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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몸을 딛고 우리 일어서리라
신효순·심미선 추모시
 
정연복
▲지난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신효순·심미선 양.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지난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
경기도 양주군 효촌면 한적한 시골길
새소리 바람소리 따라 명랑한 발걸음으로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꽃다운 열 다섯 살 나이의 
신효순 양과 심미선 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이
매스컴의 한 작은 모퉁이를 차지했을 때,
우리는 그냥 단순 교통사고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뒤늦게 사건 현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우리의 눈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너희들의 아리따운 몸이
싸늘하게 식어 나뒹군 도로는
도로 폭보다 20cm나 더 넓은 장갑차가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길이었지.
이런 위험한 도로를
훈련 상황을 미리 알리지도 않고
아무런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로,
그 육중한 장갑차가 
빠른 속도로 사정없이 내달려
너희를 갓길로 내몰아 깔아뭉갠 거야.
               
갓길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 현장의 선명한 장갑차 바퀴자국이
그 날의 사고가 사실상 살인 행위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니.  
그렇게 처참히 짓뭉개진 너희 꽃몸을 보며
정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주르르 흘러내렸어.
                             
이 땅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구나.
그까짓 월드컵에 나라 전체가 온통 정신이 팔려 
너희의 억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나 몰라라 했던 게
이제야 너무 미안해 견딜 수가 없구나.
너희를 위해 단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차가운 양심이 밉기만 하구나.
‘엄마 아빠,
엄청난 굉음 속에 달려드는 장갑차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나 너무 많이 아팠어.
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데
사랑하는 친구들이 난 너무 좋은데,
왜 내가 벌써 떠나야만 하는 거지?
난 정말 억울하게 죽었잖아.
그래서 엄마 아빠 마음이 더 많이 슬펐겠지.’
               
▲두 여중생의 사망 이후 미국과의 SOFA협정을 개정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현재까지도 일고있다.     ©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아주 선한 눈빛의 신효순
총명함이 눈부신 심미선,
너희 어린 꽃망울들의 
억울한 죽음이 한(恨)이 되어 
망망 하늘을 외로이 떠돌고 있지나 않은지
참으로 안타깝구나.
원통하고 원통하고 또 원통할 뿐,
어떤 말로 이 슬픔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을까.
뒤늦게 흘리는 우리의 뜨거운 눈물이
너희의 몹시도 외로웠을 영혼을
조금이나마 따뜻이 위로할 수 있을까.               
 
미군, 너희들은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공무 중에 일어난 일이므로
아무 책임이 없다는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이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와 진상 규명 요구에 떠밀려
마치 자존심이라도 상한 듯 볼멘 소리로
앵무새처럼 말한다.
“우리는 규정대로 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대해 유감이다.”
                
미군, 너희들은 진정 모르는가?
공무 집행 중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너희의 그 말도 안 되는 궁색한 변명이
이 땅의 사람들의 인격을 
총체적으로 무시하는 오만불손한 말이라는 것을.
이 땅에 너희가 ‘점령군’으로 들어온 이후
늘 너희는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했지.
               
그러나 똑똑히 들어라
이번만큼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한치의 의심도 남지 않는
정확한 진상 조사가 이루질 때까지,
너희가 형사 재판권을 한국 정부에 이양하여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들을 무참히 살해한
미군을 우리의 법정에 세워
효선이 미선이의 억울한 한이 풀리고
우리의 짓밟힌 민족 자존심을 되찾기까지,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왜?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그저 두 어린 소녀의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미군 기지가 있는 이 땅의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죽음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어린 학생들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발끝부터 치미는 분노에
참을 수 없이 전율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지부지 넘어가겠지’ 하는
너희 미군의 무책임한 태도를
이제 우리 국민은 결코 용서하지 없으리라. 
               
주검 앞에서도 인간의 양심을 포기한
패권주의 미국은 똑똑히 기억하라.
우리는 백주대낮의 너희의 살인 만행을
뼛속 깊이 사무치는 증오와 함께
영원히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정말 주권국가 사이에 맺어진 조약인지
의심이 가는 불평등 소파협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효순이와 미선이가 이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으리라. 
               
미군의 온갖 불법적인 만행들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
더 이상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미군 주둔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는 미군을
우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리라.  
               
또한 우리는 명심하리라.
한국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쩌면 한국을 미국 식민지로 만드는 장본인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정부인지도 모른다. 
미국 앞에서는 늘 고양이 앞의 쥐 꼴밖에 안 되는 
정부는 이제 반성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반미 감정이 일어날까봐 겁먹은
이 땅의 정치인, 지도자, 언론인, 종교인들은
모두 너무 비겁하구나. 
      
▲     © 평통사

아, 이제는 우리
한마음 한뜻으로 투쟁하여
억울하게 하늘나라로 간 고인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어야 할 때.
멋진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에
미국에게 빼앗긴 우리의 딸들의 넋을
행동으로 싸움으로 보듬어야 할 때. 
               
아직도 엄마 품에서 한창 어리광을 피울 나이에
이렇게 서둘러 떠나면 어떡해?
너무 가슴이 아파.
다음 생에서는 오래오래 행복하렴.
미군과 장갑차가 없는 저 세상에서
파아란 꿈을 펼치렴. 
정의가 있는 천국에서 편히 쉬렴
효순아, 미선아!
평화의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렴.
               
‘엄마 아빠, 나 늘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 있을래.
다음 세상에서는 미군 없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태어나
우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자.’
우리는 잠깐 동안만 분노해서는 안 된다.
미군, 그들의 뻔뻔스러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알아야 하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서 오는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알아야 하리라. 
   

이 나라는 진정 누구의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엄연한 주권을 가진 자유민주국가이며
우리는 이 땅의 자유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의 노예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우리의 주권은 미국이 베풀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쟁취해 가는 것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 1:29)
효선이와 미선이가 말없이 남긴 유언은,
미군 없는 자유와 평화의 땅에서
우리 민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 날을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가는
바로 그것임을.  
                
아직 이 땅은 암흑의 세상.
일어서리라 일어서리라 일어서리라.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외쳤던 그 날처럼,
월드컵 때 온 국민이 보여주었던
그 뜨거웠던 열기, 그 우렁찬 함성으로
우리는 일어서리라.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기사입력: 2008/06/03 [11:5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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