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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교수는 중언부언하지 마시라
소유구조에 대한 '단순무식'한 발상은 누구의 것인가?
 
양문석   기사입력  2003/10/02 [14:40]

김동민의 문제제기를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은 김동민의 '소유구조 개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김동민의 주장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에 한정할 것이다. 그 동안 김동민은 소유구조 개선 문제를 두고 상당히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시기를 두고 입장이 변하기도 했고, 같은 글에서 앞 내용은 소유구조의 변화가 미치는 정기능을 언급하고, 뒤 장에서는 소유구조 개선은 무의미한 주장이라고 부정하는 등 스스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관련기사]
김동민, 편집권독립이 바로 언론개혁인가? , 대자보(2003. 9. 24)
양문석, 曲學阿世하는 언론학자의 '언론개혁론' , 대자보(2003.09.20)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     ©대자보
먼저, 소유구조에 대한 김동민의 오락가락한 주장을 살펴보자.

"…예전의 경향신문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서울신문에 이은 제2의 정부기관지였으며 그 후로는 한화 소유의 소위 재벌신문이었다. 무엇이 경향신문을 이토록 변화하게 만들었을까? 역시 소유구조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한화가 IMF 이후로 부채와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을 뗀 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으로서 자력갱생을 모색해오던 경향신문이 민의를 대변하는 바른 언론으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해석된다. 재벌의 소유에서 일단 벗어남으로써만이 언론의 정도를 걸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총선 후에는 신문사의 재벌 족벌 소유구조를 타파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2000년3월2일 "총선보도와 신문개혁")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민은 경향신문의 변화를 소유구조의 변화에서 찾으며, 언론개혁의 핵심을 '신문사의 재벌 족벌 소유구조 타파'로 설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지난 달 부산의 민주공원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MBC는 확실하게 개혁적 언론으로 바뀌었다.…KBS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으나 조선과의 연대가 예전같지는 않았다. IMF이후 경향신문과 문화일보의 소유구조가 바뀌면서 제한적이나마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한국일보가 이에 가세한 점도 의미있는 변화였다. 대한매일의 변신도 빼놓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 홀로 고군분투하던 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구도가 아닐 수 없다.…"(2003년9월19일, 언론과 권력, 그리고 자본)

김동민은 위와 같이 경향신문과 문화일보의 소유구조 변화가 논조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한데 같은 글 뒤부분에서는 '소유구조 개선이 오보나 악의적 왜곡보도의 근본적인 문제인지도 논외'로 하자며 소유구조 개선을 부정한다. 헷갈리고 있는 김동민의 현주소가 뚜렷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동민의 소유구조 개선에 대한 부정적인 주장을 좀 더 살펴보자.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소유문제가 본질이 아니라는 점은 신문개혁과 관련해서도 누누이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나의 지론이다. 소유문제가 해결되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이론적 배경에는 마르크스의 거시적 이론을 미시적으로 해석하며 왜곡시켜놓은 영국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이 있다.…"(2003년3월2일 오마이뉴스, SBS 사외이사 임기를 시작하며-운동은 영원히 책상머리나 길거리에서만 해야 하는가?)

앞서 주장과 완전한 반대논리를 펼치고 있다. 소유개선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평가'하는 것과 평소 소신은 소유문제가 본질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의 심각한 괴리현상이 발견된다. 이런 소신은 평가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어찌 이렇게 평가와 소신이 다를 수 있나.

참고로 마르크스의 거시적 이론이라는 것은 없고, 미디어정치경제학이 마르크스 이론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한 것이 지난 3월인데, 시민의 신문 지난 호에서 정치경제학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는 것은 또 뭔가. "정치경제학 이론에서 언론사 소유의 문제란 공적 소유냐 사적 소유냐의 구분에 있는 것이지, 사적 소유의 언론사 지분을 제한하는 따위가 아니다."며 마르크스를 왜곡했다고 평가한 학파를 인용하는 김동민의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내 논점은 언론개혁의 과제로 설정돼 있는 편집권 독립과 소유지분 제한의 관계에 관한 기존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양문석은 소유지분을 제한하면 편집권이 독립되어 언론이 개혁된다는 단순무식한 발상을 하고 있다.…소유의 문제는 경향신문처럼 아예 공적 소유로 전환되지 않는 한, 지분제한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소신이다.…"(2003년 9월 시민의 신문)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김동민은 또 다시 내용을 왜곡한다. 즉 '소유지분 제한→편집권 독립→언론개혁'이라는 도식을 양문석이 주장한 것처럼. 분명히 필자는 편집권 독립과 소유구조 개선의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접근했다.

한데 이 주장을 접하면서 김동민의 소유구조에 대한 곡해가 의도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왜냐하면 김동민이 어디서 혼란을 겪고 있는지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김동민이 소유구조 개선과 편집권독립을 위와 같은 도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적 개선이 언론개혁을 위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접근했을 때는 이 도식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자신의 소신이라며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때는 틀린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언론학자나 언론단체들도 김동민처럼 주장한 적도 없고 그렇게 이해하지도 않는다. 각각 연관은 있으되 독립적인 사안이고, 소유구조 개선이 반드시 일차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고 '경향신문처럼 아예 공적 소유로 전환…지분제한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김동민의 실수로 판단된다. '우리사주조합'이 '공적 소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김동민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경향신문같은 소유구조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주장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위의 첫 번째 인용문에서 경향신문이 어떻게 소유구조가 바뀌었는지를 김동민은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와 혼란 그리고 자기만의 도식에 갇혀 있는 김동민에게 앙상하게 남아있는 결론은 '언론개혁=신문시장의 정상화'라는 또 다른 도식뿐이다.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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