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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모르쇠'에 '고양이 목숨'된 휠체어 장애인들
위험천만한 도로, 두려움 느끼는 장애인들..."전동 휠체어로 녹색 성장을"
 
이훈희   기사입력  2009/08/07 [12:10]
제주시 아라동에 거주하는 지체 장애인 박수진 씨는 지난해 아기와 함께 죽을 뻔했다. 

차도에서 두 살된 아기를 안고 전동 휠체어를 운전하던 중 뒤늦게 이를 발견한 과속 차량이 박 씨의 코 앞에서 급정거했던 것. 박 씨는 이날 생각만 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고 한다.

아라동에는 공사 중인 구간이 많아 인도가 파헤쳐져 전동 휠체어의 인도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잦다. 게다가 버스 정류장이 인도 복판에 설치되어 있어 이동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차도를 이용하게 되고 때로는 역주행까지 할 수밖에 없다.

위험천만한 도로, 목숨 걸고 전동 휠체어 타야 해

문제는 박 씨가 겪어야 한 고통이 제주시 장애인 뿐만 아니라 한국 어디에서나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오죽했으면, 목포시 교통과 경찰은 일간지에 독자투고까지 했다.

“우리나라 도로환경이 장애인 전동휠체어가 인도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높은 턱, 각종 장애물 등으로 인해 차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며, 일부 인도는 부실시공으로 보도블럭이 울퉁불퉁해 오히려 차도보다도 위험하다는 것이 장애인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더 큰 문제는 전동 휠체어가 도로교통법상 ‘보행자’로 규정되어 있어 차도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시 아무런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대형 냉동차량 옆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한 장애인.     © 이훈희

차량 운전자들도 이 문제를 걱정한다. 어두운 밤에 전동 휠체어가 앞서 가고 있거나 도로를 횡단할 때 이를 뒤늦게 발견하기가 다반사다.

도남동에 거주하는 고상일 씨는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그는 “전동 휠체어에 어두운 색이 많아 밤에는 식별하기 어렵다. 곡선 길에서 전동 휠체어가 나타나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의견을 주었다.

아무리 주의해도 두려운 현실

도로교통공단에서는 운전자가 알아야 할 전동 휠체어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알리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 방향전환 시 미리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을 수 있음.
○ 차도를 이용하면서 주.정차된 차량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음.
○ 야간 통행을 위해 시인성이 강조된 등화장치가 미미하거나 이용할 수 없음.
○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도로교통 규정이나 안전운행 방법을 잘 인식하지 못함.

하지만 운전자와 장애인이 아무리 주의를 한다고 해도, 현 도로 환경에서 교통사고는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 장애인은 버스와 충돌하여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할 만큼 큰 중상을 입기도 했다.

그렇다면, 큰 인명피해가 야기되는 사고를 이미 예방할 순 없을까. 현재 차도에는 교통 흐름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

문제는 이 신호등조차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실제 교통사고는 신호등에서 자주 발생한다. 녹색 신호가 켜지면 신호가 바퀴기 전에 출발하려고 조바심을 내는 운전자가 많은 탓이다.

결국 안전 문제와 사고 시 보상 대책 마련은 전무한 실정이다. 차도는 문자 그대로 자동차 중심이기에 보행자인 전동 휠체어는 안전에서 배재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에게 전동 휠체어나 전동 스쿠터가 필수품인 시대에 도로안전장치와 법적 안전장치가 단 하나도 없다는 건 매우 두려운 현실이다. 목숨 걸고 외출을 해야 하지 않는가.

도로교통법 개정해도 사고의 위험은 줄지 않아

지난 6일 MBC의 ‘뉴스 후’에서는 자전거가 도로교통법상 자동차이고,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나더라도 가해자가 되는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사실 전동 휠체어나 스쿠터 또한 2005년 도로교통법 개정 이전에는 ‘자동차’로 규정되어 있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나간 장애인이 ‘무면허 운전’이라고 벌금을 내야 했고, 차와 충돌해도 ‘가해자’가 되어 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분노한 장애인들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고소도로를 주행하겠다는 퍼포먼스까지 펼치고 나서야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변한 것은 무면허 운전이 아니라는 것 하나 뿐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과거 서울시 용산구엔 횡단보도가 거의 없어 장애인의 이동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버스전용차로가 도입되면서 버스정거장 설치를 위한 횡단보도가 함께 설치되었다. 장애인 등 교통 약자를 배려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된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1조2456억원을 들여 자전거 도로를 정비한다고 나섰다. 국정 운영의 4대 기본 방향 중 하나가 녹색 성장이라며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해 생태문화가 뿌리내리게 할 것“이라고 선언한 그것.

이 덕분에 장애인 예산이 삭감되었지만, 어쨌든 자전거 도로를 정비하면 그 도로로 전동휠체어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역시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단, 4대 강 유역을 중심으로 도로가 정비된다고 하니 한숨밖에 안 나온다.

제안, 자전거 대신 전동 휠체어로 녹색 성장을...

이참에 자전거 대신에 전동 휠체어를 녹색 성장의 발판으로 삼길 제안한다. 전기로만 움직이니 석유 한 방울 쓸 일 없고, 등록 장애인 인구가 200만명을 넘은 데다가 이제 고령화 사회이기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

따라서 한국의 자동차 기술과 뛰어난 철강 기술을 접목해 저렴하고 성능 좋은 전동 휠체어를 개발한다면, 세계적인 브랜드로서 수출에 이바지하고 자동적으로 사회복지 인프라도 구축되어 일석삼조다.

또한 전국적으로 친인간적인 도로환경을 정비하면 건설 붐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교통 약자들이 한국으로 관광을 올 수 있으니 큰 이윤과 함께 고용도 함께 창출될 수 있다. 실제 미국과 일본의 장애인들이 한국에 오지 않는 이유는 교통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쓸 돈, 부자들 호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어주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이 제안을 한 번 생각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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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07 [12: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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