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태의 참예수를 찾아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목사도 세금내고 십일조 바꿔야 교회가 바낀다
[한국교회 개혁 제안2] 교회 재정문제,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류상태   기사입력  2010/07/31 [07:40]
강남 어느 교회의 ‘성전 건축’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2100억이 교회 건물을 짓는데 투입된다니 서민들의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자의 친구’였던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부 대형교회들은 어디서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교회가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거나 도둑질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익단체가 아닌(현실을 보면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이 내는 헌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헌금’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자발적으로 내는 돈’을 의미합니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내는 돈으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정도라면 구성원들이 엄청난 부자들이거나 자기희생정신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 가운데 어쩔 수없이 헌금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초대형 건물 짓기 경쟁에 나설 수 있는 기반에는 ‘십일조 헌금제도(소득의 십 분의 일을 교회에 내는 것)’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오래된 제도는 서구 교회에서는 거의 사라졌으나 우리나라 주류 개신교회에서는 여전히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절대 규율’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개신교 태동 이전부터 그리스도 교회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고 교회의 권력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급기야 교회를 부패하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금도 일부 대형교회의 재정을 살찌우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개신교 목회자의 대부분은 십일조 헌금을 교인의 의무사항이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십일조를 안내는 교인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이라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참에 개신교 헌금의 기본처럼 되어있는 ‘십일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서시대의 이스라엘은 제정일치 사회였으며, 십일조는 나라에 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십일조’라는 말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는 조세’라는 뜻입니다.) 당시 세금이 십일조로 책정된 것은, 우리말의 ‘십시일반’(열 사람이 밥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이 의미하듯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소득의 10%씩을 모아 공동체의 운영과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의 공공복리를 위해 사용하자는 취지였기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의 역할이 분리된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 조세에 대한 의무는 당연히 종교단체가 아니라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헌금에 ‘십일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헌금을 교인이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세금처럼 강요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교회지도자들의 무지 또는 이기적 욕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조직체에 운영자금이 필요하듯이, 교회 역시 사회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 목회자나 사무원, 관리인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일, 또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구제와 사회사업 등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고 그 자금은 구성원이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을 위해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헌금에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이 반드시 십일조가 되어야 한다든가,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이라느니 ‘안내면 도둑질하는 것’이라는 등의 무리한 강요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십일조와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 이외에는 어떤 헌금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십일조를 포함하여 어떤 헌금도 강요해서는 안되며, 모든 헌금은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헌금의 사용에 있어서는, 지출과 소득에 대한 처리를 투명하게 하고, 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떳떳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 헌금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어려운 이웃과 교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인건비와 운영비는 합하여 20%를 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는 예수동아리교회의 경우, 재정 수입은 교인들이 스스로 정하여 납부하는 월 1회의 회비와 찬조금 및 기타 수입금으로 하며, 정회원이 납부하는 월 회비의 최소단위는 가난한 교인이라도 부담을 갖지 않도록 천 원으로 정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비롯하여 기존교회의 헌금제도는 모두 폐지하였고, 회원에게는 월 회비 이상의 어떤 비용 지출도 강요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수입금은 부동산이나 동산에 투자할 수 없고 3개월 이내에 모두 지출되어야 합니다.

지출에 대해서는, 재정의 50% 이상을 이웃돕기에, 30%는 교인과 직계가족의 복지를 위해 사용합니다. 담임목사 월급을 비롯하여 인건비 총액은 재정의 10%를 넘을 수 없고 인건비를 제외한 운영비 총액도 재정의 10%를 넘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주류 개신교회에 이 모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무 강요없이 자발적인 헌금이나 회비로 재정을 꾸리고, 재정의 80% 이상을 이웃과 교우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직접 투자하며, 인건비와 운영비를 각각 10% 이내로 제한하여 그 쓰임새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교회는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회의 소금과 빛으로 기능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교회의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도 소득세를 내야 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목사도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한 시민단체는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갖습니다. 이 당연한 명제를 거부하고 피해갈 명분은 없습니다. 종교단체가 아무리 영적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더라도 이 땅 위에 존재한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한국 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모든 목회자의 근로소득세에 대하여 납세할 것을 결의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만일 목회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끝내 회피하려 한다면 의무는 감당하지 않고 권리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 가운데, “종교는 세속과 분리해야 된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건설하거나 유지 보수하려면 당연히 돈이 들어가게 되어 있고, 이용자들이 그 비용을 대는 것은 당연합니다. 종교인들도 사회간접자본을 이용하며 살 수밖에 없기에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회간접자본을 이용하면서 세금은 내지 않겠다는 주장은 권리만 찾고 의무는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사회간접자본을 이용할 자격도 없습니다.

종교인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또 다른 주장의 근거로, “성직자가 하는 일을 ‘근로’로 보아서는 안되고, 영적이며 종교적인 ‘봉사’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만일 종교인이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고 순수하게 무보수로 봉사한다면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기준에 의해 급여를 받는다면 그것은 소득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상식과 합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사회가 주는 혜택도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인이 납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요건은 단 한가지뿐이어야 합니다. 그들의 급여가 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며 가난한 이웃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 혜택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 세금을 대신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위배됩니다.


* 이 칼럼은 격월간지 <공동선> 2010년 7+8월호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07/31 [07:4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다물인 2010/10/26 [01:39] 수정 | 삭제
  • 언제 예수님이 그러라고 했는가? 가이새것은 가이새에게 나의것은 나에게 주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예수님의 소유가 이 세상에 잇었나? 깨달음을 가진자가 소유 할 수나 있는 것인가? 세상의 모든것이 집착에서 벗어낫는데..더이상 더 뭘 가져야 하는가? 가질것이 없는 것이 이 세상일 뿐인데. 단지 하루 한 두끼 정도 먹는 정도로 감사해야 하지 않겟는가 한국의 목사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