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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공감', 이생강 명인의 대금산조 연주
[공연] 제23회 죽향 이생강 대금산조발표회 열려
 
김영조   기사입력  2010/11/22 [17:47]
옛 가요 “황성옛터”가 대금과 기타 소리를 타고 흐른다. 눈을 지긋이 감은 청중들은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환호의 기립손뼉을 친다. 이 풍경은 어제(11월 21일)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 집”에서 열렸던 “제23회 죽향 이생강 대금산조발표회”의 한 장면이다. 1937년생, 우리 나이로 74살이 된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이생강류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인 이생강 명인과 신의 손이라 불리는 기타리스트 김광석 씨의 협연이다.
 
▲ 원형 대금산조 “죽맥”을 연주하는 이생강 명인     © 김영조
외국 공연 등으로 부득이 공연이 어려웠던 해를 빼고는 1977년부터 해마다 정기 발표회를 해온 지 올해로 어느덧 23회째. 대금을 비롯해 단소, 피리, 소금, 태평소 등 관악기란 관악기는 모두 명인의 손에서 놀아난다. 이날도 여지없이 대금과 함께 피리, 소금 등이 등장했다.

사회자 말마따나 이생강 명인의 연주에는 대중가요나 팝을 연주할 때 말고는 그 흔한 추임새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산조 연주에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 섬세하면서도 가슴 그득히 몰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연주가 끝나면 청중은 열화와 같은 기립손뼉으로 추임새 못한 부분까지 토해낸다.

소싯적 아버지 무릎에서부터 끊임없이 피땀으로 갈고 닦은 천의무봉 가락으로 산조는 물론 가요, 재즈, 팝 등 모든 서양음악 장르도 아우른다. 음악인생 길고도 긴 65년, 그가 살아온 시간은 무엇을 하든 만파식적 대금을 섭렵하기 위한 길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명인은 이제 나이 탓에 손가락이 저리기도 하다는데 그것을 극복하려고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 이생강 명인과 김광석 기타리스트의 협연     © 김영조
▲ 이생강 명인 제자들 20여 명의 대금산조 합주(위)“예성”의 “동살푸리 장단의 흥겨운 우리가락” 연주(아래)     © 김영조
이날 공연은 명인의 원형 대금산조 “죽맥” 그리고 김광석 기타리스트와의 협연 “시나위와 기타의 어울림”, “동·서양의 공감” 등을 선보였다. 또 전수조교 이광훈 등 20여 명 제자의 대금산조합주, 김주영 씨의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 최혜숙 씨의 “살풀이춤”, 견두리·남은선 씨의 신민요, 한국전통국악 퓨전그룹 “예성”의 “동살푸리 장단의 흥겨운 우리가락” 등이 연주되었다.

명인은 발표회를 맞아 “대금 소리는 자유로운 음의 질서를 일정한 장단과 조화시켜 새로 거듭나게 하여 맺고 풀어나가는 섭리의 소리다. 그래서 나는 한평생 창작과 공연으로 이어오면서도 한 번도 똑같은 가락이 아닌 언제나 새로운 가락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명인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던가?  
    
▲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부르는 김주영(왼쪽), 살풀이춤 최혜숙(오른쪽)     © 김영조
▲ 신민요와 제주민요를 부르는 견두리·남은선     © 김영조
청중 안노환(55, 금융업) 씨는 공연을 보고서 “이런 공연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탓에 국악은 좀 따분하지 않나 싶었지만 막상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보니 전율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명인이 대금으로 ‘황성옛터’를 연주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동살푸리 장단의 흥겨운 우리가락’도 정말 흥겨웠다.”고 말했다.

공연을 만든 이들은 연출 한국민속악교육원장 이호용, 감독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전수조교 이광훈, 사회 국악사랑동호회 사무국장 양재열, 기획 (주)신붕민예 기획부장 김호심 등이 함께했다. 또 이날 특별히 무대 배경그림을 공연 내용에 맞게 맛깔스럽게 그린 한국화가 이무성의 무대장치가 새롭고 참신했다고 관객들은 입을 모았다.

  
▲ 축하공연을 하는 김광석     © 김영조
   
▲ 대금을 들고 설명을 하는 명인, 명인은 늘 청중을사랑하는 마음으로 온 정성을 쏟는다.     © 김영조
입동도 지나고 소설을 하루 앞둔 이날 쌀쌀한 날씨에도 공연장은 후끈했다. 작은 공연장에서 백여 명 남짓한 청중을 놓고 하는 공연에도 언제나 혼을 쏟는 명인은 그래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요, 신의 소리를 낸다는 최고의 연주자일 게다. 74살의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던 공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을 실감할 수 있게 한 대한민국최고의 대금 명인공연에 청중들은 모두 흡족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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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22 [17: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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