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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 얼빠진 후손을 용서하세요"
[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세종대왕 동상 앞 영어광고물? 정신나간 서울시
 
이대로   기사입력  2009/11/05 [11:16]
나는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 참된 사람으로 살아가기가 힘이 든다. 어제도, 한 달 전에도, 한 해 전에도 그런 느낌을 뼛속 깊게 받았다.  나와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공무원이, 한국의 대기업과 공기업이, 한국의 잘난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참된 한국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는 내 속을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묻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만 적는다. 아래 사진은 어제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글사랑 운동을 하는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운영위원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동상 앞에 한국공익광고공사가 설치한 'WATER'란 영어 광고물 앞에서 “세종대왕님 정신 나간 후손을 용서하세요.”라고 쓴 광고물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려니 경찰이 막았다. 그래서 나는 “이 한국 사람의 의견이 잘못된 거라면 감옥으로 끌고 가라.”고 말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시위하는 사람을 광장 밖으로 나가라고만 했다. 
 
▲ 11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영어 광고물 앞에서 1인 시위하는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운영위원. 한국공익광고공사의 “물을 아끼자.”는 뜻으로 'WATER' 라 쓴 공익광고다.     © 이대로

영어가 한국말을 짓밟고 한국 사람의 얼을 빼버렸다
 
이 영문 광고물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비웃고 있으며, 한글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을 짓밟고 있었다. 그래서 이 광고물을 누가 왜 설치했는지 알아보려고 거기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물었더니 “ 우리들은 고용된 사람들이다. 관련 회사에 물어보라.”고 말한다. 마침 그 행사 준비를 하는 설치회사 관계자가 세종문화회관 안에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어서 내 신분을 밝히고, 한글사랑운동을 하는 모임에서 저렇게 영어 광고물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어찌 생각하는 지 물으니“영어는 세계 공용어다. 광화문광장은 세계의 광장이다. 자세한 것은 코바코에 물어보라.”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코바코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 행사를 개최하는 회사란다. ‘코바코?’란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던 내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을 뒤로 하고 한글학회 사무실로 와서 셈틀을 열고 검색을 해보니 ‘코바코’가 ‘한국공익광고공사’란 문화부 소속 공기업이었다. ‘한국공익광고공사’라고 말하면 내가 바로 알아들었을 터인데 내게는 ‘ 코바코’가 ‘코박고’로 들려서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을 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 회사 누리집에서 간부들의 얼굴 사진과 경력을 보니 방송국과 신문사 간부를 지냈거나 교수와 대통령선거 특보였으며, 문화부 국어정책과장을 지낸 분도 있었다. 나라의 세금으로 운영하며 온갖 혜택을 받는, 국어정책을 다루는 주무부처인 문화부 소속 회사의 사람들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동상 앞에 저런 큰 글씨로 'WATER' 란 걸 설치해도 되는 것인지 한심스러웠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세종대왕 동상 뒤에 만든 꽃밭의 이름을 ‘‘플라워 카펫’이라고 짓고, 동상 앞에는 세종대왕이 세계 최초로 만든 측우기 모형을 만들어 놓고 한자로 ‘測雨臺’라고 써 놓았다. 모두 세종대왕과 정신을 무시하는 짓들이다. 저 얼빠진 사람들이 한 둘 이 아니니 크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저께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국회 한국외교와 동북아평화연구회’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를 초청해 특강을 듣고 난 뒤에 질의응답을 할 때 일이 생각이 났다. 내가 미국 대사에게 “한글날에 광화문 미국 대사관 건물에 한글날을 축하하는 펼침막을 걸어주어서 고맙다. 어째서 왜 그런 좋은 일을 했는지 알고 싶다.”고 질문을 하니 사회자는 칭찬하는 말이니 대답을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니 스티븐스 대사는 아주 당당하게 “세종대왕은 훌륭한 분이고 한글은 그 분이 만들었다. 한글날에 그 분의 동상이 대사관 앞에 서는 것을 보면서 세계적 문화유산 한글이 태어난 날을 축하했는데 많은 한국인이 고마워해서 기쁘다.”고 당당하게 당연한 듯 말해서  많은 분이 내게 좋은 질의를 했다고 칭찬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저께 스티븐스 미국 대사는 한국말을 잘 하지만 인사말은 한국말로 하고 공식 특강은 영어로 했다. 주재국의 말을 잘해도 미국말로 말하는 게 미국의 방침이라고 했다. 주재국의 국경일을 축하하고, 주재 국민이 존경하는 세종대왕 동상 건립을 보면서 그 나라의 말글로  축하 현수막을 건물에 크게 거는 태도가 본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정부기관은 그런 현수막을 거는 걸 본 일이 없다. 대기업들은 한글날이 공휴일 되는 것도 발 벗고 반대하고, 국회의 상징인 깃발과 국회의원 보람(빼찌)에 쓴 한자를 한글로 바꾸자는 것도 반대하는 국회의원이 많은 것에 비하면 미 대가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국어정책 주무부처 공기업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 영어로 먹칠하는 것에 견주면 크게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563돌 한글날에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옆의 미국 대사관에 걸린 “세계적 문화유산인 한글이 태어난 날을 축하합니다.”는 한글날 축하 펼침막. 빨간 도장은 ’심은경‘이란 미 대사의 한글이름이다.     © 이대로

얼빠진 한국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어찌 한단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으니 한국공익광고공사 이사란 분이었다.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라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만나자고 했지만 미안해하는 거 같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그 회사 무슨 국장이란 사람이 전화가 또 왔는데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시대이고 광화문광장은 세계의 광장이다. 물을 아끼자는 뜻으로 하는 행사니 이해 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만났더니 변명만 하고 있어서 “그 영어 광고문을 보고 물을 아끼자는 생각이 들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글로 ‘깨끗한 물! 물을 아끼자!’ 고 쓰고 영어도 쓰면 되지 않는가. 지금 우리말과 한글이 영어에 몹시 더렵혀지고 있다. 그 나라말은 그 나라 얼이다. 물만 아끼자는 공익광고만 하지 말고 우리말을 더럽히지 말자는 공익광고도 한번 해보기 바란다.”고 부탁하니 광고심의회 논의를 거쳐야 하고 1년 계획을 세워서 하기 때문에 바로 대답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 심의회 위원 가운데 국어를 사랑하는 국어학자나 전문가가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해서 한 사람이라도  넣으라고 부탁했으나 두고 볼 일이다.
 
서울시는 한글날에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글날 축하 조형물을 일주일만 하도록 허락해달라고 문화부가 부탁하니 거절한 일이 있다. 그런데 국경일을 축하하는 공익 광고물을 같은 국가기관이 말해도 안 들어준 서울시는 상업 목적의 지저분한 설치를 세종대왕 동상 앞에 날마다 계속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옆 열린시민마당에 한글문화관을 짓자고 건의하니 세종대왕 동상을 건립하고 지하도에 세종거리를 만들어서 표를 많이 얻었으니 그런 거 더 필요가 없단다. 서울시장은 진정으로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한글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인기 얻는 자료로만 보는 거 같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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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05 [11: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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