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좌파 총리의 서울찬가, 정운찬은 진보인가?
[우리힘의 눈] 강단좌파 정운찬의 얼굴에서 김문수 이재오가 떠오른다
 
아찌   기사입력  2009/11/17 [17:50]
이명박 대통령에, 정운찬 총리라는 의외의 카드는 국면 전환용으로는 획기적인 발탁으로 보일지 몰라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조합이라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대통령의 뜻을 미리 헤아려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에 껄끄러운 문제만을 찾아 막후에서 총대를 메고 수습하는 정운찬 총리의 행보가 이명박을 더없이 잘 보필하는 환상적인 조합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나는 정운찬 총리가 총리에 내정되는 것이 그래도 다른 인사로 채워지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 인사였기 때문에 특정 정권에 의해 민주주의의 근간이 일시에 무너지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이런 야만적 행위를 제어하는데 있어서는 조금이나마 모종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보았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맡게 된 총리라는 자리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의 소신을 펴기에 어려운 자리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걸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진보적 시각으로 살아온 이력이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유린되는데 대한 일말의 애정 어린 우려의 발언이라도 나와야 마땅한데도 그는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총리에 내정되기 이전부터 용산 문제에 관심을 보였고 총리에 내정된 후에는 유족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는 면에서 보면 달리 봐야 될 면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에게 용산 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희망을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총리의 용산 방문은 용산 문제의 해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다독이는 격식이 필요한 자리였기에 불쌍한 사람들에게 값싼 동정심을 베푼 격려의 자리를 마련한 것에 불과했다. 용산 문제가 발생할 당시의 총리와 대통령을 대신하여 얼굴마담으로 다녀 간 것에 불과했는데 그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눈물이 자상한 해결사로 읽혀지는 바람에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부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뿐이다.
 
총리의 용산 방문 건 하나만을 보아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전폭적으로 현 정권에 투항했거나 극과 극이 통한다는 통념을 내면에 지니고 있던 강단좌파였거나 둘 중의 하나이거나 둘 다를 가진 인물로 보인다.
 
정운찬 총리는 용산 문제를 기만한데 그치지 않고 세종시 개발에 대한 소신 발언으로 현 대통령과 기득권 세력의 악역을 차처하고 있다. 소신을 발휘해야 할 문제는 용산 문제를 비롯하여 4대강 죽이기와 미디어 악법 등 산적된 현안이 수두룩한데 좌파 총리의 눈에는 서울의 기득권 지키기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그의 우려는 행정 기능이 분리되었을 때 일어나는 혼란과 효율성 저하라는 측면에서 국가적 인 중대한 결함으로 작용할 것이란 걱정에서 비롯된 소신인 듯하다. 이런 우려는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세종시 개발이 정치적인 미묘한 사안으로 변질되어 묻혀 버리는 바람에 서로 눈치만 보는 문제를 자신만이 용기를 내어 소신 있게 드러내 놓고 공론화시켜 가면서 확실하게 해결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반대자들이 주로 써먹는 논리 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논리에 속하기는 한데, 교통과 정보와 통신이 이렇게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대에 서울과 한 두 시간 거리에 떨어진 대전 인근에 행정 기능이 내려온다고 해서 정운찬 총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국가적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에 중대한 큰 하자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얻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가 고르게 발전하기 위한 전제는 서울이라는 일극체제를 허무는 일이다. 하지만 답이 나와 있는데도 정작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서울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면서 서울이 곧 국가이고 서울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운찬 총리의 걱정은 국가적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와는 별 관련이 없고 서울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살아가려는 서울에 사는 부동산 부자들에게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이제는 서울도 아파트가 포화 상태라서 집값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서울의 집값을 지탱해 주는 모든 지방의 서울 식민지화라는 서울 중심의 일극체제가 현재와 같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강화해야 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행정 기능의 일부가 빠져 나갔을 때의 여파는 크거나 작을 수도 있는데 작다 하더라도 서울의 집값에는 큰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서울의 기득권 세력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부동산을 위주로 키워 온 투기 경제는 모래 위의 성처럼 지방을 주변화 했기에 얻어진 보잘것없는 결과일수도 있기에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잠재해 있다고 봐야 한다.
 
정운찬 총리가 나라의 장래를 자기만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처럼 강한 톤으로 소신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사실은 그도 기득권의 한 축으로서 서울의 기득권 세력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술책을 쓰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하나를 때리면 둘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부수적으로 이것까지 챙기려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운찬 총리는 정운찬 총리 이전에 진보라는 정치적 이념의 극단에서 한나라당으로 전향한 인물들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런데 여기에 한 인물이 더 겹쳐진다. 완장차고 나서서 현 정부와 이념이 다른 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라고 엄포를 놓고 설쳐대던 인물 말이다.
 
정운찬 총리를 보면 민중당 출신의 김문수와 이재오가 동시에 떠오르고 세종시라는 완장을 찬 모습이 유인촌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1인2역을 연출하는 이명박에게는 알토란같은 훌륭한 총리이지만 우리에게는 진보인 척하며 거드름을 피우던 강단좌파의 실체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아 매우 실망스럽다.
 
2%의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정치적 스펙트럼을 다양화하기 위한 구색을 갖추는데 매우 적절한 분이 총리로 임명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명박에게 당장은 유용한 인물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는 없는 인물로 보이며, 오히려 새로운 분란을 일으키고 분란의 한 가운데에 서서 한나라당을 또 다른 위기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11/17 [17:5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 2009/11/23 [08:52] 수정 | 삭제
  • 정운찬은 강단좌파였던적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강단좌파란 실천운동에 개입하지 않는 좌파학자를 조롱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운찬씨는 케인즈주의자고 케인즈주의는 좌파 사상이 아니지요. 현 정부와 취임이전에 대립각을 세우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고 하여 좌파인것은 아닙니다. 이재오 김문수는 좌파에서 변절한 자들이 맞지만 정운찬은 원래부터 우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