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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Cine] 애인을 창녀로 만들려면?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3/07 [13:12]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결혼해 버리면 된다.
내가 한 얘기가 아니다.
마르크스와 더불어 공산당 선언을 기초한 독일의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한 말이다.
아래는 근무시간에 쿠사리 먹을 것 각오하고 매일매일 출력해서 읽는 고종석 한국일보 편집위원의 "오늘은"이란 고정기사 중 엥겔스의 생애를 언급한 꼭지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엥겔스의 단독 저작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1884)"일 것이다. (중략) 마르크스가 죽은 이듬해에 쓴 이 책에서도 엥겔스는 "이 저작은 세상을 떠난 내 벗이 이미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을, 불충분하지만 내가 약간 대신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의 한 대목. "일부일처제의 확립과 모권제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권력을 장악했다. 여성은 남성의 노예로 전락했다. 남자의 정욕을 채워주고 남자의 아이를 낳아주는 노예로."

그래서 난 사랑하는 여인을 창녀로 만들기 싫어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야당총재 입버릇처럼 아니면 말고...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된 덕택에 볼 기회가 생겼던 김기덕 감독의 신작 "나쁜 남자"의 포스터에는 이런 카피가 쓰여져 있다.

"나의 애인 창녀 만들기!"

이론적으로 애인을 창녀로 만드는 것이 결혼하는 것이라면 세계 여성의 거의 대부분은 창녀일터...그리고 인류의 대다수는 창녀의 자궁을 모태로 빌려 태어난 어둠의 자식들일 테고.

평범한 사람이 이런 불온한 상상을 공개적으로 내뱉는다면 아마 십중팔구 맞아죽을 것이다. 따라서 스크린에 옮겨진 감독의 은밀하고 불온한 상상에 그저 뜨악한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 반응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오긴 전까지 영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나는 김기덕 감독의 전작(前作)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낚시바늘을 여자의 은밀한 부분에 집어넣느니, 죽은 자식의 인육을 발라먹느니, 하는 엽기적인 장면들에 관한 무성한 소문만을 수도 없이 들었을 뿐이다.

특유의 잔혹성과 그로테스크함이 많이 순화되고 희석되었다는 암묵적 전제를 비웃듯이 첫 대면한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는 처치 곤란한 괴기스런 아우라에 휩싸여 있는 작품이다.

{IMAGE1_LEFT}극작가 김수현과 탤런트 윤여정의 관계처럼 김기덕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조재현의 핏발 서린 눈빛연기에서부터, 육체적으로는 순결한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결코 품행이 방정한 요조숙녀라 할 수 없는 여대생을 함정에 몰아넣어 텍사스촌의 고깃덩어리로 만든다는 설정까지 일반인이 가진 상식과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접수가 안 되는 영화이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는 영화감상 제1법칙을 충실히 따르려해도 감독의 정서적 코드와 나의 그것이 전혀 주파수가 맞지 않으니 계속 머릿속에서 삑사리가 날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감독의 미학과 철학의 중심은 현대 한국사회의 비극성을 규정짓는 모순들을 천착하기에는 지나치게 퇴영적이거나 과도하게 탈중심적이다. 유럽 영화제의 호평과 국내 평단의 찬사가 일반대중과의 친화성과는 단절되고 유리된, 텅 빈 관중석의 그들만의 리그에서 쏟아지는 공허한 함성으로 메아리치는 것은, 감독이 지닌 회화적 구성력의 탁월함을 내실 있게 뒷받침하기에는 김기덕식 이데올로기의 실체가 여전히 오리무중의 상태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主義)는 간 데 없고 작가(作家)의 깃발만 나부끼는 작가주의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 항상 오발되거나 불발한다.

죽은 다음 몸에서 사리가 돋는 法力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사춘기를 통과한 모든 성인남녀는 은밀하고 불순한 성적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모욕했다고 애꿎은 여대생을 창녀로 만든 다음, 거울 뒤에서 그녀가 능욕 당하는 광경을 관음하는 포주의 비정상적 심리상태를 "양가적 감정"이니 "이중적 사랑"이니 "애증의 교차"니 하는 해석학적 오류를 저질러가면서까지 예찬하는 것은 전적으로 Over다.

경제적 분배구조와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을 포함하여 계급사회를 확대재생산하는 제반 카스트적 장벽이 점점 견고해지고 단단해져 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하층계급 남성이 상층계급 여성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그들 모두를 파멸시키는 방법-자폭이나 옥쇄-이외에는 없다는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 차라리 이 영화의 주제라면 감독의 치열한 전투성과 치밀한 정치적 전술운용 능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작가적 역량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영화제에서의 포트폴리오를 작품의 완성도와 굳이 연결 지으려 발목에 고무줄도 매지 않은 상태로 무모한 논리적 번지점프를 감행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기지촌적 지식인 근성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사랑의 본질은 정신적 합일에 있다는 낡은 경구는 소귀에나 들려줘야 마땅하다. 기성 질서가 강요하는 억압의 형태는 본원적으로 육체적이며, 해방을 향한 첫걸음은 몸의 자유를 옥죄는 부당한 관습적 질곡에서의 자유로부터 출발한다는 미셀 푸코의 명제 또한 의연히 유효하다.

그러나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과 욕정을 꿈틀대게 하는 대상을 혼동하는 것은 맹목적 소유욕이자 마초(Macho)적 정복욕이지 절대 사랑은 아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무시와 수모와 모멸을 안긴다 해도 Nemesis에게 기도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 사람이,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해하는 만큼 나 때문에 행복하지 않음을 나는 아파하겠다.

여하튼 "나쁜 남자"를 본받아 오늘밤 내가 꾸는 꿈의 소품으로 채찍과 밧줄, 가죽혁대와 쇠사슬이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 영화가 끝난 후 근처 맥주집에서 출판사에 다니는 후배로부터 선화가 가지고 싶어했으며, 한기가 선화에게 건네준 화집이 에곤 실레라는 화가의 그림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확실히 출판사 다니는 넘이 유식하긴 유식하다. 복습하는 차원에서 인터넷에서 갈무리한 에곤 실레의 삶의 자취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Egon Schiele (1890∼1918) 빈 출생.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도안가·판화가. 에로틱한 구상작품으로 유명하다. 빈 미술학교의 학생시절(1907∼09)에 아르 누보의 일환인 독일의 유겐트스틸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무렵 빈 분리파의 지도자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났으며, 작품의 곡선미와 정교함은 클림트의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그는 장식보다 표현을 강조했으며 열정적인 긴장감으로 선의 감성적 호소력을 높였다. 그는 처음부터 인물 표현에 몰두했고, 성적인 주제를 솔직하고 자극적으로 처리한 점이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909년 빈에서 신예술가협회의 창립에 참여했으며, 1911년부터 유럽 곳곳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918년 빈에서 열린 분리파 전시회 때에는 실레의 작품을 위한 특별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주요작품으로 <자기 성찰자 The Self Seer(1911)> <추기경과 수녀 The Cardinal and Nun (1912)> <포옹 Embrace (1917)> 등이 있다. 그의 풍경화에서도 열정적인 색과 선의 표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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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07 [13: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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