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대째 권력세습을 둘러싼 입장과 관련해 〈경향〉과 민노당 간에 전개되고 있는 공방전이 예사롭지 않다. 진보,개혁진영의 논객들 중 상당수도 이 공방전에 참여하고 있다. 〈경향〉은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세습에 대해 무척 비판적일 뿐 아니라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민노당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경향〉의 매서운 공격에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는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입장은 침묵'이라는 태도를, 울산시당 등 민노당 일각에서는 북한의 특수성을 간과한 신종 색깔론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향〉의 관점에 우호적인 이들은 인류가 누대로 쌓아온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북한의 권력세습 및 북한의 권력세습 비판에 미온적인 민노당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경향〉에 적대적이거나 적어도 덜 우호적인 입장들은 권력세습의 정당성을 옹호하거나 북한문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 권력세습에 침묵한다고 민노당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는 건 역매카시즘이라는 입장, 권력세습은 부당하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건 전략적인 오류라는 입장 등으로 꽤 상이하고 복잡하다. 아마도〈경향〉이 민노당에 대해 퍼붓는 공격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3대째 권력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태도에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민노당의 목표가 잔존이나 연명이 아니라 집권이라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침묵은 현명한 처신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유권자 가운데 북한체제나 북한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김일성에서 시작해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 이르는 3대 권력세습을 정당하다거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 일가를 정점으로 하는 북한체제와 정권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부정적 평가는 대체로 정당하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모든 부면에서 어떤 잣대로 재더라도 정상국가로 볼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어버이 수령과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인민의 뇌수가 되어 인민 대신 생각하고 결정하는 정치체제, 확대재생산은 고사하고 단순재생산이 불가능해 인민들이 아사하는 무계획명령경제체제를 가진 나라를 정상국가로 볼 길은 없다. 문제는 이런 국가가 대한민국과 휴전 상태에 있고 그 구성원들이 동족이라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은 대한민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밖에 없다. 햇볕정책 이외에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가 이런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노당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관해 어떻게 대응할지가 분명해 진다. 적어도 민노당은 '권력세습은 부당하고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장래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풀어갈 실질적인 파트너가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공개적인 비판은 자제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은 천명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민노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정희 대표는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자아낼 침묵을 선택했고, 당 일각에서는 해괴한 논리와 근거들을 들어 권력세습의 정당성을 옹호하려는 조직적 움직임마저 보였다. 민노당의 이런 처신은 이중으로 잘못된 선택이다. 집권을 꿈꾸는 대중정당이 대다수 유권자들의 상식과는 크게 유리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정치적 행보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진보라는 가치에 종북이나 적어도 친북의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일개 기업도 아니고 한 나라를 3대가 이어가며 사유물처럼 상속하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인류가 진화시켜 온 보편적 상식이나 양식은 국가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가 그런 상식에 충실한데 유독 민노당만 한사코 상식을 거스르려는 이유가 무언지 정녕 궁금하다. 민노당은 이제부터라도 평양에 대해 신경을 끊어야 한다. 민노당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본원인과 그에 대한 해법이며 이를 위해 진보의 재구성에 당장 착수해야 한다. 단언컨대 민노당이 서울이 아니라 평양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유권자들이 생각하는 한 민노당이 집권하는 날은 영영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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