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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총장, 교육은 경제논리가 아닙니다
성희롱교수는 복직, 친일고발 김민수교수는 왜 복직안되나
 
양문석   기사입력  2003/10/31 [09:58]

한겨레신문 인터넷판에서 보도한 지난 10월10일자 "서울대 정총장 '두얼굴'"이라는 기사를 보면 정총장의 표리부동한 말장난이 거의 '수준급'이다.
▲한겨레신문 10월 10일자 기사, 서울대 정 총장 ‘두 얼굴’     ©한겨레신문
10월9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간호사들을 폭행 및 성희롱한 서울대 병원 비뇨기과 이모 교수의 병원 겸직을 허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모 교수는 국가인권위윈회로부터 '특별인권교육' 권고까지 받은 인물이다. 지난 7월에 정총장이 "이교수가 병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 자신의 발언을 불과 3개월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유인즉, "날마다 이 교수를 찾는 전화가 쇄도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의 진료받을 권리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총장이 이 말을 하고 있던 총장실 밖에서는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가 열흘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지난 1998년 재임용 심사에서 '연구실적 미달'을 이유로 탈락한 김 전 교수는 "서울대 미대 원로 교수들의 친일행적을 거론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라며 복직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면서, 5년째 무학점 강의를 하고 있다.
정총장은 답해야 한다. 간호사를 폭행하고 성희롱한 교수는 '환자들의 진료받을 권리'를 존중해서 병원으로 복직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친일행적을 거론하며 선배교수들의 반민족행위를 비판하는 교수는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존중할 수 없어 복직시키지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비뇨기과 교수를 찾는 환자들의 전화가 쇄도한다면, 여전히 '학점이 인정되지 않지만 5년동안 계속해 김교수의 강의를 찾아와 듣는 학생들은 정총장이 무시해도 되는 대상인지 궁금하다.
또 하나. 10월28일. 한겨레신문 인터넷판 10월29일자 "정운찬 총장 '중고입시 지방부터 부활해야"는 기사를 보면 "고교 평준화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며 고교 평준화 폐지를 정총장이 주장했다. "정부가 만약 평준화의 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을 통해 일단 지방 중·고교부터라도 평준화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서울대생의 40%가 서울 출신이고, 특히 경제·경영·법학 등 인기과의 경우는 60%나 서울 출신이며 그것도 서초구, 송파구, 강남구 등 강남권 3개구 출신이 집중돼 갈수록 계층간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운찬 서울대총장     ©대자보
참으로 오만한 발언이다. 서울대를 다녀야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전제 자체는 서울대를 다니지 않으면 계층이동이 불가능하거나 여의치 않다는 논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총장의 오만함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더 문제는 '지방부터 비평준화하자는 주장'이 거짓근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29일자 한겨레신문의 황순구 기자가 "평준화 해제주장 엉터리 근거"라는제목으로 정총장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먼저, 고교평준화가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정총장의 주장에 대해 '이미 우리나라 일반계 고교의 절반(49.6%)은 비평준화 고교다. 특히 강원 전남 경북 충남은 도 전체가 비평준화지역이다. 더 이상 무엇을 푼다는 것인가?'하며 정총장의 '지역 먼저 비평준화론'을 반박한다. 그리고 강원도를 예로 든다. "평준화였던 강원도 춘천 원주는 '명문고 육성론'에 밀려 1991년 비평준화로 돌아섰다. 이후 서울대 합격자 수는 더욱 줄었다. 춘천의 경우 평준화 시절 6개 인문고의 서울대 진학자 합계는 연평균 45명이었으나 비평준화 이후 30명으로 줄었다. 강원도 전체로도 80년대 후반 200명을 웃돌았으나 최근에는 60-70명 수준이다."
오만한 전제인 '서울대 입학은 곧 계층이동'이라는 정총장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비평준화론 자체가 의도성 가득한 잘못된 근거에 기반한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실망한다.
정총장은 불과 한달 사이에 한 번은 '말 바꾸기', 한 번은 '거짓말'을 했다. 변명같잖은 변명으로 '인권파괴자'를 옹호하기 위한 '말바꾸기'였고, 정반대의 근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총장이라는 일반인들의 막연한 '신뢰'를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인 '비평준화론'을 관철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현재의 교육은 빈익빈 부익부라는 경제논리가 에누리 없이 관철되고 있다. 정총장의 주장대로 돈 많은 집안의 자식들이 명문대학에 많이 가는 구조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정총장의 주장대로 '평준화' 때문이 아니라 '수능시험 등 대입전형' 때문이다.
정총장은 폭행과 성희롱을 당한 간호사, 원로교수들의 친일행적을 비판한 학자, 그리고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를 막기 위해서 '평준화'를 고수하는 이 땅의 양심적인 교육자들을 배판했다. 그것도 말바꾸기와 거짓말로 주변을 속였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가진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가는 수구정치집단과 수구언론집단들의 이해관계에 기여한 것이다.
'평준화가 문제'라는 발언을 한 한국은행 임직원 특강에서 정 총장은 이런 말도 했다. "김대중 정권은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해 여러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스스로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해 거절했다"고. 차라리 경제학자로서 전공을 살리는 경제부처의 수장이 낫지 교육의 기본인 윤리마저 짓밟는 총장으로서 '준비가 안됐다'는 판단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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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0/31 [09: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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