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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갑제들, 극우와 기독교의 잘못된 만남
충혈된 십자가에 드리워진 진보와 극우의 두그림자
 
황진태   기사입력  2003/10/03 [09:06]

씁쓸함의 두가지 맛.

최근 한 달 동안 종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거졌다. 다만 씁쓸한 것은 종교가 갖다 주는 신의 아우라에 기대는 평온함,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차디찬 현실과의 맞부딪힘, 불안감만을 더욱 증폭시키는 종교의 그림자들이었다는 게 그 관심을 다시 멀리 하고 싶은 충동을 충동해야 했다는 거. 이런 씁쓸함을 혀에 갖다 댈 때에는 차라리 미학을 위한 성경 읽기나 어렸을 때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보려고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교회로 달려갔던 그 어리석은 도구적(?) 달콤함이 그리워진다. 씁쓸함에도 두 가지 씁쓸함이 있다. 약을 먹을 때처럼 몸이 낫기 위한 당위적인 씁쓸함과 씁쓸함으로 끝나지 않고 그 혀를 구더기로 들끓게 하는 몹쓸 씁쓸함이다.

당위적 씁쓸함, 김승훈 신부를 추모하며..  

▲고 김승훈 신부  
지난 9월 2일 김승훈 신부가 별세했다. 김승훈 신부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지난 유신시절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천주교정의사제단를 통해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은폐축소조작을 5.18 광주항쟁 추도미사도중 폭로하여 6월 항쟁을 불러일으키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었다. 이후로도 민주개혁국민연합감사, 노동일보 종교 담당이사 등의 활동을 통해서 민주화, 인권, 노동, 환경운동에서 커다란 흔적을 남기셨다. 특히, 그의 빈소를 찾아왔던 김수환 추기경, KBS 정연주 사장, 리영희 교수, 이부영 의원, 문재인 민정수석 등의 인사들을 통해서도 그의 민주화 운동에서의 입지와 활동이 어떠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김승훈 신부를 추모하는 보도기사는 한 대기업 총수의 죽음에 비해서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김승훈 신부의 민주화활동이 한 대기업 총수의 남북교류사업활동의 그것보다 못하다는 것일까? 물론 대기업 총수의 남북 교류업적을 조명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상대적으로  똑같은 죽음에 대한 기사에 대해서 김승훈 신부는 너무 빈약한 대우를 받았다. 이 글을 읽는 네티즌은 그렇게 안 느끼는가?

이러한 섭섭함은 특히 한겨레 신문을 통해서 더욱 불거진다. 천주교정의사제단이 전두환정권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축소에 대한 폭로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민주화 운동의 결과, 한겨레 신문을 낳게 된 게 아니었는가? 그러나 한겨레 신문은 김승훈 신부 별세에 대해서 대기업 총수의 죽음에 비해서 너무나 초라한 지면을 제공했다. 김승훈 신부의 죽음은 그저 육체의 죽음으로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김승훈 신부의 정신체계는 김승훈 신부의 몸을 구성하는 유기체보다 그 수명이 무한하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의 회고와 전망을 통해서 국가보안법, 노동자, 농민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았어야 했는가? 대기업 총수가 죽자. 그를 둘러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다방면의 전문가들의 담론이 형성되었던 반면. 왜 김승훈 신부를 통해서는 그런 담론의 물꼬가 말라버리는 걸까? 이는 진보개혁의 입지를 한층 두껍게 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한 종교인의 죽음은 범인의 죽음보다 더욱 숭고하고 차분한 공기들로 가득차 그 개인의 신체규모를 떠나서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혹 한 종교인의 죽음을 하느님의 곁으로 고히 보내드려야지. 재벌총수의 죽음처럼 중구난방해서는 되겠는가하고 반문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몇 년 전 돌아가셨던 마더 테레사 수녀의 죽음은 왜 그리 냄비언론으로 들끓었는가? 이러한 중구난방이 그들의 명성을 욕보이는 것도 아니며 이러한 계기를 오히려 적극 활용하여 사회진보와 개혁의 각성의 계기가 된다면 더더욱 더 중구난방 떠드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떠나신 그들을 이 사회를 이끈 지성으로서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모와 회고의 예로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을 들 수 있다. 그는 작년 `행동하는 지성` 피에르 부르디외를 추모하는 칼럼을 썼었다. 그는 칼럼의 마무리를 다음과 같이 맺는다. “피에르 부르디외, 그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교훈은 우리들의 현실 속에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프랑스란 거울을 통해서 한국사회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도 버젓이 ‘행동하는 지성’김승훈 신부가 있지 않았는가? 조중동은 몰라도 한겨레만큼은 토막기사로 그의 죽음을 매듭지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여러 정치진보개혁사이트에서도 대기업 총수의 죽음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면서 이상하게도 더 오랫동안, 더 굴곡 있는 사회활동을 했던 지성에 대해서는 칼럼 몇 개도 안 쓰고 있으니 정말 내 눈에는 이상할 따름이다.

Memento mori. 중세인들은 삶에 있어서 왜 항상 죽음을 기억하려 했을까에 대해 이번 이승훈 신부의 별세는 좀 더 명확하게 그 해답을 설명해주고 있다. 개혁과 진보. 이승훈 신부는 물론 문익환 목사 아니 이름 모를 수많은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죽음을 상기해보자.
홍세화 기획위원의 말이 너무 좋아서 이름만 바꿔서 김승훈 신부의 대한 추모를 맺을까 한다.

김승훈 신부, “그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교훈은 우리들의 현실 속에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극우의 가벼움, 그 사회적 몹쓸 씁쓸함. 

“김정일은 악마적인 존재이다. 기독교의 적이고 사탄의 제자이다. 성경 어디로 봐도 사탄을 용서하란 말은 없다.”

지난 3월 16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안보강연에서 조용기의 초대로 강연한 조갑제의 발언이다.
분단 50년 동안 조선일보가 극우 헤게모니에 기생하여 스스로 권력화 되었듯이 개신교 또한 군사독재시절 ‘침묵’하며 자신들의 창자를 채우면서 극우 헤게모니에 기생하다가 결국 스스로 권력화 되어 이창익 말대로 조갑제와 조용기, “악마주의 정치학과 종교적 파시즘:월간조선과 개신교의 완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리 어색한 광경이 아닐 테다.

필자는 그간 종교의 파시즘에 대해서 일요신문 등의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다루는 사이비 종교 등 가십거리 정도로 종교의 문제성을 파악했었지 2년 전이던가 강준만이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통해서 `종교의 사회학`을 특집으로 다루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필자의 문제의식 수준은 다른 사회적 의제에 비해서 매우 얕았다. 하지만 조용기와 조갑제의 만남, 반전반김시위에서 극우성향의 종교단체의 가시화 그리고 김승훈 신부의 죽음을 통해서 그 동안 필자가 종교의 파시즘에 대해서 얼마나 나태하게 생각 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체험만큼 이 나태함을 깨는 데 좋은 묘안이 어디 있을까? 다음은 필자가 얼마 전에 체험한 극우들의 미시적인 활동 장면이다.

#1. 전철 1호선을 타고서 구로역을 지날 때였다. 어떠한 정장을 입은 노신사가 무얼 배포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담긴 책자를 나눠주는 신도로 생각했던 나는 예사롭지 않게 배포물을 받았다. 근데 예사가 아니었다.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 없겠다. 카세트 테이프 하나와 프린트 물 한장이 배포물의 전부였는데 이 속에 대한민국 극우 성향의 종교 이데올로기가 전부 녹아져 있다. 프린트 물의 제목은 성도들이여! “영원한 복음”을 들어보세요. 그럼 독자들도 한번 들어 보시라.

공산주의는 발가락 시대의 우상이며 멸망의 가증한 짐승정권입니다.(단2:41~43, 7:7~)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삼상17:47), “평화공존”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성읍과 성소가 훼파되려니와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9:26). 고로 북방(공산당)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일 뿐(사10:5)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끓는 가마가 보이는데 그 면이 북방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재앙이 북에서 일어나 이 땅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렘1:13~)

기독교의 종말에 싸움의 대상은 붉은용(600-영권)과 일곱머리 짐승(60-정권)과 거짓선지(6-교권)입니다. 금잔(경제권=썩을양식)을 들고 짐승(공산당)을 탄 음녀(교회)들을 짐승의 손에 망합니다.(계17:16) 예수님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계14:9~11, 17~20, 16:13~14, 17:3~18)   

멸공이란 이 땅에서 공산주의 짐승세력을 완전히 멸하고(요일3:8), 빼앗었던 이 땅을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주심으로 새 천년(New Millennium) 평화 왕국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Millennium의 왕 예수님은 영어사전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자 독자들은 “영원한 복음”을 들어보셨다. “예수님은 영어사전에도 기록되어있”었다는 사실을 필자와 독자들은 정녕 모르고 있었던 말인가? 아 무지의 소치로다. 깨달음의 극치로다. 이 배포물을 통해서 귀하게 얻은 복음의 말씀은 함부로 퍼뜨리지도 못한다. 우린 축복 받은 자다. 왜냐면 배포물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All right reserved’

#2. 며칠 전 어떤 인연으로 강남의 한 소규모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 교회를 안 나간지도 퍽이나 오래된 필자로서는 오랜만에 듣는 찬송가의 음표들이 마냥 반가웠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가 시작하고 나서 고민이 생겼다. 이 설교를 듣는 대학생들이 어떠한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될까? 참고로 그 목사의 말솜씨는 참으로 귀에 속속 들어왔다. 필자가 그 교회를 가게 된 동기는 그 교회의 목사가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 대신 초를 선물하자는 운동을 했고 설교를 통해서 사회 비판적인 언행을 종종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아뿔사! 작은 조용기, 작은 조갑제가 바로 그였었다. 설교의 서두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씹고,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실언을 빌어  지금의 국정상황을 보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로 시작됐다. 타인의 의견을 물론 존중해야 겠지만 인신적인 매도만큼은 참기 어려웠다. 그것도 반공에 찌들은 노인이 아닌 파릇파릇한 대학생들을 상대로 흑백논리를 주입하시니. 그리고 박홍 신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박홍 신부와의 친분을 퍽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박홍의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며 일화를 소개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깐수는 빨갱이다”고 지껄인 것이다. 더 이상 이는 설교가 아니었다. 중세 기독교의 마녀재판이었다. 이미 `깐수` 정수일은 남파간첩 혐의로 징역을 살고서 최근에는 한국국적을 취득 이슬람전문가로서 한국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으로서는 이슬람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을 얻게 되었는데  목사는 술자리도 아닌 공식적인 설교자리에서 명예훼손감을 버젓이 지껄이니. 필자가 인내심이 늘었을까. 교회를 소개해준 순진한 사람의 성의를 고려한 것인지 몰라도 입으로 반론을 제기 하고 싶은 것을 아니 고함을 지르고 싶은 것을 그 자리에서 간신히 참았다. 참을 수 없는 극우들의 가벼움이란..

사람이란 게 관절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즉 운동부족이면 골다공증에 걸리듯이 쓴 맛이 싫더라도 단맛에만 취하고 쓴 맛에 혀를 자극 시키지 않으면 결국엔 그 혀는 썩어버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한 밤중에도 창가 너머로 교회 십자가가 세 개씩이나 보인다. 밖으로 나가면 그 붉게 충혈된 눈동자들이 더 보이리라.

어려서는 신의 축복을 향하여 종교의 아우라에 갇히길 바래왔던 필자가 머리에 먹물이 섞여 종교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에 첨엔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극우들의 순진한 신도들을 먹이로 포섭하려는 선동과 설교에서 파생된 환멸에 비하면 종교의 아우라를 걷고서 대한민국 종교의 현전(presence)를 들여다보는 것이 진보와 개혁을 위해서도 옳다고 본다. 마르크스가 말한 ‘종교는 마약이다’는 극우를 일컫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진보와 개혁의 목소리는 아직도 미약하다. 진보와 개혁의 더 큰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 우리의 혀는 좀 더 잦고 강한 자극과 단련이 필요하다. 당위적인 씁쓸함과 몹쓸 씁쓸함. 그 어느 때 보다 당위적인 씁쓸함이 필요할 때이다./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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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0/03 [09: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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