라
 
김영국   기사입력  2011/05/25 [11:29]
  
▲ '분노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잘못을 되풀이하지 마라.' 영화 <인사이드 잡> 관람 번개에 참여한 이들은 충격과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 대자보 박진철

지난 21일 토요일 오후. <인사이드 잡>이란 영화가 상영된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 극장 안. 곳곳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나오는 탄성 소리였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2008년 전 세계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란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그 '진짜 배후'들과 검은 커넥션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머리가 쭈뼛해지고 부아가 치밀었다.
 
미국 금융위기는 인재(人災)였으며, 글로벌 금융 사기극이었다. 대통령과 경제부처 관료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감독 실패, 탐욕에 찌든 금융기관, 돈 받고 보고서 써주는 경제학자 등 '신자유주의 기득권 동맹'의 합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나라 경제를 망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자신들의 패착과 탐욕으로 수천만 명의 서민들이 직장과 집을 잃고, 노후를 대비해 펀드에 투자했다가 순식간에 깡통이 됐는데도, 단 한 명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새 정권에서 핵심 요직으로 영전하거나 거액의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영화는 지난 20~30년 동안 규제 완화와 감세로 축적된 미국의 부를 상위 1%가 거의 독점했고 나머지 99%는 가난해졌다며, 미국은 역사 이래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고 꼬집었다.
 
트위터·페이스북 '영화 번개', 소셜 네트워크 위력 실감
 
영화가 준 충격과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극장을 가득 메웠던 관람객 중 50여 명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 커피숍으로 모여들었다.
 
이날 관람객 중에는 눈에 띄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당한 대량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영화 내용과 똑같은 방식으로 직장을 잃었던 쌍용차 노동자와 외환은행 노동자들. 그리고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정치인으로선 처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정 최고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다 이날 '영화 관람 번개'를 친 상태였다.  
 
▲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성사된 <인사이드 잡> 번개와 토크쇼. 노동자, 회사원, 가정주부, 영화사 부사장, 기자, 대학생, 고등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소셜 네트워크의 위력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 대자보 박진철
 
한진중공업의 젊은 노동자는 "한진중공업 사태도 영화 내용과 똑같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자신들의 무능으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정작 자신들은 고속 승진에 3억원이 넘는 연봉을 챙겨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분당에서 온 한 주부는 "정치는 잘 몰랐는데, 오늘 영화를 보고 너무 많은 걸 배웠다"며 "집에 가면 옆집 주부들에게 구체적인 예시를 들면서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2008년 9월 미국 현지에서 금융위기를 목격하고 난 후 개인적으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며 "세계화, 무역 자유화, 한미FTA, 금융 자유화, 규제 완화, 민영화, 작은 정부, 큰 시장, 노동 유연화(정리해고) 등 우리가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어쩔 수 없는 세계 흐름인가 보다 하고 따라 온 '깃발'들에 대한 회한과 반성이 밀려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미국이 몰락의 길로 갔던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지도자 한 사람이 끌고가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상식과 국민 모두가 작은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경제·사회 시스템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며 영화의 성공을 기원했다.
 
미국과 대한민국 '권력 심장부'를 해부하다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부 관료-금융기관 경영진-경제학자로 이어지는 강고한 기득권 동맹이 미국 경제의 핵심을 장악한 채 모든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미국 사회는 빈부격차·불평등의 오명을 벗어날 수 없고, 제2·제3의 경제위기는 시간 문제일 뿐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다.
 
문제는 이 망할 놈의 미국 경제·금융 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극단적으로 따라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미국만 한국으로 바꾸면, 모든 내용이 대한민국에서 현재 진행중인 상황과 99.9%의 싱크로율을 보일 것이다.
 
▲ 영화 <인사이드 잡> 포스터   © 대자보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과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모두 월가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CEO 출신이다. 오바마 정부의 현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는 루빈의 제자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루빈과 가이트너는 클린턴 정부 시절 파생금융상품 등 금융규제 완화와 자유무역을 주도하며 미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로비스트 근절 공언에도 불구하고, 가이트너는 자신의 버서실장으로 '골드만삭스의 로비스트'를 고용했다.
 
클린턴 민주당 정부나, 부시 공화당 정부나, 오바마 정부나 미국의 경제부처 핵심 인사들은 하나같이 월가 출신이거나 친(親) 월가맨이었다. 당연히 경제노선 또한 별 차이가 없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월가 금융기관들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았다. 결론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미국은 변함 없는 '월스트리트 정부'라는 사실이다.
 
금융위기 이후 이들이 주도한 구제금융 중 100억 달러가 골드만삭스에 갔다. 미국 국민의 세금 10조원 이상을 금융위기의 핵심 주범인 골드만삭스를 살리는데 쏟아부었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는 2007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파생상품을 고객들에게 팔면서 자신들은 고객이 손실을 입을 경우에 반대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연계 투자를 해놨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감쪽같이 숨겼다. 골드만삭스 측은 이미 미국 부동산 시장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고객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이 파생상품을 만든 당사자는 10억 달러(1조원)라는 엄청난 수익을 챙겨 빠져나갔다. 골드만삭스도 1500만 달러의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이 때문에 골드만삭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금융사기 혐의로 제소를 당해 결국 5억50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물어줘야 했다.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의 주범이란 걸 미 금융당국이 나서서 공인해준 셈이다.
 
미국은 '월스트리트', 한국은 '삼성·김앤장' 공화국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대통령 이름'만 바뀌었을 뿐, 대한민국 경제부처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경제정책을 주무르고 있는 관료들의 면면은 그대로다. 오히려 미국보다 더 심하다.
 
노 전 대통령을 다 존경해도, 아쉽고 속상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점이다. 그는 왜 경제부처 핵심 요직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저토록 좋아 죽는 사람들만 골라서 앉혔을까. 그나마 진보적, 친서민적 경제관을 갖고 있던 이정우·정태인·이동걸 같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빨리 물리쳤을까.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임명돼 금융규제 완화와 금융허브 정책을 주도했던 윤증현씨.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영전했고, 여전히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국무총리로 승승장구하던 한덕수씨.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미대사로 발탁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윤증현 장관과 한덕수 주미대사는 공직을 맡지 않는 동안에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마찬가지로 재벌대기업·외국투기자본·금융기관을 주로 대변해 온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을 지내며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퇴직한 고위 공직자가 김앤장의 고문이 되고,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거나 정권이 바뀌면 총리·장관 등으로 영전하는 '회전문 인사'가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불문율처럼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권을 넘나들며 특정 인맥이 권력의 핵심 요직을 싹쓸이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잘나갔던 진동수, 김석동 씨는 이명박 정부에서 모두 금융감독기관의 수장인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자본시장법 입안과 제정을 주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6일 "미국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반드시 육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정부관료인가 로비스트인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통상교섭본부장에 발탁돼 한미FTA 추진과 협상을 주도하며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한국에 이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현종씨.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UN 대사를 역임하다, 2009년 3월 돌연 삼성전자 해외법무 담당 사장으로 옮겨갔다. 그가 누구를 위해 일해왔는가를 짐작케 하는 사건이었다. 그는 첫 사장단 회의에서 "기업의 이익을 지키는 게 국익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삼성이 FTA 관련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를 영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현종이 프리메이슨 회원일 것"이란 비아냥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로 김현종을 보좌하다 그 뒤를 이어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던 김종훈씨.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발탁됐다. 김종훈 본부장은 한-EU FTA와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수차례 거짓말·말바꾸기 논란과 번역 오류 사태까지 일으켰지만, 이 정권의 비호 아래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 경제관료들과 마찬가지로 규제 완화와 자무유역(FTA)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다. 결국 이명박 정권도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 전략을 이어받아 '미국식 금융신자유주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 따라하기'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금융위기의 원흉인 부동산 투기를 되살리기 위한 '부동산 투기 방지책'의 전면적 해체, 자신들의 돈벌이 탐욕 때문에 방만한 경영을 하다 금융 부실을 양산한 건설사와 금융기관에 대한 무차별적 국민 혈세(공적자금) 퍼주기,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자본시장통합법 강행, 한미FTA 비준 등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한 재벌대기업과 금융자본가들의 돈벌이 수단 늘려주기로 일관했다. 정말 이러기도 쉽지 않다.
 
저축은행 사태? <인사드 잡>과 '판박이'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영화 <인사이드 잡> 내용과 너무도 '판박이'다.
 
저축은행의 부실과 영업정지 사태까지 불러온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허용해주고, 각종 규제를 풀어준 정부 정책의 고위 책임자가 바로 지난 2006년 재경부 장관이었던 한덕수 주미대사와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었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당시의 경제 관료로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군다나 그는 이번 사태 해결 과정에서 말을 바꾸는 바람에 순진한 고객들만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직전 임직원 친인척과 VIP고객에 대한 '특혜인출' 사태가 벌어졌지만, 감독 소홀로 이를 막지 못 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피해자인 한 어르신은 방송에서 금융감독원장을 '금융강도원장'이라고 힐난했다.
 
이렇듯 저축은행 사태는 미국 금융위기 과정과 너무도 흡사하다. 미 금융기관들이 줄도산한 출발점이 정부 관료의 무분별한 금융규제 완화와 감독 소홀이었고, 이를 이용해 금융기관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위험한 파생상품에 고객 돈을 쏟아부었다가 한방에 '훅' 가버린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당시 정책 책임자들이 지금도 경제·금융감독의 핵심 요직을 장악한 채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또한 미국 정부가 보여준 그대로다.
 
대통령 백번 바꾸면 뭐 하나?
 
<인사이드 잡>을 통해 미국이나 한국의 현실에서 공통점으로 나타나는 교훈은 딱 한 가지다. '대통령 백번 바꿔봐야 경제부처 핵심 인사들이 그대로라면,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정권 재창출? 정권 교체? 야권 단일정당? 진보 대통합? 경제성장? 복지국가? 그런 걸 말하기 전에 이 영화부터 보시라.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봐야 할 사람은 정치인이고, 특히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보편적 복지를 제대로 실현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끌 철학과 신념을 갖고 있는 대권주자라면 더욱 만사를 제쳐놓고 이 영화부터 봐야 한다.
 
세계의 모든 정치인에게 이 영화만큼 훌륭한 경제 교과서이자 반면 교사도 없다. 경제위기의 여진은 아직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더블딥(double dip)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다. 책으로 엮으면 1000페이지가 넘을 분량을 단 100분짜리 영화 한편에 모두 담아냈다. 단 돈 9000원. 이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도 없을 것이다. 
 
저마다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해결해 보겠다며 2012년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 그들이 미국과 대한민국의 경제·금융 시스템 속에 가려진 실체를 정확히 꿰뚫고 그 대안과 전략을 철저히 준비하지 한, 누가 청와대에 들어가든 모두 '청와대 하숙생'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대선 전에 성장을 말했든 복지를 주장했든, 대한민국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다고 하는데, 왜 이리 갈수록 살기가 힘들까?" 대한민국 대다수 서민들이 품고 있는 이 의문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계속 남을 것이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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