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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온 마츠리' 기원은 고대 한국이었다
[문화기행] <2편> 고대 한반도 신을 모시는 “기온마츠리”를 보셨나요?
 
김영조
▲     © 김영조

교토 기온마츠리(祇園祭)는 도쿄 간다마츠리(神田祭), 오사카 텐진마츠리(天神祭)와 함께 일본 3대 마츠리라 불리며 매년 7월1일부터 31일까지 1개월간 교토 시내 중심부와 야사카신사(八坂神社)에서 행해진다. 기온마츠리의 최절정은 화려한 32기의 야마보코 순행(山鉾巡行, 이하 “가마행렬”로 바꿔 부름)이며 이 밖에도 마츠리 기간 내내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기온마츠리 총본사인 교토 야사카신사 마츠리를 시작으로 일본 곳곳에서 펼쳐지는 기온제만도 수십 곳에 이른다.

기온마츠리의 유래 

지금부터 1,100여 년 전인 869년 교토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오늘날과 같은 전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전염병 발생을 신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고즈덴노 일명 스사노오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재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으며 당시 일본의 전국 66개 행정단위를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 오닌의 난(1467-77년)때 마츠리는 중단되었으나 1500년에 민중의 손으로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부터 중국과 페르샤, 벨기에 등에서 들어온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나타낸 장식용의 직물. 벽걸이 등으로 쓰임)등을 가마장식에 쓰게 되어 화려함을 더했다. 장식품의 호화로움 때문에 가마는 “움직이는 미술관”이라고도 불린다. 종종 화재를 만나 가마가 불타는 일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민중의 손에 의해 복원 재현되어 마츠리의 전통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현재 마츠리에 쓰이는 가마는 야마(“山”이라는 한자를 쓰며 무게 0.5톤~1톤 규모)가 23기이고 호코(“鉾”라는 한자를 쓰며 무게 7~12톤 규모)가 9기로 모두 32기이다. 야마와 호코를 합쳐 부를 땐 야마보코라 부른다. 야마보코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가마”가 적당하며 “수레”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수레는 물건을 싣는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며 가마는 귀한 사람이 타거나 신령을 태우는 것이므로 야마보코의 한국어는 “가마”가 적절하다. 따라서 야마보코순행은 “가마행렬”로 부른다. 

▲ 끝에 뾰족한 창을 달고 12톤까지 나가는 커다란 가마 호코(왼쪽) 소나무 등을 위에 꽂은 1톤 이하로 비교적 작은 가마 야마(오른쪽)     © 김영조
 
고대 한반도와 기온마츠리 관계

2009년 7월 기온마츠리를 위해 교토시 관광협회는 26쪽의 ≪京都 祇園祭≫란 책자를 발행했는데 이에 소개된 기온마츠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온제(祇園祭)

장소

야사카신사(八坂神社, 원래는 기온사[祇園社]였음)

주신(主神)

우두왕(牛頭天王 일명 스사노미코토[素盞鳴命]라고도함)

제삿날

970년부터 음력 6월14일

제사목적

전염병 등 병을 물리치려는 기원

대부분 기온마츠리를 소개하는 책자 등 일본 쪽 자료는 이렇게 되어 있어서 역사 전공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 어디에서도 이러한 표기에서 고대 한국 관련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기온마츠리와 고대한국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를 풀려면 다음 두 가지를 밝혀야 한다. 하나는 기온사(현, 야사카신사)의 유래이며 다른 하나는 기온사에 모시는 우두천왕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우선 기온사의 유래를 홍윤기 교수의 《일본의 역사왜곡》, 학민사 222쪽을 참고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이메이천황(齋明天皇,백제계여왕, 655~661 재위) 2년(656년)에 고구려로부터 왜나라 왕실에 건너온 사신 이리지는 신라국 우두산(牛頭山)에 계신 스사노오미코토신(須佐之男明神)을 야마시로국(山城國, 교토의 옛이름)의 야사카향(八坂鄕)으로 모시고 와서 제사 드렸다. 이리지는 왕으로부터 야사카노미야스코(八坂造)라는 성을 받았다. (八坂神社,《由緖略期》) 

위 자료에서는 이리지가 우두산의 신 “스사노오미코토”를 모셔왔다고 되어 있다. 곧, 스사노오미코토=우두왕으로 656년에 신라에서 모셔다가 현재 야사카신사에서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있다. 

“신을 모셔왔다.”라는 말을 요즈음 사람들은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요즘도 장남이 모시던 제사를 못 모실 경우에 차남이 “모셔와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차남이 모실 형편이 안 되면 “절에 모신다.”든가 하면서 “신을 이동시켜서”라도 모시는 것이 제사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교토 기온제(京都 祇園祭)>에 있는 “기온제 역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869년 교토에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는 우두왕의 타타리(たたり, 노여움)이다” 

여기서 일본말 “타타리”는 한국어 “탈”이 원형이다. “산소를 잘 못 쓰면 탈 난다.”가 좋은 예이다. 이를 토대로 “우두왕의 타타리”를 풀이해보면 우두왕이 탈이 나서 그 화풀이로 교토에 전염병을 창궐시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면 656부터 모셔다가 줄곧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내오던 우두왕의 탈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당시 청화왕(淸和王, 869년)은 점쟁이나 대신들을 소집해 잔뜩 화(탈)가 나신 우두왕을 위로해주기 위한 회의를 열었고 그 결과 당시 66개 지방 숫자만큼 가마(호코와 야마)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어령회(御靈會)를 열기에 이르렀으며 이것이 오늘날 기온제의 원형이다.  

결국, 교토의 기온마츠리는 고대 한반도 신인 “우두왕”의 “탈”을 달래기 위한 제사였던 것이다. 신라신 우두왕에 대한 제사를 일본은 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츠리”란 이름으로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제례의식에서 시작된 마츠리는 그 본래 의식이 흐려지면서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에는 마츠리에 견줄만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서구화,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전통놀이나 제례들은 극복되어야 할 전근대적인 낡은 가치관이라도 되는 양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급속히 급감하고 말았다. 이에 비해 일본의 마츠리는 지역 사회나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일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민중적 종합예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꾸며지고 포장된 마츠리를 보게 될 때마다 우리의 잔치문화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비록 일제의 강압에 의해 수백, 수천 년 내려오던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일본의 마츠리가 그러하듯 축제 곧 잔치문화도 새로운 시각으로 재평가하여 발굴할 것은 발굴하고 재현할 것은 재현하되 관 주도가 아닌 주민참여의 한바탕 잔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글쓴이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59yoon@hanmail.net)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sol119@empal.com)
 

* 이 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나 참고될 만한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위 누리편지로 연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글이 필요하신 분은 꼭 미리 알려주십시오. 
* 다음에는 "제5부 백제여인과 간무왕" <제1편 간무왕을 모시는 화려한 지다이마츠리(時代祭)>로 이어집니다.

기사입력: 2009/11/22 [21:3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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