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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부역화가 김기창의 얼굴 닮은 세종대왕 동상
[우리힘의 눈] 동상은 세워지고 진실은 가려지고 친일행적은 가려진다
 
방학진
한글날인 10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공개된 동상은 높이 6.2m, 폭 4.3m에 무게가 20t이나 되는 대형 동상이다. 언론들은 하나같이 보도자료를 베껴 쓴 듯 ‘동상의 웅장함과 성군의 부드러운 이미지, 한글의 우수성’을 논하고 있으며 심지어 동상의 제막으로 인해 사회 통합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난데없는 주장마저 보인다.

“세종이나 충무공뿐만이 아니다. 안중근·이승만·김구·박정희도 보다 번듯한 동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영웅들의 동상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 사회는 강력한 정신적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동상이 없는 곳에 분열이 있고 동상이 서는 자리에 통합으로 가는 발걸음이 있다.”(중앙일보 10월 12일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동상(동양의 경우 동상보다는 비석의 형태겠지만)은 권력의 정통성을 자랑하고 권위를 상징하는 무기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수령들이나 일제시대 면장들의 공덕비나 송덕비의 경우도 결국 그 지역의 권력자와 토호들의 기득권을 확인해 주는 상징물의 하나이다. 물론 그런 상징물들은 백성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동참으로 이뤄지는 형식을 취하지만 대개는 자화자찬의 결과일 뿐이다.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이 군복을 벗으며 스스로 자기 어깨에 훈장을 다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군사독재시절처럼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걷지는 않았지만 이번 세종대왕 동상 제막을 보면 여전히 권력자들의 자화자찬을 느끼게 된다. 어린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성군을 모신 세종로의 광화문공원은 요즘 경찰이 24시간 시민들을 감시하는 경찰공원이 된지 오래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는 억울한 일을 호소하면 단박에 연행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풍경은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이 결코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일 것이다.

사실 나는 몇 해 전부터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을 듣고 걱정스러웠다. 서울시는 당초 현재 덕수궁 안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김경승 제작)을 이전해 설치하는 방안과 새로운 동상을 제작해 설치하는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고심했다. 이것 때문에 우리 연구소에도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문의한 적도 있다.

대표적인 친일부역화가 김기창이 그린 영정을 바탕으로 건립된 세종대왕 동상. 선배 예술가들의 친일 경력을 고발했던 서울대 김민수 교수는 세종대왕 영정이 김기창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왼쪽 위로부터 김기창, 김기창이 그린 세종대왕 영정, 김기창이 그린 영정을 바탕으로 새로 건립된 세종대왕 동상, 김기창의 동상)
우리는 우선 덕수궁 안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이전 설치하는 것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동상 제작자인 김경승이 대표적인 친일조각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측에서도 현재의 광화문광장의 규모로 볼 때 김경승이 제작한 동상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광장에 설치할 경우 초라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새로 제작하는 것인데 이 경우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현재 세종대왕의 어진이 없는 사태에서 새로 제작할 경우 세종대왕의 용안을 표준영정을 바탕으로 제작할 가능성이 높았다. 표준영정의 경우 역시 대표적 친일미술인인 김기창의 작품이 아니던가. 물론 세종대왕의 초상은 세종대왕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학수 화백 작품도 있지만 서울시 관료들은 국가가 공인한 것이라는 논리로 김기창이 그린 표준영정을 사용할 것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4월 서울시가 발표한 세종대왕 동상 제작 보도자료를 보면 역시 표준영정을 기본으로 세종대왕의 용안을 제작한다고 못 박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고 상징 거리에 세종대왕 동상을 친일파가 그린 표준영정을 기본으로 제작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게다가 그 표준영정이 실제로는 김기창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꼭 빼닮았다는 주장도 있기에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서울대 미술대학 김민수 교수다. 김 교수는 세종대왕 표준영정과 김기창의 젊은 시절 사진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이 같은 주장을 전개한다. 실제로 김기창이 그린 표준영정과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대조하면 누구나 이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 제작되는 표준영정 제도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한글관련 단체들은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결국 우리들은 김기창의 얼굴과 너무도 닮은 동상을 보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한글을 창제한 성군을 한없이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 동상 앞에서 그러한 감정이 솟아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일제의 징병제를 선전하기 위해 그린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여기서 님이란 물론 일본 천황을 뜻한다)와 완전군장 차림의 일본군 훈련병을 그린 ‘총후병사’를 그리던 젊은 시절 김기창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아서 말이다.

세종대왕 동상이 제작된 다음 날인 10월 10일 경북 성주고에 가수 백년설(1915~1980)의 노래비와 흉상이 건립됐다. 성주고의 전신인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백년설은 「나그네 설움」과 「번지 없는 주막」 등의 유행가를 불러 유명한 대중 가수지만 지속적인 친일활동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 예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역의 사회단체들이 몇 해 전에도 백년설가요제를 반대해 현재는 열리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래비와 흉상 건립이 강행되었다. 특히나 학교 안에 건립된 것을 두고 더욱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백년설
여기서 잠시 백년설의 친일행적을 간추려보자. 백년설은 1942년 「모자상봉」 「아들의 혈서」 「위문편지」 「이 몸이 죽고 죽어」 「즐거운 상처」 1943년 「망루의 밤」 「부모이별」 「옥토끼 충성」 「조선해협」 「혈서지원」 등 현재까지 확인된 곡만 10곡의 군국가요를 불렀다. 이 중 「모자상봉」은 일본의 유명한 군국가요인「구단의 어머니」(1939년)를 번안한 작품이고, 「조선해협」은 1943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서 지원병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 「조선해협」의 주제가이며, 「혈서지원」은 ‘조선징병제 실시 축하 기념’으로 만들어져, 조선지원병 실시 기념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백년설은 노래 뿐 아니라 1941년 10월에 매일신보사가 주최하고 조선연예협회·조선악극단의 후원으로 조직된 재선부대연예위문단 단원으로 조선 각지에 있는 ‘황군’ 부대와 육군병원을 방문해 위문 공연을 했으며, 1942년 8월부터 9월 초까지 만주 건국 10주년 기념 만주개척촌 위문연예단 단원으로 만주에 다녀오기도 했다. 1944년 9월 부민관에서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로 열린 「성난 아세아」에 출연했는데 이 행사는 당시 연합국인 미국과 영국을 격멸하자는 의식 고취를 위해 당시 연극인들의 총집결한 예능제였다.

교감과 소통 없이 각각 광장에 세워진 김기창의 얼굴을 한 세종대왕 동상과 교정에 세워진 백년설 흉상이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과연 무슨 영감을 심어줄까 의문이다. 혹시라도 성군과 대중 예술인의 이미지가 김기창과 백년설의 친일행적을 분칠하는데 오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요즘이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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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29 [17:3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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