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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이 아름다운 전북 고창 선운사
사찰 4물소리에 맞춰 명상을 했습니다
 
김철관   기사입력  2011/02/16 [21:44]
▲ 선운사 대웅보전     © 김철관
승려들이 일과를 시작할 때(오전 4시)와 마칠 때(오후 6시) 울리는 절의 4물(종, 북, 목어, 운판)소리를 듣고 엄숙한 표정으로 깊은 명상에 잠겼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모친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지난 10일, 휴대폰에 메시지가 떴다. 직장 후배 김춘성 대리의 모친이 영면했다는 것이었다. 발인과 장지가 모두 전북 고창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모친의 간병을 부탁한 뒤, 직장으로 가 12인승 봉고차를 빌려 동료 10여명과 고창으로 향했다.

오후 1시쯤 서울에서 출발해 3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후배 모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문상을 하면서 영정사진을 보니 너무 편안해 보였다. 문뜩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친이 떠올랐다. 막상 죽음을 목격하니 그나마 모친이 살아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운사 일주문     © 김철관

▲ 선운사 천왕문     © 김철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 한켠에서 음식을 먹었다. 음복을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음식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홍어였다. 전라도 애경사 집에 빠지지 않은 홍어, 이날은 더 나아가 삼합(홍어, 삶은 돼지고기, 김치)이 준비돼 상위에 놓여 있었다. 슬픔은 잠시, 허겁지겁 삼합을 씹어 삼켰다. 술안주로 먹여야 제맛인데,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허기 진데다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연거푸 삼합으로 배를 채웠다.
 
물론 동료들은 술안주 삼아 천천히 먹었다. 식사 시간이 약 1시간가량 지났을까. 후배 상주와 인사를 마치고, 내일 출근을 해야 할 형편이어서 모두 상경 길에 올랐다. 후배 상주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평소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여러차례 감사 인사를 했고, 교통비를 주는 등 미안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하기도 했다.

이날 상경길에 동료 대부분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유명 사찰 선운사를 잠시 들리자는 것이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선운사를 들린 후 인근 풍천장어 집에 들려 복분자를 한잔 하고 올라가자는 것이 중론이었다. 마치 술을 하지 않은 동료 한분이 있어 가능했다. 서울로 향하는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경내     © 김철관
▲ 기와불사     © 김철관

그래서 곧바로 선운사로 향했다. 장례식장에서 봉고차로 30분쯤 가니, 평소 가보고 싶었던 선운사 입구가 나왔다. 입구는 복분자와 풍천장어를 파는 식당들로 즐비했다. 봉고차에 내려 선운사로 가는 길(도솔길) 옆은 도솔천이 흘렀다. 선운사가 있는 도솔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내천이라는 의미에서 ‘도솔천’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도솔천 하상을 흐르는 물과 주변의 바위, 자갈 등이 온통 검게 보였다. 이것은 하천 주변의 자생하고 있는 도토리, 상수리 등 참나무와 떡갈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와 낙엽류 등에 포함돼 있는 타닌 성분이 바닥에 침착돼 미관상 물이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 도솔천에 흐르는 물은 절대로 오염된 것이 아니라고 지나간 한 승녀가 귀띔을 했다.
▲ 천연기념물 송악     © 김철관

선운사로 향하는 도솔길 입구에 천연기념물 367호로 지정된 ‘송악’이라는 진녹색 소나무가 절벽(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은 낙엽이 져 벌거숭이가 된 사늘한 느낌의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입춘이 지났는데도 아직 하얀 눈이 녹지 않아 수북이 쌓여 있었다.

▲ 은행나무 유주     © 김철관
송악은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나무 높이도 15m나 되는 거목이었다. 내륙에서 자라고 있는 송악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졌다. 10~11월에 황록색 꽃이 피는데 짧은 가지 끝에 여러 개가 둥글게 모여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약용으로만 쓰이는 송악은 본래 따뜻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늘푸른 덩굴식물이었다. 우리나라 남부 섬이나 해안지역의 숲속에서 주로 자란다고 알려져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소가 잘 먹는 식물이라고 해 소밥이라고 부른다. 송악 밑에 있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까지 전해오고 있다.

송악나무를 관람한 후 곧바로 선운사로 향했다. 입춘(2월 4일)이 지나서인지, 개울가 꽁꽁 언 얼음도 해빙을 하는 듯했다.

선운사로 향하는 입구에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 있는 은행나무는 ‘유주(乳珠)’였다. 유주는 글자 그대로 ‘젓기둥’이라는 의미인데 일본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우리는 여인네의 젖가슴을 닮았다고 해 ‘유주’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 모양이 남자의 심벌을 더 닮은 까닭에 예로부터 아들을 낳으려고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 져 나가는 수난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솔암으로 가는 탐방로 옆에 우뚝 서있는 한 소나무가 천연기념물 354호로 지정된 장사송(진흥송)이다. 수령이 600년이 된 소나무이며, 높이 28m 둘레 3m이다. 지상 1.5m되는 높이 8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멀리서 보면 큰 우산처럼 보인다고. 장사송은 옛 고을 이름 장사현에서 따온 말이며, 진흥송은 나무 옆에 있는 진흥굴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범종루     © 김철관
도솔로를 따라 가니 사찰로 들어선 첫 관문인 ‘일주문(一柱門)’이 보였다. 일주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의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은 신성한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세속의 번뇌로 흩어 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토에 발을 디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주문을 지나 약 7분 거리에 선운사가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동백나무였다. 선운사 동백나무는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돼 있다. 선운사 입구 오른쪽 비탈에서 절 뒤쪽까지 약30미터 너비로 연속돼 있고, 5000여 평에 3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날은 볼 수 없었지만 초가을에 핀 선운사 상사화(꽃무릇)은 다년생 초본식물로 매년 9월 중순경 이곳 주변에서 군락을 이루며 붉을 꽃을 피운다고. 꽃이 진후 진녹색의 잎이 나와 다음해 5월에 사라진다. 잎이 진후에 꽃이 피고, 꽃이 진후에 잎이 나기 때문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는 애틋한 연모의 정을 담고 있어 상상화(相思花)라고 알려져 있다.
▲ 4물소리(범종 타종)     © 김철관
▲ 휠체어 산책로     © 김철관

동백나무를 관찰하고 곧바로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에 도착했다. 눈을 부릅뜬 사천왕을 보니 심장이 사늘해 진 기분이었다. 손에 비파, 검, 용, 보탑 등을 들고 서 있는 사천왕의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갔다. 곧바로 사찰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이 나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 망자의 가족을 모신 명부전, 부처님 제자를 모신 나한전, 독성, 칠성, 산신의 세 성인을 모신 삼성각 등을 급히 둘러봤다.

정각 오후 6시, 범종루에서는 절 일과를 끝마치는 4물소리가 들렸다. 불이문 오른 편에 위치한 범종루(梵鍾樓)는 4물(범종, 법고(북), 목어, 운판) 보관하는 장소로, 이날 승녀들이 4물을 엄숙히 다루고 있었다. 선운사 템플스테이션에 참가한 학생들과 절을 관람 온 탐방객들도 두 손을 모아 기도와 명상을 했다. 물론 템플스테이션에 참여한 수강생들에게 타종을 연습시키기도 했다. 이 시간 나도 깊은 명상에 잠시 잠겼다. 4물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 졌다.
▲ 선제원에서 파는 물건     © 김철관
▲ 고창을 상징하는 상사화, 복분자, 동백 등을 담은 사진이 식당 벽면에 걸려 있었다.     © 김철관

4물놀이는 먼저 청동으로 주조된 범종을 타종했다. 범종은 지옥중생들까지 부처님의 법음을 들려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다음으로 친 법고는 둥근나무 몸통 양옆에 암소와 숫소의 가죽을 대어, 음양 화합소리를 내게 하는 북이었다. 땅위에 사는 네발 달린 짐승들의 제도를 위해 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물고기인 목어는 수중 중생들의 제도하는 의미를 담고 있고, 허공계를 나타내는 운판은 수많은 날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함이었다. 승녀들은 범종->북->목어-> 운판 순으로 돌아가면서 약 20분간을 진행했다.

4물의식이 끝나고 저녁 6시 30분이 지나자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절 물품을 파는 선제원의 밝은 불빛에 비친 불상, 연꽃 등 상품들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천왕문을 나오니 선운사 도솔천 옆 휠체어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었다. 산책로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었다. 와삭와삭한 눈을 밟으면서 급히 오니 어느새 연주문 입구에 도착했다. 10여명의 동료들은 선운사로 가는 입구 식당에서 고창의 명품 풍천장어와 복분자로 저녁을 해결했다. 약간 비싸기는 했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식당 안벽에 걸려 있는 상사화, 복분자, 동백꽃 등을 편집한 사진 한 장이 전북 고창을 잘 대변하는 듯했다.

▲ 선운사 주변에서 풍천장어와 복분자로 저녁식사를 했다.     © 김철관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했다. 고려 공민왕 3년(1354년0)에 효정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했다. 조선시대 행호극유스님은 성종의 숙부인 덕원군의 도움을 받아 장육전과 관음전을 완공했다. 선조 3년(1597년)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됐고, 광해군 5년(1613년)에 일관 스님과 원준 스님이 6년에 걸쳐 보전, 법당, 천불전, 부도전, 능인전 등을 중건했다.

현재 전라북도 60여개 절을 관장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동백나무 숲으로 사계절 푸름을 이루고, 10만 여 평에 달하는 녹차 밭과 시원한 도솔계곡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기도 한다. 초가을의 꽃무릇(상사화)과 가을 단풍은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겨울의 설경은 고즈넉한 산사의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선운사와 도솔암은 대웅보전(보물 290호),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280호), 참당암 대웅전(보물 803호) 도솔암 마애불상(보물1200호)와 지방문화재 만세루 등 주요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절 주변 특산물로 작설차, 복분자, 보은염(소금)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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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16 [21: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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