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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성과 조급성, 빨리빨리의 문화정치학
[강준만의 세상 이야기] 내용에 휘둘리지 말고 총합적인 조망해야
 
강준만
‘속도의 문화정치학’
 
프랑스 철학자이자 건축가인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속도와 정치: 공간의 정치학에서 시간의 정치학으로』(이재원 옮김, 그린비, 2004)는 난해한 책이다. 속도, 전쟁, 기술이라는 3대 화두에 집착하는 그는 경제·사회적 힘이 아니라 전쟁과 속도가 인간사회와 현대문명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고 군인으로 알제리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에 대한 엄청난 충격을 받아 전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전쟁은 저의 대학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나왔지요”라고 말한다. 다음 다섯 가지 주장을 음미해보자.

(1) “속도는 권력 그 자체이다.”
(2) “인구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은 우월하고 지배적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들이 훨씬 더 빠르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속도는 서구의 희망이다.”
(3) “속도는 사냥꾼이나 전사에게 언제나 우월함과 특권을 가져다줬다. 질주와 추적은 모든 전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모든 사회에서 속도의 위계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지를 취득하고 영토를 지킨다는 것은 그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곳을 재빨리 훑어볼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오늘날에는 습격이 초음속의 속도로 이뤄져 경계경보를 울리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됐기 때문에 탐지, 확인, 응수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기습공격을 받을 경우, 최고권력자는 요격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방어체계의 가장 낮은 단계를 서둘러 승인하는 식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의 권위를 포기해야 할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5) “민주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나누는 것이다. 무엇을 나누는가? 의사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사회에서는 의사결정이 놀랄 만큼 짧은 시간의 한계 속에서 이뤄진다. 운송수단과 전송수단의 혁명이 민주적인 통제를 넘어서는 속도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적 속도 대신에 절대적 속도가 사용됨으로써 민주주의의 본질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난해하긴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한국이 떠오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독보적인 ‘빨리빨리 공화국’이 아닌가. 비릴리오는 전쟁 중심으로 ‘속도의 정치경제학’을 말하지만, 전쟁적 가치의 확산으로 삶이 전쟁처럼 수행되고 영위되는 ‘속도의 문화정치학’도 말해야 할 것 아닌가. 이 후자를 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빨리빨리’의 역사
 
한국의 ‘빨리빨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개화기에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들은 한결같이 한국인들의 ‘게으름’과 ‘느림’을 지적하고 있다. 왜 당시 조선인들은 그렇게 느려 터졌던 걸까? 1894년 1월에서 1897년 3월까지 조선을 네 번이나 방문하였던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shop: 1831~1904)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숍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단지 두 계급, 약탈자와 피약탈자로 구성되어 있다”며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 계급으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는 관료계급, 그리고 인구의 나머지 4/5인, 문자 그대로의 ‘하층민’인 평민계급이 그것이다. 후자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1)

배경식은 “그렇지만 가난이 항상 농민들의 삶에 질곡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며 “‘가난’은 탐욕스러운 관리들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막 구실을 하였다. 이런 모습이 낯선 이방인의 눈에 ‘실질적인 안락함’으로 비쳐질 정도로 조선 농민들은 가난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낙천적인 면을 보여주었다”고 했다.2)

가난이 착취의 보호막 구실을 해주는 상황에서 부지런하고 빨라야 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에 산업화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영남대 교수 박홍규가 잘 지적했듯이, “조급증과 정말 빠른 것과는 다르다. 로버트 레빈이 최근 『시간의 지리학』에서 31개국의 전반적인 생활속도와 걷는 속도, 우편의 신속함, 시계의 정확함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은 20위였다. 이는 대체로 산업발전에 의한 국민소득의 순서와 비슷하다. 따라서 어떤 나라의 국민성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산업화의 정도에 의한 것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3)

그럼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같은 시기에 가난과 학정과 수탈을 못 이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이어 해외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빨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빨리빨리는 조건의 산물일 뿐 한국인의 본질적인 특성과는 무관하단 말인가?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빠르지 않고선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이런 삶의 방식이 수천 년 누적되면 빨리빨리가 몸에 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발해사 연구자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송기호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조급성을 1960년대 이후 군사문화의 잔재로 여기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다음 두 가지 기록을 보자.

“우리나라 사람은 매사에 빨리하고자 하여 정밀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정밀하고 좋게 구워서 비가 새어 무너질 염려가 없게 하겠는가?”(『세종실록』 1433년 7월 12일) 세종이 근정전을 보수하기 위해 기와를 굽도록 지시하면서 내비친 걱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을 시작하고 그만두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서 끝과 시작이 아주 현격하게 차이가 납니다. 급하면 일에 착수하여 남에게 뒤질까 걱정하고, 느긋해지면 그만두어 서로 잊어버리고 맙니다.”(『광해군일기』 1608년 11월 9일) 관청이 임금에게 건의한 내용이라고 한다.4)
 
‘빨리빨리’는 전 국민의 행동강령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체질’과 ‘조건’ 둘 다 중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지역주의 문제도 그렇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역주의 문제를 논의할 때 ‘박정희 이후’를 강조하는 건 그 이전엔 지역주의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없기는커녕 매우 심각했다. 그럼에도 ‘박정희 이후’를 강조하는 건 지역주의의 그런 잠재적 문제가 박정희의 등장 이후 구조적 차원으로까지 악화되었다는 걸 지적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옳으리라. 따라서 ‘빨리빨리’ 문화에서 군사정권의 역할을 강조하는 건 유효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빨리빨리’가 전 국민의 행동강령으로 자리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과 1960년대부터 군사정권에 의해 추진된 군사작전식 개발독재다. 전쟁에서 군사작전의 정수(精髓)는 속도가 아닌가. 속도가 숭배받는 세상을 한 세대 이상 살아오면서 한국인에게 잠재돼 있던 빨리빨리 체질이 유감없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인은 서양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빨랐지만, 전통문화를 깨부수는 데에도 빨랐다. 주강현에 따르면, “즉각, 즉시, 금방, 곧바로, 지체 없이, 빨리빨리, 얼른얼른, 빠르게, 좀 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대단히 빠르게, 말할 수 없이 빠르게, 숨 가쁘도록, 죽기 살기로……. 근대화를 핑계로 천 년을 이어온 초가집 전통을 수년 만에 ‘싹쓸이’ 하였으며…….”5) 이제 ‘빨리빨리’에 관한 한 이 지구상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는 없다. 지난 2006년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뽑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베스트 10’을 보자.

① 자판기 커피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 ②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다. ③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지퍼를 먼저 내린다. ④ 삼겹살이 익기 전에 먼저 먹는다. 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을 누른다. ⑥ 3분 컵라면을 3분이 되기 전에 뚜껑을 열어 먹는다. ⑦ 영화관에서 스크롤이 올라가기 전에 나간다. ⑧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시에 양치질을 한다. ⑨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닫아버린다. ⑩ 편의점 등에서 음료수를 미리 마신 뒤에 계산한다.6)

외국인들은 배달을 잘 안 시키는가 보다. ‘빨리빨리’의 정수라 할 배달 문화가 빠졌으니 말이다. 한국은 독보적인 ‘배달(配達) 민족’의 나라가 아닌가. 다음 기사 내용이 재미있다.

“음식을 주문한 장소가 운동회가 한창인 초등학교 운동장이건 붐비는 지하철 역사(驛舍) 구석이건 상관없다.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서든 배달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아침밥, 과일 간식, 각종 선물은 물론 운동기구, 골프채, 심지어 놀이터까지 전화 한 통이면 배송해주는 ‘배달(配達) 민족’의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뭐든지 ‘빨리빨리’ 처리해주길 바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 미국식 서비스 정신이 결합해 생겨난 이 배달문화는 최근엔 해외로 다시 역(逆)수출될 정도로 ‘한국 특유의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7)
 
‘빨리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그간 한국인의 ‘빨리빨리’ 기질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재평가되었고 이젠 예찬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된 느낌이다. ‘빨리빨리’가 디지털 시대의 경쟁력 근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빨리빨리’와 ‘디지털화’는 천생연분이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준다. 요즘 기술적 진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스마트폰을 보자. 스마트폰 덕분에 실시간 업무가 가능해지다 보니 ‘빨리빨리’ 조급증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메일을 보낸 상대편이 “바로 확인하고 즉시 보낼 수 있는데 왜 빨리 답을 하지 않느냐”고 독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8)

미국에서 먼저 개발된 ‘빨리빨리 테크놀로지’라도 그걸 실생활에서 더 알차게 빨리빨리로 전환시키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다. 체질에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사(社)의 스타크래프트 2탄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한국 게이머들을 위해 게임의 속도감을 높였다지 않은가.9)

물론 여전히 ‘빨리빨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컨대, 서강대 교수 박호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8·15 이후 우리 사회를 줄기차게 지배해온 통치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빨리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정신일 것이다. 말하자면 ‘대충대충’, ‘후딱후딱’ 이데올로기가 바로 보수집단의 정치이념이자 생활철학이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졸속의 원리’는 조그만 도로공사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나라 구석구석에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예컨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그 귀엽고 조그만 사례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100여 년 전에 일본 사람이 만들어놓은 한강대교는 아직도 끄떡없이 건재하고 있지 않은가.”10)

그렇지만 바로 그런 ‘빨리빨리’가 한국이 자랑하는 초고속 압축성장의 비결이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물론 압축성장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건 그만큼 부작용이 컸다는 뜻이지 한국이 전화(戰禍)의 잿더미에서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룬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닐 게다. 한국의 압축성장과 빨리빨리를 몹시 부러워하는 나라들도 많다는 걸 감안하는 게 공정하지 않겠는가. 한국 경제의 압축혁명 연구서를 펴낸 도미니카 공화국 주한 대사 엑토르 갈반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우리 도미니카인들에게 ‘희망의 얼굴’입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의 급속한 발전과정을 연구한 책을 한 권 썼습니다. ……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정신이 한국을 짧은 기간에 이처럼 발전시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11)
 
이명박만 ‘빨리빨리’인가?
 
박호성의 위와 같은 주장은 우선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졸속’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무엇보다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 평가가 ‘졸속’으로 끝났다. 직접 사업비만 무려 22조 원이 들고, 공사 구간만 해도 634킬로미터에 이른다지 않는가.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평소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백년대계’의 화두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모든 것들이 ‘졸속’으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 그뿐만 아니라 ‘행정구역 통합 논의’도 ‘졸속’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 그뿐인가. 역시 ‘대충대충’ 만들어진 입학사정관 제도란 것은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기는커녕 주먹구구식 관찰에 그칠 뿐 아니라 정실에 좌우될 위험성까지 농후하다는 예리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하기야 국회까지 나서 미디어 법을 ‘후딱후딱’ 통과시켜, 헌법재판소로부터 간곡한 매를 맞기도 하지 않았는가.”12)

맞다. 이명박이 국가정책까지 토목공사 하듯 ‘빨리빨리’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빨리빨리’는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일관된 주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21』(2009년 2월 20일)에 따르면, “한국의 보수층의 미덕은 효율이다. 효율성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은 ‘박정희 향수’로 이어진다. …… 이런 논리의 결과가 ‘속도전’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명박 정부의 확고한 지지층들은 고민보다는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원한다. 정부가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신문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이어진 국회의 ‘입법 전쟁’에서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는 비판하지 않고, 야당의 폭력만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논리 선상에 있다. ‘빨리빨리’다.”13)

눈에 잘 보이는 ‘토목공사’에만 주목할 일도 아니다. 이명박만 ‘빨리빨리’에 중독돼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산악인 이태영의 다음과 같은 말이 흥미롭다. “히말라야 셰르파들은 한국인만 보면 흉을 보듯 ‘빨리빨리’를 외친다. 고산 등반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비스타리(천천히)’와 확연히 비교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한국일보 기자로 참가했을 때 한국식 강행군이 건설현장에서만 아니라 고산 등반에서도 세계적인 화제가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14)

우리는 자주 빨리빨리의 내용에 따라 빨리빨리를 차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혁진보주의자는 개혁진보의 속도가 빠르다고 불평하는 법은 없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느려 터진 개혁진보라도 너무 빠르다며 ‘대충대충’, ‘후딱후딱’, ‘졸속’의 딱지를 들이댄다. 각자의 입장에서 빨리빨리를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정권 이전에 한국인 다수가 빨리빨리에 중독돼 있는 걸 어이하랴. 예컨대, 최근 서울이건 지방이건 경찰의 집중 단속 대상으로 떠오른 ‘교차로 꼬리 물기’를 보라. 교통 인프라와 자동차 홍수 문제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치열하고 필사적이지 않은가. 2010년 2월 1일 오후 6시 5분께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앞 사거리의 풍경을 잠시 감상해보자.

“이날 경찰들은 꼬리 물기와 끼어들기 차량을 집중 단속했다. 단속 지점 500미터 전방에는 ‘단속 중’이라는 입간판을 세워 운전자들이 단속 사실을 알도록 했다. 경찰의 단속 덕분에 평상시와 달리 경기장 네거리는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운전자들은 황색신호를 물고 무리하게 교차로로 진입하는가 하면, 창문을 열고 경찰에게 욕설을 하는 장면도 목격됐다.”15)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
 
사실 한국인의 빨리빨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바로 입시전쟁이다. 최근 『교육전쟁』이라는 책을 쓴 네덜란드 출신의 청심국제중고 교사 마틴 메이어가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로는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땅은 좁고 인구는 많고 자원은 없으니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운영 시스템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교육 제도를 바꾸지만 절대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이지요. 최소한 수년을 내다보고 인내심과 용기, 창의성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16)

잘 보았다. 답은 간단하다. ‘빨리빨리 문화’는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교육문제 해결도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교육이 엉망이라는 건 아니다. 살인적인 입시전쟁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일 뿐, 현 입시체제에도 그 나름의 장점은 있다. 다만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느니 교육계 비리를 척결하겠다느니 인성교육을 강화해야겠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일 뿐이다. 빨리빨리의 화신이라 할 이명박이 교육문제를 직접 다루겠다며 팔 걷어붙이고 나서고, 텔레비전 뉴스가 그걸 크게 보도하는 걸 보고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젠 별 놈의 쇼를 다 하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 다음엔 “정말 모르고 저러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저러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명박에게 돌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용만 좀 다를 뿐 똑같이 빨리빨리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11일 노무현이 청와대에서 제2기 교육혁신위원 25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면서 “대학을 가기 위해, 필수 과제를 위해 사교육을 받는 일은 10년 내에 없어질 것”이라고 큰소리쳤을 때에 내 입에선 “미쳤군. 진짜 미쳤어!”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쩜 저렇게 미련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모르고 저러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저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과 노무현만 그런 게 아니다. 보수파건 진보파건 그 누구건 수십 년이 걸려야 효과가 나타나는 방법밖엔 없다는 건 인정하지 않고 한칼에 모든 걸 해결해보겠다는 조급증에 들떠 있으니 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는 게 아닌가. 사실 대학을 줄 세워 서열을 매기는 것도 식별을 빨리 하기 위한 빨리빨리의 산물이다. 학교 간판을 따지지 않고 일일이 개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므로, 간판으로 때려잡는 게 훨씬 빠르다는 발상의 산물인 것이다. 인권은 침해당할망정 나라 자체가 망할 염려는 없다. 그래서 그런 이치를 잘 아는 한국인들은 좋은 간판 따는 데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논란의 핵심은 ‘속도’에 있다. 중앙집권주의자들은 일사불란한 1극 집중체제가 선사하는 속도를 사랑한다. 균형발전주의자들은 그 속도 숭배로 인한 문제들을 지적하지만, 속도에 중독된 한국인 다수를 설득하는 데엔 역부족이다. 서울 1극 사회의 속도 숭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사람들은 다시 속도 숭배의 논리에 의해 자기 고향 살리자는 균형발전을 외면하고 저주한다. 속도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을 내장한 개념인가 보다.

빨리빨리의 내용에 휘둘리지 말고 총합적인 조망을 해보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이다. 그렇듯 ‘빨리빨리’엔 명암(明暗)이 있지만, 아무래도 명(明) 쪽이 큰 것 같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빨리빨리’가 한국 사회의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탐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걸 연구하면 비릴리오의 ‘속도의 정치경제학’에 필적하는 ‘속도의 문화정치학’이 한국을 무대로 탄생할 수 있으리라.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빨리빨리’ 이뤄지는 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건너뛰거나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걸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말이다. 그래서 책임 규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책임윤리’가 자리 잡기도 힘들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이념과 정치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빨리빨리’다. 이타적인 ‘빨리빨리’임에도 징그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빨리빨리엔 독선과 오만이 꼬리를 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빨리빨리의 문화정치학’에 관심을 가져보자.
 
[각주]

1) 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 1994, 511~512쪽.
2) 배경식, 「보릿고개를 넘어서」, 한국역사연구회,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3』, 역사비평사, 1999, 219~222쪽.
3) 박홍규, 「‘빨리빨리’의 나라」, 『경향신문』, 2007년 6월 15일자.
4) 김기철, 「“고구려인, 상갓집에서 풍악 울렸다”」, 『조선일보』, 2010년 1월 23일자.
5) 주강현, 『21세기 우리문화』, 한겨레신문사, 1999, 39쪽.
6) KBS 2TV <스펀지> 2006년 1월 18일 낮 재방송.
7) 송혜진, 「‘빨리빨리’ 한국의 배달문화, 이젠 해외 안방까지」, 『조선일보』, 2009년 9월 8일자.
8) 심정선, 「스마트폰! “너 없인 못 살아”… “너 땜에 못 살아”」, 『조선일보』, 2010년 1월 27일자.
9) 김범석, 「“스타크 2탄, 한국 ‘빨리빨리’ 문화에 맞춰 속도감 높여”」, 『동아일보』, 2009년 5월 22일자.
10) 박호성, 「빨리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한겨레』, 2009년 11월 14일자.
11) 설원태, 「“한국의 ‘빨리빨리’ 배우고 싶다”」, 『경향신문』, 2008년 8월 7일자.
12) 박호성, 「빨리빨리, 그러나 아무렇게나」, 『한겨레』, 2009년 11월 14일자.
13) 이태희, 「이명박 투표층의 77.3% 낙관적인 기대감… 지지층의 공통된 주문 “빨리빨리”」, 『한겨레21』, 제748호(2009년 2월 20일).
14) 이태영, 「낭가파르바트의 교훈」, 『한국일보』, 2009년 7월 18일자.
15) 하종진, 「교차로 꼬리물기 집중단속 첫날」, 『새전북신문』, 2010년 2월 2일자.
16) 신용관, 「<잠깐! 이 저자> 『교육 전쟁』 마틴 메이어 청심국제중고 교사」, 『조선일보』, 2009년 10월 10일자.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0년 4월 호에 실렸습니다.

기사입력: 2010/03/30 [17:2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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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논쟁] "민노-진보신당은 진보정당이 맞는가?" 안일규 2010/06/07/
[진보논쟁] 진보정당? “‘통합’ 아닌 ‘노동자당’ 재창당해야” 안일규 2010/06/04/
[진보논쟁] 대한민국 '참 진보세력'이여, 단결하라! 홍정표 2010/05/10/
[진보논쟁] 역동성과 조급성, 빨리빨리의 문화정치학 강준만 2010/03/30/
[진보논쟁] 진보와 개혁의 정치경제학 김기원 2010/01/20/
[진보논쟁] 모습 드러낸 민노 '대통합 로드맵'…노회찬 입장은? 취재부 2010/01/13/
[진보논쟁] 범야권 '선거연대(5+α)' 본격화, 민노 '일단 긍정' 홍제표 2010/01/08/
[진보논쟁] 변함없는 시민사회, 진보에도 고려장이 필요하다 공희준 2010/01/08/
[진보논쟁] 국가경쟁력, 한국적 사회진화론 다시보기 강준만 2009/12/29/
[진보논쟁] 손호철 교수 "반MB연대 걸림돌은 민주당" 쓴소리 홍제표 2009/12/11/
[진보논쟁] 왜 한국인은 자국의 경험을 배우지 않나? 강준만 2009/11/23/
[진보논쟁] 왜 한국사회에선 '링컨 예찬'만 난무하나 강준만 2009/10/26/
[진보논쟁] 진보진영, 왜 대중의 지지와 인기못얻나 강준만 2009/09/21/
[진보논쟁] 이념-정책만으로 승부하려면 ‘선거’하지마라 안일규 200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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