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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의 하나님’은 없다
망언 일삼는 한국 주류 기독교는 ‘괴물’, 이성과 분별력 마비
 
류상태   기사입력  2011/03/14 [17:02]
1. ‘그런 하나님’은 없다

조용기 목사가 이웃나라 일본이 겪은 쓰나미 참사에 대해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단다. 한겨레신문 3월 14일자 기사에 의하면 그는 “우리 한국은 일본을 봐서 물리적인 지진보다 거룩한 영적 지진이 일어나야 될 때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그만의 독특한 관점은 아니다. 2004년 12월에 동남아를 강타해 20여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에 대해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에 대한 심판”이라고 비슷한 발언을 했다. 김홍도 목사는 2005년 여름 미국 동해안을 강타한 허리케인에 대해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시각이 가능할까?

기독교 성서에는 이런 식의 ‘신의 심판’이 자주 언급된다. 성서에 나타난 기독교의 신은 자신의 뜻을 거역한 이집트 군사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끌어들여 수장시키기도 했고,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그 명령대로 따르지 않고 일부 여자들과 아이들을 살려주었다는 이유로 자기 백성들까지 죽였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의 무자비한 심판’은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집트를 탈출한 신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뽑아 동족을 죽이도록 했다. 이 때 죽은 사람이 삼천 명에 이른다고 성서는 말한다. 이런 기사를 성서에 기록된 신의 말씀이라 하여 문자 그대로 사실로 믿으면 기독교의 신은 잔인무도한 폭군이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기록까지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이 한국에는 매우 많을 뿐 아니라, 그런 ‘원시적인 신앙고백에 의한 기록’을 의심 없이 믿어야 ‘참된 신자’라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한국에서는 크게 부흥하는 ‘21세기의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성서를 신의 절대계시로 믿는 사람들이 동남아와 일본에 닥친 재해에 대해서도 ‘신의 심판이나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 의하면) ‘무모하고 정신 나간 짓’이 아니라 ‘성서를 신의 말씀으로 의심 없이 믿는 돈독한 신앙’이 된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조용기 목사나 김홍도 목사와 같은 신앙을 가진 목사와 신자들이 한국에는 무수히 많다. 그들은 지금도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친다. 나는 그들의 진정성을 충분히 이해한다.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가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아무리 참되게 살아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그들의 말에 따라야 하며, 그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생계까지 내팽개치고 전하는 것처럼, 기독교의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맞다면,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권력과 명예와 재산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처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 보수신앙이 제시하는 천국행 길은 의외로 쉽고 간단한다. ‘예수를 믿으면 아무리 죄가 많아도 다 용서받아 무조건 천국에 가고, 예수 안 믿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없고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교리에 의해 “스님도 예수 믿어야 하고 부처가 종교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논리도 가능해 진다. 또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설교의 주요 주제가 되고, 그 단순한 메시지를 혼신의 힘을 다해 외치는 보수교회가 한국에서 크게 부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진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믿는 그대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할까? 성서에 기록된 천국과 지옥은 신이 직접 내려준 절대계명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계를 신이 사는 ‘천상계’와 인간이 사는 ‘지상계’, 그리고 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계’의 ‘삼층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고대는 물론 중세까지 인류 문화가 가졌던 보편적 세계관이었다.

오늘날 밝혀진 과학적 사실에 대해 인식할 수 없었던 옛날 사람들이, 하늘 위에 펼쳐진 천체의 질서정연한 운행을 보고 신의 차원에 속한 거룩한 존재들이 사는 아름답고 행복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합리적이기도 했다. 그 아름답고 행복한 세계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도 인간의 당연하고 거룩한 욕구다.

또한 지진이나 화산폭발을 경험했을 때, 땅 속에 꺼지지 않는 불이 있으며, 그 재난을 거룩한 존재의 뜻을 거스르는 패역한 사람에 대한 신의 진노로 해석하는 것 역시 당시로서는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 무서운 경험들이 반복되어 전해지면서 ‘신의 뜻을 거스르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원시 신앙으로 고백되었고, 그 고백이 후대로 전승되어 마침내 기독교의 주요 교리가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땅 속에서 불이 솟구쳐 올라올 수 있으며, 멀쩡한 땅이 쩍쩍 갈라질 수 있단 말인가? 땅 속 마그마의 존재, 지각 판의 존재와 움직임 등은 현대시대에 와서야 밝혀진 사실들이다. 옛날 사람들이 지진이나 화산폭발, 쓰나미 등을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신의 징계’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들도 그 때 태어났다면 당연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밝혀졌다. 기독교 성서에 기록된 천국과 지옥은 ‘그들이 인식한 천국과 지옥’일 뿐이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이 인식한 신조차도 ‘이천 년 전의 원시 신앙인들이 인식한 신’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신앙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들의 고백이 갖는 진실성을 충분히 이해할 뿐 아니라 때로는 동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진실로 고백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누구나 다 그 아이의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칠 뿐 아니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3. 괴물이 된 교리기독교

문제는 오늘날 과학에 의해 충분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종교 조직이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려면 오래된 ‘정통 교리’를 재해석해야 되는데, 그건 기독교가 그동안 견지해온 절대가치를 내려놓는 것이고, 심지어는 조직의 해체를 야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마치 생명체와 같다. 처음에는 사람이 조직을 구성하지만, 조직이 어느 정도 자라면 스스로 생존욕구를 갖는다. 성장한 조직은 사람이 쉽게 해체하기 어렵다. 자신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면 조직은 구성원을 속박하고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지금 기독교라는 종교 조직의 노예가 된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조직의 노예가 된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조직의 논리를 쉽게 거스르지는 못한다. 먹고 살 길이 험난해지기 때문이다. 조직은 이렇게 자신에 속한 구성원들을 노예로 부리며 생존의 길을 찾는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오래된 조직은 종종 괴물이 된다.

한국에서 주류를 이루는 교리기독교는 괴물이다. 구성원을 세뇌시켜 이성과 분별력을 마비시켜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든다. 이 괴물과 조직의 지도자들은 상부상조의 관계에 있다. 조직이라는 괴물이 자신에게 부와 영화를 가져다주는 한, 조직의 지도자들은 괴물의 실체를 충분히 알게 되더라도 저항하기보다는 상생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괴물은 더욱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되고, 마침내 한 나라의 국가원수를 무릎 꿇게 하기도 한다.

4.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해야 한다

한국에는 성서에 기록된 그대로 진리라고 믿는 순진한(?) 목사와 신도들도 많지만 그런 원시 신앙이 성서와 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깨인 교회 지도자들도 많다. 문제는 그걸 알고 있는 목사나 신학자들이 진실을 기꺼이 말하지 못하는 데 있다.

생명의 존엄을 위해 일하는 개신교 지도자들, 세계 평화와 환경 보호를 위해 일하는 목사와 신학자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에서는 그런 깨어있는 지도자들이 망언을 일삼는 목사들의 문제에 대해 바르게 지적하고 못하는 것인가? 왜 ‘조용기 목사의 하나님’은 없다고, 그건 옛날 사람들이 인식한 ‘원시 시대의 하느님상’일 뿐이라고 당당히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대체로 둘 중 하나다. 진보적인 목사들이 기독교의 왜곡된 신관과 교리 문제에 대해 함구하는 이유는, 그들조차도 너무나 오래 동안 소위 ‘정통 교리’에 세뇌되었기에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깨어있으나 교회 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신자들과 똑같이 무뇌아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조직에 대해 칼을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르고 있기에 말하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에는 열심인 개신교 지도자들이 막대한 경제적 힘을 가진 보수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망언을 지적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받는 재정지원과 관련이 있다면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개신교가 보이는 무례한 행태와 망언에 대한 책임은 보수적인 교리기독교인들보다 깨어있다는 진보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더 크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진보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거듭 부탁하고 싶다. 제발 ‘착한 일 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집안 단속부터 하라. 

지진과 쓰나미로 재해를 입은 일본 인민들이 속히 재난을 극복하고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빌며….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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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3/14 [17:0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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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호 2012/05/27 [03:01] 수정 | 삭제
  • 구약성경은 고대근동시대이므로 히브리어, 아람어 쓰는 시대이지요, 신약성경은 로마시대이므로 헬라어, 라틴어를 쓰는 시대이지요, 지금은 2012년이므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쓰는 시대이지요. 히브리 시대때는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로마 시대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면, 2012년에는 누가 하나님이랍니까? 참 기가막혀서...
  • 낮아지려 2011/03/18 [17:27] 수정 | 삭제
  • 알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결국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뿐....
    인간과 하나님의 격차를 전혀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어리석음인 것
    영적인 종교관과 육적(물리적)인 종교관에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한 것
    결국은 천국에 가봐야 아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양 떠드는 것
    마치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하다는 착각 속에 있는 것
    선동을 하자는 것인지 나보다는 조금쯤 나은 사람들에게 호소해 보자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