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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와 장애인, 그리고 '스페셜 올림픽'
<국가대표> 속 장애인 차별 심각, 무주에서 지적·발달 장애인 축제열려
 
이훈희   기사입력  2009/08/18 [14:50]
요 근래 알고 지내던 영화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중 영화 <국가대표>가 혀끝에 올랐다. 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의견은 ‘놀라웠다’는 이 한 마디.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예전엔 몰랐겠지요. 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찍었다보니 지금은 보는 관점이 더 넓어져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놀라운 느낌이 들더군요. 훈련을 안 한 지적 장애인 동생에게 그 위험한 스키 점프를 타라고 뺨을 때리는 형이나, 결국 스키 점프를 했지만 실제였다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감동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이나...”
 
김용화 감독이 ‘4차원 인간’으로 설정한 캐릭터인 봉구는 누구 봐도 지적 장애인이다. 봉구는 영화 내내 감초와 같은 역할로 관객들을 웃기고 또 막판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 ‘감동’에 씁쓸함이 배어난다. 군대에 안 가기 위해 동생 봉구를 ‘사지’에 내모는 형 칠구나 메달을 향한 방 코치의 강박관념이 어색하기만 했기 때문.
 
영화 속 비장애인 <국가대표>보다 더 감동적인...
 
<국가대표>는 실화에 동기를 둔 비장애인 코미디 영화다. 그렇다면, 실화에 근거한 장애인 스포츠 드라마는 없을까. 물론 있다. 한상민 선수(지체 1급)가 2002년 제8회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장애인올림픽에서 한국의 대회 출전 사상 첫 메달을 따낸 그것. 금메달에 버금가는 은메달이었다.
 
▲ 영화 <국가대표>의 한 장면.     © 공식홈페이지

시나리오로 본다면 <국가대표>의 선수들은 모두 나이트클럽 웨이터 같은 노동일을 하고 있었다. 한상민 선수 역시 당시 금세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또한 고깃집 아들 재복이 가장 부유할 정도로 평범한 서민층인 국가대표 선수들이지만, 한상수 선수 또한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이고 어머니는 봉제공장 보조원이다. 여러모로 살펴봐도 영화 속 비장애인 <국가대표>보다 실존 중증 장애인 ‘국가대표’가 감동적이다.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출전한 대회는 일본 나가노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이었다. 봉구가 죽을 뻔한 이 대회에는 실제 장애인 선수들이 출전했다. 함께 개최된 나가노 동계장애인올림픽에 선수 4명이 활강과 회전 등 알파인스키 4개 종목에 참가한 것.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노메달에 그쳤지만, 4년 뒤에는 은메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동계 장애인 선수층은 태부족이고,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이라곤 목동 실내 빙상장이 전부다. 이마저 스케이팅,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의 전용 연습장겸 경기장으로 연중 사용되고 있어 연습이 어렵다. 전문훈련시설이 한 곳도 없다는 걸 감안하면 은메달을 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또한 경비가 없어 자비로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국가대표>의 설정은 장애인 선수들의 눈물 젖은 빵을 연상케 한다.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2관왕인 보치아 국가대표 박건우(뇌병변 1급) 선수는 훈련 기간 내내 김치찌개에 공기밥을 먹었다.
 
식비를 국가에서 주질 않아 훈련을 담당한 김진한 코치가 매일 사비 1만원을 털어 5천원 짜리 김치찌개 하나에 공기밥 4개를 시켜 선수들과 나눠먹은 것이었다.
 
메달 따면 아파트 준다고? 장애인 선수가 메달 따면 수급비 끊긴 적도 있어...
 
영화에서 스키 점프 국가대표들은 200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는 등 불과 5명 뿐이지만 선수 생활을 계속 한다. 하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따더라도 한 번의 선수생활에 만족해야 한다. 대학팀이나 실업팀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조차 관심을 갖지도 않기에 혼자 힘으로 선수 생활을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메달을 땄을 때 받는 연금 차별 역시 해묵은 시빗거리다. 장애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의 월 최고 한도는 80만원이다. 문제는 국가 지원이 없기에 보잘 것 없는 연금으로 값비싼 스포츠 용품을 구입하고, 재활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장애인 선수 입장에선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란 점이다.
 
그래도 이 정도 고통은 전보단 참을만한 성질이다. 2004년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 전만 해도 장애인 선수들은 연금을 받는 동시에 기초생활수급권에서 탈락하고, 임대 아파트와 의료 수급마저 받지 못했다.
 
생각해보라.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더라도 그길로 선수 생활 마감하고 당시 최고 상한액인 월 36만원밖에 못 받는데, 메달을 못 따 연금을 못 받게 되더라도 본인을 포함한 처와 자식의 최저 생계는 기대할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비는 계속 받게 된다면 어떤 게 현명할까.
 
이 때문에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고, 사회적으로 비난 여론이 드세자 그제서야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했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 선수들이 처한 급박한 실정이다. 이 점에서 <국가대표> 선수들과는 상당히 비교가 된다.
 
메달만 따면 아파트를 준다는 방 코치의 꼬임이야 둘째치고, 실제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고 월 1백만원의 연금까지 보장되지만 당시 장애인 선수들은 메달을 따는 동시에 먹고 살 일이 막막해졌다. 앞서 언급한 한상민 선수의 은메달이 매우 값져 보이는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주요 일간지에서 소개한 적 없는 올림픽, 한국에서 열려...
 
마지막으로 장애인 올림픽이 모든 장애인들의 올림픽은 아니다.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 중에서 척추를 다친 사람을 중심으로 처음 열린 스포츠 대회가 이후 장애인 올림픽으로 계승되었지만 여전히 6개 장애영역만을 포괄할 뿐이다.
 
예컨대 지적·발달 장애인은 그들만의 올림픽인 ‘스페셜 올림픽’을 따로 개최한다. 미국의 존 케네디 전 대통령 여동생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가 1968년 처음 조직한 이 대회는 올해 초 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말실수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형편없는 볼링 실력을 스페셜 올림픽에 비유하는 농담을 해 스페셜 올림픽 조직위에 정식으로 사과해야 했다.
 
참고로 스페셜 올림픽은 이달 19일부터 22일까지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펼쳐진다.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만, 이 중요한 사실은 주요 일간지 어디에서도 소개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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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18 [14: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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