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말 한번 잘못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면담했던 반 총장은 다음날 미 하원 외교위원회 의원들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반 총장은 미국의 유엔 분담금 납부 연체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은 데드빗 기부자(deadbeat donor)"라고 말했다. 'deadbeat'은 '빌린 돈을 제 때 갚지 않는 사람이나 빈둥거리고 노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다. 이날 반 총장과 면담을 마친 공화당 간사 일리아나 로스-레티넌 의원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은 지난해만도 유엔에 50억달러를 제공한 최대 기부자"라며 "반 총장의 믿을 수 없는 표현에 매우 불쾌감을 느꼈다"고 비판했다. 반기문 총장은 로스-레티넌 의원의 성명이 발표된 뒤 발언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하며 "미국은 유엔 운영예산의 22%를 내는데 항상 제 때 내지 않고, 현재 10억달러 가량이 연체돼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반기문 총장은 이날 저녁 성명을 통해 "나는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미국이 관대하게 유엔을 지지해 주는 데 감사하고 있다"고 파문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반 총장의 '기대'와는 달리 백악관까지 직접 나서서 공식적인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유엔의 운영 예산 가운데 22%를 내는 최대 기부국이라는 점에서 반기문 총장의 단어 선택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깁스 대변인은 반 총장이 문제의 발언을 철회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반 총장이 미국 납세자들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유엔주재 미국 대표부 대변인도 "분담금 납부가 일부 늦었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의회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할 때 쓸 만한 표현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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