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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경계인의 진실, 경계정부의 길
모든 예단을 경계하라-아직은 김형태 변호사를 신뢰할 때
 
서태영   기사입력  2003/10/07 [02:23]

"송두율 교수님, 당신은 정말, 정말 건강해야 합니다. 살아서 이 땅에 돌아와야 합니다. 당신이 여기 돌아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줄 때, 비로소 우리의 통일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아서 선생님을 서울에서 뵙고 싶습니다." <정성일, 말지 2003. 4월호>

▲송두율교수     ©대자보
살아서 돌아왔다. 자그마치 37년만이다. 장기표류나 손호철류의 반응은 예견된 일이었다.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장기표류의 처벌론이나 손호철류의 송두율 경계하기는 진보를 소재로 살아가는 유형의 인간에게 이념은 한갓 유희에 불과한 허무로 다가온다 하겠다. 그런데 다른 땐 힘이 되어주는 인터넷 여론이 좋지 않아 그의 귀향은 우울하다. 상당수가 괘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사회 여론형성의 큰 축을 형성했던 네티즌 여론이 험악하다. 한겨레 독자층마저 처벌쪽으로 기울었다. 충격이 크다.

국정원은 송두율과 함께 살아났다. 수지김 사건의 국정원도 아니고 장세동 안기부장이 이끄는 폭압기관이 아니라서 쏟아지는 말들은 온통 의견들로 난립하고 있다.  세상은 역전되었다. 저질신문들은 난리통인데 비해 검찰은 그나마 차분해서 다행이다. 처벌과 추방 가운데 양자택일하라는 설문은 얼마나 경박하고 야만스러운가. 

[조선]  송두율씨 구속수사 해야하나?
[다음] 송두율 교수 파문, 어떤 식으로 처리돼야 할까요?
[한겨레] 송교수 처벌해야 하나? 관용을 베풀어야 하나?

그가 부둥켜안고 살아온 분단의 비극사는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이제 막 경계를 탈주하려는 송교수를 맞이하는 자유대한은 어지럽다. 대한항공 폭파범에게도 한없는 관용을 베푼 땡전땡노땡김 언론이 왜 송교수에게만 가혹한가. 송교수는 황장엽 이후 대박 안보상품이다. 냉전의 마지막 보루라서 인질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큰 재미를 보진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오랜 경계생활 끝에 고국으로 귀환하려는 '세계인' 송두율교수에게 국적 찾아주기 운동이라도 경쟁적으로 펼쳐야 할 판이다. 죄지은 자들이 벌이는 '강냉잔치판'이나 몰역사의 복수극은 당치 않다. 

때늦은 반성도 반성이다. 경계는 허물어졌다. 그것 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나의 철석같은 믿음은 참여정부가 아무리 진화한 정부라고 하나 송두율 교수를 벌줄 만큼은 성숙하지 않았다고 본다. 참여정부는 처벌하지 않고 벌주지 않고 너그러움으로 성숙해야 한다. 경계인 송두율. 우리의 관심사는 그가 지금 반성하고 있는 지점이어야 한다.
 
간첩소동 벌이는 최병렬 인권탄압당수에게 참여정부는 유효적절하게 응전하기 바란다. 그것이 '경계정부'의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희망정부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욕된 국가의 얼굴을 지우려는 자세가 없다면 경계인의 정부가 되긴 어렵다. 진화한 정부의 힘으로 송교수를 처벌하려 하지 말라. 참여정부, 의도했던대로 송두율을 품어라. 

노무현정부는 경계정부다. 이쪽 편도 저쪽 편도 들어줄 수 없는 중간정부다. 오직 선정으로 자기색깔을 강화해야 하는,  그것도 그리 길지 않는 5년 간의 집권이 보장된 한계정부다. 민족의 위기를 주도적으로 관리해서 민족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보장해야 사는 '희망정부'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 무한정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만이 대수라고 생떼를 쓰진 않겠다. 국가기관의 소견은 일순위다. 그러나, 국정원과 검찰이 개혁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하나, 우리사회 양심의 한축을 담당해온 김형태 변호사의 말씀에도 귀기울 구석이 무한하다. 비록 그의 말은 변호조이거나 후순위 발언일 수밖에 없으나, 그동안 김형태 변호사가 수행해온 이력과 공안기관의 전력을 놓고 보면 비교대상이 되질 못한다.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관행에서 송교수쪽 사람들은 “수사기관 사실왜곡”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김변호사는  "'김철수'는 정치국 후보위원 아니다"고 했고,  송두율 교수는  `북에 치우친 활동을 사죄'했다. 송두율 교수가 어느 편에 있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국정원과 검찰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도 권력기관을 경계한다. 내 양심은 김형태 변호사의 편이다. 이렇게 혼미한 상황이라면 김형태 변호사와 공안기관을 놓고 양자택일을 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제는 그 사람들이 통일을 위한 바톤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요. 아버지의 묘소에 가고 싶고 오랜만에 동지들을 만나고 싶어요.” 

부친의 묘소에 성묘갈 시간이라도 보장해줬는지 궁금하다. 그는 돌아온 오딧세이아가 아니라 여전히 방랑하는 경계인으로 유배되어야 마땅한 것일까. 송교수의 눈빛에서 '율리시즈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가? 송두율교수의 귀향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여행이다. 그것은 아픈 과거사와 화해하기 위한 자구노력이라고 믿고 싶다. 

처벌과 추방이라는 명명백백한 단순진리, 양자택일로부터 우리 스스로 해방되자. 지금은 진실과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 때이다. 몇십년 만의 귀향길에 다짜고짜 처벌이라니 무례한 처사 아닌가. 37년간의 역사를 몇일 상간에 마무리짓는 것은 무리이고 졸속일 수밖에 없다. 우린 아직 송두율 교수의 고백을 경청해 보지 않았다. 진솔하게 대화하려는 자세부터 갖추는 것이, 그를 맞이하는 우리가 열어나가고자하는 새시대의 예이리라.

그는 지금 가장 힘든 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불화했던 경계의 나라와 화해하는 길은 이렇게 험난하다. 그렇더라도 포기해선 안된다. 우리 또한 그를 벌주려는 사람에서 포용하려는 민족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린 지금 기나긴 민족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은 돌아옴입니다. 정직한 귀향이며 겸손한 만남입니다. 나 자신으로 돌아옴이며 타인에 대한 겸손한 이해입니다. 이 정직한 귀향과 겸손한 이해가 없는 한 서로 다른 세계가 평화롭고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20세기의 아픈 과거를 떠나 새로운 세기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신영복> 

* 앙켈로풀로스 감독의 <율리시즈의 시선>은 영화감독을 통해 바라보는 발칸지방의 얽히고 설킨 정치문제와 인간사회문제에 대한 오딧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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