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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처럼 살지 않는 게 승리하는 길"
'박정희 고향' 구미 시의원, 박정희 기념사업 정부 지원에 '반대'하는 이유
 
김수민
박정희 정권의 북한화와 경제파탄, 친박연합은 피해 대중에게 사죄해야
 
우리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에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이렇게 김수민 구미시의원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냅니다.
 
 ‘구미는 남한의 평양’ , ‘임기를 걸고’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김수민 의원은 구미시 의원직을 자진 사퇴하라!

지난 9월 13일, 김수민 구미시 의원은 우리 구미의 자랑이요, 자존심인 박정희 대통령을 무시하고 나아가 폄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 친박연합은 어떠한 조치를 불사하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김수민 의원이 저지른 망언에 대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추후 이러한 불상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확약 받아, 앞으로는 다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 김수민 의원의 이 발언을 내일의 음해와 협잡을 차단하기 위해 일벌백계의 수단으로 삼는 바이다.

2010.9.17.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   
 
친박연합 구미시 당협의회의 공개질의를 잘 받아보았다. 20년 동안 겪어왔던 그대로이다. 내용 없이 되풀이되는 찬양론을 보면서, 또다시 박정희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상기하게 된다.
 
이런 작태가 '역사적 날치기'이며, 이를 좌시한다면 진짜로 '남한의 평양'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김일성 유일체제는 '동지 관계'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려 했던 반역사적 프로젝트였다. 유신헌법은 7.4공동성명 이후 공포되었고, 그 일자는 북한이 유일체제 헌법을 공포한 날과 같다. 그래서 양 체제는 서로를 비난하는 성명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3공화국이 민주주의를 권위주의로 후퇴시켰다면, 유신체제는 그 이상의 전체주의를 꿈꾸었다. 유신독재가 지속되었다면, 남한은 속도전식 성장 끝에 주저앉은 북한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유신 말기 총선에서 야당은 여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올렸고, 부산-마산에서는 대규모 항쟁이 일어나 학생들보다 오히려 기층 민중이 더 분노하여 정권타도를 외쳤다.
 
김재규가 암살하기 전에 항쟁이 전국적으로 번졌다면 박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박정희’ 수하르토처럼 국민의 손으로 축출되었을 것이다. 비록 유신독재의 잉여가 만든 제5공화국이 들어섰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남한은 체제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불로소득 및 부동산 폭등, 졸속건설, 시장통제 실패
 
박정희 정권기 불로소득은 생산소득의 2.5배에 달했다. 부동산 가격은 180배로 폭등했다. 경제가 성장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이는 같은 기간 예금소득의 10배였다. 온갖 난개발과 무능한 밀어붙이기로 세워진 ‘부동산투기 공화국’의 국부가 박정희 대통령이다.
 
장준하 선생의 지휘 하에 정신 맑은 청년들의 손으로 시작된 국토개발사업은 5.16 이후 깡패들의 장으로 전락했다. 횡단으로 지으라는 국·내외의 권고를 무시하고 지어진 경부고속국도 사업에서는 인부 77명이 사망하고, 끊임없는 교통사고가 일어났으며, 이후 10년간 도로를 보수하는 비용은 처음의 공사비용에 맞먹었다. 과연 이런 것들을 위해 우리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 농토를 등지고, 작업장에서 똥물 세례를 받아가면서 탄압당하고, 술집에서 대통령을 욕을 했다가 잡혀갔다는 말인가? 
 
박정희 정권 말기 한국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부마항쟁도 기실 경제적 실패에서 나온 사건이다. 박 대통령 본인도 재벌의 날뜀을 통제하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두손을 들었다고 한다. 윗목에는 온기가 들지 않는데 구들장은 안 고치고 끊임없이 장작만을 투입한 지속불가능한 성장이 맞이한 결과다. 1960년대 내내 연평균 10퍼센트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던 북한이 주저앉은 것과 흡사하다. 그나마 한국이 쿠바나 라틴아메리카와 달랐던 건 박정희의 영도력 탓이 아니라, 국·내외적 흐름이 수입대체-수출지향의 복선형 발전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향수' 퇴조 뚜렷…또다른 국가개입 정책을 사고하라
 
박정희 신드롬은 왜 일어났는가? 이것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직시해야 할 현상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유신독재에 대한 재평가도 아니고, 그 시절 방식의 경제개발을 재생하라는 요구도 아니다. 입으로는 박정희를 옹호해도 몸으로는 절대 박정희식 정치경제를 견디지 못 하는 것이 오늘날의 대중이다.
 
박정희 향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환멸, 그리고 강력한 국가개입을 바라는 마음이 어렴풋하게 표현된 현상이다. 오래갈 수 없는 신드롬이다. 며칠 전 한 시사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 전직 대통령 가운데 박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년 전에 비해 20퍼센트나 감소한 30퍼센트대에 머물렀다.
 
친박연합에게 묻는다.
 
작금의 기득권 세력들은 기업의 은행소유 제한, 국민의료보험, 그린벨트 등등의 정책을 ‘좌파 정책’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이를 도입한 장본인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럼 박정희 대통령은 좌파인가? 친박연합의 정책적 입장은 어떠한가? 이것을 그리고 오늘날 판치는 시장만능주의를 사고하는 것이 친박연합이 한나라당과 따로 존재하는 이유를 굳건히 할 것이다.
 
지금 구미시의회에서 친박연합 네 분의 의원들은 나름의 소신활동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본인에게 내용 없는 사과 요구를 할 시간에 그 의원 분들과 잘 상의해 민생정책을 가다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결국 '논리의 힘'이 '힘의 논리'를 이길 것
 
본인도 요구하겠다.
 
우리의 경제발전을 위해 피땀 흘려 일했지만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잊혀져간 수많은 ‘김개똥’들에게 절하라. 억울하게 짓밟히고 죽어간 민주애국 영령들 앞에 고개 숙이라.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은 판결을 받자마자 사형당하고 시신은 탈취되어 화장되었다. 그들이 우리 이웃 대구 사람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기 바란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 안에 답이 있다”고도 한다. 박 대통령의 고향에서 기념사업 정부 지원을 반대하는 시의원이 나온 것은 필연이다. 역사적 발전의 이치다. 아무리 깊은 어둠도 촛불 하나에 깨진다.
 
‘임기’가 아니라 양심과 일생을 걸겠다. 민주시민으로서 또 어려서부터 박정희 문제에 접근했으며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해 역사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이로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전할 것이다. 이 땅이 정녕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면, ‘논리의 힘’이 ‘힘의 논리’를 이길 것이다.
 
그처럼 살지 않는 것이 역사적 심판의 첫걸음
 
지금까지의 박정희 찬양론에 대해 나는 "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비판하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장난 레코드처럼 극악단순한 논리를 반복한다면, 바로 그러한 행위가 '박정희 시대의 부정적 유산'으로 전시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인생을 연구해보니 교사로서의 박정희는 학생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또래의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던 시절 “큰 칼”을 차기 위해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내 나이였던 1945년 일본 군인으로서 패전을 맞이했다. 그 직후에도 그는 극좌와 극우를 오갔다. 자신은 일제시대 장발을 해놓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장발을 단속했다. 자신이 금지한 일본 영화와 술을 안가에서 만끽하기도 했다.
 
박근혜 의원이 금욕적 국가주의자에 가까운 반면, 박 대통령은 권력지향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이기주의자였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살지 않는 것', 그것이 나는 박 대통령에게 승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기사입력: 2010/09/18 [21:1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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