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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를 진보운동에 활용할 수 있는가
 
변희재   기사입력  2002/03/07 [12:51]
대중 스타는 가치중립적인가?

{IMAGE1_LEFT}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하기로 했다. 스타는 어떠한 정치성도 없는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한 것인가? 여기에는 아주 이중적인 잣대가 적용된다. 흔히들 대중 스타를 대중의 말초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엔터테이너, 즉 소위 말하는 딴따라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기존의 스타론 역시 스타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활용하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스타의 우상성을 타파하려는데 골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스타들이 정치적인 행사에 자주 불려나간다. 그것은 특히 92년도 대선 때부터 거의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김영삼 진영에는 이덕화, 김형곤, 심형래, 최성수 등이, 정주영 진영에는, 정주일, 최불암 등이, 김대중 진영에는 신형원, 손숙 등이 운동원으로 참여했었다. 그 뒤 97년도 대선 때는 스타의 참여 폭이 훨씬 넓어졌고, 탤런트 유동근은 이회창과 김대중 진영 모두에게서 귀빈 대우를 받을 정도였다. 이런 직접적인 정치활동 말고도 스타들은 좀 다른 의미에서 정치성을 띠는 수도 있다. 아래 글은 {월간 조선}(1996, 9월호)의 김지호 인터뷰이다.

{IMAGE2_RIGHT}지금 학생 신분인데 며칠 전 연세대에서 한총련 학생들의 폭력 시위가 있었습니다. 아마 서울여대 학생들도 여기에 참가한 학생이 있었을 텐데/ 저는 데모라는 것을 겪지 못한 세대였어요. 그만한 이슈도 없었고 이슈라고 해봤자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했었기 때문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참 할 짓 없다. 그럴 시간 있으면 책을 보든지 아니면 나가서 놀든지 하는 게 낫지 왜 저렇게 난리를 칠까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한총련 사건은 정말 어이가 없어요. 그건 완전히 金日成 찬양자들이잖아요. (학생들이)세뇌 당했다고 생각해요.

왜 선거철만 되면 각 정당에서는 스타 모시기에 혈안이 되고 {월간 조선}은 구태여 김지호의 입을 빌려서 한총련을 비판하려 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스타라는 것이 분명히 일반 대중들과는 다른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 때문에 스타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92년도 대선이 끝난 뒤 1년 뒤에 {중앙일보}(1993년 12월 9일)에서는 정치인과 연예인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 기사를 다룬 적이 있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본질적으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중의 인기를 존립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속성 탓인 듯 정치인과 연예인간의 밀접한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중략) 일부에서는 [정치인의 정책적 입장이나 첨예한 쟁점을 희석시키고 경박한 이미지로 정치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나 이같은 흐름이 우리사회의 대세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6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위의 기사는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연예인이 정치에 참여해서 정책을 경박한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자체도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경박하든 고상하든 이미지화되어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큰 흐름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타와 정치인은 모두 매체를 통해 쇼 비즈니스를 한다. 우리에 비해 대중매체가 훨씬 발달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이런 말은 어떤가?

레이건은 자기 자신의 인기가 할리우드 시절에 터득한 연기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인정하곤 했다. 레이건은 "쇼 비즈니스의 근본은 커뮤니케이션이다. 할리우드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카메라에 의해 클로즈업된 상태에서는 대사를 실제로 믿는 그러한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내 자신이 믿지도 않는 말을 연기라는 걸 의식하고 이야기한다면 영화 관객들 또한 실감나게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강준만, {정치는 쇼비즈니스다}, 인물과사상사, 1998, 162쪽)

레이건은 자신의 연기력을 정치활동에까지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사회개혁 세력 역시 최근에 들어 이를 인식하고 자신들의 운동에 스타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스타는 더 이상 몰가치적인 도구가 아닌 하나의 가치관을 가진 매체로 인정해줘야 한다. 평범한 대학생 한 명이 발언하는 것보다는 김지호가 발언하는 것이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 그것은 김지호가 남들보다 더 투철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더 효과적인 이미지 전달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체가 권력이듯이 스타도 역시 권력이며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 권력의 활용여부가 된다. 과연 어떠한 정치성을 띤 스타를 활용할 수 있을까?

스타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스타는 기본적으로 대중매체 속에서 존재한다. 여성 그룹 핑클을 스타라 부르고 있지만 이조시대의 명창들을 스타라 부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타가 탄생하게 된 것도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되어 온 대중문화를 통해서이다. 그러다 보니 스타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유사하다. 대중문화를 연구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1960년대의 레이먼드 윌리엄스 이후에야 가능해졌듯이 스타이론 분석도 거의 같은 시기에 에드가 모랭의 저서가 나온 이후이다. 에드가 모랭은 그의 저서, {스타}에서 왜 사회학자들이 스타연구를 기피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말하고 있다.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없다! 사회학자의 근엄한 시선은 그 어리석은 짓을 외면하고 있는데, 아무도 스타를 연구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짓을 진지하게 논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우리 학자들에게는 진지함이 없다. 어리석음이란 또한 인간의 보다 깊은 구석에 있는 것이다. (에드가 모랭, {스타}, 문예출판사, 1992, 134쪽)

그 뒤, 1980년대 들어 리처드 다이어의 {스타-이미지와 기호}라는 책이 나오게 되면서 스타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스타연구는 모랭의 저서로부터 따지면 30년, 다이어의 저서로부터 따지면 10년 안팎의 짧은 역사에 불과하다보니 그 연구 성과 역시 미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마저도 연구자들 자체가 대중문화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스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연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결과 실제로 문화산업이 야기한 물질적 환경에서 스타가 어떻게 생산되고 스타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인 김호석은 자신의 저서, {스타 시스템}(삼인, 1998)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물론 스타의 이미지가 어떻게 창출되고, 기호로서의 스타가 어떻게 의미 작용하며, 그에 따라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는지 분석하고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문화 산물이라는 텍스트와 함께 스타 또한 대중의 비판적 성향을 무력화시키는 체제 유지적 기능을 한다면, 그러한 연구는 필수적일 것이다. 이 책이 문제시하는 이론적 현실은, 스타 연구가 너무 비판적인 경향에 전도되면서 스타와 스타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물질적 환경에 관한 고려가 별달리 없다는 사실이다.(256쪽)

이 글의 주제를 환기시키면 스타를 통한 사회개혁이다. 그런데 스타는 기본적으로 대중매체라는 틀 속에 존재한고 했다. 기존의 스타연구, 특히 아도르노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스타를 맹목적이고 상업적인 대중의 우상으로서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역할로 규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를 통한 개혁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한국의 문화비평가 이성욱의 스타관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뉴스피플}(1999년 3월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들의 막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스타는 곧 그 동력의 중대한 요인이 된다. 각종 선거에 스타가 동원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정당에서 스타를 동원하고 혹은 선거유세 지원을 유도하는 것은 대중들의 이성적인 투표행위를 바래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즉 환각의 유도이다. 어쨋든 이런 맥락은 스타가 경제적 부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변화와 움직임에 유력한 요인이 된다는 측면을 일러준다.

이성욱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또한 스타가 사회의 변화와 움직임에 유력한 요인이 된다는 측면을 지적한 것은 백 번 지당하다. 다만 스타와 수용자와의 관계를 단지 환각의 유도로만 본다면 애초부터 스타를 활용한 진보운동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만 지적하려 한다. 그래서 난 좀 다르게 보고 싶다. 스타를 통해 체제전복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해도 어느 범위 선까지는 진보운동에 충분히 스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가능하다. 첫째는 김호석과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가 지적한 적이 있듯이, 현대의 자본주의는 상품가치만 높다면 누구든, 심지어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 예컨데 사회 운동을 주도한 인물까지 스타로 배출할 능력이 있다는 것, 둘째는, 스타들 역시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 셋째는 대중들이 단지 스타를 숭배하는 광신도들이 아니라 스타를 자신의 일상에 끌어들여 철저히 이용하는 합리적 소비 주체일 수도 있다는 것 등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스타를 통한 사회개혁의 열쇠를 찾아보려고 한다.

민가협의 운동에 참여한 스타들

내가 처음으로 인터뷰를 요청한 사람은 민가협에서 양심수와 장기수 석방운동을 하고 있는 남규선 총무(35)였다. 그는 나와 만나기 전에 1박 2일의 수련회를 다녀왔음에도 장시간의 인터뷰에 친절히 응해주었다. 민가협이 처음으로 양심수 석방 운동에 스타를 등장시킨 것은 1993년 12월 12일 개최한 콘서트, '양심수가 없는 나라'에서였다. 이 공연에는 전인권, 안치환, 정태춘, 박은옥, 조국과 청춘, 김종서 등이 참가했었다. 이 중 가장 의외의 인물은 단연 김종서이다. 김종서는 당시 <겨울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록가수였다. 더구나 안치환이나 정태춘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정치의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가수였는데 반해 김종서는 그때까지 전혀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던 일반 대중스타였다. 1998년도에 발행한 민가협의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자료집에는 김종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양심수의 밤'에 있어 또 다른 산증인. 93년, 그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파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10년 공연을 맞기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것은 그의 음악활동이 쉼없이 계속되었다는 것이고 이 공연이 계속 열렸다는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가 만 '운'이 닿았다는 것이니 이 어찌 '운'이 아닐 수 있을까.

그렇다. 그건 어쩌면 행운이었을 수도 있다. 남규선 총무는 이렇게 회상한다.

"전 그때 김종서씨가 그렇게 인기있는 가수인 줄 전혀 몰랐어요. 만일 알았었다면 부탁하지도 못했겠지요. 그러니 특별히 최고의 톱 가수를 부른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뭔가 새롭게 꾸며보고 싶어 김종서씨에게 부탁을 했어요."

그럼 김종서는 무슨 생각으로 그때만 해도 위험천만할 수도 있는 양심수 석방 운동에 참여했던 것일까? 그것도 톱가수라면 한창 바쁠 연말이었는데. 남규선 총무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시 김종서씨와 그의 매니저 역시 그것이 어떤 성격의 공연인 줄 자세히 알지는 못했어요. 와서 공연장 분위기를 보더니 놀라더군요. 그래서 제가 원치 않으면 그냥 가도 된다고 했는데 김종서씨가 부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뒤부터는 지금까지도 계속 공연에 참가하고 있어요."

남규선 총무의 말을 들어보면 김종서가 시작할 때부터 확실한 정치적 의식을 갖고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한 해, 두 해 참여하다보니까 그것에 대한 가치관을 갖게 되어 지금은 골수(?)가 된 것이다. 결국 김종서의 경우는 앞서 말한 대로 우연일 수가 있다. 그럼 남규선 총무는 대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스타섭외에 나서는가?

"가까운 기자들이나 PD들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어요. 저 사람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 사람은 이런 정치성을 띠고 있고, 뭐 그런 이야기들 말이지요. 하지만 결국엔 제 감으로 해요. 되겠다 싶으면 거의 다 돼요. 한 80%의 성공률을 보인다고나 할까(웃음)"

김종서와 좀 다른 방식으로 사회개혁에 참여한 또 다른 스타는 김혜수이다. 김혜수가 '양심수 석방을 위한 하루 감옥' 체험에 참여한 것은 남규선 총무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서이다.

"김혜수씨는 그때 소속사가 없었어요. 아마 소속사가 있었다면 힘들었겠지만 김혜수씨에게 전화번호를 남겨놓아 밤에 30분 동안 통화를 했지요. 그때 김혜수씨는 양심수에 대한 특별한 의식은 없었어요. 하지만 자세히 설명해주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하며 순순히 동참해주었지요."

남규선 총무가 김혜수에게 '하루감옥' 체험을 권하게 된 계기는 역시 특유의 감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김혜수라면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뜻 참여해 줄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가 월간 {스크린}(1997년 1월호)에 실린 김혜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면 더 확신을 갖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가장 쓸쓸한가/ 사랑하는 사람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
무엇이 가장 가치있나/ 자유! 내 속에서 스스로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자유
무엇에 가장 열광하나/ 록! 바나. 스매싱 펌킨, 스웨이드 등등등. 영국의 록이 좋다.

록가수 김종서의 콘서트 참여와 록과 자유에 열광하는 김혜수의 '하루 감옥' 체험은 뭔가 모를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김혜수는 {FEEL}(1998년, 9월호)인터뷰에서 그 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40년간이나 복역중인 양심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이나 놀랍고 안타까웠습니다. 양심수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그들이 잃어버린 인권을 되찾는 데 제가 힘이 된다면야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지요.(중략) 밀폐된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마음의 자유까지 빼앗아가는 것 같았어요. 시간을 정해 두고 하는 일이어서 그런데로 견뎌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자신 없을 것 같아요.

김혜수의 '하루 감옥' 체험은 SBS의 <한밤의 TV연예>에도 보도가 될 정도로 화제꺼리였다. 그것은 김종서의 콘서트 참여보다도 더 신기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톱 클래스의 여자 배우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예는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뒤 김혜수는 '우유마시기 운동'에 무료로 광고출연에 응하였고 '동강 살리기' 운동에도 참여할 정도로 열성 운동권(?) 연예인이 되었다. 김종서와 마찬가지로.

환경연합의 운동에 참여한 스타들

민가협의 운동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반정부 운동의 성격을 보였기 때문에 기존의 브라운관 스타들이 참여하기를 무척 꺼렸었다면 환경연합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탈정치적이다보니 유인촌과 같은 대형 스타도 일찌감치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할 수가 있었다. 또한 중간에 조기퇴임하기는 했지만 연극인 손숙은 환경연합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장관의 지위에까지 올랐었다. 환경연합의 생태조사팀의 이지현 팀장(27)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환경연합의 운동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스타들의 참여폭이 넓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건 앞으로 더욱 더 그렇게 되겠지요. 또한 예전부터 손숙씨나 유인촌씨 같은 연극계의 선배들이 환경연합에서 일하고 있다보니 더욱 더 많은 스타들을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었지요."

환경연합에서 최근 열의를 갖고 하고 있는 운동은 '동강 살리기'이다. '동강 살리기'엔 영화<쉬리>의 최민식도 참여했었다. 최민식이 '동강 살리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물고기 '쉬리'가 동강에 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환경연합이 <쉬리>팀에 제안을 한 이후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쉬리>팀은 일정 때문에 쉽게 동참할 수 없었던 반면 최민식은 개인 자격으로 밤샘 농성에까지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최민식의 그러한 사회참여에 대한 의지는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그가 밝힌 환경연합 참여의 변, "사회적 공동이익, 공동선을 위한 행동을 할 나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배우, 최민식은 진지했다.({참여사회}, 1999, 7월호)

최민식은 참여사회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예전부터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단지 그 동안 시간 관계상 직접 찾아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최민식이 뚜렷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하나 일을 해나가면서 또한 배워가면서 그 참여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쉬리> 전까지만 해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그가 <쉬리> 이후에 북한 주민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고 학교 다닐 때 마음껏 마실 수 있었던 수돗물에 대한 향수(?)에서부터 이젠 그린피스의 활동에까지 몸을 바칠 태세이다. 그의 각오를 들어보자.

책상머리에 대가리 디밀고 앉아 떠드는 사람은 정말 싫어요. 실천하는 사람, 얼마나 멋있어요. 저도 순수한 뜻을 가지고 동참할 기회를 주세요. 수잔 서랜든같은 외국배우처럼 열심히 할게요.({참여사회}, 1999년, 6월호)

스타들은 왜 사회개혁에 참여를 원하는가?

이 부분은 의외로 민감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진보운동 단체들도 그렇고 스타들도 그랬다. 스타들 입장에선 이미지 광고나 해보려는 쇼가 아니냐는 시각을 두려워했고 진보운동 단체들은 진보운동에 스타성을 이용하려한다는 비판을 의식하고 있었다. 민가협의 남규선 총무는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씨를 '양심수를 위한 밤' 콘서트에 참여시킬 때도 그의 스타성을 이용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그건 김혜수씨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스타들 역시 똑같이 말한다. 최민식의 경우는 이렇다.

"우선 최민식이 시민단체를 이용해 이미지-업하려는 게 아니냐는 눈길은 정말 싫다. 그럴 맘도 없는데 오해받지 않게 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일할 수 있도록 다른 이들과 똑같이, 회원의 하나로 대해주기 바란다."({참여사회}, 1999, 7월호)

영화인들 사이에서나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거의 투사(?)라고 불리는 명계남조차도 나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냥 개인적 차원에서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투사라니요? 그건 그냥 다른 회원들처럼 한 개인의 참여 정도로 봐주세요."

난 오히려 좀 돌려 생각해보고 싶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자꾸 개인적 차원의 참여라는 점을 강조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이제껏 스타들이 오죽 사회운동에 무관심했으면 이들이 한결같이 이 점에 대해 민감하게 나오냐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남규선 총무는 정확하게 짚어 말한다.

"아직 사회분위기가 스타의 사회운동 참여, 혹은 정치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많아요. 외국처럼 스타들 역시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의견을 갖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좀 더 많은 스타들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앞서 제기한 세 가지 논의 중에 하나이다. 스타는 매체이자 권력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스타 역시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정치적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들 역시 당연히 사회참여와 정치활동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은 보통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당당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참여하기를 원한다. 평소부터 맑은 수돗물을 마시고 싶어했던 최민식은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고 남달리 자유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김혜수는 양심수 석방 운동을 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 역시 이들의 이런 견해를 존중해준다. 환경연합의 이지현 팀장은,

"스타성을 운동에 동원한다는 것은 아직 생각에 없어요. 스타만 보러 팬들이 몰려와봐야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어요? 분명한 의미투여가 되어야지요. 스타 자신들부터요."

스타들과 시민단체들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은 스타가 사회참여를 하면서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성향과 운동의 성향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스타성만을 이용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서로에게 큰 상처만 줄 가능성이 많다. 스타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맡기 싫은 역을 할 수도 있고 노래부르기 싫은 곳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수도 있다. 이런 스타들이 사회참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스타의 사회참여는 그런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타성의 활용이라는 생각은 아직까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의 의견은 이왕에 스타를 운동에 참여시킬 바에야 좀 더 많은 대중 동원력을 가진 10대 스타들을 섭외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남규선 총무도 이지현 팀장도 아직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봤다고 한다. 10대 스타들, 특히 댄스 그룹들은 대부분 기획 매니지먼트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사회참여 의식을 갖기는 좀 이르지 않냐는 것. 그리고 기획 매니지먼트도 인기 사이클이 워낙 빨리 바뀌는 10대 스타들을 사회운동에 참여시켜 이미지-메이킹에 활용한다는 생각을 갖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 부분에서 문득 과연 현재 상황에서 스타는 어느 범위의 운동 영역에까지 참여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스타가 참여하는 운동의 범위

민가협도 환경연합도 모두 아직까지 스타성을 사회개혁 운동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스타가 일단 운동에 참여했을 때 그 영향력 만큼은 일반 개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다는 점은 인정한다. 남규선 총무는 신해철 콘서트에서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신해철씨의 콘서트장에 갔었는데, 우연히도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신해철씨는 과거에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지요. 콘서트 도중에 그는 그 당시의 어머니를 회고하면서 장기수와 양심수 문제를 언급하더라구요. 장기수와 양심수의 어머니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그때 콘서트의 관중들 모두 신해철씨의 말에 공감하는 듯했었지요."

이지현 팀장도 거의 같은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유인촌씨가 환경연합에 회원가입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면 분명히 효과가 있어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선뜻 회원 가입에 나서주는 거에요. 아무래도 유인촌씨의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결국엔 같은 말이 된다. 어쨋든 의도와는 관계없이 스타성이 활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스타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현재까지 스타들이 참여하는 운동이 대단히 협소하다고 생각한다. 스타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과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환경운동 정도에 그치고 있다. 스타들이 좀 더 적극적인 진보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아직까지 예전의 진보 운동의 성향이 많이 남아있는 서울대 총학생회를 찾아가 박경렬 총학생회장(사회4)을 만나보았다. 서울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에서는 대동제 때 유명 가수가 온다. 반면 서울대 대동제에는 유명 가수가 초청된 적이 없고 그러다보니 대동제에의 학생들의 참여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그런 것을 바라는 학생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총학생회에서 나서서 스타를 부르려는 계획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건 단지 서울대만이 강조될 뿐이지요. 스타를 동원하기보다는 학생들 자체적으로 대항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대에 스타들이 전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4.19 마라톤 행사 때 윤도현과 안치환이 공연을 하러 온 적도 있고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렇다면 총학생회가 주관하는 노동자 파업지지 집회 같은 곳에 유명 스타를 부르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애초에 가정이 성립 안 되는 것이지요. 어차피 스타라는 것은 스타 시스템 안에 존재하므로 그런 집회에 올 리도 없어요. 또한 거기에 대한 효과 역시 스타 개인에 대한 열망 뿐이므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나에게 어째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정도였다. 그나마 서울대 총학생회는 운동 진영 내에서 온건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좀 더 선명한 진보운동을 하고 있는 서울대 인문대학 정사국장 김유진씨(국문3)와 인터뷰를 하였다. 그는 정사국장의 위치에 있으면서 노동운동 단체와 연대하여 노동운동에 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그 역시 메이데이 집회 전야제 공연에 꽃다지나 윤도현을 불러본 적이 있었고 학생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고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스타를 참여시키면 분명히 대중동원 능력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타 자체가 우리들의 운동에 동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운동의 폭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스타의 폭이 너무 좁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레드 컴플렉스가 존재하니까요. 톱 스타가 집회에 올 가능성도 없지만 뭔지도 모르고 오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

그의 말 중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바로 운동의 폭에 비해 스타의 폭이 너무 좁다라는 점, 즉 스타는 스타 시스템과 대중 매체 안에 존재하므로 그 영역을 벗어나는 운동에 참여할 스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점이다. 그런 스타가 존재만 한다면 그들 역시 언제든지 환영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가 다원화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스 스프링스턴의 [본 인 더 유 에스 에이]의 뮤직 비디오 감독인 존 세일즈는 맑시스트이자 미국의 광산노조 투쟁을 지지하였고, 우리가 흔히 섹스심볼로 인식하는 리처드 기어는 전 세계 10억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199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티베트 독립을 주장해 갈채를 받은 적도 있고 마이틀 잭슨은 한국의 DMZ(비무장 지대)에서의 콘서트를 기획해 우리를 놀라게 했었다. 이렇듯 미국의 스타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관심분야에 따라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스타들은 너무 억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난 그 해답을 스타의 팬과 매니저에게서 찾아보았다.

스타와 팬과 매니저의 관계

스타가 스타성을 활용한다는 점은 곧 팬 동원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스타의 움직임에 따라 팬이 따라 움직이므로 스타가 진보운동에 참여하면 그의 팬 역시 진보운동에 참여할 것이라는 단순한 도식이다. 앞서 소개한 문화평론가 이성욱의 '환각의 의식'부분이 그렇다. 만일 이런 환각 의식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한다면 그것은 곧 '역 스타성'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문화 평론가 강영희의 주장은 이를 뒷받침한다.

대중문화라는 '가상의 현실' 속의 스타시스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앉아 있는 대중들은, 현실에서 총족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을 역으로 투사하며, 그 결과 대중문화라는 가상의 현실의 거울에 비친 욕망의 그림자인 '스타의 이미지'에 대한 열렬한 숭배를 퍼붓는다.(강영희, [스타론], {TV, 가까이 보기, 멀리서 읽기, 문화연구, 1993, 91쪽)

앞서 말한 역 스타성이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서 사회참여운동에 동참하는 스타에 대해 멍청한 대중들이 열렬한 숭배를 퍼붓는다면 그게 바로 진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문제 제기이다. 하지만 이런 도식이 성립하려면 대중들이 과연 스타가 하는 일이라면 아무 생각도 없이 다 따라하는 가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딱 그렇게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기존의 대중문화 연구에서의 대중, 즉 대중문화의 수용자는 매체의 메시지에 쉽게 영향을 받는 나약한 수동적 존재로 상정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수용자 연구는 매체에서 주는 메시지 자체가 다의성을 띠고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 역시 이를 자신의 일상에 끌어들여 다양하게 해독해 낸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텍스트의 다의성의 관점에서 연구한 사람이 피스크이고, 수용자의 해독에 중점을 둔 사람이 몰리이다. 특히 몰리는 논문<네션와이드 수용자>에서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 대한 수용자의 반응이 계층, 인종, 직업, 성별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는 것을 수용자와의 직접 면담을 통해 밝혀냈다. 물론 그 다양한 범위의 해석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만 기존의 문화비평처럼 수용자가 대중매체에 무비판적으로 끌려다니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스타 역시 하나의 매체이자 메시지이다. 그럼 몰리의 연구결과에 따른다면 스타에 영향을 받는 팬 역시 스타들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PC 통신 천리안의 김혜수 팬클럽 시샵인 엄신희(23)씨와 전화 인터뷰를 하였다. 나의 첫 질문은 과연 그가 김혜수가 참여한 사회개혁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였다.

"팬 입장에선 너무 좋아요. 혜수 언니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 역시 양심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구요. '동강 살리기'에 대해선 제가 혜수 언니보다 먼저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혜수 언니가 참여해서 더 기쁘요."

나는 이 대답에서 두 가지를 읽어냈다. 우선 스타의 사회 참여에 팬들이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고 그로 인해 그 팬들 역시 그 운동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김혜수라는 스타를 이미 일상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보듯이 김혜수의 활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자신의 삶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엄신희씨는 양심수 석방과 동강 살리기에 긍정적인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스타와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달랐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만일 김혜수가 노동해방 운동과 동성애 운동에 참여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엄신희씨는 이런 운동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만일 혜수 언니가 그런 과격한 운동에 참여한다면 하나 하나 따져볼 거에요. 혜수 언니의 의견을 듣고 거기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같이 동참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설득해야지요. 그런 운동에 참여하지 말라고."

흔히들 우려하는 것과 같이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가 김혜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일상과 김헤수의 성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고 그런 점에서 그는 김혜수라는 스타의 상품을 소비하는 합리적 소비주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운동이라면 언제든지 스타와 함께 동참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다. 물론 그렇다고 김혜수와 자신의 판단이 다르다고 해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렇다면 매니지먼트 쪽은 어떨까? 시민단체들의 입장은 스타와 직접 섭외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많지만 매니저를 통하면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지 확인해 보기 위해 나는 김혜수의 매니저인 삼부 파이낸셜의 박재형(31)씨와 인터뷰를 하였다. 김혜수는 민가협과 환경연합의 운동에 참여할 때까지는 소속이 없었다. 그 뒤에 삼부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혜수씨의 사회참여는 저의 쪽의 기획은 아닙니다. 저희와 계약을 맺기 전부터 꾸준히 활동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걸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스케줄이 허락을 해야겠지요. 스케줄이 허락하는 내에서라면 언제든지 혜수씨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매니저 입장에서 김혜수의 사회참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였다. 스케줄 잡기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김혜수의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기획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매니저가 나서서 섭외해 볼 생각은 없는지. 여기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사회단체 쪽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혜수씨에게 곧바로 알려줍니다. 그걸 숨겼다가 나중에 혜수씨에게 걸리면 큰일나니까요(웃음). 그리고 저희 쪽에서도 혜수씨가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 저희와 혜수씨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걸 직접 나서서 주선해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전적으로 혜수씨 개인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혜수씨가 좋아해야 하는 거지요."

스타도 매니저도 아직까지는 사회 참여를 이미지 메이킹에까지 활용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김혜수 팬클럽 시샵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것이다. 만일 김혜수가 노동해방 운동과 동성애 운동 같은 아직 범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는 운동에 참여했을 때 매니저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무척 난감해했다.

"그건 참 말하기 곤란하네요. 그런 운동에 대해서라면 아직 국민들의 부정적인 생각이 많겠지요. 만일 혜수씨가 거기에 참여한다고 하면 저희로서는 정말 말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작 말릴 수는 없겠지요. 앞서 말한 대로 그건 혜수씨의 판단이니까요."

박재형씨는 너무나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스타의 사회참여를 기획할 정도로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도 않았고 전적으로 스타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고, 만일 좀 과격해 보이는 운동에 스타가 참여한다고 했을 때 매니저 입장에서의 곤란함에 대해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스타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팬과 매니저와의 미묘한 관계 내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통칭해서 사회적 분위기 혹은 사회구조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결론이다. 나는 애초에 이 글을 시작할 때 세 가지의 논점을 가지고 들어왔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참여를 하는 스타조차도 포용할 수 있다는 것, 둘째, 스타 역시 개별적인 정치적 인간이라는 것, 셋째, 스타의 팬은 스타를 소비하는 합리적 소비 주체라는 것이다. 내가 논점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소수에게서만 지지를 받는 사회 운동에 스타가 참여하다가 스타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날 수도 있고 전혀 정치적 색깔을 보이지 않는 스타도 있을 수 있고 스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상정해서 논의를 끌고 나갔고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은 계속해서 시도를 할 때 그 가능성의 폭은 점점 더 넓어진다. 스타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구현수단이라고 무조건 배척해버린다면 오히려 스타라는 막강한 매체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고소영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누가 고소영 같은 화려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스타가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하리라 생각이나 해봤을까? 하지만 고소영은 아무 생각 없이 스크린 쿼터 사수 집회에 나갔다가 거기서부터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문제를 처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스타들의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에 안 좋은 시각이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꼭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김혜수가 양심수 석방 운동을 하는 것이나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고소영이 한국 영화 지키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오히려 시민단체 입장에서 스타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해서 스타들의 성격에 맞는 운동영역을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스타들이 적극적으로 운동영역을 찾아나갈 수 있는 데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말이다. 물론 사회 분위기 자체가 성숙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사회개혁 운동이 인정을 받아야 스타들 역시 마음놓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역시 가만히 앉아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문민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김혜수가 양심수 석방 운동에 나서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해봤을까? 인기 가수 김종서를 '양심수를 위한 밤'에 불러주지 않았다면 그가 계속해서 양심수 석방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할 수나 있었을까? 그러한 점에서 민가협이나 환경연합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스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이 원하는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올바르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올바르게 살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글의 결론은 강준만 교수의 글로 대신하겠다.

대중에게 해야 할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진보 진영이 '대중'의 의미를 복원시키는 의미에서의 방법론으로서 스타의 상업성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투쟁이 스타를 경멸하고 거부하는 한 그 투쟁은 패배하게 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이 거들 떠 보지도 않는 어두운 그늘에 영원히 머무르며 스타가 상징하는 상업적 체제를 개탄하는 건 투쟁이 아니라 자학이다.({고독한 대중}, 1997, 개마고원, 62쪽)

* 본 글은 대자보 24호(1999.1.23)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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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07 [12: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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