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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짜증과 우울, 류승완 감독론
 
변희재   기사입력  2002/03/22 [02:45]
다찌마와 Lee가 인터넷을 강타하고 있을 즈음에 나는 우연히 류승완 감독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우연히'라는 부사를 붙인 이유는 내가 예전부터 류승완 감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추천으로 류승완 감독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류승완 감독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류승완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영화를 본 이후부터였다.

1.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LEE>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다찌마와 Lee>. 이 두 영화를 한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는 우울함, 불안함, 어두움을 보여주고 후자는 화끈 코믹 유쾌함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던가? 그러나 류승완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꼭 그렇게 먼 영화들은 아니다. 우울한 재미는 없단 말인가? 불안한 재미는 없단 말인가? 실제로 류승완 감독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http://jabo.co.kr/zboard/

"저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제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아. 유승완 영화구나.' 이런 게 드러날 정도로 제 색깔을 찾고 싶어요.
그래서 가뜩이나 매일 저녁 9시 뉴스만 보도 짜증나는데 계속 우울한 이야기만 해야하는지 회의적이지요. 저 역시 학창시절 극장 안의 활극으로 위로를 받았으니까요. <다찌마와 리>가 그런 유쾌한 영화이지요."


우울과 짜증과 유쾌와 통쾌는 양극단점에서 서로 만난다. 나는 그것을 저급 혹은 B급 혹은 통속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유쾌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이상하게 '우리 같은 사람은 뭘 해도 안 되나 봐요'라며 우울한 짜증으로 빠지곤 하다는 류승완 감독은 끊임없이 극장 속 영화의 현실에서만큼은 유쾌함이라는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한다. 세상이 험난하면 영화라도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저급 영화라는 <다찌마와 Lee>를 보고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란 현실 속에서 늘 우울한 짜증을 경험하는 소시민들이 아니겠는가?

2. 계속되는 짜증의 정서

류승완 감독의 대중영화론을 이렇게 이해하면 <피도 눈물도 없이>도 보인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모든 주인공들은 쇠사슬로 얽혀있다. 누가 누구를 두들겨 패고, 자르고 찌르고 살을 도려낸다 하여도 그것은 그들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로 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야말로 먹이사슬의 법칙처럼 센 놈이 약한 놈을 먹고 더 센 놈이 그 놈을 먹으며 운명의 결투장 속을 미친 싸움개들처럼 휘젖는다. 그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뭘 해도 안 되나 봐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서 역시 바로 이러한 류승완 정서에 깃대어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보여주는 일상 역시 그러하다.

"저희 집이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대문이 없어졌어요. 고물상이 고물인 줄 알고 대문을 가져간 거에요. 막 짜증이 났지요. 항상 새롭게 짜증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런 류승완의 현실은 영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안 그래도 살기 싫은 세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실 때조차 옆에 있는 애새끼가 울고, 그 애새끼를 패는 부모, 또 다시 우는 애새끼, 정말 살 맛 안 나는 세상.

3. 현실이 영화를 만든다.

류승완 감독의 팬은 있다. 그것도 마니아에 가까운 팬들이다. 그 팬들의 지지 속에 류승완 감독은 CF 모델로도 데뷔했을 정도이다. 마니아 층의 팬은 스타에게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이란 류승완표 브랜드가 형성된다는 것이고, 단점이란 류승완표 브랜드에 걸맞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때,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독립영화인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가 그러한 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독립영화란 제작방식이라기 보다는 정신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메이저 영화사인 명필름에서 블록버스터(박찬욱 감독은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도 만들지만 <섬>이라는 독립영화 비슷한 색깔의 영화도 만든다. 어차피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라 해봐도 할리우도 영화 제작비의 20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에서 제작비 50억이 블록버스터라면 할리우드에서는 제작비 1억불(1300억원)이 블록버스터이다.

{IMAGE1_RIGHT}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승완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같은 저예산 방식의 제작 영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돈이 적게 들어야 실험을 할 수 있다. 실험이란 곧 장난을 의미한다면, 판돈이 적어야 더 심한 장난을 칠 수 있지 않겠는가? 제작비 100억을 들이면 장난을 칠 수가 없다. 류승완 감독도 6천만원짜리 <다찌마와 Lee>에서나 장난을 칠 수 있지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단 제작비가 10억원만 넘어가도 투자업체 쪽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다. 혹시 류승완 감독이 이런 충무로 메이저 영화 시스템에 적응이 안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피도 눈물도 없이>의 앞부분에서는 류승완의 짜증 브랜드가 파워를 발휘했던 반면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어설픈 서스펜스 스릴러로 바뀌고 짜증이 아니라 지겹고 지겨운 액션이 이어지면서 류승완 브랜드가 실종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조금 다른 방향에서 이를 지적했다.

"류승완 감독은 재주가 많다. 그 많은 재주를 두번째 작품에서 모두 다 풀어놓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조금씩만 선을 보여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 나올 텐데. <피도 눈물도 없이>는 과욕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 상업영화의 한 경향이 그 '과잉'이다. 감정 과잉, 이야기 과잉, 유머 과잉, '주제의식' 과잉 등등. 감독이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것은 너무 많고, 그것을 절제할 사람은 없고. 그건 꼭 감독 탓만은 아닌 것 같다."({씨네21}, 340호)

류승완 감독의 기존 영화가 많은 것을 담는 과잉을 보여주었던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는 단순한 이야기로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이번 <피도 눈물도 없이>의 후반부에서는 무언가 조급하게 쫒기듯이 내러티브와 액션의 과잉을 보여준 듯하다.

흔히들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영화의 현실이 아닌 현실의 영화라 칭한다. 그 만큼 사실주의에 집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우린 원래 안 되나봐."라는 말처럼 현실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현실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마저도 잠식해버린다. 저예산으로 1만명만 확보하면 OK인 영화와, 최소 서울개봉 50만 명 이상 확보해야 본전치기가 가능한 순제작비 24억원짜리 영화의 현실, 현실의 영화는 분명히 다르다.

시종일관 암울한 힘 혹은 유쾌한 힘으로 일관되게 끌고 나가는 류승완 감독의 짜증의 힘이 지속되려면 보다 더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할 것 같다. 그 누가 옆에서 뭐라 그래도 감독만의 세계관 감독만의 영화관이 살아나야 류감독이 바라는 "우리는 원래 안돼."의 신화도 깨질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속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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