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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에 세워질 김대중 상징조형물 유감
[공희준의 일망타진] DJ 동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실천해야
 
공희준
요즘 좀 가깝게 지내는 선배가 그런 말을 종종 한다. “우리 근본 없는 인간들끼리 잘해봅시다.” “우리가 남이가?” 또는 “우리민족끼리!”와 같이 자칫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소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근본 없는 인간’이라는 대목에서 확 꽂혔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참회록 격인 ‘삼성을 생각한다’는 단순히 삼성에 대한 폭로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지배계급의 추악한 실상에 대한 거침없는 고발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확인하는 사실은 이 땅의 권력층이 부패했을 뿐더러 무능하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능함을 인맥과 연줄에 기초한 로비로 만회하려 시도했다. 그러므로 비자금 조성과 뇌물 살포는 필연적으로 예정된 경로이고 결과였다. 이건희 일가와 그 수하들의 문어발식 로비공세에서는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주역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교동도 봉하마을도 그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이 삼성의 영향력 아래로 포획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이학수와 노무현의 학맥이었다고 한다. 이건희의 오른팔 이학수와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공통분모 덕택에 인간적으로 매우 절친했고, 노무현의 대통령 선거 승리에 전전긍긍하던 삼성그룹 경영진 내에서 오직 이학수만이 삼성에게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이학수의 점괘는 재수 없게도 적중하였다. 김용철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노무현 정부 정책 가운데 삼성에 불리한 것은 거의 없었다. 대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제안한 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채택한 사례는 아주 흔했다. 심지어 삼성경제 연구소는 아예 정부부처별 목표와 과제를 정해주기도 했다.”

삼성이 제안한 정책 중에서 제일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즉 한미FTA였다. 한미FTA를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일 당시의 국무총리였던 한명숙을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하려고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는 꼼수를 부린다. 한미FTA의 주무장관 정세균은 안희정과 백원우 등의 친노 386 정치인들의 철통호위를 받으며 민주당 당권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재벌이 제안한 의료(보험) 민영화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정책에 반영시킨 유시민은 친노신당의 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삼성의 금품로비에 넘어갔다고는 믿지 않는다. 문제는 그가 ‘근본 없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초심을 잃었다는 데 있다.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수구기득권 세력이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한국사회를 뜯어고치겠다는 옹골찬 개혁의지가 학교선배 이학수로 말미암아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만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학수를 ‘학수 선배’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근본 없는 인간에게 선배가 어디 있고 후배가 어디 있나? 선후배고 나발이고 사람 구실 못하는 개돼지 못한 불의한 존재면 그냥 들이받는 거지.

근본 없이 살아온 인간은 스스로의 근본을 국민으로부터, 역사로부터, 시대정신으로부터 찾아야만 한다. 노무현의 실패를 거울삼아 근본 없는 인간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가다듬는 바이다.

우리 심심풀이로 내기 한번 해보자.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저서들과 함께 노사모의 금서목록에 조만간 올라갈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노사모에서 금서로 분류되지 않는다면 내가 소녀시대 CD 10장을 김대중 도서관에 쏘도록 하겠다. 이러한 엽기적인 기증품을 도서관 측에서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2. 소시 음반 열 개를 김대중 도서관에 기증하는 일보다 훨씬 황당무계한 사태가 벌어질 모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다가 기막힌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전남개발공사가 DJ의 상징조형물을 무안에다가 세운다는 것이다. ‘인류의 평화 - 김대중’이란 이름을 지닌 청동 소재의 상징조형물이란다. 조형물의 모형을 촬영한 사진을 접하고 나는 벌려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건 완전히 평양의 김일성 동상의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 전남개발공사가 무안에 세울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상징조형물     © 전남개발공사
물론 김일성 동상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적은 크기다. 제작비도 5억 원 정도로 터무니없이 큰 액수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의도와 발상, 그리고 예상되는 후폭풍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나한테도 김일성 동상처럼 생각될 정도면 일반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다들 손발이 오그라들 것이다.

전남개발공사가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개발’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부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뒤편에서 얌전하게 삽질이나 하고 있으면 될 노릇이다. 기념사업 한답시고 고인 욕보이는 가당찮은 짓은 제발 하지 말기 바란다.

작년 가을쯤에 동교동에 있는 선배가 찾아와서 김 전 대통령을 어떻게 기념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해 내게 아이디어를 구해갔다. 구체적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이것만큼은 확실히 떠올릴 수 있다. “선배님, 절대 친노세력 흉내 내지 마세요. 국민의 정부를 참여정부 급으로 격하시키는 자충수입니다.” 굳이 동상 세우지 않아도 김대중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달리 수많은 치적을 남기고 나라를 진보시킨 성공한 정부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친노세력이 왜 저렇게 노무현을 앞세운 유훈정치에 광분하는지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몇 페이지만 읽어도 환히 알 수 있으리라. 한마디로 켕기는 구석이 많은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하기 직전까지도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라는 3대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고민하였다. 그런데 그의 정책과 노선을 이어받겠다고 주장하는 부류가 한다는 짓거리가 고작 김일성 동상 닮은 기념물 만드는 거라니. 이는 가장 극악하고 악질적 형태의 음해고 능멸이다.

5억이면 이런 불경기에는 적은 돈이 아니다. 그 돈으로 전남지역 불우학생들의 장학금을 김대중 지지자 명의로 기부하는 것이 진정으로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다. 아니면 을지로 입구에 을지문덕 장군 동상을 세우던가. DJ는 고구려의 대륙적 기상을 본받기를 역설한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이기도 하였다. 전남개발공사에 이르노니 추종자가 구제불능의 치명적 안티인 정치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 하나만으로도 이미 차고도 넘침을 부디 명심하시라.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0/02/18 [20:1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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