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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또니오 네그리 사상의 ‘발견’과 혁명의 ‘발명’
[책동네] 네그리 사상의 재발견,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오정민   기사입력  2010/10/18 [17:29]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그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혁명적 투사’,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비현실적인 이론가’, ‘자본주의 개혁가’ 등의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대립되고 모순되는 평가가 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사하다. 이것은 전세계를 뒤흔든 『제국』이 2000년에 출간되면서 더욱 격화되고 확장되었다. 이 책의 출간 직후 『뉴욕타임즈』는 “훌륭한 문구들로 가득 차 있”고 “인문학의 공허함을 채워 주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극찬하고, 『타임즈』는 책을 “뉴욕 맨해튼의 서점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운 정도”라며 당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도한다. 이런 반응은 『제국』은 “놀라운 업적”(발리바르)이라거나 “이 책이 써지지 않았다면 이 책은 발명되어야 했을 것”(지젝)이라고 말한 당대 주목받고 있는 정치철학자들의 반응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 네그리 사상을 종합적으로 구성 분석한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표지     © 갈무리, 2010
반면 ‘제국론의 한계’를 주장하며 ‘네그리의 관념이 현실 운동의 장애물’(캘리니코스, 『제국이라는 유령』, 이매진, 2007)이라는 비판과 “『제국』은 좋게 말해도 이상한 책”(페트라스 외,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갈무리, 2010)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국내에서도 맑스코뮤날레 등의 학술대회나 일간지 지면에서 이와 유사하게 『제국』과 네그리 사상을 둘러싼 논쟁과 논란 들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사상은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감자 중의 감자’이다. 2008년 촛불봉기 시기, 거리에 나온 촛불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네그리의 다중(multitude) 개념이 논쟁의 주요한 하나의 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논의의 활발함에 비해 그의 사상이 얼마나 깊고 분석적으로 다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비판자들은 『제국』에는 집중했지만 『제국』 속에 있는 주요 개념과 사상이 형성된, 네그리가 활동했던 이딸리아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그의 과거 활동과 저작 들을 간과하거나 무게감 있게 다루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의 저자들과 편집자들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편집자 티모시 S. 머피(Timothy S. Murphy)와 압둘-카림 무스타파(Abdul-Karim Mustapha)는 이렇게 말한다. “네그리의 사유를 평가하려는 이러한 최근의 시도들 중 다수는 『제국』과 그것의 주장들을 네그리의 작업 전반과 그를 낳은 이딸리아의 문화적 환경이라는 좀더 넓은 맥락에 위치시키지 못함으로써 매우 허약한 것이 되었다.”(15~16쪽)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가 “실재적 운동”(16쪽) 속에서 발현된 네그리의 사유를 허약하게가 아니라 강력하게 평가하고 분석하기 위해 집필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글들의 저자들은 네그리의 지적 동료들이자 대화상대자이며 동시에 강력한 비판자들이다. 이것은 이 책의 비판이 어째서 다른 비판들과 다르며 더 강력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저자들의 비판이, 네그리와는 운동의 경로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바깥’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투쟁의 거리에 함께 있었거나 네그리로 부터 활동과 이론적 자극을 받은 이들이 하는 ‘안’에서의 비판이기 때문이다. 내적 비판들은 회피가 아니라 직접 대면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기에 그 울림이 크고 강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어떤 울림들이 있을까.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세 편의 글들은 그간 논쟁에서 간과되거나 가볍게 다뤄진 과거 이딸리아에서의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과 매서운 비판을 통해 네그리 사상과 활동에 역사성과 역동성을 부여한다. 세르지오 볼로냐는 네그리가 1970년대 이딸리아 운동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주체들을 분석한 글을 매섭게 비판하고, 알리사 델 레는 1969년에서 시작된 이딸리아의 뜨거운 가을 이후의 사회운동과 그 속에서의 네그리의 위치, 그리고 그 때의 사회운동이 오늘날에 미친 영향을 인터뷰을 통해 회상하며, 스티브 라이트는 1970년대 아우또노미아 운동 그룹의 운동과 그들 간의 논쟁, 갈등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우리가 이딸리아 운동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2부에서는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검토되며 갱신되고 있는 네그리의 핵심 개념을 비판적으로 다루며 새로운 제안이 이뤄지고 있다. 케이시 윅스는 네그리의 노동거부 개념을 분석하며 노동거부가 “새로운 미래를 구상할 방법”이고 “너무나 빈곤해진 우리의 사회적·정치적 상상력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180쪽)고 주장한다. 닉 다이어-위데포드는 “비물질노동이 갖고 있는 중심성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무대에 올리고, 이에 기반하여 하트와 네그리의 비물질적 노동 개념이 갖고 있는 맹점을 보완할 하나의 방법으로 유적 존재 개념의 비판적 만회를 제안한다.”(18쪽) 

호세 라바싸는 멕시코의 사빠따 운동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하면서 “다중이 자신의 힘과 자율화의 실천을 단언할 준비”(282쪽)로써의 제헌권력/구성권력(constituent power) 개념을 주장한다. 케네스 수린은 최근 금융위기로 일거에 주목을 받은 금융과 금융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하며 저항의 가능성을 네그리의 구성권력 개념과 맑스의 산노동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각각의 독립된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이 글들을 강하게 이어주는 사유의 끈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 혁명의 아이콘(icon)인 네그리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혁명적 변혁 모델”(338쪽)을 ‘발명’하고자 하는 욕구일 것이다. 허약하고 소모적인 네그리 사상의 이해 속에 가려져 있던 혁명적 네그리 사상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창조적인 혁신의 힘을 ‘발명’하려는 시도들. 이것이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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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18 [17: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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