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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행사에 혹사당하는 유니버시아드경찰
장정현 경장의 죽음, 경찰의 인권을 생각케하다
 
서태영   기사입력  2003/08/27 [04:01]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한 북한 테니스 선수단  호위를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가던 경찰이 음주운전자가 몰던 1톤 포터에 맞아죽었다. 

24일 새벽 2시10분쯤 대구 신천대로 서변대교 부근을 순찰 오토바이를 타고 주행중이던 대구서부경찰서 교통지도계 소속 장정현(35세) 경장이 일방통행 신호를 무시하고 역주행하던 배아무개(29세)씨의 1톤트럭과 정면 충돌해 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 또 음주운전자에게 경찰이 희생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음주측정 결과, 화물트럭 운전사 배씨는 혈중 알코올농도 0.313%의 만취상태에서 차를 몰고 200미터 가량 역주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 죽일려고 환장한 운전이었다! 사고를 당한 경찰은 아무 말이 없는데, 사고를 낸 운전자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꼴은 또 뭐람. 

장경장은 어느 얼빠진 운전자의 음주운전에 치여죽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니버시아드 비상 근무 때문에 순직했다는 점에서, 국제경기다 특별행사다해서 모양내기 행사에 강제동원되어 혹사당하는 경찰의 인권이나 처우개선에 대해 다시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서태영

장경장만 해도 밤 10시 북한선수단을 대구은행연수원에 안전하게 바래다주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새벽 1시 50분 잠에서 깨어, 새벽5시 근무를 위하여 소속 경찰서로 귀서하다가 2시 10분경 변을 당했다. 서부경찰서 소속의 그가 평상시 근무라면 새벽에 북부경찰서 관할의 서변로를 왠간해서는 달릴 턱이 없었다. 특별근무가 화근이 되었다.

대구유니버시아드 공식누리집(
http://www.universiade-daegu.org)이나 대구경찰청 누리집(http://www.dgpolice.go.kr)에는 아직 그의 죽음을 전하는 소식 한줄 없다.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유대회 성공을 위해 강제동원(?)당했던 그는 이렇게 까마득히 잊혀지거나 개죽음 당해야 할만큼  무가치한 일을 했을까.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망각이라고 했다. 유대회를 개최해서 운영하는 사람들이 잔인하도록 무서워진다. 그는 전세계언론으로부터 각광받는 북한선수단 호위업무를 티나지 않게 수행하다 변을 당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유대회의 숨은 공로자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유대회 조직위는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성의를 발휘하기 바란다. 금새 시들어버릴 조직위원장의 화환으로 대충 떼우고 지나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기억하라. 그는 경찰로서 유대회를 위해 일하다 순직했다. 경찰잡은 유대회로 폐막되지 않도록 예를 다하기 바란다.   
 
서른 다섯살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는 92년 구미경찰서내 파출소에서 경찰생활을 시작, 파출소에 근무하면서 각종 범죄사범 검거 실적이 높아 97년 경장으로 특진했다. 그의 가족은 삼부자 경찰-아버지는 정년 퇴직, 형은 북부경찰서 근무-로 이 지역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말단 파출소에서 출발해, 형사반을 거쳐 작년부터  어릴적 꿈이었던 경찰 싸이카대원이 되는데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부친처럼 살아서 정년퇴직을 하진 못했다. 

사고야 술마시고 운전한 사람이 냈다고 하지만, 큰 대회를 열어 과잉경찰, 과로경찰을 만드는 관행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국민의 안전을 제일로 돌봐야 하지만 같은 국민인 경찰의 고충도 살펴야 한다. 현재 대구경찰들은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맞아 비번없는 비상근무를 수행하고 있다. 24시간 종일근무에 4시간 휴식. 사정은 소방관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펜싱대회가 열리는 대구엑스코에는 23일,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대회장으로 출근한 두명의 소방관을 만났다.  피곤에 절은 눈을 쳐다보기가 미안했다. 잔치판에 웬 수난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유관기관 협조라는 미명 아래, 경찰공무원의 혹사를 통해 치러지는 국제대회를 열어야 하나?  경찰 고위관계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그의 죽음은 행정자치부장관, 경찰청장이 보낸 조화로 위로받을 성질은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하사되는 금일봉, 조화, 연금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8살, 6살 먹은 두딸과 한 아낙의 가장이었던 그의 불행은 철저히 그를 둘러싼 개인사로 귀결되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의경들. 더이상의 원시적인 전시, 동원행정은 그만두어야 할 때다     ©서태영
앞으로 "국가는 경찰을 막부려먹어도 괜찮은가"에 대한 토론이 뒤따랐으면 좋겠다. 경찰이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지사라지만, 지금처럼 과잉경비와 과잉경호로 경찰병력을 피로하게 만드는 경찰행정에 대한 성찰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발길은 줄을 이었다. 빈소에는 슬퍼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국가대사를 위해 일하다 숨진 서른 다섯 어느 경관의 빈소는 경장급으로 차려져 있었다. 주제넘게도, 대통령을 대신해서 그의 영전 앞에 "젊은 경찰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는다"는 말을 바친다.  

늦은 밤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을 만났다. 현장을 지휘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서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대구시내에서는 음주운전자들 술맛땡긴다는  농담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럴 때 음주운전하지 않고 언제 하냐는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낮에 경찰을 막부려 먹으니 밤에 음주운전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니버시아드 경기장 주변에 과잉동원되는 경찰행정으로는 또 다른 사고를 막지 못한다. 경찰은 철인이 아니다.  피곤한 경찰에게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을 위하는 길이다. 장례도 치르기전 장정현 경장의 인사기록철은 말소되었다. 이제 그는 아무 곳에도 남아 있지 않는 대구유니버시아드 지킴이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오래오래 말이다.   

국제대회를 위해 업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유대회경찰의 죽음을 대부분의 언론은 단순교통사고로 전했다. 언론의 타성은 중병든 환자처럼 느껴졌다. 그의 죽음을 단신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았을까? 언론은 양지를 비추기보다는 아무래도 어둠을 비쳐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이 소임인줄로 안다. 과연 스포츠 저널리즘이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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