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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이가 돼 버린 '어머니'가 너무 좋다
설을 맞아 병원에 있는 모친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김철관   기사입력  2011/02/03 [14:25]
▲ 84회 생일 케이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친.     © 김철관
 
오늘 2월 3일은 최대 명절(음력 1월1일) 설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고향길을 떠나는 귀성객들의 소식을 연일 전합니다. 고속도로 정체시간도 정확히 전해 줍니다. 사람으로 북적거려도 버스가 정체가 되도 이렇게 고향과 친지들을 찾아가는 귀성객들이 부럽습니다.
 
어머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설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실에서 설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소 느끼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느라 24시간 밤새 분주하는 간호사와 의사들도 이곳에서 설을 맞고 있더라고요. 며칠 전까지 코로 영양소를 공급했던 모친이 이제 입으로 미음을 삼킵니다.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쓰러졌으니까 불과 한 달 보름전 만해도 과연 소생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걷지는 못하지만 이제 휠체어에 앉아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정성으로 돌봐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재활치료를 많이 해야 하는데 워낙 노쇠해 걷기운동이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우뇌 경색으로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마비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 쓰러지기 직전 잠시 누워있는 모친. 아파서 누워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픈 것 눈치챘으면 뇌경색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친께 죄송하다는 생각 뿐이 없다.     © 김철관

젊었을 때부터 어머님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강인했습니다. 쉴 새 없이 농사일을 했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갔습니다. 쌀, 고구마, 콩, 감자, 오이, 보리, 깨, 옥수수 등을 혼자 재배해 서울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어쩔 때는 재배한 농작물들을 직접 이고 짊어지고 서울까지 왔습니다. 물론 고속버스를 타고 온 것이지요. 불과 7년 전의 일입니다.
 
지난 7년 전부터 경기 남양주시로 모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잠시 쉬지를 않았습니다. 인근 놀이터에 있는 생수를 떠 날렸고, 은행을 주웠고, 인근 길가에서 쑥을 캐 오기도 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한 때 경기 안산 작은형 집으로 잠시 갔었는데, 거기에서도 모친은 소일거리로 박스를 주워 몇 푼을 벌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바쁜 농촌생활에서 한가한 도시생활로 환경이 바뀌다 보니,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작년 7월 3일(음력 5월 22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84회(1927년 정묘년 생)를 맞는 모친의 생일이었습니다. 마치 그날이 안산 형의 아들(조카)이 군대를 가 첫 번째 면회를 가는 날이기도 합니다. 모친을 모시고 봉고차를 타고 면회를 갔습니다.
 
▲ 작년 7월 조카 면회 갔을 때 모친과 함께 촬영한 사진. 올해 85세이다.     © 김철관
▲ 조카 면회를 마치고 부대 입구에서 기념촬영한 사진이다. 모친은 이 때만해도 건강하게 잘 걸어 다녔다.     © 김철관

경기도 양평에 있는 군부대에서 조카를 데리고 나와 양평콘도에서 하루를 지냈습니다.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 한솔이와 딸 단비가 방학이라서 귀국해 함께 갔습니다. 이날 저녁 케이크도 준비해 모친의 84회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모친은 너무 즐거워했습니다. 이후 모친은 쌍문동 여동생 집에서 잠시 기거했고, 다시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집으로 모셔와 즐겁게 살았는데,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병원에서 모친이 의식이 들어왔을 때, 첫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님 이름 좀 말해 보라고 했더니 또릿또릿 “송나라 宋(송) 글월 文(문) 잎새기 葉(엽)”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제 모친은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머님 성은 宋씨요. 이름은 文자 葉자(송문엽)입니다.
 
빡빡 머리에 연방 하품을 하고 잠을 청하는 어머님, 아프다고 주사바늘 외면하면서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어머님. 자식의 인기척이 나면 바로 눈을 뜨는 어머님, 기저귀에 배설물을 쏟아내고도 어쩔 때는 미소로, 어쩔 때는 똥 씹은 얼굴로 바라보는 어머님이 천진난만 한 아이로 보였습니다. 오늘 설날 복 많이 받아야 하는데, 아픈 사람에게 복 많이 받으라는 말 대신 “빨리 쾌차하라”는 말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어머님 빨리 일어나셔야지요.”
 
▲ 현재 병석에 누워 있는 모친. 이제 미음도 드신다.     © 김철관

병실에 누워 있는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늙은 아이’라는 시를 적어 보았습니다.
   
늙은 아이
                                            
빡빡 머리에 창백한 얼굴
병상에 누워 하품을 하는
모친은 철없는 아이이다.
 
6인실 519호 병실
다들 밥을 주는데
혼자 밥을 주지 않는다면서
앙탈부리는 모친은 어린양을 하는 아이이다.
 
기저귀에 질퍽한 똥을 싸놓고
똥 씹은 얼굴하고 있는
모친은 영락없는 갓난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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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2/03 [14: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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