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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첨삭지도 나선 교과부 관리들
[우리힘의 눈]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어 낸 친일파 이각종의 사생아들
 
방학진   기사입력  2008/12/15 [16:28]
교과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그동안에는 일본이 교과서를 왜곡하는 문제로 시끄럽던 것이 이제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문제가 되는 과목은 일본이나 우리나 역사 특히 근현대사 교과서다. 사실 과학이나 수학같은 과목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의 관심 밖이다. 왜냐하면 권력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1+1=2며, 뉴튼의 운동법칙이나 중력가속도를 누가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그저 잘 가르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역사다.

아무리 한국 공교육 체제 아래서 역사 과목이 천대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영향력을 수치로 계량화할 수는 없다할지라도 일제시대부터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절대로 가르치지 않던 세상 이야기들을 독서회나 동아리라는 틀 아래서 공부하던 무수한 조직들이 결국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역사를 상기해 보자. 많이 알려진 예로 단재 신채호의 경우 가장 급진적인 무정부주의로까지 발전하여 조선혁명선언으로 불리는 ‘의열단선언’을 집필, 발표하지만 그는 그 전에 『이순신전』이나 『을지문덕전』처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북돋는 저서를 많이 남겼다. 즉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이미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뉴라이트는 물론 교육부까지 문구 하나 하나에 대해 빨간 펜을 들이대며 바꾸라는 요구를 공개적으로 했다. 만약 바꾸지 않으면 행정학이 전공인 안병만 교육부 장관이 직접 첨삭지도를 하겠다고 교과서 집필자인 역사학자들에게 을러대고 있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표현까지도 문제를 삼고 있다. 이쯤 되면 집필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을 넘어 아예 국정으로 근현대사 교과서를 쓰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고교용 국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선언을 하면 어떨까. 일반 시민들이야 별 관심이 없었던 ‘잃어버린 10년’동안 고등학교에서는 역사 과목이 선택으로 전락한 아픔을 겪었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6종의 검인정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게 바뀌었다. 수학이나 영어처럼 여러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발행하되 모두 수능에 중요한 배점을 가진 필수과목이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근현대사는 선택과목이지만 다행히도 국정이 아닌 검인정으로서 다양한 역사적 시각을 제공하는 ‘선진국형’ 모델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검인정을 유지하면서 향후 수학이라 영어처럼 중요한 필수과목으로 채택되길 희망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그런 희망은커녕 근현대사 교과서 필자들이 국정감사장에 끌려나와 여당 의원들로부터 ‘당신 빨갱이 아니냐’는 식의 비난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21세기판 매카시즘의 광풍을 보면서 나는 군대시절 아침 점호 때마다 잠결에 외던 ‘복무신조’와 초등학교 시절 어렴풋이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그리고 여느 행사 때 종종 듣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1.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2.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의 승리자가 된다.
3.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4. 우리는 명예와 신의를 지키며 전우애로 굳게 단결한다.’ (육군 복무신조)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새 역사를 창조하자.’ (지금은 사라진 국민교육현장 중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도에 바뀐 국기에 대한 맹세)

일제 때부터 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암기해야 할 것이 왜 그리 많았을까. 위에 예에 비하면 그나마 전두환정권 때의 ‘질서는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이란 구호는 차라리 외우기도 쉬워서 좋았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가 ‘질서는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니 좀 안쓰럽기도 하다.

해방이후 뿐 아니라 일제 때에도 우리 민족은 암송해야할 것이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황국신민서사’라는 것이다. 보통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시기를 ‘전시총동원체제기라고 한다. 바로 이 시기 일제는 남녀노소 모든 조선인들의 정신을 무장시킬 요량으로 천황의 백성이 된 도리가 무엇인지 달달 외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황국신민서사’인데 친절하게도 아동용과 성인용이 따로 있고 학교마다 이 글을 새긴 탑이 세워진다.

아동용

① 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다.
② 나는 마음을 합해 천황폐하께 충의를 다한다.
③ 나는 인고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된다.

일반용

① 우리는 황국신민이며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자.
②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자.
③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의 힘을 키워서 황도를 선양하자.


‘황국신민서사’

그런데 이 ‘황국신문서사’를 만들어 총독에게 결재까지 받아 전국적으로 보급한 이가 바로 조선인 이각종(1888∼?)이었다. 일제하인 1919년 김포군수와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등 친일단체에 두루 이름을 올린 그는 1919년 삼일운동 직후 “만세 시위 같은 추악한 투쟁과 쓸데없는 희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의 발로”로 이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인이 차마 생각지도 못한 데까지 신경을 썼던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해방 직후 이각종은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던 도중 횡설수설하여 보여 결국 정신이상자로 판명을 받았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을 사랑했던 자가 갑자기 찾아온 일본의 패망에 넋을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도 어느 오래된 시골 초등학교에는 ‘황국신민서사’를 새긴 탑들이 방치되어 있다. 해방 후 그 탑을 새긴 지역의 토호들이 부랴부랴 없앤 것들이다. 그런 유물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몇 년 후에는 현 정권의 입맛대로 역사교과서를 바꾸자고 설쳐대는 자들의 말과 글을 주워 모으는 일도 역시 큰일이다. 심지어 최근 국방부장관은 장병들에게 읽어서는 안 될 불온도서목록을 친절히 소개해 주는 것은 물론 ‘사병과 여성 부사관은 연애하지 말라’는 등 연애 교육까지 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실로 그들의 말로가 이각종과 같을지 다를지도 무척 궁금하다. 왜냐하면 4천만 국민 모두의 머릿속을 자기 머릿속과 똑같이 만들자면 자신이 그 일에 ‘미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각종처럼 말이다.


< 필자인 방학진님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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