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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된 국민과 코메디 민주주의
정치는 탐욕을 타고...탐욕은 시위를 타고...
 
박상준   기사입력  2008/07/08 [03:22]
2008년 현대경제연구원의 ‘대한민국 경제 행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은 현재 경제적으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고, 경제적 행복을 저하시키는 요인은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을 꼽는다. 또한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에서 행복지수가 뒤에서 세 번째라고 한다. 노무현 정권 때 국민소득 2만 불(대략 2천 만원)을 달성했다고 한다. 세계는 대한민국을 경제대국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

누군가 국민을 쥐어짜지 않고서는 이러한 현상은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신은 국민에게 직접 물어봐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여기저기 보고되는 보고서를 보아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OECD 보고서에 의하면, OECD국가 중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바닥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을 하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을 하면할수록 인간이 지닌 잠재적 가치는 떨어진다는 것이다. 점점 지쳐가는 국민에게서 지속적으로 일정한 생산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쥐어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 제공이란 미명하래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을 단순 노동이나 노가다 꾼으로 고용시켜,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노쇠해가는 국민들을 만든다. 이런 국민들이 어떻게 꿈(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겠나? )

국민을 쥐어짜 부를 움켜쥐면 행복해질까? 점점 지쳐가는 국민 속에서 범죄자가 속출하고 있다. 선량한 국민이 폭도로 변하고, 범죄자로 변해가는 것이,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르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지속되면 앞으로 15년 후인 2023년에는 부를 손에 쥔 자는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즉, 실질적으로 막대한 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창의적 연구 노동을 제공하는 인력이 급감하여 국가 간에 교류할 만한 생산이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이리되면, 치안은 무너지고, 범죄는 넘쳐날 것이다. 결국, 탱크나 총기 등이 버젓이 도로를 활보하게 될 것이다.

탐욕의 양과 창의성의 량이 결정되면, 그 국가의 운명도 사실상 결정된다. 시위 등으로, 복잡다기해진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반이성적이며, 반윤리적인 시위를 아무리 평화적으로 마쳤다고 해서 어찌 그 결과가 좋을 수 있을까? “미국산 소고기는 정말 미친 소인가? 수십만 군중이 정부에 대한 불만과 국민적 스트레스를 풀기위해서인지 너무나 비합리적으로 반미 감정을 토해냈다. 어쩌면 그것이 반미 감정이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를 것이다. 정말로 미국산 소고기가 미친소였다면, 시위구호가 ”미국산=미친소“라는 구호에 반감은 없을 것이다. ”소고기 수입“이라는 국가적 무역협상을 졸속으로 이끈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게 묻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지, 미국산 소고기 자체를 미친소라고 매도하는 것은 국가적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미국산 소고기는 미친소“라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시위가 지속 된지 몇 주 만에 20조 이상의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일부에서는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을 극도로 혐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래를 할라치면, 기업을 팔아먹는 매국노라고 외쳐대고, 한국기업을 사려고 하는 외국인을 한국인을 지배하려는 침략자로 매도한다. 이리되면 어느 누가 더불어 살 수 있겠는가? 지금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담을 쌓으려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나? 더 넓고 더 높은 경계가 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영역을 줄여나가고 있으니, 과연 어디까지 담을 쌓을지 궁금하다. 한 평의 땅에 담을 쌓아 스스로 자유롭다 할 것인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때,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풀려고 하면 더욱 더 얽히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힘으로 잡아당기기도 하고, 더욱 더 힘을 가하면 실이 끊어져버린다. 실을 끊고 싶지 않다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풀어내야만 한다. 실타래가 얽힌 복잡함은 처음이 가장 크다. 따라서, 처음으로 실타래를 옳게 풀기가 제일 힘들다. 주의력을 집중하여 한번 풀기시작하면 점점 쉬워지고, 결국 실을 다 풀게 된다.

민주주의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대화와 타협이다. 어떤 상황에서 시위는 대화와 타협을 재촉하거나 촉발하는 원동력에 불과할 뿐이다. 쌍방 간에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주장 중에서 간과했던 부분도 찾아낼 수 있고, 어쩌면 상대방도 그러할지도 모른다. 대화는 진지하게 이뤄져야 하며, 탐욕(사심)이 없어야 한다. 만약, 탐욕이 깃들어 있으면, 그들은 대화를 무리하게 이끈다.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다. (물론 탐욕이 있더라도 여러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한, 차선적인 타협책을 찾아낼 것이다.) 따라서 쌍방의 대화를 감시하며 판단을 내려줄 중립적인 입장을 지닌 삼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이다. 국민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해석을 하고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결정을 한다. 그 결정이 바로 민의(국민의 마음)이다.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국민의 민의를 받아들여, 대운하 공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어찌되었는지 갑자기 대운하 관련주라는 주식들이 며칠 동안 급등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습을 보이더니, 대운하에 관해 언급을 하며, 주식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정보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이 말을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밑바닥에서는 엄청난 탐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우선 사리사욕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국민에게 오해를 사지 않도록 가능하면 도덕적으로는 흠결이 없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야 하리라 생각된다.]

2008년 7월 7일 50만에 육박하는 대규모 시위가 다시 한 번 이뤄졌다. 과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때문에 이렇게 모일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러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가 절대빈곤층에 해당한다. 주머니에 지닌 돈도 없는 서민, 더 나아가 빚으로 생계유지가 극히 어려운 신용불량자 등이 넘쳐나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양극화된 사회다. 그러한 사회에서 국민이 값싸고 먹을 만한 소고기(먹거리)를 반대하여, 소비자로서의 국민의 권리를 스스로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광우병 위험에 대하여 언론이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묵살한 채, 자의적으로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광우병 위험 신드롬까지 불러 일으켜, 소비자의 소고기 소비를 줄여버렸다. 한우농가에 타격을 입힌 것은 누구인가? 그렇게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이 줄어들자, 곧바로 돼지고기 가격을 올린 자들은 누구인가? 해마다 돼지콜레라 등 여러 가지 병에 노출된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특별히 안전해서 돼지고기 소비가 늘었을까? 애국이란 실체가 없는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다. 즉, 애국(국민을 사랑하는 것)이란 국민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소고기가 광우병으로 판매량이 위축되어 있을 때, 얍삽하게 돼지고기 가격을 올렸다고 해서 국민들이 돼지고기 판매상 등을 매국(국민을 파는 행위)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탐욕이지 않은가? 탐욕은 인간을 열정적으로 일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이다. 인간이 지닌 고유한 본성인 그러한 요소를 탐욕이라고 하여 매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간(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즉, 합리적인 어떠한 근거도 없이, 매국노라고 외치는 자가 있으면 그런 자들이 실질적으로 매국노이다. 그러나, 탐욕이 자기능력의 한도 내에서 얻어지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탐욕이라면 어찌될까? 그 이상의 탐욕은 파괴활동이며, 결국 황금달걀에 대한 탐욕 때문에 하루마다 황금 달걁을 낳은 닭의 배를 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2008년 7월 7일 50만에 육박하는 세계가 놀랄만한 대규모 시위가 이뤄졌다면, 그 시위의 근원적인 원동력은 바로 국민 태반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과도한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 삶의 질의 저하 등 너무나 많은 부정적인 요인들이 국민의 삶을 마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버린 것이다. 즉, 끊임없이 동조하는 국민의 시위참여는 이참에 자신들의 불만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불만을 스스로 해결하면 되지 않나?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큰 오산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홀로 시위를 한 자들의 말로를 우리는 이미 수없이 보아왔지 않나? 대표적으로 석궁사건으로 유명한 “김명호 교수”의 시위가 있다. 김명호 교수의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획득하기 위한 시위는 정말로 처절할 정도이다. 어느 누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투쟁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사회는 이러한 용기를 보여준 자조차도 전혀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권익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었다면, 이렇게 기적같은 대규모 시위는 결코 발생할 수가 없다. 시위에 참여한 대중들의 성향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시위에 참여한 뚜렷한 명분도 그다지 없다. 묻지마식 시위 참여자가 많은 것이다. 아직까지는 유교라는 강력한 정신 통제(금제)수단이 남아 있어, 이 사회가 붕괴되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시위의 모습을 보면 알수 있듯이 태반의 국민은 좌파가 무엇인지 우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 70% 이상이다. 50만이 모여든 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생겼다. 만약, 50만에 육박하는 이러한 대규모 국민적 시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만족할 만한 어떠한 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무시되어 무너진 사회이다. 한마디로 코메디 민주주의인 것이다. (50만이 운집한 평화적 시위대의 요구를 묵살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요구가 설령, 그릇되었을지라도 말이다. 만약, 50만 국민의 시위가 묵살이 된다면, 한 개인으로써의 국민의 시위는 너무나 하찮게 묵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국민을 이렇게 무력하게 만들었기에 약한 생물들이 생존하는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까? 약한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집단으로 뭉친다. 여기저기서 억울함을 당한 국민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인터넷 언론 게시판 등에 올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처럼 억울한 경험을 꽤 해봤을 것이다. 밤에 바다에서 수많은 불빛들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찌 해야 할까? 불빛이 하나만 요동쳤다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겠지만,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탄 배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모두 동시에 크게 요동치고 있다면, 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가 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바다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가 치고 있는 것이다. 빨리 배를 돌리지 않으면, 엄청난 해일이 덮칠지도 모른다.

50만 명의 국민이 시위에 참여했는데, 평화적이었다. 선동세력에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면, 그들의 의도에 맞춰 이미 수십만의 시위대가 전경들을 몰아내고 청와대를 점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평화적이었다. 이것은 국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부정부패로 탐욕스런 이 사회가 일으키고 있는 파도에 의해 국민들이 요동(시위)치는 것이다. 조만간, 엄청난 해일 같은 사회적 붕괴(대규모 실업, 스태그플레이션 발발, 부정부패, 차별, 범죄율 급증, 외국인 투자 급감)가 발생할 것이고, 대비하지 못한 국민들은 전시체제를 경험할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추세라면 2023년이 최대정점이라고 예측된다. 사실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가난한 국민을 전혀 고려하지도 대변하지도 않고 있다. 광우병이 창궐했던 10여년 전부터 침묵을 지키던 시위주도세력들에게서 정직성을 기대하긴 심히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해 논하면서 병(광우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국민들의 먹거리인 값싼 미국산 소고기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광우병의 위험성에 관해 집요하게 부풀리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시위, 정치, 경제, 사회, 사법, 금융 등 한반도의 곳곳에, 거대한 탐욕의 파도가 물결치고 있는 것이다. 그 파도에 의해 국민을 비롯해, 모든 것이 요동치고 있을 때, 그 요동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지운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단지, 지속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

지구로부터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별나라에도 사람(외계인)이 살고 있다고 하자. 이들은 참으로 특이하게도 바나나를 먹는 종족이 있고, 사과를 먹는 종족이 있었다. 한마디로 주식(주로 먹는 음식)이 바나나나 사과였던 것이다. 그런데, 바나나를 먹는 종족은 사과만을 키울 수 있었고, 사과를 먹는 종족은 바나나만을 재배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하루에 사과 3개를 먹거나 바나나 3개를 먹는다. A(바나나 생산업자)는 2시간 육체노동을 하면 바나나 1개를 얻을 수 있고, B(사과생산업자)는 2시간 육체노동을 하면 사과 1개를 얻을 수 있다고 하자.
A라는 사람이 바나나 10개를 가지고 장터에 나왔다. 장터에는 C(유통업자)라는 사람이 좌판을 깔아놓고 사과를 팔고 있다. A가 C(유통업자)에게 사과1개를 사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팔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C(유통업자)는 A(바나나 생산업자)의 품속을 흘끗 들여다 봤다. 바나나 10개가 품속에 있는 것을 봤다. C(유통업자)라는 사람이 말했다.
“바나나 10개 주면, 사과 1개 주지.”
여러분이라면 바나나 10개를 주고 사과 1개를 사겠는가! 노동원가(사과 1개를 생산해내는 필요한 육체노동)를 알고 있다면 결코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A(바나나 생산업자)는 사과의 원가를 모르기 때문에, C(유통업자)에게 물었다.
“사과의 원가가 얼만데요?”
C(유통업자)는 사과의 원가를 말해주지 않거나, 원가를 속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킬 만한 폭리를 취하기 위해서는 원가를 정직하게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A(바나나 생산업자)는 사과 1개를 사기 위해 바나나 10개를 상대방(유통업자)에게 주면, A(바나나 생산업자)는 예전보다 10배나 육체노동에 매달려야 된다. 만약, A(바나나 생산업자)가 C(유통업자)와 10대 1 거래를 하게 되면, C는 9배의 이득을 얻었기에 9시간동안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9시간 동안, 육체노동이 아니라 아마 창의적 활동을 할 수도 있고, 아예 놀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떻게 하면 더욱 더 부를 획득하여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궁리를 할지도 모른다.
“아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과를 10배 가까이 올려 팔듯이 소고기 유통망 사업에도 진출해 10배 가까이 올려 팔면 되잖아.“
탐욕스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적용할 분야가 한도 끝도 없이 생각난다.
“어? 건설업 유통망에도 진출해볼까? 돈도 많이 생겼으니 로비나 해서 공사를 따내야지! 어차피 자기 돈도 아니고 세금인데 팍팍 밀어달라고 하지. 10배정도 남게 밀어달라고 해야지. 하하, 나의 원칙은 앞으로 무조건 10배 뻥튀기다. 유통업자가 일하는 것 봤어. 하청업체에다 1만 주면 되지.“

그러나, 유통업자의 탐욕으로 인해, A(바나나 생산업자)는 하루에 잠을 4시간만 자고 20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이리되면, A라는 사람의 삶은 어찌될까? 머피의 법칙처럼 악순환의 바퀴에 갇히고 만다. 잠을 제대로 못자니, 수면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화되어 병에 걸리기 쉽고 결국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한계에 이를 것이다. 병에 걸려 바나나를 가지고 병원에 가면, 바나나가 모자라니 더 많이 가져오라고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A(바나나 생산업자)는 은행을 들릴 것이고, 은행은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자신들과 연계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2차 금융업체를 소개하고, 2차 금융업체는 3차 금융업체를 소개하고, 3차 금융업체는 결국 사채업자를 소개할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생산 활동에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그 사회는 많은 문제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간단한 예를 들면, 미국의 도덕성이 타락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단순노동에 불과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등에게 상상할 수 없는 부를 분배한다는 것이다. 오락을 즐기는 인간에 있어, 오락문화는 블랙홀 같은 유통망이다. 이 유통망은 돈이란 휴지를 걷어, 휴지를 생산으로 바꿀 수 있는 생산적, 창의적 노동력으로 재분배하도록 기여해야 하는데, 유통망을 거머쥔 자들은 오직 탐욕에만 눈이 멀어, 과학이 이룩한 기적의 생산을 터무니없이 인기스포츠 선수들과 독식하며 쓸어 담아 버리는 것이다. 과학이 이룩한 기적의 열매(과실, 생산)를 기독교가 십일조니 헌금이니 하며 100조 이상의 돈을 걷어 선교활동을 함으로 인해, 부의 분배를 왜곡해버리니, 대한민국 국민은 모조리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후를 논하는 종교도 블랙홀과 같은 강력한 유통망이다.

유통망을 쥔 자들은 부를 균등하게 분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걸 그러하겠는가!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야 한다. 은행이 국민에게 신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서 신용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지만, 이와 같은 패러다임은 왜곡된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겠다고, LTV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DTI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어차피, LTV(주택담보대출비율)든 DTI(총부채상환비율)든 금융기관인 은행 등에서 개인의 재산이나 월급여 등을 바탕으로 신용을 매기는 것이다. 비생산적 일에 종사하는 서비스업인 은행입장에선 이익 창출이란 이자를 받고 돈을 굴리는 것이다. 이자소득은 미래 사회에서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독과 같은 것이다. 또한 신용이 이익단체에 의해 등급이 매겨질 때는 신용의 쓰임새가 크게 왜곡되어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은행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더 많이 돈을 빌려가 제때 갚는 자들에게 최고의 신용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돈이란 휴지에 탐욕을 담아, 신용을 부여하는 사회에 신뢰가 깃들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한 사회는 반드시 도태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A(바나나 생산업자)는 궁핍한 삶에 허덕이며, 하루종일 일에만 매달려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꼼꼼히 되짚어 볼 한 치의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다. 사과 1개조차도 사먹을 만한 바나나도 수중에 없다. 바나나가 9개 있다고 치자. 그런데 어느 날, 외국산 사과가 수입되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고, 검역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부대비용을 지불하고 A(바나나 생산업자)가 사는 국내에 들어왔다. 바나나 3개 주면, 사과 1개를 준다는 것이다. A는 수중에 있는 바나나 9개를 주고 사과3개를 샀다. 드디어, 예전처럼 하루에 사과 3개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신 바나나 9개를 생산해 사과 3개를 구매하기 위해 하루 18시간 일해야 한다. 이것도 중노동이지만, 그래도 좀 전보다는 낫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약간이라도 나아진 틈을 짜내어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생각이라는 창의적 노동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 A는 어떻게 하든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18시간 일하는 것도 피곤하다. 전에는 20시간에 일하고 하루에 한끼(사과 1개)만 먹지 않았는가!

먹는 것은 하루에 1끼로 그대로 하고, 시간(여유)을 벌자. 그러면 한끼 분량의 바나나 3개를 생산하는데 6시간만 일하면 된다. 하루 한끼 먹어 기운도 없겠지만 A(바나나 생산업자)는 남는 시간을 쥐어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를 알아낸 사람처럼 혼자 화를 냈다.
“B(사과생산업자)가 나를 속였어. 사과가 너무 비싸잖아.”
A가 B(사과생산업자)를 찾아갔다.
“너가 그럴 수가 있냐! 같은 나라에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비싸게 사과를 파냐!”
B(사과생산업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내 모습 안보이냐! 나도 살기 힘들어! 나는 분명 사과를 유통업자(C)에게 팔 때, 사과 10개에 바나나 1개만 받고 팔았어. 오히려 너가 내게 이럴 수가 있냐? 수입산 사과로 인해, 오히려 더욱 더 힘들어졌어. 유통업자가 내게 와서, 당신 사과는 비싸니 더 싸게 팔라는 거야! 이젠 유통업자에게 사과 20개를 주고 바나나 1개를 얻는다고. 너보다 내가 더욱 더 힘들어졌어.”

A(바나나 생산업자)와 B(사과생산업자)는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봤다. A와 B 둘 다 극도로 힘들었었다.(자신들처럼, 아마 국민들은 엄청나게 비싸게 자신들이 생산한 과일을 사먹으며, 힘든 삶을 살 것이 뻔하다.) 그나마 외국산 사과가 수입됨으로 인해, A는 약간의 여유를 쥐어짤 수 있었고,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유를 쥐어짜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힘들다고 들썩 드러누워 쉬어 버린다면 어찌될까? 조그마한 기회가 있을 때, 탈출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A와 B는 생산업자이면서도 소비자였기에 외국에서 싸게 바나나나 사과가 들어오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소비자로써의 A와B는 더욱더 싸고 좋은 걸 선택하여 먹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외국산 수입이 자신들을 궁핍하게 하는 원인이 아닌 것이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궁핍하게 하고 있는가? 궁핍의 원인은 알고 보면, 바로 너무나 우리의 삶에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있는 자들의 시위행위는 현실적으로, 가난한 국민의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 지닌 자유, 즉, 소비자로써의 국민의 먹거리 선택권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가난한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자인 본인으로써는 결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에 찬성할 수 없다.

국내 유통망이 탐욕으로 인해 왜곡되어 있고, 그 왜곡을 국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소고기 뿐만 아니라, 평당 100만원~300만원 정도하는 주택가격이 수천만에 거래되는 현실이다. 또한 그걸 방조를 넘어 적극적으로 돕는 주택공사 등 온갖 실체 속에 탐욕이 지나치게 넘실대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에 거대한 탐욕의 파도가 출렁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에 살고 있다면, 탐욕스럽게 부를 바글바글 긁고 있는 자나, 바득바득 힘들게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자든 누구나 할 것이 없이, 앞으로 닥쳐올 엄청난 탐욕의 해일 속에서 어찌 온전할 수 있을까! (유통망만 제대로 정리해도 성인이 된 국민에게 집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라면 누구든지 국민소득에 버금가는 2000만원 정도의 돈을 제공받아 자유로운 삶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사회를 재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행복으로 향하는 첫 걸음이 아닌가? 땅을 파서, 국민을 모두 단순육체노동, 단순정신노동 등 막노동꾼으로 만들어 국민의 육체와 정신을 소모시키는 행위는 일자리 제공이 아니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탐욕스런 자들이 모든 부와 권력 등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다면, 외부에서 뭔가가 유입되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유입이 찰나의 변화를 줄 수 있지만, 그 짧은 변화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여전히 국내(우리들)의 몫이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그 사회가 크게 뭔가(탐욕 등)로 인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70%를 수입하면, 그에 걸맞게 수출을 해야 하는데, 가난한 국민에게 나올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쥐어짜는 것이다. 생산의 유통망, 외환과 금융의 유통망, 사법의 유통망, 행정의 유통망 등 유통망을 거머쥔 자는 탐욕의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는 마법의 버튼을 쥐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독점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폭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통망에서 폭리를 취하면,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전자제품의 가격을 보라. 과학이 이룩한 기적들이 모조리 집약된 반도체, 컴퓨터, USB 등 정말로 똥값이 아닌가!
[[이렇게 헐값에 국민들에게 제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자제품 생산자들은 유통망을 철저히 조사하여 MSRP(제조자가 정한 소비자 가격, 쉽게 말하면, 권장소비자가격)으로 유통망에서 폭리를 취하는 구조를 사전해 차단하고, 물품의 유통을 담당하는 수많은 딜러들이나 도매업자들을 경쟁시킨다. 그러다보니, 유통업자들은 권장소비자가격보다 더욱더 싸게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유통업자는 생산적 노동이나, 창의적 노동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단지 보조하는 자들이다. 생산과 창의적 노동을 보조하면서 부의 분배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성이 특히 중요하다. 요즘은 아예 전자제품을 공짜로 끼워 준다. 소고기나 건설업에도 반도체 등에서 시행되는 철저한 유통망 관리체제가 구축 되야 한다. 그리고 언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외면한 채, 허위 사실을 지속적으로 기사화 하는 것은 유통망을 왜곡시켜, 이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붕괴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라 본다. ]]

전자제품 중 단 한 가지라도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팔려고 해봐라.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것이다. 어쩌면 신이라고 숭배를 받을지도 모르지!! 소한마리를 가지고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팔려고 해봐라. 그냥 소 가격만 쳐줄 것이다. 조선 시대 농부는 소를 자기 자신처럼 아꼈다고 한다. 그만큼, 소가 제공하는 노동력조차도 감사하게 여겼다. 국경을 초월해서 과학자의 창의성이 이룩한 기적적 업적을 공유하며, 너무나 헐값(똥값)에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다면, 자유무역을 비롯한 인류가 추구하는 자유를 향한 모든 노력에 대해 최소한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야 한다.

유럽이 하나의 경제.문화.사회권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처럼, 한국은 일본과 통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을 위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반일감정은 사절이다. 친일이고 애국이고, 친한이 곧 애국인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땅덩어리이지, 존엄한 인간을 한국놈! 일본놈!으로 가두는 감옥같은 울타리가 아닌 것이다. 지금도 인류의 번영을 위해, 유럽,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의 선진국. 심지어 중국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강의를 무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무엇이 그다지도 귀중한 가치이기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민들 모조리 싸잡아, 미친 소나 팔아먹는 파렴치범으로 만들면서 까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를 관철시키려 하는가! 나의 눈에 비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는 탐욕에 눈먼 자들의 독선에 불과했다. 왜냐고? 정선희 등 연예인이 국민의 권리인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천부적인 기본권에 따라 시위에 대한 반대적 의견을 냈다고 하여, 그녀가 어떻게 됐는가? 완전히 마녀사냥 당하듯,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파괴당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자를 다수의 횡포로 망가뜨려 버리는 자들의 행위 속에서 어찌 탐욕이 깃들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 우리의 나라를 자랑스러운 나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정선희를 복직시키고, 그녀가 입은 상처조차도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개인을 소중히 여기며 존엄하게 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또한 여러 상품들과 경쟁할 한우농가에 대한 지원책을 모색하듯,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게 권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 탐욕을 버리고, 진심으로 국민.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일해 주었으면 한다. 노무현 정권에게도 기대했던 희망을 이젠 이명박 정권에게 기대하고 있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훌륭한 정치인이 되기를.....


 
박상준 :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임용.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실용신안 1 저서 2편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저서:::SF소설 "우주의 항문 화이트홀"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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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7/08 [03: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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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2008/07/10 [03:34] 수정 | 삭제

  • 진보를 가장하고 방송국은 물론 교계와 사회에 만연된 친북 좌파는
    한국의 암적인 존재 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현 정부를 전복하는 것인데 그 뿌리는 북한에 두고 있지만
    그 그 역활을 열심히 한자들은 지난 두정권들이며 그 수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점 조직이있는데 그들이 대다수가 인터넷을 조종내지는
    관할하는 자들이며 그동안 내가 지켜 본 바로는 그 대표가 현재 가자 베이징을 포장된 (전 Y T N) 이라고 보는 것은 현 정부와 개신교를 비방하고 폄하 하며 진보라는 포장을 한 친북 세력자들의 반대 되는 모든 부분에 대하여는 무조건 악의적인 기사들만 모아서 올리는 편협적인 내용으로 도배질 함으로 마치 한국의 현 정부나 교계가 다 잘못된 것으로 오해 하도록 하는 기사로 주 종을 이루고 있음을 보면서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북측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물론 대자보라는 이곳도 그러한 성향자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보이지만 당당뉴스라는 곳도 댓글 자들에게 수시로 자갈을 물려서 운영자가 원하는 글을 올리려는 의도가 상당 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혼자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차제에 빨갱이의 사상을 가지고 나라안의 곳곳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소고기 수입 반대라는 이유를 들어 이번 촛불 집회를 주도하여 나라를 혼란케고 정부 전복이라는 용공 자들을 발본 색출하여 엄격한 벌로 다스려져야 함은 물론 각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자들 또한 같은 처벌을 해야 할것이다.

    건전하고 바른 민주주의로 발전 하려면 이러한 자들부터 차단을 하여 바른 정보를 국민들이 접할수 있도록 하는것도 정부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