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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민주화 다시보기, 아랍의 눈으로 보라
[진단] 서구적 민주주의 잣대를 아랍에 들이대고 있는 것은 반성해야
 
한상진   기사입력  2011/04/14 [17:27]
그간 민주화의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아랍지역에서 최근 민주화 시위가 발발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위는 정치 조직이나 다른 단체에 의해 조직된 시위가 아닌 민중의 자발적으로 봉기한 것이었다. 사실 이번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많은 아랍 전문가는 아랍 민주화는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 했었다. 하지만 튀니지와 이집트의 정권 교체까지 이끌어내면서 인근 나라들까지 확산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는 정말로 뭔가 이뤄질지 모른다는 분위가가 퍼져 나가고 있고, 전문가들은 입을 다물고 사태의 전개를 주시하고 있다. 이는 아랍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딱 여기까지 였다.

이번 아랍의 민주화 시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기대와는 많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간의 경과를 한번 되돌아 보자.

익히 알고 있듯이 아랍 민주화는 튀니지에서 촉발되었다. 자인 알 아비딘 벤 알리의 오랜 독재와 정부의 부패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튀니지 민중이 모하메드 부아지지란 한 청년의 분신으로 그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 그 발단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된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많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정치 권력이 자본 권력을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화된 나라에서는 그 정도 차는 있지만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 하고자 시도한다. 하지만 독재 체제에서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야합을 하게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주민들의 봉기를 벤 알리는 처음에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시도 했었다. 하지만 많은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튀니지의 지배세력이 분열을 하게 된다. 지배 세력의 일부였던 노동총연맹이 벤 알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총파업을 지시하게 되고, 그러자 군부마저도 벤 알리에게서 등을 돌리며 그는 몰락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바로 지배세력의 분열이다. 이는 지배 세력이 그들의 지배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벤 알리란 카드를 버린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벤 알리의 퇴진으로 인하여 국제사회는 착시를 일으킨다. 튀니지가 민주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권력자 한사람이 물러났다고 사회 체제가 바뀌지는 않는다. 사회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권력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혁명이 필요하다.

이집트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무바라크가 퇴진하긴 하였지만 군부 최고 실력자인 술레이만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비록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하긴 했지만 군부나 재계가 원치 않는 인사가 권력을 잡기는 힘들 것이다. 술래이만 역시 무바라크가 했던 것과 같이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화하여 그들의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 평가가 갈리기는 하지만 나세르나 사다트 역시 군 출신의 독재자였다.

리비아는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비화하고 서방이 개입하면서 사태가 조금 이상하게 전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리비아 역시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카다피 독재하에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부족이 아랍 민주화 사태에 편승하여 민중 봉기를 조직하였지만 여의치 않게되자 곧바로 무장항쟁으로 전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비록 중앙권력에서 소외되었다고는 하나 특정 도시와 인근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 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부족의 지도자 역시 권력자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리비아의 상황은 부족 간의 권력싸움에 국제사회가 개입하고 있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를 포함한 일부 이슬람 국가들에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나라들은 이번 사태가 아니라도 종파, 민족 등 여러 갈등으로 인하여 시위가 발생하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던 나라들이다. 단지 인근 나라의 민주화 시위 분위기에 발맞춰 같은 시기에 시위를 전개하고 있는 정도가 다른때와 다른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상시적인 억압체제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대중 봉기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아랍 민주화를 위한 해법은 없는 것일까?

서구식 민주주의를 아랍지역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우리는 서구적인 민주주의의 잣대를 아랍에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랍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의 대의 민주주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모하멧 사후에 그의 후계자를 이슬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던 각 부족의 부족장이 모여서 선출하였고 공동체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였다. 서구 사회가 아직 암흑기에 머물러 있던 1,500여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리고 그 전통은 아직까지도 이슬람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사담 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이라크의 혼란이 지속되자 미국은 아야톨라 시스타니의 도움을 얻어서 각 부족의 장을 소집하여 부족장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아프간에서도 지르가라는 부족장 협의체가 실질적으로 의회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아랍에미레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부족 연방 국가로서 국가의 중대사는 유력 부족의 부족장과 협의하여 결정한다. 이렇듯 부족주의 전통이 강한 아랍지역에서 부족장의 협의체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면서 또한 부족장은 풀뿌리 기초단체 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부족장 협의체에서 결정된 사항은 놀랍도록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각 부족에게 전달되고 이행된다. 

선출되지 않은 세습권력인 부족장이 부족민을 대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아랍의 뿌리 깊은 부족주의 전통은 부족과 개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례로 선거를 실시하고 있는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부족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표하면 그 부족에서 그 후보에게 95% 이상의 몰표가 나온다. 나머지 5% 중 3% 정도는 글을 몰라서 투표 방법을 몰라 무효표가 나온 경우이다. 나머지 2%는 소수의 젊은이가 부족장의 지시에 반발하여 다른 후보를 찍는 경우이다. 무효표 3%도 대개는 부족장의 지시를 따르는 표로 간주되기에 약 98% 가량의 부족민이 부족장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투표율이다. 이런 투표율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부족장에 반발한 2%의 젊은이들이 처벌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족장은 공동체에서 제왕적 압제자라기 보다는, 부족민의 민원을 해결해주고 그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 보호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부족장의 선택이 부족민의 이익과 결부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즉 이들 공동체에서 부족장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족민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대단히 강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이슬람 공동체는 아직 자본주의에 덜 물들어 있다.

이런 대의제의 전통과 사회주의 적인 요소들을 기반으로 하면서 현대 문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어 아랍식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이는 서구식 자본 민주주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바로 서구 정권들의 반응이다. 아랍 지역이 지금과 같은 독재정권 일색이 되어버린 것은 이슬람 주의의 대두를 두려워한 서방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작동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대개 이슬람 주의 그룹이 정권을 잡는다. 아직 군부의 영향력이 행정부보다 훨씬 강하긴 하지만, 선거로 정부를 구성하는 터키의 집권당은 이슬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종파간의 권력분배와 선거를 통하여 정부를 구성하는 레바논에서도 헤즈볼라가 정권을 장악하고 국정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민주주의와 이슬람 주의는 얼마든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주민의 대다수가 무슬림인 상황에서 이들 나라에서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이슬람 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 주의가 부흥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를 견제한다면 아랍지역에서 민주주의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될 것이다.

이슬람 공포증을 극복하고 이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랍 민주화를 위해서 서방과 한국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 글쓴이는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 평화교육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함께가는사람들(www.ihamsa.net)은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이라크 평화교육센터, 팔레스타인 평화팀,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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