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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계속 추진 박근혜, '토근혜'되나
토건세력에 줄선 박근혜, 대구에서도 절반의 '반대할 이유' 생겨
 
우석훈   기사입력  2011/03/31 [20:34]
동남권 신공항 '안 하는 게 맞다'
 
생태 이슈라는 게 실제 선거 결과로까지 이어진 적은 없지만, 여론 조사의 향방에서 어느덧 주요 변수가 된 것 같다. 4~5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이 도저히 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그 주변에 할아버지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 게 내 추정이다. 강만수 등, 촛불 이후 '정의 신드롬'까지 변화된 현실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걸 대변하는 단어가 홍준표 의원이 인용했던, "한 방에 훅 간다"가 아닐까 싶다. 진짜 요즘은 한 방에 훅 간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아무도 신경 안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누가 예쁘다, 누가 말 잘했다, 누가 무너졌다, 굴욕이다, 이런 것만 얘기가 나왔다. 보는 사람이나 보지, 사회 전체는 반응하지 않았다.
 
요즘은 다르다. 왜 선배는 봐줘? 봐줄 거면 후배를 봐주고, 약자를 봐줘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왜 사장 맘대로 PD를 바꿔? 순간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다. 한국은 진짜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이다.
 
동남권 신공항 증설은 기본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얘기인데,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정치적인 이유로 자리 잡은 사업이다.
 
안 하는 게 맞다. 여기까지는 일단 상식이고. 새만금과 관련해서 전북 정치인들과 여러 번 논의를 한 적이 있다. 평창 올림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말은 맞지만, 자기는 도저히 반대 못 하겠다'는 게 상식적으로 보편적인 정치인들의 입장이다.
 
내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말을 잘 못하는 게 생태적 이슈에서 지지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물론 그 사람들의 마음마저 그렇게 반생태적이거나 토건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요런 딜레마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토건 근혜, 복지도 끝장
 
어떤 개발에 대한 지역 여론이 90%라고 정부에서 얘기하지만, 다른 조사나 현장에서 보면 보통은 '반반 싸움'이다. 골프장도 반반이고, 새만금도 반반이고. 한참 새만금 싸움할 때에도 전북 여론을 엄밀하게 분석하면 반반이다.
 
이번에 대구 혹은 부산도 지자체와 토호들이 몰아치는 여론 공세를 살짝 벗어나서 엄밀하게 살펴보면 역시 절반, 절반 되지 않을까, 그게 내 추정이다. 지난 번 동계 올림픽 때에도 역시 결국에는 반반 정도 되었고, 이번의 동계 올림픽 유치 때에도 강원도 전체를 놓고 보면 반반 정도 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다.
 
어쨌든 이번에 신공항 사건을 보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떻게 입장을 정할지 나도 유심히 지켜보았다. 대선 공약으로 건다고 한다…. 이걸로 박근혜는 확실히 '토근혜'의 길로 접어들어 갔고, 복지 논쟁 역시 끌어가기가 대단히 어렵게 된 셈이다.
 
그러나 더 힘들 게 된 건, 박근혜는 그냥 있으면 대구에서 90% 정도 나온다. 실제 투표에서 결과가 그렇게 갈지는 모르지만, 결국 반반 싸움이라는 구도로 들어가서 대구에 살면서 박근혜에게 반대할 절반의 가능성이 이번에 생긴 것이라는 게 현실일 것이다.
 
'생태 이슈' 민감도 갈수록 높아져
 
토건, 원자력, 서울화. 이런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이슈이다. 20대~30대 여성들의 흐름은 지난 수 년 동안 몰라보게 변화했다. 생태 민감성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최근 몇 년 동안 이 집단이 진짜 변했다. 웰빙 열풍 불 때에는 이게 지나치게 상업적이라고 사람들이 뭐라고들 했었다. 인과관계를 설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웰빙 바람 불 때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흐름이 20~30대 여성들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다르다.
 
'에코백'(친환경 재활용 장바구니)은 아무 것도 아닌 사건인 것 같지만, 문화적 코드라는 것은 그렇게 움직인다. 그렇게 한 번 에코백을 들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10대들은 또 다르다. 그리고 대학생들만 보더라도 고학년과 지금의 1~2학년 사이에는 생태에 대한 민감도에서 또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 다른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빠질 것 같지만, 생태라는 요소만큼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 혹은 여성에 가까울수록 생태와 관련된 민감도는 더 높게 나온다.
 
정부에서 요오드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이 요오드와 세슘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가임 여성들이다. 남자들은 혹은 할아버지들은 '뭐 어때' 그러지만, 막상 가임 여성들은 뭐 어때 이렇게 할 수가 없는 게 삶의 이치이다.
 
박근혜 주변인사, '할아버지' 비중 낮춰야
 
토근혜가 집어든 신공항이라는 이슈는 정동영에게 가면 새만금이라는 이슈가 된다. 그리고 이게 돌아서 손학규한테 가면 평창 올림픽이라는 것으로 드러난다.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를 막 욕하지만, 정작 자기 지역구로 돌아가서 그렇게 안 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정치인 김두관과 내가 처음 상대편이 되어서 했던 첫 논쟁이 남해시의 리조트 사업과 그 안에 들어가는 대형 골프장 사업 건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남해에 갔었다. 두 번째 논쟁에서는 김두관은 은근 시민단체 쪽 편에 섰다. 부안 방폐장 때 공식적으로는 다른 입장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정을 좀 이해해달라고. 세 번째 논쟁은 아마 이게 하반기의 큰 논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경남 자치도 문제…. 탈토건에서는 통합이 아니라 규모를 줄이는 쪽이 맞는 방향이고, 자치가 강화되면 그런 방향으로 간다. 토건이 강화될 때에는 인프라 명목으로 크기를 키우는 쪽으로 간다.
 
부산도 그렇고 경남도 그렇고, 토건이 어려워지면서 경제가 어려워지는데 그걸 어떻게 할 줄 모르니까 더더욱 토건으로 간다는 일본 버블의 공식. 김두관은 정확하게 그렇게 토건파들의 공식대로 따라 걸어들어 가고 있다. 바로 옆의 김해가 지난 수 년 동안 걸으려고 했던 길과는 부산과 경남이 걸어가는 길이 좀 다르다.
 
박근혜는 밀양 신공항과 함께 토근혜의 길로 몇 발 더 걸어나갔다. 물론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건 싫다. 그러나 현실 정치인으로서 그가 조금이라도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박근혜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주변 인사에서 할아버지 비중을 좀 낮추고, 20~30대 여성들의 조언을 더 많이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1~2학년 대학생들하고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대담회 같은 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처럼 할아버지들에게 잔뜩 둘러쌓여 있어서는 이명박과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거의 없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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